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雄飛-- >
중국에서 1박을 하고 곧바로 귀국을 한 나는 청와대로 들어가 노 통에게 상황을 전하고 이 날은 온전히 하루를 쉬었다. 다음날은 각 분야의 신년 업무보고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독을 풀고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1월5일. 오늘 아침 조회는 없었다. 대신 오전 7시 30분이 되자, 외국에 나가 있던 사장들까지 모두 귀국하여, 대회의실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올해의 업무보고는 이제 80년대가 지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90년도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1분 전 8시. 나는 비서실장과 기획실장, 올리비아 리 차장을 대동하고 대회의실로 향했다. 문 입구까지 오자 올리비아 리가 달리듯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외쳤다.
"회장님, 입장하십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각 분야 사장들이 일제히 기립해서 나를 맞았다. 그러던 중 누가 시작을 했는지 박수가 터져 나오자, 일제히 박수대열에 합류하는 각 사장들이었다. 나는 이미 마련된 단상에 앉으며 손으로 이를 제지하며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네, 회장님!"
일제히 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는 각 분야의 사장들이었다. 내 뒤에도 수행한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내가 가볍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그렇게 원했던 대망의 80년대가 지났으니, 90년대는 이제 뭐라고 해야 할 까요?"
나의 가벼운 농담에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70년대 못 먹고 헐벗던 시절. 누구의 입에서부터 제창이 된 것인지 몰라도, 모두 대망의 80년대라는 말이 국민의 입에 벤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79년 말 박 대통령이 시해되고, 대망의 80년대가 되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암울한 전두환 독재정권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우리 국민은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80년대에 이미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이제 중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며, 더 이상 후진개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세계만방에 과시했다. 그런 80년도 지나고 90년도가 되었으나, 90년대는 무어라 이름 지어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농담 삼아 가볍게 물었던 것이다.
"그냥 희망의 90년대라 합시다. 인류에게 희망이 없었다면 절망을 넘어 모두 멸종하고 말았을 테니까요. 희망을 모토로 우리 그룹도 올해부터 펼쳐지는 각 분야 별로 발전적 포부를 들어봅시다. 누가 먼저 발표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손을 들어 말하는 사람을 보니 세르지오 자동차 사장이었다. 영어였으나 이곳에 앉은 사람 중 못 알아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이제 제법 회화가 되어 웬만한 영어는 통역 없이도 알아듣고 대화할 수 있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 않는가. 그렇지만 굳이 통역을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혹시 모를 말이 있을지도 모르고, 통역을 하는 동안 좀 더 오랫동안 상대편의 물음에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대통령마냥 권위를 내세우고자 함은 절대 아니었다. 아무튼 세르지오는 어릴 때 캐나다로 건너가 그곳에서 성장을 했으니, 이탈리아 말보다도 능숙한 게 영어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우리는 눈부신 성장을 했습니다. 제 작년 하반기 출시된 줄리에타가 그 날렵함과 가격대비 안락한 내부 공간, 뛰어난 연비로, 미토에 이어 유럽인들의 전적인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 호흡 쉰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 결과 이탈리아 내에서는 오랜 숙원이던 피아트를 누르고 당당히 50% 이상의 시장을 점유 했으며, 유럽 전체에서도 30%를 넘는 괄목할만한 신장세를 이어갔습니다. 이에 우리는 더 이상 확장하지 않은 이탈리아 공장은 물론, 연 10만대 생산의 모로코 공장마저도 포화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공장을 물색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미국의 아칸소 주에 연산 5만 대, 어제 최종 결정이 되었습니다만, 중국 북경에도 연산 5만 대의 자동차 공장을 세울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국 공장은 북중미는 물론 남미까지, 북경 공장은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시장에 진출해 전부 소화 낼 예정입니다."
"또한 기존 자동차에 이어 이란으로의 부품 수출로 인해, 부품 공장들도 대거 증설했음은 물론 앞으로도 더욱 증설할 예정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기가 바뀌는 2천 년대까지 우리 자동차는,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의 부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발언할 분?"
"건설의 홍성부입니다. 세르지오 사장이나 저나 업무보고가 끝나면 바로 출국을 해야 해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발언 시작하세요."
"네, 회장님!"
홍성부 건설 사장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작년 9월1일 우리는 역사적인 리비아대수로 공사 2차까지도 완벽히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온전히 회장님의 공이었습니다. 87년 4월 국제입찰에 붙였던 것을, 회장님께서 수차례 리비아 국가 원수를 만나는 등, 집요한 설득 끝에 이루어낸 쾌거였습니다."
