< --雄飛-- >
"아직은 아닙니다만, 그럴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금번 소련 방문 시 그런 의도로 소련의 유명한 전투제조기 회사의 지분을 일정 부분 매입했습니다만, 아직은 구체적인 진전 사항이 없으니 답변 드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튼 이 캐나데어(Canadair)라고도 불리는 CL-415는 협상 추진과정에서 얽힌 재미난 일화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잠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을 끊고 잠시 물을 마신 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가 협상 과정에서 팜플렛을 보는 순간, 이건 수륙양용이니 첨벙 강이나 바다에서 물을 퍼다가, 산불진화용에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디어를 봄바디어 그룹에 전하게 한 바, 곧 산불이나 대형 화재 진압용으로 변신해 출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당시 모델이 CL-215였습니다.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경향신문의 피천만 기자입니다."
"말씀하세요."
"CNN 보도에 따르면 대정그룹에서는 금번에 미국 아칸소 주에, 연산 5만 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준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한국에는 세울 수 없었으며, 또 굳이 자동차 공장의 환경으로 보면 최악인 남부의 아칸소 주에 세우셨는지, 그 정확한 의도를 묻고 싶습니다."
"다 아시겠습니다만, 아칸소 주 하면 6.25전쟁에서 우리를 북괴의 마수로부터 구원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맥아더 장군이 태어난 곳입니다. 해서 보은의 차원에서 이 주를 눈여겨보았고요. 결정적으로는 그 주에서 미국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 하나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미국으로 보면 아주 촌구석인 그곳에서 정치 거물이 탄생하다니요?"
"우리나라 국익을 위해서 로비를 하긴 해야겠는데, 굳이 숨어서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채 2년이 되기 전에 제 말을 실증할 수 있을 것이니까, 그 문제는 그때 가서 봅시다. 그리고 마저 답변을 드리지요. 한국에서는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싶어도 세울 수 없는 것은 기자 분들이 더 잘 아시면서, 그런 질문을 굳이 해 저를 건드리는 이유를 잘 모르겠군요. 답변이 되었습니까?"
"솔직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다음 기자 분 질문하세요."
"한겨레의 김미애 기자입니다. 회장님의 행적을 보면 미주순방의 마지막 날은 멕시코에서 머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그곳에서도 투자를 하신 건지, 아니면 놀러 가신건지? 투자를 하셨다면 굳이 한국을 내버려두고, 자꾸 왜 외국에 투자를 하는지, 그 저의를 묻고 싶습니다."
"여자 분이라 좀 순한 질문이 나올 줄 알았더니, 더 날카로운 질문을 하시는 군요."
공개석상이라 내가 이렇게 순화된 표현을 썼지만 사석이라면 '날카로운 질문'이 아니라, '모욕적인 질문'으로 대체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나는 답변을 시작했다.
"좋은 말로 표현해서 기업가이지, 솔직히 저는 장사꾼이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장사꾼이라면 장사꾼은 이문을 위해서는 천리만리 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점점 블록화 경향을 띠어가고 있습니다. 북서아프리카 다섯 나라가 결성한 마그레브연합을 비롯해 곧 유럽도 단일화 될 것이고, 미국은 미국대로 캐나다나 멕시코 등을 끌어들여, 이제는 보호 장벽을 넘어 그들끼리 잘 살려 할 것입니다. 천연자원도 뭣도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이런 모든 것을 예상하고 이들 나라에 선 투자를 하는 길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첩경입니다. 그 일환으로 우리 그룹은 멕시코에 전자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룹차원에서 멕시코의 통신사업에도 진출했습니다."
여기서 일단 말을 끊었던 나의 말이 이어졌다.
"왜 우리나라에 투자를 하지 않느냐? 좋은 질문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가 7.6%입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너무 낮다고 벌써부터 아우성입니다. 제가 볼 때는 이마저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 나가면 한국은 일 년에 3, 4%도 성장하기 어려운 저성장국가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만, 그 첫째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생산성에 비한 과도한 임금인상과 과격한 노사분규입니다. 이는 곳간에 저장된 곡식을 조만간 다 파먹고, 견디지 못한 한계 기업들을 전부 외국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해, 종래에는 좀 한다하는 기업만 남을 것이고, 그나마도 자꾸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기웃거릴 것입니다. 거꾸로 기자 분들이라면 툭하면 파업이나 하고, 매년 터무니없는 월급 인상요구를 견뎌내며 기업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적자가 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깐 만요. 회장님!"
