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雄飛-- >
그로부터 세 달여가 지난 7월 초.
나는 4개국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을 했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란, 영국이 그들 나라들이었다.
수행원으로는 이와 관련이 있는 사장들과 비서실장, 기획실장, 통역으로는 올리비아 리가 수행을 했다. 우리가 첫 번째 방문지인 이탈리아 토리노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이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토리노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는 우리의 자동차 공장이 있는 교외로 향했다. 토리노 외곽 그롤리아스코라는 곳이었다. 우리의 방문에 알파로메오 자동차 공장 중역들이 줄줄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중에는 나에 의해 사장으로 임명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와 디자이너에서 통역으로 변신한 유성욱 씨, 그리고 수석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 등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이를 올리비아 리가 통역을 했다.
"잘 지냈소?"
"네, 회장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나는 세르지오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자리가 너무 비좁아 우리는 곧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나는 곧 세르지오의 소개로 이들 중역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우리 그룹의 간부들도 이들에게 소개를 했다. 우리는 곧 양쪽으로 갈라 앉고 자리가 정돈되자 내가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내가 듣기로 애초의 공장은 이곳이 아니었다 들었소만?"
"네, 회장님. 원래는 토리노 시내에 있었으나, 금번에 새로 발매한 미토(MITO) 소형차가 이탈리아 내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바람에, 미리 이에 대처하기 위해 공장을 옮긴 것입니다."
설명과 함께 세르지오는 팜플렛 상의 미토를 내게 보여주었다. 잠시 사진을 들여다보던 내가 물었다.
"이건 곡선의 흐름이 기존의 것보다 파격적인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지난번 회장님의 지시대로 발터 드 실바 수석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미토와, 사장님의 지시로 좀 더 급한 흐름을 택한 미토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물론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 시킨 결과, 사장님 지시에 의해 탄생된 제품이 더 큰 관심을 받음은 물론 양 대회의 디자인상도 수상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이탈리아 TV에 대대적인 광고를 실시한 결과, 도저히 기존 공장의 생산물량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신규 공장을 짓기에 이른 것입니다."
"좋소!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오. 그런데 준중형인 줄리에타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아직 디자인 중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차도 지금의 미토 디자인이 채택되는 것이오?"
내 물음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발터 드 실바가 사장을 대신해 대답을 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기존의 디자인을 전부 버리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설계를 하려니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팔리는 디자인을 채택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세르지오의 답변을 들으며 나는 다음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금번에 영입한 디자이너 중 이안 칼럼은 영국에 있으니 그렀다 쳐도, 피터 슈라이어라나 크리스 뱅글이라는 디자이너는 왜 안 보이오?"
"지금 디자인 센터에 머물고 있으나, 작품에 열중하고 있으므로 제가 부르지 않았습니다."
"알겠소."
나는 세르지오 사장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이범석 조정 실장이 기어이 세 사람을 영입했는데, 좀 전에 언급한 현 세계의 3~4대 디자이너로 통하는 이안 칼럼과 피터슈라이어 그리고 크리스 뱅글이었다. 이안 칼럼은 79년부터 포드 디자인 센터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마침 옮기고 싶다며 이적에는 쉽게 동의했으나, 연봉 문제로 오랜 줄 달리기를 했다. 보통 이 당시 수석디자이너의 연봉이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7억 내지 8억 원 정도 되었다. 이 당시 이안은 포드에서 수석 디자이너 급에는 약간 못 미치고 있었으므로, 8억을 주면 충분히 영업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는 우리만의 착각이었다. 결국 끝내 그가 응하지 않으므로, 내 지시로 특별히 10억 원의 연봉을 주고, 우리가 인수한 영국 재규어 공장의 수식디자이너로 영입할 수 있었다. 또 피터 슈라이어는 이 당시 독일의 아우디에 있었는데, 이 또한 지루한 연봉 협상 끝에 10억 원을 준다는 조건 하에 영입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이 알파로메오 자동차 차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반면에 반 후이동크는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아, 영입에 실패했다. 그 대신 일본인 디자이너 사또시 와다를 영입했는데, 이 사람은 조건부 영입이었다.
