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51화 (251/322)

< --雄飛-- >

내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듯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상승하더니, 김 사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회장님을 처음 맞다보니, 긴장을 해서........"

"이해합니다."

내 말에 감격한(?) 표정을 지은 김 사장이 얼른 우측 문을 따주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안으로 들어가지. 어머니도 잠시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부인과 내가 묵을 방을 열며 말했다.

"방을 또 잡은 거냐?"

"이 건물이 다 내 것인데? 하나 더 쓰면 어때요?"

"그래도."

"그렇게 따지면, 어머니가 머무는 방의 하룻밤 숙박비가 얼마인지 아세요?"

"글쎄다?"

"하루에 1,500만 원입니다."

"뭐? 안자고 말지. 웬만한 사람 일 년 농사지어도 그 돈 못 번다."

"이렇게 돈 쓰는 사람도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는 거라고요. 그러니 오늘은 아들 잘 둔 덕에 부자놀이 한 번 하신다 생각하시고, 마음 편히 쉬었다 가세요."

"잠이나 제대로 올라나 모르겠다."

"하하하.........! 안 오시면 절 부르세요. 제가 어머니 꼭 끌어안고 잘 테니까."

"네 애비는 어쩌고?"

"아버지는 여자 하나 붙여주지요, 뭐."

"뭐?"

정말 어머니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나는 그런 꼴 못 본다."

"농담 이예요, 농담!"

"괜히 가슴이 철렁했네. 그러나저러나 내, 네 애비 그런 꼴 안 보려면 오래 살아야겠다."

"하하하........! 그러세요. 아프지나 마시고 오래 오래, 백수, 천수 하세요."

"호호호.........! 그러고 보니 아직도 나도 여자인가 보다."

"호호호.........!"

어머니의 말씀에 일제히 웃음을 터트리는 아내들이었다.

별로 웃을 일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고부간이라 것은 어려워서, 사소한 것에도 반응해주어야 어머니가 안 삐지시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며느리들의 일제 반응이었던 것이다. 나만 덤덤히 있다가 나는 다시 현관으로 다시 일단 문을 닫았다.

어머니가 제일 늦게 들어오시면서 문을 안 닫은 탓이었다. 순간적으로 대화가 단절되며 방안에 어색한 공기가 감돌자 어머니가 돌연 말씀하셨다.

"나는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주책이냐? 네 아버지 나올 때 됐다. 새 옷이라도 내 드려야지."

"조금 있다가 식사 오면 제가 부를 테니, 이곳에서 같이 식사하시자고요."

"짜장면하고 짬뽕 시킨 것 맞지?"

"소주도 두 병 시켰어요."

"왜 두 병이야?"

"제 입에는 거미줄 쳐요?"

"너는 양주 마실 줄 알았지. 저 방에 보니 별 술이 다 있더라."

"같이 소주 마시죠, 뭐."

"알았다. 네가 그렇게 검소하니 부자가 됐나보다."

"하하하.........! 그건 아니고요. 어머니 아버지가 잘 낳아주셔서요."

"빈말이라도 그렇게 말하니 왠지 뿌듯하다."

"빈 말이 아니 예요?"

"그래, 그래. 내가 오히려 고맙다."

"엄마, 아버지 나와 기다시겠어요."

"그래, 그래. 가봐야지. 그런데 너는........ 나를 '엄마'라 부르면, 네 아버지도 '아빠'로 불러라. 가끔 네 아버지도 신식으로 '아빠'소리 듣는 걸 굉장히 부러워하시더라."

"그래요? 그럼, 아버지도 '아빠'라 불러드려야지."

"그래, 그래. 아무튼 고맙다!"

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현관으로 향하시는 어머니셨다. 우리는 어머니가 나가시자 자신들도 모르게 일제히 웃음을 머금었다.

그로부터 15분 후.

노크와 함께 문을 열어주자 대차에 실린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 사장이 직접 호텔리어들을 지휘해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이들까지 이곳으로 모으면 분잡(紛雜)하니, 아이들 것은 아이들 방으로 보내지."

