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40화 (240/322)

< --雄飛-- >

"기왕 왔으니, 술이나 한 잔 하고 가라."

"네."

"친구 지간에 너무 깍듯이 예의를 차리니까 내가 더 거북하다. 오늘만은 그냥 친구로 지내자."

"아닙니다. 회장님!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에라, 나도 모르겠다. 술이나 한 잔 해라."

"네, 회장님!"

내가 막걸리 주전자를 드는데 어머니가 나서셨다.

"내 잔 한 잔 받아라."

"고맙습니다. 어머님!"

잔을 드는 동작이 느리자 어머니가 성화를 부리셨다.

"얼른 받아 내 너 한 잔 따라주고, 바깥 일 나가 보아야 한다."

"이 더운데 어디를 가신다고........."

"내가 감독을 해야지. 어느 것은 터무니없이 많이 해놓고, 어느 것은 분명 모지랄 테니, 내가 가서 참견을 해야지."

"걱정도 팔자시네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면 되지........"

"그래도 그게 아니다. 잔치 음식이 남아야지, 부족해서 어디 다 쓰겠냐."

"상민이 팔 떨어져요. 어머니!"

"이런 내 정신 좀 봐."

그제야 상민이 내밀고 있는 잔에 막걸리를 따르는 어머니셨다.

"날 더운데 웬만치 마셔라."

"얘는 이제 첫 잔을 가지고 벌써부터........"

"잔소리들 그만해. 체하겠다."

아버지까지 상민이 술을 마시는데 참견을 하니 기어코 사달이 났다. 웃다가 입에 마신 술을 제 잔에 다시 뿜어내는 촌극을 벌이는 상민이었다.

"참 내........!"

내가 어이없어 하는 가운데에서도 상민은 자신이 뱉어낸 잔을 다시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이 안 됐는지 어머니가 급히 안주를 대령했다.

"야, 여기!"

그래봐야 동태포를 기름에 둘러낸 것이지만, 이를 받아 깍듯이 예를 표하는 상민이었다.

"고맙습니다. 어머님!"

"고맙긴, 난 나가봐야겠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를 나는 말리지 못했다. 오늘 같은 날은 말려봐야 통할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상민이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 잔이나 한 잔 받고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자."

"네, 회장님!"

"더 마시게 내버려두지, 왜 그러니?"

"아버지의 참견에 내가 말했다.

"오늘 같이 더운 날 술 많이 마셔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어요."

아버지도 내 말에 입을 다무시고 더 말씀을 않으셨다.

나는 상민이 내민 잔에 잔을 채워주고, 내 잔으로 받아 놓은 술을 들어 나도 마셨다. 그리고 나는 동그랑땡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자리에 일어났다. 그러자 상민은 안주도 들지 않고 나를 따라 바로 일어났다.

"급한 일 없으니 안주나 들고......."

"네, 회장님!"

내 말에 엉거주춤 구부려 안주를 짚는 상민이었다.

나는 그가 안주를 입에 넣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때 마루에 있던 미정이 상민을 발견하고 급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엉겁결에 인사를 받은 그가 곧 답례를 했다.

"여전히 예쁘십니다. 사모님!"

"네~! 고맙습니다."

상민의 말에 상기된 얼굴로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받는 미정이었다.

"둘이 언제 봤지?"

"우리 약혼식 때 상백 씨랑 같이 왔었잖아요."

"참, 그랬지."

나는 그제야 기억이 나서 끄덕거렸다.

"그러나저러나 상백이 놈은 귀국하려면 아직도 멀은 거야? 너는 소식 들은 것 없냐?"

"없습니다."

"무정한 놈! 소식 한 자 없고."

여기서 우리 대화의 중심에 놓인 사람은 내 고향 친구로, 현 이상백 엔지니어링 사장과 동명이인으로써, 나의 부탁에 의해 그를 수발(?) 들다가, 이상백 씨의 추천으로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회사인 벡텔에 입사해, 지금 거기서 근무하고 있는 녀석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랑 만나고 있는 이 이상민이라는 친구는 서울대 상대를 졸업해, 군대를 갔다 와 84년도에 우리 회사 무역파트에 입사한 사람이었다. 한 해 재수를 하는 바람에 동기들보다는 입사가 한 해 늦은 사람이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상민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어디 시원한데 없냐?"

"저 마을 뒷산, 송림 속이 그래도 시원하잖아요."

"이제 우리 단 둘 뿐인데, 말 놔라. 영 내가 거북하다."

"정말 그래도 됩니까?"

"내 인사 상 절대 불이익이 없을 것을 장담하마."

"좋습니다. 그쪽으로 갑시........ 가자."

나는 내심 웃음이 나왔지만 그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

"지금 네 직급이 과장인가?"

"네, 응!"

"대답 한 번 요한하다. 근무하는데 애로사랑은 없니?"

"지금 무역부의 금융부분에 있는데, 너무 갑갑해서 외국 바람이라도 쏘이고 쉽습니다."

또 회사 이야기가 나오자 존댓말을 하는 상민이었다. 이에 나는 아예 포기하고 대화를 해나가기로 했다.

"외국이라........?"

잠시 생각하던 내가 말했다.

"너, 런던으로 가라."

"거기 지사 원으로 가는 겁니까?"

"아니, 내 생각은 말이야. 그곳에서 원유를 취급해 줬으면 좋겠어."

"원유요?"

반사적으로 묻고는 생각에 잠기는 상민이었다.

"원유는 전혀 취급해 보지 않았는데요?"

"누구는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아는 사람 있어. 다 공부를 해야지."

"그래도........"

망설이는 그에게 나는 부연 설명을 했다.

"우리가 금번 이란에서 대규모 수주를 한 것은 너도 잘 알잖아?"

"네, 회장님!"

