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39화 (239/322)

< --雄飛-- >

나는 기가 막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파스타라를 아주 잘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파스타라는 음식이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국수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양념이 좀 다를 뿐이었다.

기껏 나를 대접하는 것이 국수라니. 차라리 내가 파스타라는 음식을 알았으면 처음부터 다른 곳을 가자고 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상식으로는 피자와 스파게티가 있었는데, 스파게티도 이 파스타의 일종이라니 할 말을 잊었다.

아무튼 기분이 상한 나는 곧바로 맞은편에 앉은 세르지오 사장에게 보복성 발언을 했다.

"스프린트 벨로체(Sprint Veloce) 말이오."

"네, 회장님!"

"몇 대가 나가고 있다고요?"

"줄리에타 스프린트는 6년 동안 모두 2만7000여대가 생산됐으며, 그 중

,058대가 스프린트 벨로체였습니다."

"허허, 기가 막힌 일이군. 그것이 아직 단종 되지 않고 생산되고 있다는 이야기 아니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2만7천 대라도 그렇소. 그것이 6년 동안 생산된 대수라면, 한 해에 9천대 꼴로 팔렸다는 이야기인데, 이래가지고야 무슨 수익성이 있소. 그렇지 않소?"

"네. 사실 적자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인수를 하게 된 것이고요."

"앞으로 새로 개발되는 줄리에타가 출시되면 스프린터 라인들은 모두 폐쇄하시오. 적자나는 것을 왜 끌고 간단 말이오. 그리고 그곳에서 줄리에타를 생산하되, 이탈리아 내에서는 공장을 더 이상 확장하지 마시오. 이 정도만 해도 우리가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도리는 지킨 것이라고 보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소?"

"네, 회장님!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영국의 재규어 공장은 앞으로 금번 버밍햄 자동차 쇼에서 첫 선을 보여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재규어XJ220 스포츠카와 대형세단 위주로 생산을 하도록 하시오. 그러면 상호 보완적이지 않겠소?"

재규어XJ220 스포츠카는 페라리 F40, 포르쉐 959,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를 능가하는 슈퍼카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재규어에서 온갖 심혈을 기울여 만든 차로, V6 3.5리터(ℓ) 트윈 터보차저 엔진에 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다. 최고 속도 350km/h,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단 3.8초이다. 1995년 맥라렌 F1이 나오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로서의 명성을 굳건히 지키게 된다. 그 전에 우리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규어가 계속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국수(파스타)를 대접받은 값을 톡톡히 지불하고, 이 날 오후는 관광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튿날 바로 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가 사주인 닉키 오펜하이머의 영접을 받으며 요하네스버그에 여장을 풀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보복(?)으로 세르지오 알파로메오 자동차 사장을 우리 수행 단에 전격 합류시켜 내가 가는 곳마다 끌고 다녔다. 아무튼 우리는 남아공에 도착해 장갑차까지 동원해 감시를 당하고 있는 흑인타운도 구경하고, 전자공장 예정부지 또한 구경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사무실에서 지난번 체결한 양해각서에 정식으로 양 그룹의 회장이 서명함으로써, 정식 효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 일환으로 대정-에이믹(D-Amic)이라는 전자 합작 법인도 정식으로 설립이 되었다. 이 계약이 체결되자 우리는 곧바로 그곳으로 떠나 이란으로 향했다. 우리가 체류하는 동안에도 폭탄테라가 자행되어 몇 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는 뉴스를 접하니,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럴진대 이런 위험한 시장을 지키는 우리의 상사원들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유호걸 지사장 이하 전원을 일 계급씩 특진을 시켰다. 물론 이번 공도 참작이 된 것이다. 아무튼 그 바람에 유호걸 지사장은 부장에서 이사로 승진이 되어, 전자공장 사장까지 겸직하게 되었다. 나머지도 차례로 그 직급에서 한 단계씩 승진이 됨은 물론, 내가 하사한 금일봉으로 조촐한 회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서둘러 이란에 도착한데는 다 그만 이유가 있었다. 1980년부터 장장 8년이나 끌던 전쟁이 급하게 휴전 분위기로 바뀜에 따라, 이란의 복구 사업을 선점하기 위해서 나는 ,급거 이번에 이란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85년 이래 우리는 해마다 12억 달러 이상의 신디케이트론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 등 생필품을 공급해왔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만이 지금까지 유일하게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이 이란을 전쟁 중임도 도왔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보답을 받을 차례인 것이다. 아무튼 우리 일행이 테헤란 공항에 도착하자, 이번 종전협상을 주도하며 실세로 떠오른 라프산자니 이란 국회의장의 영접을 나왔다. 실세임을 과시하듯 그는 각 부 장관들을 이끌고 출영을 나와 있었다. 그 중에는 NIOC(이란석유공사) 사장 마하마드 칼레바니도 있었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가볍게 포옹을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진실로 강 회장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전쟁 통에 아무도 돕지 않는 우리 조국을 강 회장님은 굳건히 지켜주셨습니다. 곧 휴전이 될 것이고,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있소. 하지만 아시다시피 폐허 속에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유일하게 석유자원 밖에 없소. 이를 통해서라도 보은을 할 테니, 우선 이 석유시설부터 복구를 해주시오. 구체적인 이야기는 장소를 옮겨 이야기 합시다."

