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어머! 회장님! 오래간만이네요."
"그렇게 됐나?"
이화정의 이 마담이 나를 맞아 반색을 했다.
"어서 오세요. 두 분."
"동서들."
"어머! 어쩌면 그렇게 인물들이 훤하세요?"
"넘보지 마. 동서들이라고 했지?"
"호호호.......! 들켰네요."
"그만하고. 방은 있소?"
"회장님, 전화 받고 딱 하나 남겨뒀어요. 오늘은 너무 늦으셨어요."
"아직 초저녁인데?"
"예약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요즈음은 장사가 제법 되거든요."
"그런 모양이네. 9시면 이 업종에서는 초저녁일 텐데 말이야."
"어서 가요."
이 마담이 갑자기 내 팔짱을 끼며 방을 안내하고자 했다.
"이러지 말라고. 오해한다고?"
"일부러 오해 좀 사려고요. 그래야, 저도 대우를 받죠."
"거 참, 대우받는 방법도 여러 가지네."
"호호호........! 이 방 이예요. 회장님!"
"용케, 7번방이네."
"회장님을 위해 제일 늦게까지 남겨둔다고요."
"고마운 일이군."
우리 일행은 이 마담이 열어준 룸 안으로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노래방기기가 있는 풍경은 여전했다. 내가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고 두 사람은 문을 등지고 나를 마주보고 앉았다. 이에 이 마담이 풀썩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오늘도 전과 동인가요?"
"그래."
"아가씨들은 필요 없지 않나요?"
"아무리 그래도 수놈들 끼리 노는데, 아가씨들이 빠지면 재미없지."
"알겠어요. 곧 준비해 드릴 게요."
곧 이 마담이 나가고 잠시 후에는 웨이터가 물수건을 들고 들어왔다. 몽윤이 대표로 웨이터에게 팁으로 만 원을 주었다. 이를 보고 장민호가 말했다.
"재벌의 자제도 팁 주는 액수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네요."
"재벌일수록 짠 것 몰라?"
"그래요?"
내 말에 장민호가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이때 빙긋 미소만 띠고 있던 몽윤이 나섰다.
"팁을 많이 주는 것은 졸부들의 허세야."
"그럴지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장민호가 말했다.
"그러나 저러나 확실히 분위기가 으리으리하네요."
"이런데 처음 와 보는 사람같이 말을 하는군."
몽윤의 빈정에 장민호가 변명을 했다.
"저도 몇 번 접대를 받아 보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요."
"청주에 비할 수야 있나?"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장민호였다. 이때 내가 새삼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너희들은 벌써 여행을 갔다 오고 그러냐?"
'너희들은 벌써 몸을 섞고 그러냐?'
하고 묻고 싶은 것을 내가 좀 순화해서 한 말이었다.
"장모님도 허락을 하셨지만, 저희 부모님들도 빨리 손자 보기를 원하셔서......."
그 정도만 해도 답은 되었으므로 더 이상 말을 않는 장민호였다. 이때 몽윤이 끼어들었다.
"벌써 여행을 갔다 왔다고요?"
"음.........!"
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몽윤이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결혼 전까지 손도 못 잡아보았는데, 되게 빠르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여자 꾀는 재주가 좀 있어야지."
"자네가 지금 그렇다는 말 아닌가?"
몽윤의 물음에도 유들유들 넘어가는 장민호였다.
"하하하........! 말을 하다 보니 어찌 이렇게 됐나, 그래."
이때 이 마담이 웨이터들에게 양주와 안주를 들려 나타나 물었다.
"지금 아가씨들일까요?"
"그러지 뭐."
"네~!"
이 마담이 대답을 길게 끌며 나갔다. 잠시 후, 허벅지 위까지 올라간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 셋이 들어왔다. 한결같이 얼굴들이 예뻤다. 그러나 가슴은 천차만별이었다. 껌 딱지부터 글래머까지 다양했다. 아가씨들이 곧 김인지, 미역인지 자신들을 소개 했다. 그들의 인사가 끝나자 내가 말했다.