"내 답변 아직 안 끝났습니다만?"
"이의가 있어서입니다."
"말씀해보세요."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가들은 저임금이라는 단물을 톡톡히 빼먹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 몇 해 임금인상이 좀 된 것을 가지고, 대정그룹 회장님부터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것은 실망을 넘어 분노감이 듭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김 기자의 말이 전혀 맞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옳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기업들이 그랬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업가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기업치고 제대로 자본축적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기술축적이 제대로 되었습니까? 믿을 것은 오로지 저임의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열정과 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나태와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 노사분규로 점점 더 빛이 바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추세라면 결론은 자명합니다. 내 말대로 웬만한 중소기업은 전부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제 말은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올려달라는 만큼 생산성도 향상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허겁지겁 출근해서 30분 전에 점심 식사하러 가고, 20분 전부터 빗자루 드는 버릇은 고치지 않고, 무턱대고 인금인상이나 요구하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머리띠 두르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아서는,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저성장 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공식석상에서는 기업의 어른이라는 사람들도 노동자들이 두려워서 이런 말을 못합니다. 이런 풍토부터 고쳐져야 하고요. 오늘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습니다. 이만 줄입시다."
"딱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김 기자님, 끈질기시네요."
"이번에는 좋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럼, 해보세요."
"하하하.........!"
"얼마 전부터의 회장님 행보를 더듬어 보면 일관되게 항공 산업 발전을 위해 움직인 것 같습니다. 회장님 말씀대로라면 저임금 산업은 갔다, 고부가가치의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시는 것 같습니다. 다 좋습니다만, 대정이 항공 산업마저 독점해서 거대공룡이 이제는 아예 나라의 절반을 잠식하는 것 아닙니까?"
"잘 나가다가 끝에는 뼈가 있는 말씀이군요."
나의 말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좋습니다. 답변 드리도록 하죠."
이렇게 운을 뗀 나는 과도하게 많은 말로 인해 갈증이 나서, 물 한 컵을 다 비우고 발언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항공 산업은 이제 시작입니다. 진정한 항공 산업이 되려면 수십만의 항공기 부품에 대한 국산화가 이루어질 때, 제대로 된 항공 산업을 일구었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항공 산업의 부품시장을 개방할 생각입니다. 즉 재벌이 되었든 중소기업이 되었든 이 부품 생산에 동참한다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이로써 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나는 동시에 그만큼 부품의 국산화가 이루어진다면, 더 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훌륭하신 생각이십니다."
어느 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얼른 마이크를 빼앗아들고 발언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경제신문의 주한 특파원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답변이 가능하신지요?"
"허허........! 그러고 보니 외국기자 분들에게는 발언 기회를 한 번도 안 드렸네요. 말씀해 보세요. 무엇이든지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반도체, 전자, 헬스 케어 산업에 이어 이제 항공 산업마저 한국은 일본을 앞서가려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본의 대기업인 미쓰비시조차도 중형항공기는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장에 일본기업이 합작투자를 원한다면, 이들에게도 한국 기업들과 같은 개방화가 적용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아서 아직은 무어라고 답변을 드릴 수 없네요. 하지만 제가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처음 전자산업을 시작할 때, 소니의 기술지원을 받은 바가 있고, 건설사도 일본기업에서 기술을 익힌 사람을 픽업한 바도 있습니다. 근래에는 우리가 다음 먹거리 사업으로 준비하고 있는 식량 에너지 분야에서, 자원빈국인 일본의 대기업과도 손을 잡기 위해 다각도로 접촉하고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한일 기업 간에는 경쟁분야도 있지만, 손잡을 분야도 많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강 회장님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입니다만, 부인이 셋씩이나 되시는 분이 이번에는 왜 혼자 출장을 가셨는지, 적적하지는 않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느 신문이오?"
"일간스포츠입니다."
"스포츠신문 다운 질문이군."
"하하하.........!"
"이러다가는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만 마지막으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음.........! 제 입장에서는 적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면 답이 될까요?"
"왜 그렀습니까?"
"부인을 셋씩이나 두고 살아보세요. 그러면 알게 될 겁니다."
"오늘은 그만 합시다. 다음에 또 자리 마련하도록 하고."
"장시간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좋게나 써주세요."
"하하하..........!"
^^============================ 작품 후기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즐겁고 유쾌한 날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