"네, 제가 아이들 먹을 수 있게끔 해주고 올 게요."

"그래."

내 말에 미정이 말과 함께 호텔리어들을 이끌고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저는 엄마 아빠 모시고 올게요."

"그래."

명희가 연습을 하듯 '아빠' 소리까지 하며 방을 나갔다.

잠시 후, 어머니와 아버지가 명희를 따라 우리의 방으로 들어오시고, 그 뒤에는 김 사장이 손수 의자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언제 의자의 개수도 파악했나보다. 이런 것을 보면 호텔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세심하지 않으면 해먹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 하시는 짜장면과 짬뽕입니다. 불기 전에 어서 드시죠."

이때 명희가 끼어들었다.

"아빠, 얼굴이 말끔 해지셨다. 목욕을 하셔서 그런지 광택이 다 나네요."

"얘가 오늘 뭐가 먹고 싶어서 오늘 따라 아양이야?"

"호호호.......!"

어머니의 말에 며느리들이 모두 폭소를 터트리는데, 아버지는 다만 빙그레 웃고만 계셨다. 나 또한 빙긋이 웃으며 양주잔에다 소주를 따라 아버지께 드렸다. 그리고 내 잔에도 스스로 한 잔을 따랐다.

"드세요. 아버지!"

"얘는 뭘 좀 잡숫거든 권하던지.........."

어머니의 말씀은 우리 부자에게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의 소주잔은 후딱 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빈속에 먹으니 짜르르 속이 울렸다.

나는 얼른 아버지께 안주를 권했다.

"양장피 예요. 잡숴보셨어요?"

"생전 처음이다."

그러실 것이다. 매일 땅이나 파실지 아셨지, 중식에서는 비싼 음식에 속하는 이 음식을 드셔보셨을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잘 섞지도 않았다. 나는 급히 양장피를 골고루 잘 섞었다. 아버지나 나나 매운 것은 별로라, 겨자는 그저 한 옆에 장식품이 되었다.

나를 따라 아버지도 맛을 보셨다. 그러고 말씀하셨다.

"먹을 만하구나!"

"안주 치고는 괜찮지요?"

"그래."

이때 또 어머니가 참견을 하셨다.

"짬뽕부터 드시고 드세요."

"알았어, 알았어."

두 분이 말씀 하시는 사이에도 나는 어느새, 아버지와 내 잔에 술을 채워놓았다. 그리고 나도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짬뽕을 먹기 시작했다.

볶음밥을 먹으며 명희가 말했다.

"나는 면이 좋은데?"

그 말에 나는 힐끔 미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특별히 시켜준 거야. 그러니 감사하게 먹어."

내 말에 어머니가 거드셨다.

"어떻게 하면 한 끼 못 때우겠니. 우린 겨울철에 양식이 떨어져서, 벌건 밀기울이 그냥 들어간 국수도, 참 많이 해먹었다. 그 뿐이냐, 김치죽에.........."

"요새 얘들이 그런 걸 어찌 안다고.........."

어머니의 입을 막기 위한 아버지의 말씀에 내가 말했다.

"저도 어렸을 때는 꽤 먹었잖아요?"

"먹긴 뭘 먹어. 국수 싫다고 하는 바람에 할머니가, 밥 참 많이 남겨주셨지."

"맞아요. 할머니도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셔서, 꼭 할머니 것만은, 밥을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커서는 면이 좋더라고요."

"식성도 다 변하는 거야."

아버지의 말에 나도 동의하며 짬뽕을 한 입 가득 입에 물었다. 그새 아버지는또 한 잔을 비우셨다. 내가 한 잔을 따라드리며 말했다.

"안주 드시면서 천천히 드세요."

"그래. 너도 한 잔 해라."

"네."

나도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한 잔을 들고 안주를 먹었다. 그러자 재치 있게 미정이 한 잔을 따라주었다. 이를 본 명희도 아버지 잔에 한 잔을 따라드렸다.

"드세요. 아빠!"

"그래, 그래. 우리 며느리가 따라주는 잔이니 아무래도 맛이 더 나을 것 같다."

"호호호.........! 그렇죠? 아빠!"

