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62화 (262/322)

< --雄飛-- >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나는 비서실장을 시켜 청와대에 전화 한 통을 넣도록 했다. 즉 저가항공 설립허가에 대한 사항을 정부에서 발표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화 한 통이 내가 미처 김포공항을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몰리게 할 정도인지는 몰랐다. 평소에도 많은 기자들이 나를 쫓아다니며 취재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유별났다. 나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오는 기자들을 막기 위해 경호원들과 수행원들이 몸으로 막아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방에서 번쩍번쩍 터지는 플래시 세례가 눈을 못 뜨게 할 정도인데다 들이대는 마이크와 녹음기로 잘못하면 내 이빨이 다 깨질 정도다. 여기에 쏟아지는 질문 또한 무수히 많으니 무엇을 대답해주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힐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내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할 테니, 그곳에서 봅시다. 우선 여기서는 길을 터주세요."

그래도 막무가내인 기자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급히 비서실장에게 지시하며 말했다.

"급히 대회의실에 기자회견장을 마련하라 하세요. 들으셨습니까? 일단 그룹 사무실로 갑시다. 여기서는 일체 대답하지 않을 테니 그런지 아세요."

내 말에 기자들이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5분 후에는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이 내 말을 믿고 떠나갔다. 그러나 몇몇 기자들은 미련을 못 버리고 아직도 내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런 기자들에게 내가 말했다.

"저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입니다. 방금 지시한 대로 우리 그룹의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할 것이니 이만 앞길을 터주세요."

그래도 몇몇 기자들이 머뭇머뭇하자 내가 말했다.

"한 번 안 한다면 안 하는 고집도 있습니다. 모르십니까?"

내 얼굴이 다소 붉어지고 톤이 높아지자 그제야 앞길을 터주는 기자들이었다. 비로소 수행원들이 나를 에워싸고 경호원들은 빠른 걸음으로 앞길을 헤치며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차에 오르자 앞뒤로 마중 나온 차량까지 십여 대가 일제히 움직이며 분잡한 김포공항을 빠져나갔다. 우리 일행이 그룹 빌딩 현관 앞에 도착하니 벌써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또 한 번 터지는 플래시 세례 속에서 나는 묵묵히 12명으로 불어난 경호원들에 에워싸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타 사와 달리 회장전용 엘리베이터는 없었지만 미리 통제를 해서인지, 나는 바로 엘리베이터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대 회의실 기자회견장.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사장이나 최소 그룹의 중역들이 앉을 자리에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삼면에는 사진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내가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에도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었다. 미리 준비된 컵에 물을 따라 잠시 목을 축인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방송을 소유한 한 사람으로서 우리 방송국에만 특종을 주려고 했는데, 공항에서 질문들을 하시는 걸 보니, 나의 이번 행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럴 수도 없군요."

"하하하.........!"

나의 가벼운 농담에 잠시 장내에 가벼운 소요가 일고, 이것이 진정되자 나는 등록일 : 14.03.14 00:25다시 발언을 시작했다.

"저, 한국일보부터 질문하시죠. 내가 이런 특혜를 주는 건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죠?"

"하하하........!"

장내에 다시 웃음이 터지는데, 그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국일보 기자 하나가 내게 질문을 했다.

"한국일보 후배 기자 강기용입니다."

"꼭 티 나게 그런 것을 강조할 필요는 없고요. 묻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정부발표로 미루어보면 금번에 저가항공사 설립을 허가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지난 대선 때의 도움이라든가 아니면 근간의 도움에 의한 특혜가 아닌지 먼저 묻고 싶습니다."

"후배기자라서 봐줄 줄 알았더니, 묻는 것이 되게 아프네."

나의 말에 장내에 다시 한 번 폭소가 터졌다. 잠시 기다렸던 내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한국 정치 풍토상 정치헌금을 전혀 안 했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만, 이번 건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하나는 허가를 내준지 얼마 안 되어 이제 걸음마 단계고, 하나는 그럭저럭 규모를 갖추었으나 외국 거대 항공사에 비하면 터무니없는데, 이런 속에 저가항공을 출현시켜 과다경쟁을 시키는 것은, 한국의 항공 산업을 공멸시키자는 것입니까? 뭡니까?"

"꼭 두 항공사의 대변인 같은 질문입니다만,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내가 기자 분에게 먼저 질문을 드리죠."

여기서 잠시 말을 끊은 나는 질문한 기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서비스나 모든 면이 똑같다면 현행 항공요금의 70~80% 선인 항공기를 이용하겠습니까? 아니면 기존의 항공사를 이용하겠습니까?"

"그야, 싼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들의 행태겠지요."

"바로 그겁니다. 작년에 우리나라도 이제 여행자율화가 실시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국민들에게 같은 서비스에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국민들의 주머니를 한 푼이라도 더 챙겨주기 위해 이 항공사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요인은 지금은 그래도 유가가 저렴하지만 머지않아 저는 100달러를 넘는 고유가 시대가 곧 도래 하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대형항공사의 폐업이 속출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비를 우리 그룹이 먼저 행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고유가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무슨 근거로 추론하시는 것입니까?"