"취향대로 골라!"
"형님 먼저."
몽윤의 말에 내다 답했다.
"이런 데까지 와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지 말고 빨리 골라. 남는 사람을 내가 차지할 테니."
"네~!"
재빨리 대답한 장민호가 중간의 여자를 선택했다.
"저는 저 가슴 큰 아이를 택하겠습니다."
"김 양 이예요."
몽윤의 지적에 자신을 소개하며 몽윤의 옆에 앉는 김 양이라는 아가씨였다. 자연스럽게 껌 딱지가 내 차지가 되었다.
"윤 양 이예요. 회장님!"
"날 알아?"
초면의 아가씨이기 때문에 내가 물었다.
"그럼요. 대한민국에서 회장님 모르면 간첩이죠."
"그렇게 되나. 아무튼 잘 모셔라."
"네~! 회장님!"
대답을 길게 끌며 일제히 합창을 하는 세 아가씨였다.
"자네는 언제부터 출근 할 텐가?"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도 장민호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사표를 내고 정리를 하다보면 이번 달 말까지는 근무해야 하지 않겠어요?"
"왜요? 기껏 고시 패스해서, 그 어렵게 된 검사직을 그만 둡니까?"
몽윤의 물음에 새삼스러운 눈으로 일제히 장민호를 다시 바라보는 아가씨들이었다.
"우리 법무 팀으로 오기로 했네."
"우와! 형님 동작도 빠르시네요. 내가 데려다 쓸랬더니."
"하하하........! 그랬나?"
"이거 영광입니다. 형님까지 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장민호가 새삼스럽게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몽윤에게 목례까지 하며 말하자, 몽윤은 살짝 돌아앉으며 말했다.
"일 없네. 벌써 남의 사람이 된 사람은."
"하하하........! 자네도 인재 욕심은 대단한 모양이군."
"사람이 곧 기업 아닙니까?"
"그런 사업관이면 됐네. 자 이쯤 해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즐겨보세. 처남 앞이라고 사릴 것 없네. 놀 때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하는 법이지, 안 그래?"
"하하하........! 그래요."
쓸데없이 웃음 큰 둘의 대답이었다. 그러더니 몽윤이 날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물었다.
"설마 와이프에게 고자질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하하........! 하는 것 봐서."
몽윤의 말을 내가 농담으로 받았다. 이때부터 서서히 분위기가 상승되어, 우리는 시종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나는 내 집무실에서 김경제 비서실장과 오늘의 스케줄에 대해 협의를 하고 있었다.
"오늘 10시 30분 도착입니다. 그때 까지는 김포공항에 도착하셔야 합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의전 차량은 전부 준비되었고?"
"네, 회장님!"
"지금이 몇 시냐? 9시로군. 조금은 여유가 있네."
"그렀습니다. 회장님!"
"이후의 일정이 어떻게 되지?"
"앵글로 아메리칸의 신시아 캐롤 회장과 회담 후 정식 오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후 그들은 본 전자공장을 견학 후, 청주로 내려가 그곳에서 우리의 전자 및 반도체 공장을 견학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속도로로 이동을 해야 하는 건데........"
김 비서실장이 뭔 말인가 망설이자 내가 채근을 했다.
"뭔 말이오?"
"지난번 중국이나 소련, 프랑스 등을 방문하실 때도 그렇고, 이제는 회장님도 자가용 비행기는 한 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외 출장은 빈번한데 비행시간에 맞추다보니, 시간 로스가 굉장해서 말이죠."
"내가 볼 때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소?"
"그럼, 최소한 헬기 정도는 있어야, 광양이나, 부산 제련소 출장, 창원의 중공업 단지, 이제는 제주도의 호텔과 콘도까지 전국 안 다니는 곳이 없는데, 육로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시간 낭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들이 일정을 협의하는 동안 육로로 꼬박 2시간을 이동한다 했더니, 매우 못마땅해 했습니다. 우리 그룹의 위상도 그렇고....... 또 남아공 우리 지사장의 보고에 의하면, 저들은 툭하면 자가용 비행기 타고 배낭하나 짊어진 채 광물 탐사 차, 수시로 남아공 내륙을 돌아다닌다고........"
