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52화 (252/322)

< --雄飛-- >

자식이라는 게 말뿐, 당신이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 얼마나 신경을 썼는가? 순간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며느리들 모두 당혹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지금의 내 심정만 하겠는가.

나는 격정으로 치달리는 감정을 꾹꾹 찍어 누르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는 아직도 김 사장이 서 있었다. 나는 내면의 감정을 조절하느라 굳은 얼굴로 딱딱하게 말했다.

"스키 용품 팔죠?"

"네. 회장님!"

"아버지 어머니 체형에 맞게 모자, 장갑, 방한화에 이르기까지 세트로 좀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김 사장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다시 룸 안으로 들어왔다.

"뭐가 어때서 모두 그런 눈으로 우릴 바라보냐?"

"그게.........."

고개 돌려 외면한 채 버버거리는 며느리들도 꼴 보기 싫어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조금 있으면 새로운 옷들이 도착할 겁니다. 건너 가셔서 그것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그 차림으로는 추워서 안 됩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창피해서'라는 말이 튀어나올 번했다. 그것을 '추워서'로 바꾸느라 무진장 애를 먹었다.

"이 옷만 해도 되는데........."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감지한 어머니가 한 마디 하시고는, 얼른 아버지를 이끌고 자신들의 방으로 향하셨다.

"당신들도 평소에 아버지 어머니에게 신경 좀 써."

"알았어요. 미안해요."

미정이 다소곳이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입을 삐죽빼죽 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우리 부모에게 얼마나 신경을 썼는데?'

라는 생각으로. 그러나 오늘은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재빨리 미정이 내 기분을 알아 체고 사과하는 바람에, 분위기는 그런 대로 수습이 되었다.

"아이들 살피고 올 게요."

무거운 분위기를 피하듯 명희가 그렇게 말하고 사라지자, 수정이 뒤를 이어 따라가고, 미정도 곧 아이들 방으로 사라졌다. 혼자 덩그라니 남게 되자 나는 베란다로 나갔다. 설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키도 타고 장난도 치며, 눈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무심한 눈으로 이를 지켜보던 나는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아내들의 짐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옅은 하늘색 상하의 스키복을 꺼내 입고, 털모자와 장갑, 방한화도 신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니 마침 김 사장이 두 손에 커다란 봉지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여기 있습니다.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건넨 나는 봉지 두 개를 받아, 잠기지 않은 아버지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 차림으로는 추워서 안 되니,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밖에서 기다릴 게요."

"알았다."

어머니가 얼른 대답하시고 봉지 째 들고 안으로 사라지셨다. 나는 곧 밖으로 나와 아이들의 방으로 가보았다. 아이들 모두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완전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막내 소산만이 제 엄마에 의해, 아직도 옷이 갈아입혀지고 있는 중이었다.

"당신들도 얼른 옷 갈아입어."

"네!"

내 말에 미정과 수정이 밖으로 나가고, 명희도 금방 소산을 다 갈아입히고 뒤를 따랐다.

"아빠! 멋있다!"

이제 중3으로 올라가는 다정이 갑자기 내 팔짱을 끼며 그렇게 말했다. 평소의 내 표정이 아닌 것을 간파하고 아양을 떠는 것이다.

"응, 너도 멋있어!"

"나도 예쁘지, 아빠?"

"그래, 그래!"

"그런데 나 스키 탈 줄 모르는데.......?"

"이번 기회에 배우자. 날 때부터 탈 줄 아는 사람은 없거든."

"그렇지, 아빠?"

"그래, 그래. 나가자!"

"아빠, 뽀뽀해 줄까?"

"이제 다 크니, 딸이라지만 징그럽다."

"에잉, 나는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살짝 내 볼에 뽀뽀까지 하는 다정이 때문에 내 기분이 확 풀렸다.

"하하하........! 욘석!"

나는 다정에게 꿀밤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복도로 나왔다.'쳇, 쳇' 거리는 다정을 따라 아이들도 하나 둘씩 복도로 나왔다. 이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문을 열고 나오시며 물었다.

