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37화 (237/322)

< --雄飛-- >

내가 비바람에 떨어져 흉하게 이곳저곳에 버려진 꽃들을 줍고 있는데 다정이 불렀다.

"아빠!"

내가 다정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기타를 번쩍 들어 보이는 그녀였다. 내가 천천히 그쪽으로 가면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꼭 며칠을 굶은 아이들이 고기 먹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서로 다투어 입으로 가져가는데 입이 미어져라 터져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싱긋이 바라보며 걸어가 다정에게 말했다.

"너도 먹고 시작하자."

"네, 아빠!"

다정도 곧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나만은 아이들의 먹는 모습을 흐뭇한 웃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때 딱 적용되는 말 같았다. 내가 이렇게 하고 서 있

자, 다정이 어느새 눈치를 채고 쌈을 싸서 들고 말했다.

"아빠, 아~ 하세요."

"그래, 그래."

나는 냉큼 다정의 것을 받아먹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난리였다.

"아빠, 내 것도."

"내 거는?"

효정과 인정이 다투어 쌈을 싸서 내 입으로 넣으려 달려들었다.

나는 흐뭇한 생각으로 두 딸들이 건네주는 쌈을 받아먹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일 회성이 아니라 계속해서 내게 싸 먹였다. 나는 그래도 이를 차례로 받아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네들의 상태가 짐작이 되고 있었다.

'이것들이 어느 정도 배가 불렀군. 남 돌아볼 여유가 다 있다니.'

나는 또 두 딸이 건네주는 쌈을 연신 받아먹으며 그네들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네들의 먹는 속도가 많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붙여왔다.

"회장님, 술 한 잔 가져올까요?"

"그럽시다. 안주도 괜찮으니."

"네, 회장님!"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안주 핑계를 대며 술을 청했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다정이 말했다.

"아빠, 많이 드시지 마세요?"

제 엄마가 없으니 간섭을 하려드는 모양새였고, 어떻게 보면 살림 잘 하는 딸이 늙은 아비를 챙기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하고, 다시 중산이 싸주는 고기를 받아먹었다.

"네 녀석이 어쩐 일이냐?"

"제 것만 안 받아 잡쉈잖아요?"

"네 녀석이 지금까지 안 싸준 것은 아니고?"

"헤헤헤.........!"

콕 집어 하는 말에 미안해하는 웃음을 흘리며 그래도 열심히 권하는 아들이었다. 이때 아주머니가 술을 가져와 내게 한 잔 권하며 말했다.

"드세요. 회장님! 못 생긴 아낙의 술이라도 괜찮죠?"

오래 지나다보니 많이 임의로워진 아주머니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냄새나는 수놈들이 따르는 것보다는 백 번 낫습니다."

"고마워요, 회장님!"

내친 김에 안주까지 싸서 대령하는 아주머니 때문에 나는 이 또한 받아먹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아주머니도 한 잔 하실래요?"

"딱 한 잔만 주세요. 회장님!"

"그럽시다."

살짝 부끄러운 낯으로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잔을 채워주었다. 뒤돌아서서 홀짝 마신 아주머니가 얼른 이를 앞섶에 닦고는 내게 다시 잔을 내밀었다.

"안주부터 드시고........"

"아닙니다. 회장님!"

나는 그녀의 잔을 한 잔 더 받고 더 이상 잔을 돌리지 않았다. 비로소 자신의 임무가 끝난 것을 안 아주머니와, 멀찌감치 서있던 신랑이 함께 물러갔다. 이후 나는 술을 딱 세 잔만 더 마시고, 이미 먹을 만치 먹어 떨어져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손수 작게 모닥불을 피우고, 밤이라 점점 기온이 내려가는 봄날의 불가로 아이들을 둘러앉게 했다.

그리고 나는 기타를 들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곧 감미로운 클래식 연주가 끝났다.

"아빠, 멋지다!"

칭찬하는 다정부터 나는 한 사람씩 일으켜 세워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이때부터 아이들을 돌아가며 노래를 시켰는데, 나름 음치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어 나는 '비둘기 집'이라는 곡을 단체로 합창을 시키고는 기타를 치웠다.

그리고 과일과 음료수를 갖다놓고 저희들끼리 이야기하도록 하며, 나는 한 사람씩 불러내어 아이들을 상담했다. 나는 먼저 효정을 지목해 좀 멀리 떨어진 잔디밭으로 갔다.

"모처럼 아빠랑 이야기 좀 하자."

"네~!"

"아빠에게 평소하고 싶었던 이야기 없어?"

"음........!"

생각하느라 잠시 뜸을 들이던 효정이 말했다.

"있잖아요, 아빠!"

"그래."

말을 꺼내기가 정말 힘든 효정이었다. 나는 맞장구를 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나 학원 다니기 싫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많단 말 이예요."

"몇 가지인데?"

"피아노, 속셈, 미술, 영어."

"네 가지 씩이나?"

"네, 아빠가 생각해도 너무 많죠?"

"그래. 그 중에서 제일하기 싫은 게 뭔데?"

"영어 회화요."

"그건 곤란한데? 그 다음은?"

"미술 요. 나는 미술에 별로 소질이 없나 봐요. 내가 봐도 아이들한테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럴수록 더 해야 되지 않을까?"

"흥미도 없는 것을 하려니, 더 힘들어요."

