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50화 (250/322)

< --雄飛-- >

90년 1월 6일.

이 상백 엔지니어링 사장이 어제 계약을 체결한 내용은,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회사인 가스프롬으로부터 총 8억8000만 달러 규모의 이라크 바드라 가스분리플랜트(GSP) 수주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우리가 이란을 적극 돕다보니 적국인 이라크로부터는 수주활동을 할 수 없었다. 이에 가스프롬이 대신 참여하고 실제 공사는 우리가 하기로 사전에 협의가 되었던 내용이었다. 물론 총 수주 금액의 2%는 리베이트로 가스프롬에 지급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이면 계약으로 인해 우리는 가스프롬으로부터 하청을 받는 형태로 금번에 이 사장이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온 것이다. 여하튼 이번 프로젝트는 이라크 바드다드에서 남동쪽으로 160㎞ 떨어진 와씻 지역에 위치한 바드라 유전단지에 2억 입방피트(ft³) 규모의 가스정제설비와

발전·저장탱크 등 유틸리티 기반시설(U&O)을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35개월 동안 설계·조달·공사·시운전 분야를 총괄하는 일괄턴키 방식으로 수행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우리는 한 건의 프로젝트도 성공시켰으니, 바드라 유전 개발 프로젝트였다. 이 바드라 유전개발 프로젝트는 러시아 가즈프롬이 30%, 이라크 석유수출공사가 25%, 한국의 대정엔지니어링이 22.5%,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가 15%, 터키 국영에너지사 TPAO가 7.5% 등 지분을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지분은 가스프롬에 숨어있다. 이것이 그대로 되면 안 되겠기에 금번에 우리가 지분 22.5%를 가스프롬으로부터 인수하는 형태로 계약을 체금번에 우리가 지분 22.5%를 가스프롬으로부터 인수하는 형태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아무튼 이런 내용을 보고 받은 나는 곧 바로 퇴근을 했다. 오늘이 토요일로 나는 아내들과 사전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작년에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주 리조트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이 여행에 나는 부모님도 모시기로 하고, 아침부터 시골로 차를 보냈다. 내가 집에 도착하자 이미 아내와 아이들은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에 나는 곧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헬기를 타고 무주로 가기 위해서였다. 우리 회사로 아이들을 오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이는 일하는 직원들에게 회장이 가족들만 데리고 놀러 다닌다는 인상을 줄까봐 내가 이를 피한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곧 대기하고 있던 헬기에 차례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내들과 달리 생전 처음으로 헬기에 타보는 아이들은 서로 먼저 타려고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다정이 먼저, 제일 맏이부터 순서대로 타는 거야. 알았지?"

"네, 아빠!"

일제히 대답한 아이들이 부조종사의 도움을 받으며 차례로 헬기에 탑승하자 나는 막내로 제일 늦게 태어난 명희가 낳은 올해 세 살의 소산을 앉고 제일 늦게 헬기에 올랐다.

"무섭니?"

"네, 아빠!"

정말로 무서운지 창백한 얼굴로 내 품으로 파고드는 막내 놈을 나는 토닥이며 헬기에 올랐다. 우리가 안전벨트를 매자 곧 로터가 회전하며 헬기는 수직 상승을 시작했다. 소음과 진동이 좀 심했지만 지상을 내려다보는 아이들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아내들도 이 모양을 보고 모두 흐뭇한 웃음들을 머금고 있었다. 나 또한 제 어미에게 소산을 넘겨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강줄기가 마치 꿈틀거리는 뱀처럼 굽이치고, 논과 밭은 마치 바둑판 마냥 작아보였다. 거기에 인간군상은 개미보다 나을 것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간이 개미와 하등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개미가 먹이를 집으로 물고 가기 위해 비탈을 구르고 나무 등걸을 넘는 것처럼, 우리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겪지 않는가.

참으로 덧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삶이니 또 어찌할 것인가. 내가 감상에 젖어 있는데 미정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응. 인간이 개미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비애가 느껴져서."

"나는 당신이 외양으로 보면 매일 씩씩하게 행동해서, 전혀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사는 줄 알았어요."

"무슨 섭한 말씀을. 나도 인간인데 어찌 감상적 일 때도 없겠나. 단지 외적으로 표현을 잘 안 할 뿐이지."

"그렇군요. 아버님 어머님은 도착했을까요?"

"아마 얼추 도착하지 않았을까? 아침 일찍 차를 내려 보냈으니."