목이 마르는지 잠시 물을 마신 홍 사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 공사는 일차 33억 달러보다도 20억 달러가 더 많은, 총 53억 1천 2백만 달러(한화 3조6천5백억 원)에 수주함으로써 우리의 주식 가치는 물론, 전 세계에 그 명성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입찰에도 일부 구간의 수주에 성공했으며, 또 국내는 물론 리비아, 모로코, 나이지리아, 여타 세계 각국에 크고 작은 공사가 쉼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작년 우리는 리비아대수로 공사의 수주에 힘입어 연간 수주금액이 최초로 100억 달러를 돌파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그룹의 쾌거를 넘어 한국의 영광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수주금액을 꾸준히 이어나가, 세기가 바뀌는 해에는 세계 5대 건설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또 다시 박수가 쏟아졌다.
"리비아 2단계 공사 수주에 대해 홍 사장님은 공을 내게 전부 미루었지만, 사실 나로서는 가다피를 몇 번 만나 측면 지원한 것밖에 없고 이는 오로지 땀과 노력으로 현지인의 신뢰를 듬뿍 받은, 우리 건설사의 사장 및 임원 그리고 말단 노동자들까지, 일치단결하여 이루어낸 쾌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서 잠시 말을 끊은 나는 잠시 장내를 휘둘러보다가 세르지오와 홍성부 사장에게 눈을 맞추고 말했다.
"바쁘신 두 분은 먼저 출국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목례를 건넨 두 사람이 먼저 조용히 퇴장을 하자, 나는 다시 한 번 장내를 둘러보다가 이번에는 내가 지목을 해서 발언을 시켰다.
"90년도 새로 열렸으니, 그간 우리 그룹이 나아갈 바를 꾸준히 연구해온 대정경제연구소 이 한구 소장님께서, 앞으로 우리 그룹이 지향할 바를 좀 밝혀주시죠.
"네, 회장님!"
나의 지시에 이 소장이 간단하게 목례를 하고 발언을 시작했다.
"장차 우리 그룹은 한 마디로 더욱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이전을 하고, 인건비 비중이 높고, 조금이라도 기대에 성과가 못 미치는 사업은 시장에 내다 팔 예정입니다."
나의 주문 대로 이 소장이 새해 벽두부터 각 사장들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 그룹이 앞으로 중점을 둘 분야는 전자, 반도체, 정보통신, 자동차, 엔지니어링, 헬스 케어, 에너지 사업, 곡물 분야, 우주항공 분야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분야도 있고, 세계적인 기업이 된 분야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이를 중심축으로 하여, 우리 그룹은 1차로 세계 10대 기업, 더 나아가서는 당당히 세계 제1의 그룹이 되도록 하는 것이, 회장님이 우리 그룹에 제시한 비전입니다."
"물론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분야도 꾸준히 성장한다면 배척받을 일은 없겠으나, 기대에 못 미친다면 가차 없이 시장에 매물로 내놓겠다는 것이 회장님의 복안이십니다. 아무튼 앞으로 세계 제1의 그룹이 되는 그날까지 각 사는 멈추지 않고, 꾸준히 전진을 계속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또 다시 박수가 터졌으나 표정은 한결 긴장감이 높아져 있었다.
"다음은 무역부문 발표해주시죠."
"네, 최우선입니다."
"우리 무역부문은 올해 정부 수출 목표인 670억 달러의 1/4인 170억 달러를 목표로, 작년과 같은 성장세를 계획 중입니다. 또 회장님께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려는 에너지와 곡물 분야도 좀 더 비중을 두어, 빠른 성장을 이루어 나가려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현재 100여개가 넘는 세계 각 지사에 우리 제품의 수출을 독려하고, 마진이 적은 타 사의 제품은 기존이 거래처만 유지하려 합니다. 이상입니다."
"꼭 올해의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바라겠고, 다음은 아니 잠시 쉬었다할 까요? 그 동안 화장실 다녀올 분들은 다녀오시고, 한 대 피우실 분들은 피우세요. 정확히 15분 후에 다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네, 회장님!"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각 분야의 사장들도 줄줄이 일어났다. 이들은 화장실은 가지 않고 주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복도로 나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갑자기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쳐와 자꾸 라이터 불을 꺼트렸다. 기어코 담뱃불 붙이기에 성공한 나는 깊숙이 빨아들였던 담배 연기를, 허공을 향해 힘차게 뿜어냈다. 이에 따라 흰 연기가 하늘로 비상을 했다.
그러나 그 연기는 얼마 가지 못하고 하늘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정말 시릴 듯이 푸른 하늘이었다. 찌르면 푸른 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 시리고 맑은 하늘이 드높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쾌청한 하늘을 보며 나의 야망을 더욱 키워나갔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