"감사합니다. 가시지요."

"그럽시다."

우리는 곧 이란 지사 원들이 끌고 온 차에 올라 국회의사당 영빈홀로 향했다. 그들이 얼마나 피폐한지 우리에게 제공할 승용차도 제대로 없어, 우리는 우리 지사의 차를 이용해야 했던 것이다. 아무튼 영빈홀에 도착한 우리는 서로 대좌한 채 곧 협상에 임했다. 그 전에 라프산자니의 모두 발언이 있었다.

"오늘 서방 신문을 보니 만약 종전이 된다면 우리나라의 건설수요만 880억 달러요, 각종 전후복구 사업에 필요한 자재와 생필품 수요가 1천36억 달러라는 보도를 보았소. 나는 이 모두를 최우선해서 대정그룹에 드리려 하오. 그러니 대정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그렇지만 이것이 다 석유가 생산되어야 하니, 우선 파괴된 유정과 파이프라인부터 복구해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분야별 토론에 들어가도록 하죠."

"그럽시다."

서로 동의를 하자 우리는 각자 맞은편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최우선 무역부분 사장은 이들의 내무부 장관과, 이상백 엔지니어링 사장은 석유장관을 대리해 나온 NIOC 사장과, 건설부 장관은 홍성부 장관과, 공업부 장관은 세르지오 자동차 사장과, 서석준 전자 사장은 상업부 장관과 각각 회담을 시작했다. 회담이라야 이들이 필요한 각종 물품을 우리에게 전달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복구 내지는 건설해달라는 요청들이었다. 그러나 당장 숫자가 나오는 것도 있었지만 어느 부분은 현장 실사를 통해 파악을 해, 계약을 하는 것도 있었다. 이렇게 협의를 하는데 만도 장장 네 시간, 오후 시간이 다 갔다. 일단 우리는 우리의 숙소인 호텔로 철수하고 내일 다시 만나 회담을 속개하기로 헤어졌다. 얼마나 쪼들리는지 몰라도 말로는 은인이라면서 공식 만찬 하나 없는 것이 이들의 태도였다.

그래서 나는 그 날 저녁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내 호텔 방으로 들어와 TV를 틀었다. 마침 뉴스 시간인지, 이란의 영자 위성방송 프레스TV가 반 관영 메흐르통신을 인용하여, 사진과 함께 우리의 도착 사실과 회담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이를 지켜보다가 각 사장단과 수행원들을 불러 모아 내일의 회담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일찍 취침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오전에도 우리는 3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통해, 각 부서가 필요한 사항과 결재방법 등을 논의했다. 이들의 결재방법이야 한결 같았다. 디폴트를 선언하기 직전인 이들로서는 모두 석유가 생산되어 돈이 들어오면, 최우선 변제를 해주겠다는 말의 성찬뿐이었다. 아니면 당장이라도 현물로 석유와 LPG 또는 부산물인 MEG 등의 석유제품으로 변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일부는 현물인 석유와 LPG 또는 MEG로 받고, 나머지는 NIOC의 보증아래 추후에 현찰로 받기로 했다. 그리고 각 분야별 내용을 집계하니 구체적인 것도 있었지만 모호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합의서를 만들어 발표하기로 했다. 그 내용을 언급하면 아래와 같았다.

첫째; 이들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곡물, 의류, 신발 등 생필품을 시장의 수요만큼 대정이 일괄 공급한다. 둘째: 기 파괴된 건물을 복구하기 위한 철강, 시멘트, 목재 등 여타 필요한 건축 자재를 일괄 대정그룹이 공급한다. 셋째: 위의 사항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이란은 케르만 주에 위치한 준 사막지대에 850만 평의 공장 및 신도시를 건설해 이를 뒷받침 한다.

