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32화 (232/322)

<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거실에 큰 상 세 개를 다 펴도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미정이네 부모 양인, 명희네 부모 양인, 모처럼 수정의 아버지까지 여섯 명의 장인 장모가 계신 데다 가, 여기에 내 부모와 아이들까지 다 모이니 사람 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 식구였던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살피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들 먼저 주어라."

나는 어머니의 뜻에 찬성할 수 없어 말했다.

"안 됩니다.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어른들이 먼저지. 저놈들은 앞으로도 먹을 날이 많잖아요."

"하하하........!"

"호호호........!"

"사위 말이 맞아."

미정 모친이 내 말에 기꺼이 동조를 했다.

"그러나 저러나 사위, 병원 하나는 으리으리하게 잘 지어놓았더라. 내 밑에서

하청 받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허세가 좀 있는 수정의 부친 황국태 씨가 옛날 일을 들먹이며 거드름을 피웠다.

"그게 아마 25층이죠?"

"나는 고개가 아파 세다 말았어."

수정의 모친 말을 명희 모친이 받았다.

"내부의 시설은 또 어떻고요. 딸년의 말을 빌면 한국 제1일 아니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병원이라더니, 정말 첨단의료장비 하며 의사나 간호사도 진짜 친절하드만."

하드만."

"우리가 사위의 장인 장모씩이나 된다니까, 우리만 유난히 친절하게 군 게 아닐까?"

수정 모친의 말을 계속 어깃장을 놓는 건지, 이상하게 비틀어 말하는 황국태였다.

"아니야.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드 만."

이를 정정하는 수정 모친의 말에 자신의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벙긋벙긋 하다 마는 황 씨 장인이었다. 무언가 더 말을 하고 싶어도 분위기가 그러니 참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때 상에 각종 음식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대화가 일단 중단되었다. 이때 수정의 부친이 말했다.

"반주로 한 잔 없어?"

이에 내가 말했다.

"양주 꺼내와."

"네, 여보."

나의 말에 미정이 빠릿하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은 다 잡숴도 아버지는 드시지 마세요."

"알았다."

내 말에 아버지도 순순히 동의하셨다. 그러나 내려가시면 모를 일이었다. 미정이 양주를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세 명의 가정부와 두 명의 아내에 의해 신속히 상이 다 차려졌다. 육개장과 닭도리탕이 주 메뉴였다. 이를 본 인정이 군침을 삼키더니 내 옆에 와 말했다.

"아빠, 저 거 한 첨만."

인정의 손을 쫓아가니 닭고기였다.

이때 내가 미처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인정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인정아, 이 외할미 곁으로 와라. 내가 좀 주마."

"네, 외할머니!"

발딱 일어나 제 외할머니 곁으로 쏜살같이 달음박질 쳐 가는 인정이었다.

이를 본 중산과 효정이 제 외할미 곁으로 닭고기 한 첨씩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내가 호통을 쳤다.

"이놈의 시끼들이, 무슨 짓들이야! 버릇없게."

나의 호통이 찔끔한 아이들이 입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버려둬라.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러겠니. 모두 이 할미 곁으로 와라. 내가 한 처럼씩 주마."

"네, 할머니!"

"여보, 안 되겠어요. 식탁이 비었으니, 그곳에 한 상을 차려주어야겠어요."

"그럼, 그러던지."

"엄마 최고!"

"아빠, 최고!"

"큰엄마 최고!"

각자 한 마디씩 하며 우르르 식탁으로 달려가는 세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다정과 철산이는 머리가 컸다고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시작된 식사가 모두 끝났는데, 딱 끝나지 않은 상이 하나있었다. 수정이 아빠가 주관하여 모여든 세 장인의 상이었다. 그쪽만은 이제 제법 얼큰해져서 양주를 권커니 자커니 하며 계속 드시고, 나머지 상에는 이어서 아내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정부 세 아주머니들은 내 말에도 어려워하며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럭저럭 저녁 식사가 끝나자, 누구의 제의인지 몰라도 갑자기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 아마도 수정의 아빠 제안 같았다.

남자들 끼리 술상을 옆에 끼고 앉아 고스톱을 치는데 반해, 여자들은 다과상을 앞에 놓고 이야기에 열중이었다. 주로 반은 내 칭찬이었다. 듣기가 민망한 내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이를 본 어머니가 슬그머니 나를 따라 나오셨다.

