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42화 (242/322)

< --雄飛-- >

나와 장 민호와의 약속은 잠정 보류되었다. 큰 매제 몽윤이 오면 같이 술을 마시자던 약속은 날이 더워, 해가 넘어가면 마시기로 몽윤과 셋이 합의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장 민호는 아내 될 경숙을 데리러 간다고 읍내로 차를 끌고 나갔다. 잠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오후 4시가 되자 아이들이 한꺼번에 차로 도착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아이들에게는 모두 오전 수업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침 일찍 내려가는 길에 데려가자 하고, 이에 대해 아내들은 모두 반대를 했다. 수업을 빠지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나는 반대 논리였다. 반나절쯤 빠져도 된다는 논리전개였다.

그러나 교육에 있어서만은 극성인 아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다. 그 대신 학원은 오늘 모두 빠지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전부 데리고 내려오는 것으로. 이 말에는 아내들도 어쩔 수 없이 찬성을 했다.

나는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경호원 두 명과 미정과 수정의 차량을 제공했다.

그런 아이들이 방금 도착한 것이다. 역시 집안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가 보다. 다섯 아이들이 들이 닥쳐 웃고 떠드니 집안 분위기가 한결 살아났다. 이 떠들썩함에 지금까지 주무시던 아버지도 깨어나,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셨다. 속으로 나는 더 주무시길 바랐으나, 이제 술 잡숫자고 하실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몽윤의 인사까지 받은 아버지는 고압적으로 술상을 봐오라 요구하셨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 지금은 날이 너무 더우니 해 떨어진 후에 잡숫지요?"

"너무 늦다. 6시만 돼도 좀 선선하니, 그럼, 그때부터 마시자."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밖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밖은 이미 모든 음식 준비가 끝나고, 동네 아주머니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명희 엄마 즉 장모님도 여기 계시더니 집으로 가신 모양이었다. 내가 마루에 서서 이 모든 상황을 살피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다정이 2층에서 내려오다 나를 발견하고는 나를 부르며 뛰어왔다.

"아빠!"

"그러다 넘어진다. 다 큰 가시나가 그게 뭐야? 품위 없게. 좀 조신하게 굴어야지."

"쳇, 아빠도 다른 집 아빠들과 똑 같아지시나, 웬 잔소리?"

"저 놈이.......!"

"엄마는 요?"

"나도 모르겠다."

"별채에 계시나?"

별채는 옛날 할머니가 계시던 사랑방을 허물고 다시 지은 집을 말하는 것이다.

"한 번 가봐라."

"네, 아빠!"

미정이 별채 쪽으로 움직이자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대문가에서 장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양반은 코를 베었나? 낯을 가리나? 아, 사돈네 집도 못 와서, 나랑 같이 오자고 성화여?"

그냥 들어오시면 될 것을 변명부터 하고 들어오시는 명희 어머니셨다.

이때 별채의 문이 열리며 세 아내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명희 아버지의 출현에 인사를 드리러 나온 것이다.

"오셨어요?"

"아버지!"

미정과 수정이 단정히 인사를 하고, 명희는 제 아빠를 부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잘 들 지냈소? 사돈 양반은?"

"안방에 계세요."

"그럼, 안방으로 가 볼까?"

미정의 말에 내 쪽으로 오시는 장인어른이었다.

"안녕하세요? 장인어른!"

"그래. 일찍 내려왔네."

"네! 어서 올라오세요."

"그래, 그래."

나는 두 분을 안내해 드리고 아직 밖에 서있는 아내들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술상 좀 봐와야겠다. 장인어른까지 오셨으니, 분명 술상 차리라고 난리치실 게다."

"알았어요."

미정이 대답을 하고 옛날 부엌에 별도로 시설을 갖춘 주방으로 향하자, 두 아내도 미정을 따라갔다.

하릴없는 다정이도 제 엄마들을 따라 주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술판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한 시간 후에는 경숙을 데리러 갔던 장 민호가 합류를 하고, 해거름에는 상민이마저 찾아와 가세를 하니, 술판이 끝나지를 않았다. 계속해서 이들을 상대로 술을 마시던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였다. 이상하게 술을 마시면 담배가 더 피우고 싶어진다. 그런 것을 분위기 깰까봐 참고 있다가 이제야 슬며시 밖으로 나온 것이다.