"세상은 자기가 재미있는 것만 해서 되는 세상이 아닌데.......?"

"그래도 싫어요."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지배되어 생활할 나이의 아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정 그렇다면 그만 두어라."

"역시 아빠가 최고야!"

"녀석.........! 그렇게 좋아?"

"네, 한 가지만 줄여도 어디 예요. 그만큼 인정이와 놀 시간도 있잖아요."

벌써부터 놀지도 못하게 하고, 학원으로 몰아 부치는 수정이 나, 이를 배우는 효정이 안타까웠지만, 나는 가급적 여자들의 교육방침을 존중해 주기로 하고 간섭을 삼가왔지만, 이 정도는 아이를 위해서도 해주는 게 낫겠다 싶어,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말았다.

"다른 문제는 없고?"

"어떤 우리 반 남자 아이 하나가 저한테 짓궂게 굴어요."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럼, 말로 하지. 왜 나한테 치근거려요?"

"내가 볼 때는 그것은 네게 관심이 있다는 증거인데?"

"별꼴이야! 쳇"

나는 웃으며 이제 3학년이 된 효정의 예쁜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어느새 우리 머리맡에는 별이 가깝게 내려앉아 있었다.

"할 이야기 더 있어?"

"없어요."

"그럼, 인정이 데려와."

"네, 아빠!"

나는 멀어지는 효정을 잠시 바라보았다. 참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이었다.

이후 나는 인정은 물론 중산도 불러 그들의 문제를 상담했다.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의 고민이 그렀듯이 다 고만 고만 했다. 학원을 다니기 싫어하는 문제, 더 나아가 공부가 싫다는 등, 누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등, 또 아이들이 너무 따라 다녀 어떤 때는 귀찮다는 등, 이들 또래만이 가질 수 있는 고민을 내 딸과 아들은 털어놓았다. 나는 이들에게 아빠로서 가능한 자상하게 이들의 문제에 대해 답을 해주었고,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눈에 졸음이 한 가득이었다. 나는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잠을 청했다.

그 이튿날 오후가 되자 아이들의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는지 전화통에 불이 났다. 나는 그때마다 우리가 없다는 것으로 아주머니에게 답을 하라하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서둘러 집을 향해 출발했다.

좀 늦은 시각에 출발을 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니 벌써 저녁 8시였다. 내가 집 앞에서 크락숀을 누르니 세 엄마들이 득달같이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아이들 잃어버린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일제히 나를 바라보며 힐난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저희들 한 일은 생각도 안 하고.

그래서 내가 한마디 툭 던졌다.

"나를 홀아비로 만든 죄 값이야."

"쳇, 놀려주려 했다가 오히려 우리가 당했잖아!"

명희의 투덜거림인지를 들으면서 나는 뒤돌아서서 씨익 웃고 말았다.

"아이고, 내 새끼! 어디 갔다 왔어!"

"엄마 안 보고 싶었어?"

"엄마가 얼마나 찾았다고?"

다투어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한마디씩 하는 모정들이었다.

그리고 곧 아이들을 얼싸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엄마들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들을 따라 제일 늦게 어슬렁 어슬렁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우리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차려놓은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온 가족의 식사가 끝나고 내가 화장실로 향하는데 미정이 따라왔다.

"왜? 당신도 같이 볼 일 보게?"

"무슨 소리 예요. 망측하게."

"빨고, 끌어안고 난리칠 때는 언제고?"

"그거와 이거랑 똑 같아요?"

"그럼, 왜 쫓아오는데?"

"당신이랑 아이들이랑 어디 있는 줄 다 알고 있었지 롱?"

"그게 뭔 말이야. 내가 일절 우리의 행방을 알려주지 말라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당신 말에 충실했지요."

"그런데?"

"다정이가 알려줬지 롱?"

"그 마할 년이, 언제?"

배신감을 느끼며 내가 격렬하게 소리쳤다.

"고속도로 휴게소라고 하던 데요?"

"오다가 대관령 휴게소에 한 번 들어갔는데, 그때 알려줬나 보다."

"그럼요. 그런데 이걸 나만 알고 아무도 안 알려줬지 롱."

"왜?"

"옆에서 보는 게 얼마나 재미가 쏠쏠하다고요. 애태우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요."

"못 돼먹었군."

"호호호........! 그 소리 들어도 아직도 즐겁기만 하네요."

"악녀!"

"네?"

"악녀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네요. 그래도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참 내........."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냥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때 미정이 화장실 문을 빼곰 열더니 말했다.

"오줌 안 튀게 앉아서 눌 수 없어요?"

"뭐? 이젠 별 소릴 다 하네. 그럼, 네가 돈 벌어 올래?"

"못할 것도 없지요."

"얼씨구~!"

"하는 소리고요. 당신이 열심히 밖에서 돈 벌어오니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고요. 집에 있는 우리는 열심히 청소할 의무가 있지요."

"그렇게 말하니 조준 잘 해야겠네."

"알아서 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살며시 문을 닫는 미정이었다. 그날 밤.

그날 밤.

원래 미정의 차례가 아니었지만, 나는 작심을 하고 미정에게 달려들어, 이튿날은 아예 엉금엉금 기어 다니게 만들어 놓았다. ============================ 작품 후기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도 즐겁고, 행운이 가득한 한 주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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