"그렇겠죠?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약속 안 지키신 것은 알고 계시죠?"

"음. 다음에는 장인과 장모님들 모시도록 하지. 한꺼번에 다 모이면 너무 번잡해서 말이지."

"그때는 시누이들도 부르죠."

"웬일? 시누들 생각을 다 하고."

"이제 벌써 둘 다 애 딸린 부모가 되었으니 더 이상은 어려보이지 않네요."

"하하하........! 예전에는 어려 보였던 모양이지?"

"솔직히 그렇죠. 내가 처음 시댁에 갔을 때, 큰 시누이가 중1이었던가? 그렇고, 막내는 코흘리개였으니, 장 어리게만 봤거든요."

"그 때는 당신도 고등학생이었잖아?"

"헤헤헤........! 그래도 내 눈에는 어리게만 보이던데요?"

"하긴 그랬지. 이제 막내만 치우면 되는데, 그놈이 문제로군."

"아직도 교제를 하고 있는 모양이죠?"

"군대를 갔으니 좀 소원해진 모양이야."

"대학원 진학한다고 안 했어요?"

"군대 갔다 와서 기왕이면 경제 쪽으로 전공을 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네."

"알아서 잘 하겠지요, 뭐."

"경자 쪽으로는 매파가 안다녀 갔어?"

"웬걸요? 서울대 상대 나와 행시에 패스한 사람을 소개하더라고요. 그래서 아가씨에게 운을 떼어보았더니, 완강히 거절해서 내버려두었어요. 나도 당신한테 들은 게 있어서.........."

"저희들이 좋다면 어떻게 강제할 수가 있어. 지난번 마냥 떨어트려 놓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면 몰라도."

"그런데 왜 자꾸 욕심이 생기는지 몰라요. 매파가 소개한 사람이 아깝더라고요."

"혹시 당신이 생각이 있는 것 아니야?"

"쳇, 농담도. 세상에서 제일 잘 잡은 패인데, 왜 내가 버려요. 미쳤어요!"

"하하하.........! 솔직해서 좋다."

"무슨 얘기가 그렇게 재미나요?"

명희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신마저 끼어들면 나 목쉰다."

아닌게 아니라 목이 조금 아팠다. 헬기 소음 때문에 평소보다는 큰 소리로 떠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쳇, 알았어요."

나의 말에 무안했던지 괜히 자는 소산을 토닥거리고 있는 명희였다. 아무튼 이렇게 웃고 떠들다보니 금방 이었다. 어느새 헬기는 무주 리조트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헬기는 곧 포트 장에 착륙하였고, 우리는 차례로 지상을 밟았다. 아무 연락도 안 해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더니, 이곳 호텔 사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김 진배라고 호텔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어떻게 알고 마중을 나왔소?"

"아버님 어머님이 먼저 도착하셨습니다. 경호원들이 알려주었습니다."

"그랬군요."

나는 어느새 내 주변에 나타나 외곽 경계에 철저를 기하고 있는 경호원들을 흘끔 보고는 김 사장에게 물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요?"

"VIP룸에 모셨습니다."

"잘 했습니다. 갑시다."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말이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앞서나가는 김 사장이었다. 우리는 곧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이동을 했다. 많은 시선들을 느꼈지만 나는 이를 무시했다. 곧 복도에 내리니 김 사장이 가운데 방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여기입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운데 호실로 향했다. 이 최상층에는 VIP룸이 세 개 있었는데, 그 중 가운데를 내드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부모님을 만나러 그쪽으로 걸어가는데, 김 사장이 물었다.

"점심은 어떻게 할까요? 회장님!"

"어머님 아버님도 안 드셨지요?"

"네, 오시면 함께 드신다고........"

"내 여쭤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회장님!"

말이 끝나자 복도에 뻗치고 서 있는 김 사장이었다. 나는 이를 힐끔 보고는 노크를 하려는 순간, 문이 활짝 열렸다. 어머니셨다. 아무래도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셨던 것 같다.

""일찍 오셨네요. 어머니!"

"그래, 차를 보내줘서 너무 편하게 왔다. 너희들 끼리나 놀다가지 번거롭게........"

"어머니 아버지가 빠지면 서운하죠."

"아무튼 고맙다."

"아버지는 요?"

"내 잔소리 좀 했다. 뜨신 물 나올 때 좀 씻으라고."

"하하하.........!"

시골이라 대중탕 같은 것이 없으니 이해가 되었지만,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 점심은 뭐로 드시겠어요?"