오늘따라 부모들에게 더욱 살가운 명희였다.

이렇게 우리가 식사를 하는데 문이 불쑥 열리며 효정이 나타나 말했다.

"아빠, 스키 타러가자."

"밥이나 먹거든. 잠시 가서 기다려."

"네."

"너는 할아버지한테 인사도 안 하니?"

"수정의 잔소리에 얼른 인사를 하는 효정이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그래, 그래. 벌써 밥 다 먹었니?"

"네, 할머니!"

효정이 문을 닫고 나가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우리 두 늙은이는 썰매인지 스키인지 아무 것도 탈 줄 모르는데, 뭘 하니?"

"그냥 리프터나 타고, 구경이나 하시지요. 뭐. 괜히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시면, 낫는데 오래 걸리니까."

내 말에 어머니가 곧 바로 물으셨다.

"리프터는 또 뭐냐?"

"케이블카 같은 것 있어요. 엘리베이터 마냥 가만히 타고만 계시면, 제 스스로 움직이니 아래 풍경이나 감상하시면 돼요."

"그래,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호호호........!"

어머니의 말에 며느리들의 폭소가 또 한 번 터졌다.

웃음이 잦아들 무렵 명희가 나섰다.

"엄마, 여기 스키 탈 줄 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우리도 전부 처음 이예요."

그 말을 받아 내가 나섰다.

"무슨 소리야? 나는 잘 탄다고."

내 말에 세 명의 아내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미정이 세 여인의 의문을 대표해 물었다.

"당신이 언제 스키 타봤어요?"

"탈 수 있다면 탈 줄 아는 지, 알아."

"아무래도 믿음이 안 가는데, 나는 좀 타보아서 탈 수 있지만."

수정이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언제 타 봤기에?"

"어릴 때."

간단하게 대답하고 여전히 새침한 표정을 유지하는 수정이었다. 이에 미정과 명희가 은근히 고개를 돌렸다.

"이따 보면 알겠지."

그렇게 말 하는 나도 내심은 찔렸다. 나 역시 스키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중고등학교 때 스케이트는 타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많이 타보지는 못했다. 내가 어렵게 어렵게 스케이트 하나를 중학교 1학년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장만 했는데, 그 이후로는 아주 웃기지도 않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스케이트를 장만한 그 이듬해부터 두 해 동안은, 얼마나 겨울 날씨가 따뜻한지 얼음이 얼지를 않아, 전혀 타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들어가서 두 해 겨울을 탔다. 그것도 전생의 일이었다.

이 당시 그 어려운 살림에도 내가 왜 스케이트를 샀느냐 하면, 그것은 다 여기 있는 수정이 때문이었다. 그녀는 우리 동네 여자들 중에서 단 한 사람, 아니 남학생을 포함해도 단 한 사람 그녀만이, 유일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판을 지쳤다.

그 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괜히 남학생들은 스케이트도 없으면서, 무심천 변에서 이를 구경하곤 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래서 나 또한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대단한 결심을 하고 스케이트를 샀는데, 두 해 동안 얼음이 안 얼었으니, 내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그나마 고등학교 때는 그녀가 전혀 스케이트를 타지 않았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부 때문인 듯싶었다. 이런 아픈(?) 추억이 있기 때문에, 수정에게 그렇게 매달렸고, 다 용서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큰 소리 치시는 것 후회하시는 거죠?"

내가 말이 없자 미정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묻는 말이었다.

"누가, 후회를 해!"

"조금 있다가 내 실력을 보여주지."

이렇게 큰소리치는 데는 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서였다. 스케이트나 스키나 균형 감각이 문제다. 그런데 나는 스케이트 타던 실력으로 금방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여기에 내 운동신경도 한 몫 믿는 요소였다. 아무튼 우리는 곧 식사를 끝내고 스키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이에 어머니 아버지를 보니, 이런.......... 파커 한 벌 없이, 촌에서 입던 누비바지에 누비상의를 걸치신 게 아닌가. 이를 본 나만이 아니라 며느리들도 눈이 휘둥그래지고,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베풀어 주신 후의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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