"정반합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갈라서면 통합이 되고, 통합이 되면 다시 갈라서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었고, 유가 역시 떨어져서 심한 낭비 요소가 있으면, 그만큼 자원은 빠르게 소모됩니다. 그러면 더 빠르게 육상유전이 소멸 될 것이고, 이제는 해저유전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채굴경비가 많이 들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유가로 전가될 것입니다. 그 기간이 채 10년이 남지 않았습니다. 미리미리 단련하지 않으면 우리 항공사는 설 곳이 없을 것입니다."

"백 번 양보해서........."

"강 기자의 질문은 그만 받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기회를 드린 것 같습니다. 다음 기자 분 질문하세요."

나의 말에 한국일보 강기용 기자가 머쓱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내리고 매일경제의 기자가 마이크를 이어받아 질문을 했다.

"얼마 전에는 북경과 모스크바를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금번 정부 발표와 연관이 있었던 행보인지 궁금합니다. 자세하게 답변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등성명도 안 대시 다니 좀 무례하시네요."

나의 웃음 띤 말에 매일경제 기자가 버버거리며 말했다.

"아, 예.........! 매일경제의 홍 상철 기자입니다."

"얼마 전에 퇴임하신 청와대 비서실장과 가운데 이름 한 자만 틀리는 좋은 이름을 왜 안 대셨습니까?"

"하하하.........!"

"농담이었고요.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중국의 하늘 길을 열지 못했고, 소련도 모스크바만 금년 1월에 열린 외에는 다른 지역은 취역도 못하고 있습니다. 해서 정부에 허가서를 제출해놓고는 하늘 길부터 뚫으러 갔습니다."

내가 한 호흡 쉬는 사이 성질이 급한 기자인지 급하게 다시 질문을 쏟아내는 홍 기자였다.

"그래서 성공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중국의 수반인 장쩌민 총서기의 호의로 네 군데 길을 열어놨습니다. 곧 북경, 상해, 천진, 심양이 그곳입니다. 또 소련은 어느 도시건 원하는 곳이면 모두 취항해도 좋다는 고르바초프 서가장의 내락을 받았습니다."

"고생은 하셨습니다만, 그럼, 사전에 정부의 허가가 날 줄 알았다는 행보로 해석해도 될까요?"

"굳이 그렇게만 해석할 것이 아니죠. 설령 허가가 안 나도 다른 항공사라도 취항할 수 있다면, 이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 절대 해가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의 답변에 그대로 마이크를 끄는 홍 기자였다. 그의 행태에 내가 약간은 비꼬는 어투로 말했다.

"긍정을 해주면 동료 사회에서 따돌림이라도 당합니까?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나의 말에 무안한 표정으로 손을 든 옆의 기자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홍 기자였다.

"KBS의 강순천기자입니다."

"오늘 강 씨 종 씨 파티하나요?"

"하하하..........!"

"장쩌민 총서기와 고르바초프의 평소 친분을 이용해 누구도 열지 못했던 죽의 장막과 철의 장막을 걷어내 주신 강 회장님께 사의를 표하며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는 돼야 저도 신이 나서 한 마디라도 더 답변을 드리지 않겠어요?"

"하하하.........!"

"금번에 중형항공기 40대를 들여와 항공사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거리 노선 밖에 운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 수지타산이 맞을지 걱정이고, 또 대정그룹의 재계 순위를 생각한다면 더 큰 항공사도 설립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저가와 근거리 취항만을 하게 된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하면 누구든 항공사를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고, 운용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과대경쟁으로 인해 항공사들이 공멸할 수 있으므로, 지금까지 한 항공사만 인가해주다가, 88년 초에서야 서울항공의 허가가 낫습니다. 처음 한국일보 기자가 지적한 대로 아직 한 항공사는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런 마당에 우리마저 똑같이 경쟁을 하겠다면 정부에서 허가를 내주지도 않을뿐더러, 상도의 상으로도 못할 짓하는 것 같아, 저가항공 설립허가를 신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가항공이라고 해서 장거리 취항은 못한다는 규정은 없지요. 하지만 이는 노선권을 얻어야 하는 문제가 또 있으므로,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해서 우리 그룹은 근거리부터 취항하면서 내실을 다지고 경험을 쌓아가려 합니다. 답이 되었습니까?"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다음 질문 해주세요."

"SBS의 김철민 기자입니다. 회장님께 묻겠습니다. AFP 통신 보도에 따르면, 대정그룹이 항공 산업에도 뛰어드는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정말 그런지 묻고 싶고요, 만약 그렇다면 항공 산업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항공 산업을 키워나갈지, 그 복안이 있으면 한 말씀 해주시죠."

"내가 SBS의 회장이라서 그런지, 이건 PR성 질문을 해주셨는데, 물었으니 답변을 드려야지요?"

"금번에 우리 그룹은 세계 항공기 업체 랭킹 3위인 캐나다의 봄바디어 그룹의 지분 20%를 획득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그룹은 이들로부터 철도차량은 물론 항공기에 대한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또 우리가 들여오기로 한 40대는 전량 한국에서 조립할 것이고, 급한 대로 봄바디어와 보잉에 6대는 선주문 했습니다만, 아무튼 새롭게 개발될 74인승 전후의 대시 8 - Q400 같은 경우는 개발이 끝나는 대로 전량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수륙양용폭격기인 CL-415 같은 경우도 우리가 원하면 전폭적인 제작기술 지원을 약속한 바가 있습니다."

"그럼, 군수산업에도 진출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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