"왜 나오세요?"

"잠시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말씀하세요."

"다름 아니라 우리는 내일 내려가련다. 내일 아부지 이나 때워놓고 바로 내려갈 거니까, 그런지 알라고."

"며칠 더 놀다 내려가지 않고요."

"네 덕분에 바닷가 그 뭐시기냐. 그래, 호텔! 그런 일류호텔에도 묵어보고 좋은 구경했지 않니? 이만하면 됐다. 당체 집이 궁금해서 더 이상은 못 있겠다."

"알았어요. 내일 모셔다 드리라고 특별히 지시를 해놓을 테니, 그런지 아세요."

"여기도 차 쓸 일이 많을 텐데, 뭘 그렇게까지 하니, 버스 타는데 까지만 태워주면 어련히 알아서 잘 내려가려고."

"우리 회사에 차가 한두 대예요? 그런 건 걱정 마시고, 편안히 가세요."

"알았다. 그렇다면 네 말대로 하마."

이때 갑자기 대문 앞에서 누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누구야?"

"오빠 저예요. 문 좀 열어주세요."

"경숙이 아니냐?"

"그렀네요."

내 말을 받아 어머니가 투덜거리셨다.

"오려면 일찍 올 것이지."

내가 말없이 문을 열어주자 경숙이 톡 튀어 들어오며 말했다.

"늦어서 미안해요. 오빠!"

"안녕하세요. 형님!"

"늦었다?"

"김포공항에 방금 도착했어요."

"뭐? 너희들 여행갔다 오는 것이냐?"

내 물음에 경숙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엄마가 허락하셨어."

내가 인상을 쓰며 뭐라고 하려는데, 어머니가 경숙을 감싸듯 떠밀며 말했다.

"맞다. 내가 허락했어.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밥은?"

"아직 안 먹었어요."

"안녕하세요? 장모님!"

"그래, 이제 오냐?"

"네, 장모님!"

"엄마, 안녕~!"

"되게 빨리도 인사한다."

"엄마니까, 만만하네."

"어서 들어가."

"네."

내 말에 어머니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는 세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나는 나온 길에 담배 한 대 태우고 들어갈 게요."

"네."

경숙이 어머니 대신 대답을 하는데, 앞선 가던 장민호 검사가 멈칫하더니 되돌아 내게로 왔다.

"형님이 지난번에 하신 이야기 있잖아요?"

"법무 팀인가, 법무법인 이야기?"

"네, 형님!"

"그래, 결정한 것 있어?"

"법무 팀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말 그대로 그룹 내 법적인 일을 처리하는 곳이지. 재판정에서의 변호는 물론 법률 자문에 응하는 것으로 보면 돼."

"그렇군요."

그렇게 답하고 잠시 생각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법무 팀에 몸을 담으면 안 될까요?"

"과장 직급이야. 그래도 되겠어?"

"제 나이 아직 어리잖아요. 우리 동기들은 빠른 놈이 대리예요."

"우리 그룹에 들어오면 매제라고 해서 절대 목에 힘주고 그러면, 안 돼. 우리 그룹에서는 장관급 가지고는 명함도 못 내밀어. 그러니 시종 겸손할 것. 아니면 바로 그날부로 퇴사야."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그럼, 서울로 올라와야 할 텐데, 집 없지?"

"네."

"옛날에 내가 살던 아파트 몇 채가 아직 그냥 있어. 그 중에서 현대 쪽의 아파트 한 채를 줄 테니, 그곳에서 살아. 경숙이 지참금이라 생각하고. 더는 생각 말고."

"고맙습니다. 형님!"

"자네 술은 좀 할 줄 아나?"

"많이는 못 해도 그럭저럭 어느 정도는 합니다."

"우리는 아직 같이 술 한 잔 안 했지?"

"네?"

"동서 불러낼까?"

"몽윤이 형님 요?"

"그래."

"좋지요. 그 형님도 어려워서 아직 술 한 잔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사교 놓고 싶습니다."

"그것도 좋지. 우리 번잡한데 얘기하고 바로 나가자고."

"누가 이렇게 많습니까?"