자동차 디자인 교육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RCA (Royal College of Artcenter) 즉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센터라는 영국의 유명한 디자인 대학에 재학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닛산의 장학금을 받아 입학하는 바람에, 일정기간 닛산에 근무하다가 우리 그룹으로 적을 옮기기로 한 것이다. 또 한 사람 크리스 뱅글은 아직 33세로 젊은 사람이었다. 미국인으로 독일의 오펠(Opel)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퇴사해 놀고 있는 것을 영입했다. 그런데 이 사람도 만만치 않은 금액을 주어야 했다. 보통 초보들이 3만 달러 내외의 연봉인데 비해, 8년차가 넘으면 껑충 뛰어 8만 달러를 주는데, 우리는 연 10만 달러에 영입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는 현재 이곳 디자인 센터의 시니어 디자이너로 임명되어 열심히 공부 겸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영업한 사람 중에는 공교롭게도 원 역사에서 훗날의 일이지만 한국과 인연을 맺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현대의 현 수석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피터 슈라이어고, 또 한 사람은 삼성과 인연을 맺는 크리스 뱅글이 그 사람들이었다. 어찌됐든 일찍이 우리 그룹과 미리 인연을 맺었으니, 이들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타고난 사람들임에 틀림없었다. 여하튼 미토가 잘 팔린다니 기분은 좋았으나, 하나 내 애초의 계획과는 배치되는 것이 있었으니, 미토를 공장을 외곽에 사들이기까지 하며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것은, 소형은 모로코에서 생산하려던 계획과는 어긋난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는 사장의 독단이던지 아니면 인수인계 과정에서 잘 못 된 것인지 분명히 가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이 문제를 거론했다.
"내 애초의 계획은 미토를 모로코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었소. 그런데 이곳에 공장을 짓다니, 이것은 누구의 판단이오?"
세르지오가 답변에 나섰다.
"저도 그 문제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우선은 이탈리아인 근로자와 부품 업체를 달랠 필요가 있어, 제 독단으로 결정한 일입니다. 허나 크게 확대할 생각은 없고, 더 많은 차가 팔린다면 그 때는 모로코에서 대량생산을 해, 생산 원가를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물론 현지 사장의 결정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중대한 문제는 반드시 그룹과 상의를 해서 결정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미토가 유럽인들은 물론 세계인에게 호평을 받은 모양이니, 앞으로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상대로 대대적인 판촉전을 전개하도록 하시오."
"현장 라인을 한 번 둘러볼까요?"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내 말에 따라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곧 현장의 조립라인으로 향했다.
나는 3개 라인에서 연신 쏟아져 나오는 조립 공장을 30여 분에 걸쳐 살펴보고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이들을 교육했는지 몰라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으로 조립라인의 끝에서 완성되어 나오는 미토를 바라보니, 마치 한국의 프라이드나 아우디의 쿠퍼마냥 작은 것이 아주 귀여웠다. 차 색깔도 다양하고 외양도 산뜻해 나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 웃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세르지오에게 물었다.
"차도 만족스럽고 일하는 근로자들의 태도도 만족스럽소. 내가 분명 기획실장에게 듣기로는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찌 된 일이오?"
"처음 제가 부임해오니 중역들은 저희들 비서를 통해 서로 연락을 할 뿐 전혀 인적교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올라오는 결재서류 또한 더디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을 차례로 불러 겸손한 태도로 이들과의 소통에 애를 썼지요. 또한 비서들은 전부 다른 부서로 옮기고 중역들 간에도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현장의 의견도 밤낮으로 청취했고요. 그리고는 사장실을 24시간 누구에게나 개방함은 물론 제 휴대폰도 누구에게나 24시간 개방했습니다. 그리고 물어오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즉시 답을 주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빠른 시간 안에 이렇게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제 진심이 통한 것이죠."
"말로야 쉽지만 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소. 앞으로도 더욱 경영에 힘써서 지속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주시오. 하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여러분에게 있을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그간 고생들 많았으니, 오늘은 어디 근사한데 가서 점심이나 한 끼 합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 말에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는 것 같더니 세르지오가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차에 오르실까요?"
"그럽시다."
우리는 곧 타고 온 승용차에 올라 세르지오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차는 다시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주위의 풍경이나 열심히 바라보며 이국의 풍물을 즐겼다. ============================ 작품 후기 어제 게으름 핀 대가로 한 편 더 올립니다!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시길........!
^^어제 게으름 핀 대가로 한 편 더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