"여기도 짜장면 되니?"

나는 나도 모르게 또 웃고 말았다. 그렇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시골 노인들이지만 아들이 대재벌이 되어도 여전히 순진한 어머니 아버지가 고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웃음을 그치고 어머니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 드리기로 했다.

"짬봉도 됩니다. 어머니!"

"그럼, 네 애비 것은 짬봉으로 하고 나는 짜장면이 좋겠다. 거기에 소주 한 병만 있으면 더 좋겠다. 네 아버지 또 술 잡수려하지 않겠니?"

"알겠습니다. 어머니!"

"한 병 더 이상은 절대 안 된다. 나는 네 애비 술 취해서 해롱거리는 게 싫다."

어머니와 나와의 긴 대화가 끝나자, 그제야 며느리들을 필두로 손자손녀들이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려고 몰려들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고맙다. 번번이 이 노인네들을 잊지 않으니."

"별말씀을 요."

미정과의 대화가 끝나자 명희가 갑자기 어머니를 끌어안더니 아양을 떨었다.

"엄마 보고 싶었다. 엄마는 이 명희 안 보고 싶었어?"

"얘는, 다 큰 놈이 그러니 징그럽다."

"그래서 싫어? 엄마!"

"오히려 정감 있어 좋다 만은, 너만 특별히 예뻐하는 것 같아서........"

"저만 특별히 예뻐하는 것 아니었어요? 엄마!"

"호호호........!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해두자."

"쳇, 해두는 건 또 뭐야. 그런데 아버님은?"

"목욕중이시다."

"내가 등 밀어드릴까?"

"얘는 무슨 소릴........!"

손까지 저으며 강하게 부정하는 어머니셨다.

"이건 못할 소리지만, 만약 아버님이 더 늙으셔서 풍이라도 걸리셔서 꼼짝을 못하셔봐. 그럼 내가 똥오줌 다 받아내야 할 텐데, 그 때도 내외해야 되겠어?"

"그때는 그때고........."

손을 젓던 어머니가 돌연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명희의 등을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기특한 것,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장하다........."

조그만 일에도 감동을 잘 하시는 눈물 많은 어머니시다. 어느새 당신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 더 이상을 말씀을 못하시는 어머니셨다.

이 모양에 지친 아이들이 복도에서 시끄럽게 떠들자 미정이 살며시 다가와 말했다.

"너무 시끄러워 안 되겠어요. 아이들부터 어떻게 해봐요. 여보!"

이에 나는 아직도 군기든 모습으로 서 있는 김 사장에게 말했다.

"맞은편 방은 비어 있나요?"

"네, 회장님!"

"그럼, 맞은편 방 좀 주세요. 아이들이나 일단 들여놓게."

"네, 회장님!"

전면의 죽 이어진 방들이 VIP룸이고 맞은편은 일반 특실이라 아이들을 그쪽으로 몰아넣도록 했던 것이다. 나는 김 사장과 함께 아이들을 들이는 미정을 향해 외쳤다.

"아이들에게 중식 어떤가 물어봐?"

"여기까지 와서........."

"하여튼 물어봐."

"네."

마지못해 아이들의 의사를 물으러 실내로 사라지는 미정이었다. 곧 나온 미정이 말했다.

"탕수욕과 만두 시켜주면 먹겠다는 데요."

"이놈들이 무슨 조건부야, 조건부가?"

"그냥 시켜줘요, 여보!"

"알았다. 그 대신 당신들도 중식으로 통일이야."

"알았어요."

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정이 어쩔 수 없이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내 옆에서 있는 김 사장을 향해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볶음밥 세 개 하고, 짬봉 둘, 나머지는 짜장면으로. 도대체 몇 그릇이야, 음.......! 일곱 그릇 그러고 탕수욕과 만두는 아이들 먹을 만큼 하고, 소주도 2병. 안주로는 양장피가 좋겠네요. 기억이나 다 하겠어요?"

"그 정도도 기억 못하면 이 자리 내놔야 됩니다."

"하하하.........! 뭐, 그 정도는 아닌데, 아무튼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감사합니다. 회장님! 곧 주문해서 이곳으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목례를 한 김 사장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그제야 모든 안부 인사가 끝나는지 어머니와 명희, 그리고 수정의 모습을 복도에서 볼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양반, 우리 방은 문도 안 따주고 갔네!'

^^============================ 작품 후기 즐거운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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