내가 마루에서 내려와 수많은 신발 중 대충 발에 맞는 놈으로 아무 신발이나 꿰고, 마당으로 내려서니 장독대에 어머니가 혼자 계셨다.

"어머니, 거기서 뭐 하세요?"

"내일 쓸 간장 좀 푸러왔다."

"얼른 내려오세요."

"그래, 그래."

그런데 아무래도 어머니의 행동거지가 이상했다. 금방 내려오시는 게 아니라, 옷고름으로 눈가를 찍는 등, 아무래도 울고 계셨던 것 같다. 이에 나는 천천히 어머니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어려워 그 앞에서 담배를 안 피우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그냥 피우는 나였다. 그래서 담배를 든 채였다. 가까이 다가간 내가 물었다.

"어머니! 서운 하세요?"

"그래, 딸년들은 다 키워놔 봐야 소용없다. 다 때가 되면 제 짝 찾아 떠나가니......."

"머리 큰 딸년들 데리고 있으면, 이는 또 근심이잖아요."

"그렇긴 하다만 서운한 걸 어쩌니."

"그렇게 생각마시고, 다 큰 아들 하나 얻었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세요."

"생각을 그렇게 먹자해도, 그게 그렇게 안 된다. 크니 다 내 품을 하나 둘 떠난다는 생각만 들어. 이제 경자마저 시집가면 우리 두 늙은이만 촌에 쓸쓸하게 남지 않겠니?"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당장이라도 어머니 아버지가 원하시면 우리가 서울로 모실 게요. 방이 좁아요? 능력이 없어요? 그렇다고 며느리들이 반대를 해요."

"네 앞에서는 며느리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도, 다 늙은이들 모시라하면 좋아할 사람 하나도 없다. 우선 당장 편편찮은 게야."

"그래서 서울로 안 올라오시는 거예요?"

"그것 외에도 이유는 많다. 첫째 서울에 올라가면 마음이 답답하다. 이상하게 쫓기는 기분이 들어. 또 며느리들만 불편한 게 아니야. 우리도 행동을 마음대로 못 하니 불편하지. 며느리들 앞에서 시어미 시애비가 덥다고 달랑 속옷 차임으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 이래저래 편편찮아서, 우리 두 늙은이 근력 떨어져 기어 다닐 정도가 아니면 안 갈려한다."

"거 참........!"

이러도 저러도 못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감탄 음만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이제 기분이 괜찮지요?"

"그래, 한바탕 쏟아놨더니 뭔가 탁 풀리는 기분이다."

"그만 내려가실 까요?"

"그래."

"간장은 이리 주시고요?"

"아니다. 내가 들고 가도 충분하다."

작은 이남지에 담긴 간장이었기에 어머니 말씀이 맞긴 맞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주문을 했다.

"어머니, 한 번 업혀 보실 래요."

"됐다. 남사스럽게. 아무리 아들이라도 남정네한테 업히는 건, 왠지 싫다."

"하하하........!"

내 웃음에 어머니도 따라서 빙긋이 웃으셨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관례대로 아침을 일찍 해먹고 서둘러 증평 읍내로 나갔다. 그곳에서 여자들은 미장원으로 머리를 하러 가고, 남자들은 이집 저집 열린 이발소를 찾아갔다. 우리가 하는 짓을 보더니, 몽윤과 민호가 한 팀이 되어 같은 이발소를 찾아들고, 나와 아버지 또한 한 팀이 되어, 같은 이발소를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이발을 하시는 동안 나는 부부인 듯 보이는 이발사 아내로부터, 역으로 먼저 면도부터 했다. 그러고 잠시 기다리니 아버지의 이발이 끝났다. 대신 이제 내가 이발을 하고, 아버지는 오늘만이라도 염색을 해야겠다며, 새치 많은 머리를 다시 한 번 거울에 비춰보셨다.

"그게 좋겠네요. 아버지. 오늘만이라도 젊어 보이시는 게 좋죠."

"그렇지?"

"네."