넷째: 대정이 위의 공장지대에 장차는 자동차 공장을 세우되, 우선은 부품을 공급해 조립하는 방법으로 이란의 자동차 수요에 대처한다. 다섯째: 대정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우선적으로 대정은 파괴된 석유생산 시설과 파이프라인을 복구한다. 여섯째: 대정은 원유를 실어 나를 선박을 건조해준다. 1차로 각각 1억 달러에 VLCC 선박 5척을 건조해 주고, 추가로 또 5척을 건조해 준다. 또 수에즈막스, 아프라막스 급 유조선 10척을 각각 1억 달러, 총 10억 달러에 건조해 이를 순차적으로 이란에 인도해 준다. 일곱째: 추후 필요한 사항은 추후 협의에 의해 결정한다. 위와 같은 계약 체결로 인해 우리는 추후 실사를 통해 원유생산시설 복구에 105억 달러, 파이프라인 복구에 총연장 1천680km에 37억 달러를 수주했고, 여타 파괴된 건설과 신도시 건설 자금으로도 53억 달러를 추가 결재를 받았다.

이 외에 우리는 이들에게 필요한 곡물 및 의류, 신발, 전자제품 등의 생필품, 여기에 건축자재까지 매해 5년 동안 78억 달러 이상을 수출했다. 여기에 8년 동안의 전쟁으로 고물이 다 된 자동차 수요도 엄청나서, 우리는 선주문으로도 돈을 받고도 6개월 후에나 자동차를 공급하는 호황을 누렸다.

이탈리아 부품업체들이 미처 부품을 제때에 공급하지 못해서 빚어진 현상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고, 우리는 회담을 마치자 곧 영국으로 날아가 그곳에서도 정식으로 재규어 공장 인수에 서명을 했다. 부채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현금 5억 달러를 지불하여, 4억5천만 달러를 제시한 포드를 제치고, 우리가 정식으로 계약서에 서명을 한 것이다. 이 모든 일정이 끝나자 나는 바로 귀국을 했다. 둘째 여동생 경숙의 결혼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양가 부모의 허락 하에 본격적인 교제를 하더니 경숙이 덜컥 임신을 해버렸다. 이에 우리는 서둘러 혼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잡은 날짜가 7월 10일 일요일이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양가 합의 하에 시골의 소읍인 증평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식이 끝나고 바로 식사를 하면 맞게끔 시간을 정했던 것이다. 내가 귀국한 날이 금요일이라 나는 이튿날 회사로 출근해, 그간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 부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렇게 하니 하루가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이튿날 토요일 날은 아예 나는 출근을 않고, 전 식구들을 이끌고 시골로 아침 일찍 내려갔다. 서둘러 출발한다고 했어도 여자들의 화장시간은 왜 이렇게 긴지, 고향집에 도착하니 벌써 오전 10시 45분이었다. 이미 집안은 잔치 준비로 더위를 피해 차일을 친 가운데, 각종 음식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며느리들도 인사를 나누더니 옷을 갈아입고 앞치마로 갈아입은 채 음식 만드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연신 쫓겨 오기 바빴다. 도와주기는커녕 방해만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내 부인들을 쉬게 하기 위한 핑계고, 덕분에 아내들은 기름 냄새를 덜 맡게 되었다. 오늘 따라 날씨가 무척 더웠다. 아마도 30도가 넘는 것으로 느껴졌다. 덕분에 아내들은 더위마저 피하게 된 것이다.

이 더운 날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안방에 들어앉아 일찍 찾아온 일가친척들과, 에어컨 바람을 쐬며 술타령이나 하는 것이 전부인데, 이마저도 더우니 마시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잔이 초가 되어가는 판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 너는 상민이 아니냐? 자식아, 너는 회장을 보고도 인사도 안 하냐?"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을 받아 친구는 내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고향 친구이지만 우리 회사 무역부에 근무하는 상민이 내게 깍듯이 인사를 하니, 받는 내가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아, 진짜 거북하다. 친구 지간에 이런 인사라니......... 그런데 너는 어떻게 된 일이냐, 회사에 일체 알리지도 않았고, 아는 사람들마저 전부 못 오게 했는데........"

"고향에 다니러 왔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길입니다."

"사전에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 아닙니다."

어쩐지 당황하는 모양새가 알고 있었던듯하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까지 더 추궁해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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