"어떠냐?"

"우와! 할머니, 할아버지, 멋있다! 꼭 신식 사람 같다."

나보다 다정이 먼저 반응했지만, 뒤의 말은 안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표정이 온전히 즐겁지만은 아닌 표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렇게 차려 입으니 얼마나 좋아요. 따뜻한 것도 따뜻한 것이지만, 남들 보기에도 참 좋잖아요."

"옛날부터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더니,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내 말에 어머니도 활짝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이때 아내들도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우와! 진짜 어마 잘 어울린다!"

"그렇지?"

다정의 말에 미정이 자신의 몸태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활짝 피고, 질세라 효정이 말했다.

"우리 엄마는 진짜 영화배우 같다!"

그 말에 오히려 수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 엄마 짱이다!"

인정이 제 엄마한테 달려가며 한마디 하자, 명희는 그런 인정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즐거워했다.

"가자!"

"우와 신난다! 우리 스키 타러 간다!"

내 말에 다정이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 내게 쫓아오더니 날름 팔짱을 꼈다.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이때 한 옆에 서 있던 김 사장이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잡으며 말했다. 내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가시죠. 어머니 아버지!"

"그래."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나는 부모님부터 안에 모시고, 아직도 팔짱을 풀지 않은 다정과 함께 먼저 내려가며 말했다.

"당신들은 아이들 데리고 천천히 내려와."

"네!"

그렇게 말하는데 날름 엘리베이터 속으로 뛰어드는 놈이 있었다.

"아빠, 나도!"

중산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의 문 열림 표지판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하강을 하며 빠른 속도로 숫자를 줄여나갔다. 마침내 1이라는 숫자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네 명의 경호원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옷차림을 보니 영 아니었다. 평소 입고 다니던 파커차림이었으나 색깔이 너무 칙칙했다. 그래서 내가 김 회장에게 말했다.

"저 경호원들도 좀 밝은 색으로 해서 상의 스키복과 털모자 하나씩 갖춰주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아, 아닙니다."

조춘택 경호조장의 당황한 듯한 음성을 나는 내 권위로 찍어 눌렀다.

"내 말에 따르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찍 소리 한 번 못하고 내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곧 김 사장이 일층의 상가 매장으로 뛰어가고 나는 1층 로비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아내와 아이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엘리베이터가 몇 인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경고음이 안 울리고 다 태우고 내려온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내들의 옷 색깔이 본인들과 참으로 잘 어울렸다. 수정은 다홍색, 미정은 밝은 노랑, 명희는 연두색 스키복을 입었는데, 하나 같이 잘 어울렸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렇게 입으니 누가 채 갈까봐 두려운데?"

"호호호........! 예쁘죠?"

미정이 한 바퀴 빙 돌며 자랑을 하는데, 어머니는 내 말에

'으이구, 팔불출!'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이때 김 사장이 옷 보따리를 들고 오는 것을 보며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우리는 곧 웃고 떠들며 스키장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나를 알아본 사람들의 시선이 가는 곳마다 쏠렸지만, 이골이 난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눈 쌓인 슬로프를 걸어 올라갔다.

마침내 스키장에 도착하자 우리는 이곳에서 각자 맞는 스키를 대여했다. 아내들이 스키를 사자고 졸랐지만, 얼마 타지도 않을 것을 괜히 돈 낭비라고 내가 끝까지 주장해, 전부 오늘 스키를 빌려야 했다. 이때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만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나는 곧 리프터라도 타게 할 요량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눈치 빠른 다정이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제가 모실게요. 엄마 아빠는 동생들 하고 스키 즐기세요."

이때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철산이 여드름 난 얼굴을 자신도 모르게 짜고 있다가, 나서며 말했다.

"아니야, 누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제가 모실 테니, 누나는 엄마 아빠랑 같이 스키 타."

"왜? 내가 모시려고 하는데........?"

"분위기 메이커인 누나가 빠지면 재미없지. 내 말대로 해."