"그게, 원유나 LPG 또는 부가 석유제품으로도 상당량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다행히도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는 매번 현금결재가 되니 문제가 안 되는데, 이란 것은 좀 우리가 많이 팔아먹어야겠어. 그러니 네가 좀 수고 좀 해줘."

잠시 생각하던 그가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물며 말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래야 사내고, 내 친구지!"

나는 그의 등을 툭툭 치며 격려를 해주었다.

"내 너를 내일 부로 차장으로 발령 내마. 필요한 인원은 그룹 내 어디라도 좋으니 선발해가. 단 5인 이내의 소수 정예로 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대답을 하고 잠시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기던 그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차라리 그룹 내에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정유공장을 하나 세우면 어떨까요?"

"그걸 왜 나라고 검토 안 해봤겠어. 정부의 허가 사항인데, 지금도 포화상태라 도저히 내 줄 수가 없다는 거야. 그러니 알아보려면 외국 쪽으로 알아보는 게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덧 상민이 말한 소나무가 우거진 숲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 도착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네의 전경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동네에 빈집이 많지?"

"다 도시로 나가고 100여 호가 넘었던 것이, 이제는 60호 정도 밖에 안 되는 모양입니다."

"하긴 산업화의 물결을 우리 동네라고 피해갈 수가 있을까? 다 똑같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후 잠시 둘의 대화가 단절되었다.

비로소 매미 우는 소리도 들리고 풀 마르는 냄새도 맡아졌다. 어디서 송진 냄새도 나는 듯 했다. 우리가 이렇게 말없이 시골 정취에 취해 있는데, 동네 어귀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지?"

나는 말을 하며 눈을 모았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멀리서 누구의 차량인지 알 수는 없었다. 번호판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한 차가 이내 멎고 문이 열리자, 뜻밖에도 경숙과 매제 장민호가 동시에 내렸다.

"저 자식은 내일이 혼례인데, 왜 벌써 처갓집에 와?"

"새로 매제 될 사람입니까?"

"그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경순이나 경숙이라도 꼬셔 놓을 걸."

"뭐? 하하하........!"

나의 웃음에도 그는 웃지도 안고 말했다.

"한 동네에서 자라 그런지 몰라도 동생 같아서, 영 여자로 안 보이더란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참, 너는 결혼은 한 거냐?"

"아직 미혼입니다."

"네 나이가 몇 인데?"

"이제 갓 서른 넘었는데 요, 뭐."

"서른둘이면 적으냐?"

"이번에 나가면 외국여자와 결혼할까 합니다."

"뭐? 부모님이 허락하겠어?"

"부모님보다, 데리고 살 내 의사가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하긴 그렇다. 그러나 저러나 너무 늦었다. 빨리 결혼해라."

"회장님이 중매를 서시던 지요?"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비서실에는 쭉쭉빵빵만 모아 놨드만요."

"아무리 그러면 뭘 하냐 상대 여자가 좋다고 해야지. 게들도 다 재원들이다, 2개 국어는 기본이고 보통 4~5개 국어는 한다."

"그러면 눈이 무척 높겠네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다."

"에고, 천생 양년이나 어디 가서 꿰차야겠네."

"너는 외국 여자가 좋은 모양이다."

"내 키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 여자는 너무 작아 싫어요. 대개가 어깨 언저리에 오니........"

"보통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여자 좋아하는 것 아니야?"

"그것도 정도껏이죠. 최소 170은 넘어야 되는데, 우리 또래에 그 정도 되는 여자가 몇 이나 돼요?"

"하긴 지금 여자들 평균 키가 우리 또래는 158정도?"

"그 정도도 안 될 것 같아요. 어릴 때 너무 못 먹었으니, 키가 자랄 겨를이 있었나요?"

"하긴, 지금 커 나오는 얘들에 비하면 불행한 세대라 할 수 있지."

"생각 나름인 것 같아요. 그만큼 기회는 많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고. 여기서 이럴 게 아니다. 매제도 왔으니 내려 가봐야겠다."

"그러시죠."

"같이 가자."

"나는 집에 가서 미리부터 말씀드리고 정리 좀 해야겠습니다."

"그럼, 저녁때나 와라. 해 떨어지면 술 한 잔 하게."

"그러지요."

"이따 보자."

"네!"

우리는 집 방향이 서로 달랐으므로 그곳에서 서로 헤어졌다. 내가 집에 들어오니 나를 찾았던지 매제 징민호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어디 가셨었습니까? 한참 찾았잖아요."

"날, 왜?"

"처갓집 왔는데 처남이 없으면 서운하잖아요."

"별........! 아니, 그런데 너는 벌써 왔냐?"

"혼자 집에서 뒹굴고 있으면 뭘 해요?"

"동서한테는 연락 해봤냐?"

"이따 저녁때 내려온다고 해서 겸사겸사 술타령이나 하려고 왔지요."

"내일 결혼할 사람이 술 많이 마셔서 되겠어?"

"적당히만 하면 되죠."

"근무는 할 만하고?"

"법원이나 여기나 지루하고 따분하기는 마찬가지네요. 법을 주무른다는 것이 어디가도 비슷하지만 말 이예요."

이 장민호 검사는 자신의 말대로 3월 달까지만 근무하고, 우리 회사 법무 팀으로 적을 옮겼다. 그래서 현 법무 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였다.

"그래서 어쩌자고?"

"다른 부서로 옮길 수는 없나요?"

"배운 것을 써먹어야지, 타 부서로 가면 어디 적응이 쉬워? 다 밑바닥서부터 다 다시 배워야 되는데?"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옮길 수 있으면 옮겨서, 새로운 인생을 한 번 살아보고 싶네요."

"거 참........!"

잠시 생각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베풀어주신 후의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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