"그만 하세요. 뭔 말인지 알아들었으니까."
"네, 회장님!"
"일단 헬기 구매 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한 번 알아보고, 자가용 비행기는 가격 정도나 한 번 뽑아 봐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아니, 김 시장이 갑자기 화색이 도는 이유는 뭐요?"
"하하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기분은 좋습니다."
"알았어요. 내 조금 있다가 준비를 할 테니, 이만 나가 봐요."
"네, 회장님!"
깍듯이 목례를 건넨 김 비서실장이 내 방을 나갔다. 그의 입가에는 아직도 웃음이 남은 채였다. 나는 그가 나가자 창가를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내가 메이저급 세계 최대 광산 그룹의 하나인 앵글로 아메리칸 여성 CEO를 맞게 된 데는 남아프리카 지사장으로는 있는 유 호걸 이사의 활약이 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다인종 국가로 인구 4천만 명 중 백인이 500만 명이고, 소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분리) 정책으로, 이 당시 국제사회의 무역제재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 영사관은 물론 코트라(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마저 철수해, 남아공에는 유일하게 우리 지사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물론 이 제재에 다른 서방국가들도 대부분 철수한 상태였다. 이렇게 되자 생필품은 물론 전자제품마저 품귀현상을 빚었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선거권, 집회, 주거이전의 자유 등을 위해 싸우는 흑인들에 의해, 이쪽에서 쾅, 돌아서면 저쪽에서 쾅, 폭탄이 터지는 위험 속에서 우리 지사만이 남아 영업을 하게 되니, 우리가 공급하는 생필품은 물론 전제품마저 없어서 못 팔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이에 우리 지사를 유심히 관찰하는 기업이 있었으니 위에 언급한 앵글로 아메리칸 그룹이었다. 남아공은 물론 남미 북미 대륙 전체, 호주, 아프리카 전체 등을 상대로 지질을 조사하고 광산을 개발하는 등, 특히, 금, 구리, 니켈 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광산을 소유한 이 거대 메이저 광산 그룹은, 전 세계 다이아모드 보급의 80% 이상을 공급하는 드비어스(DBCM)와 자매 회사다. 즉 한 소유주 밑에 있는 대단한 기업체였다. 아무튼 남아공에 있는 2천여 명의 본사 직원들은 대부분 재무제표와 지질전문가들로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남아공 내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조사해 인수합병 대상 기업을 찾거나, 백팩과 텐트를 둘러매고 수단이나 사하라 사막 등을 돌아다니면서, 광물의 부존여부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 그룹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접근하게 되니, 일차로 우리에게 남아공 내에 전자 공장을 하나 설립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자 자신의 그룹 지분을 일부 인수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금액이 어마어마하게 큰 금액이라 우리는 일부 광산에 투자를 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그래서 선정 된 것이 칠레의 동 광산 운영회사인 '앵그로 아메리칸 수르((Sur)'의 주식 일부를 취득하는 것이었다. 이 두 건 외에 또 한 건이 실무자 선에서 거의 타결이 되자, 이 그룹 최초의 여성 CEO인 신시아 캐롤이 우리 그룹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생각에서 깨어난 나는 곧 시간이 되자, 함께 출영할 사장단과 수행원들을 호출하여 함께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나와 함께 한 사장으로는 이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 최우선 무역 분야 사장, 서석준 전자 사장, 이 외에도 이상백 엔지니어링 사장, 김 비서실장, 김재익 기획실장, 이한구 경제연구소 소장 등이었다. 통역으로는 올리비아 리가 수행했다. 경호원들까지 우리의 대규모 환영단이 김포공항에 도착한 것은 10시 20분이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비행기가 도착을 하지 않았다. 결국 20분이 늦은 10시 50분이 되어서야 자가용 비행기 한 대가 착륙하니,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앵글로 아메리칸 그룹의 임원들을 태운 비행기였다. 이에 우리는 서둘러 입국장으로 향해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