"알았어. 네가 잘 모셔야 해."

"걱정 마, 누나! 내가 잘 모실 테니까."

"아이고, 그래도 우리 맏손자가 제일 낫다."

"할머니! 제일 먼저 모신다고 한 것은 저거든요."

할머니의 말이 서운했던지, 다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항변을 했다.

"우리 맏손녀 마음도 아니 걱정마라. 너는 아빠 엄마 모시고 즐겨라."

"네, 할머니!"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양편으로 갈렸다. 이때 내가 김 사장에게 물었다.

"여기 강사 없습니까?"

"있습니다, 회장님! 데려 올까요?"

"한 세 사람만 데려오세요."

"네, 회장님!"

바로 뛰듯이 사라지는 김 사장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헬맷도 쓰고 모두 스키 장구를 착용했다. 김 사장이 강사를 데려오는 동안 나는 스스로 한 번 타보기로 하고 슬로프로 나갔다. 그리고 자세를 잡아보았다. 다리를 구부리고 상체를 낮추어 무게 중심을 가능한 한 최대로 낮추었다. 그리고 양 스틱을 쥐고 살짝 뒤로 밀어보았다.

스키가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러자 나는 또 스틱을 찍고 하는데, 상체는 어느새 들려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스틱을 빠른 속도로 찍자, 미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 무게 중심에 의해 나는 순간적으로 뒤로 넘어질 번했다. 깜짝 놀란 내가 얼른 자세 교정을 하는데 뒤틀린 내 몸을 여지없이 옆으로 쓰러지며 죽 밀려나갔다. 내 모양에 온 스키장이 멈추어선 가운데, 아이들은 박수까지 치며 좋아라 했다. 그러나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나며 계속해서 스키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가면서 몇 번을 넘어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내 잘못 된 동작을 깨치게 되었고, 두 번째 경사면을 질주할 때는 제법 자세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나는 스키를 즐길 수 있었다. 이 모습에 모두 혀를 내두르는 아내와 군중들이었다. 나는 내심 흐뭇한 웃음을 머금고 리프터를 타고 다시 스키장으로 향했다. 그 동안 미정과 명희가 한 사람에 의해 스키강습을 받고 있는데, 수정 혼자 천천히 스키장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또 한 사람의 강사에 의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때 스키장으로 나선 수정을 한 사람의 강사가 급히 따랐다.

"사모님 그러시다 넘어집니다."

오히려 이 말이 독이 되었다. 이 말을 듣기 위해 뒤돌아보던 수정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여지없이 나동그라졌다. 이에 황급히 달려와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스키강사였다. 그러나 일어나는 동작에서도 짝발이 되어 다시 한 번 수정이 넘어지고, 강사도 하마터면 같이 넘어질 번했다. 이 모양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탄성만 내지를 뿐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내가 볼 때 타보았다던 수정의 실력도 별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냥 흉내만 내는 정도의 실력이라 넘어지기 일쑤였다. 이 모양을 강습을 받으면서도 즐기는 미정과 명희였다. 내가 다시 이 두 사람에게 돌아오니 이제 아내들과 아이들의 본격적인 실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겁을 먹은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뻣뻣이 서서 금방 넘어지는 모습만 연출했다. 한심한 생각에 내심 혀를 차보지만 이게 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이렇게 한 삼십 분을 타자, 넘어지기만 하던, 아내나 아이들이 모두 스키를 그만 타겠다고 했다. 나 또한 혼자만 즐길 수 없어 동의하고, 스키 장구를 모두 벗어 반납했다. 그러고 잠시 다른 사람들 스키 타는 것을 구경하는데, 미정이 말했다.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뭔데?"

"이리 와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설원으로 이끌어내는 미정이었다.

"아무데서나 말 하지."

"아니 예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되는 내용 이예요."

할 수없이 내가 미정의 뒤를 따르는데, 나머지 두 아내도 슬금슬금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런데 기분이 어째 으슬으슬 추웠다. 그리고 뒷골이 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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