농사를 짓느라 햇빛을 많이 받은 데다, 새치까지 많으니, 또래보다 다섯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아버지셨다. 그래서 내가 권한 것이다. 아무튼 우리 부자가 이발을 끝내고 나오니, 벌써 관광버스 한 대가 도착해 있었다. 가까운 우리 동네 관광버스는 아직 도착을 안 했는데, 멀리 울산 사람들이 더 먼저 올라온 것이다. 이에 나와 아버지는 사돈내외와 인사를 나누었다.

"일찍 올라오셨네요?"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봐, 서둘렀어요."

안사돈이 바깥사돈을 대신해 답을 했다. 지난번 약혼식 때도 느낀 것이지만 민호 아버지는 평소에도 별로 말이 없으신 분 같았다. 오늘도 아버지의 인사에도 그냥 짧게 꼭 필요한 말만 하고 계셨다. 나는 벗어진 머리에 안경은 끼고, 정말 교육자 같은 민호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좀 떨어진 곳에서 자기네 일가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는 민호를 새삼 다시 바라보았다. 암만 봐도 장 민호는 숫이 많은 머리였다. 하긴 대머리는 당대가 아닌 손자 대에 유전이 된다니,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가 걱정이 되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내심 웃음이 나와 나는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괜히 실없이 웃고 있으면 남이 보기에 어떻게 생각을 하겠는가. 이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미끄러져 와 내 앞에서 우뚝 멎었다. 곧 차문이 열리며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강 회장! 잘 지냈나?"

"일찍 내려오셨습니다. 회장님!"

정주영 회장이었다.

"사돈 잔치에 늦어봐. 그것도 모양 빠지는 일 아닌가. 몽윤이는?"

"이발소에서 아직 안 나온 모양인데요?"

"그래?"

그러면서 자신의 머리도 한 번 무의식중에 만져보는 정 회장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는데, 어디 가서 잠시 이야기라도 할까?"

"잠시 다방에 들어가시겠어요?"

"그럴 수야 있나? 사돈은 손님을 맞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긴 그렀네요."

"잠깐 노변정담이나 하도록 하지."

"그러실까요?"

나는 정 회장을 모시고 조금 식장이 벗어난 곳으로 올라갔다.

"얼마 전에는 이란에서 대박을 터트렸다면서?"

"위험을 감수한 대가죠."

"하긴 그렇게 보면 그렀네. 참, 나보다도 강단이 더 세니 감탄스럽네. 보기에는 선비 같으니 절대 그런 모험을 안 할 사람으로 보이는데 말이지."

"정확한 예측을 하면, 모험이 아니죠."

"하긴 그럴 수도. 그렇다면 정확한 예측 하에 대박을 터트릴만한 것이 있을까?"

"저랑 손잡고 북방사업 한 번 해보실래요?"

"소련이라면 지금도 하고 있잖아?"

"한 발 더 나가자는 거죠."

"어떻게?"

"연해주 일대에 대규모 농장을 만드는 겁니다. 콩이나 옥수수 농장을 요."

"거기는 논농사도 가능한 지대가 있다는데?"

"그건 일부고요. 아무래도 그보다는 밀이나, 제가 말한 작물을 심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어느 날엔가 식량을 무기화 할까봐 겁이 납니다."

"허허.........! 사업도 이렇게 해야 되는데, 어느 놈들은 돈만 된다면 마약이고 밀수품이고, 다 들여오니........."

"모든 것을 떠나 가능성이 있으니, 덤벼보려 하는 것이죠."

"자네가 하는 사업이려니 오죽하겠나?"

"아직 그 정도 까지는 아닙니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무튼 자네도 내 성장과정은 알고 있지?"

"네. 아버지 몰래 소 두 마리 팔아서 서울도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죠."

"그 이야기는 여기서 왜 하나?"

"하하하........!"

웃음을 머금은 채로 정 회장이 말했다.

"땅 욕심 많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어떻게 하리라는 것은 답이 나왔을 텐데?"

"알고 있죠. 서산간척사업 까지도."

"그러니 자네가 잘 검토해서 추진해 보시게. 때가 되면 나는 뒤 따라는 갈 테니."

"알겠습니다. 회장님! 일단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추후에 논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세."

"곧 시작할 때 안 됐어?"

"조금은 시간 여우가 있지만, 내려가 보시죠."

"그럼세."

둘은 천천히 걸어 예식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늘 좋은 날들 되세요!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늘 좋은 날들 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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