"내 장인장모들이야. 내가 부인이 셋 인건 알지?"

"네, 형님! 부럽습니다."

"뭐?"

"아, 실수! 형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네요."

"저녁을 한 술 뜨고 나갈 텐가?"

"아닙니다. 형님! 기내식을 좀 먹었더니 별로 생각도 없습니다. 또 배가 부르면 술맛도 없고요."

"그 말은 맞아. 내 큰 매제를 불러낼 테니 기다려. 아니지. 가서 장인하고 처남댁은 뵈어야지?"

"네, 형님!"

나도 휴대폰을 거실에 놓고 나왔으므로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 민호도 따라서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장인과 내 부인들에게 돌아가며 인사하느라고, 잠시 잠깐 만에 허리가 휘어 꼬부랑 노인이 되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와 단축번호를 눌렀다.

잠시 신호가 가더니 경순이 받았다.

"오빠가 웬일이세요?"

"내가 그렇게 전화를 안 했던가?"

"그럼요. 거의 통화한 기억이 없는 데요."

"매제는 집에 있냐?"

"지금 들어오는 중이라는 데요."

"그럼, 오늘 하루만 날 빌려줘라. 방금 경숙이 신랑이 우리 집에 왔다. 너도 경숙이 보고 싶으면 우리 집으로 오고. 엄마 아버지도 아직 계신다. 명희 엄마 아버지도 계시고."

"오늘 무슨 잔치 했어요?"

"건강검진 받느라고 그러잖니? 참 너는 이상이 없다더냐?"

"네, 다행히."

"어떻게 할래?"

"다와 가는 모양인데, 그이 들어오는 대로 그곳으로 함께 갈게요."

"가다리마."

"네."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월이 둥실 떠올라 삼라만상을 비춰주고 있었다. 더구나 오늘은 정말 봄날 같이 훈훈해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향기롭게 느껴졌다. 이때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가 '봄밤의 향연(饗宴)' 이라는 단어였다. 나는 천천히 아직 드문드문한 잔디밭을 거닐며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행복이 별 것 인가? 부모님 살아 계셔서 효도할 수 있고, 돈을 떠나 나와 아내 건강하고, 자식들 속 안 썩이고 무럭무럭 자라주면,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는가? 마음을 내려놓으면 이렇게 행복한 것을. 그 놈의 돈과 명예, 그것이 무엇인지?'

나의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갈 것 같던 상념도 장민호가 나오는 바람에 깨졌다.

"온대요? 형님!"

"아마, 지금쯤 오고 있을 것이다."

"경숙이가 한 마디 하던 데요."

"왜?"

"절대 술 시합 하지 말라고. 오빠는 술고래 이니까, 일찌감치 깨갱하고 조금만 마시고 들어오라나, 뭐라나."

"하하하.........! 아무래도 동생이니까 나에 대해서는 잘 알겠지."

이렇게 둘이 밖에서 서성이며 이야기를 나누길 어언 30분.

짧은 경적과 함께 밖에 차 한 대가 멈추더니 곧 경순이 차에서 내려 대문에 앞에 섰다. 나는 재벌이라고 해서 담을 성처럼 높게 쌓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대문을 비싼 돈 들여 하지도 않았다. 다만 녹이 스는 것이 보기 싫어, 스텐 대문을 해 달았을 뿐이었다. 그것도 성글게 했더니 안에서 밖에 보이고, 밖에서도 안이 보였다. 그 바람에 모든 사람의 내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곧 쪽문을 열어주며 물었다.

"아예 내리지도 않는 거냐?"

"저 차 하나로 가자는 데요?"

"내가 움직이면 움직여야 될 사람이 많다. 그런 것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안에 들어가 봐."

"네, 오빠!"

"갑시다."

내 말에 여기저기 잠복해 있던 경호원 여덟 명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곧 대문을 열고 나갔다. 장민호도 내 뒤를 따랐다. 경호원들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나를 따랐다. 내가 나오자 몽윤도 차에서 내려 말했다.

"이 차, 그냥 타시죠?"

"그래. 자네도 이 차에 타고. 한 사람은 이 차로 와서 운전하도록 해요. 그리고 경호차 두 대만 가도록 하고."

"네, 회장님!"

내 말에 경호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제히 몽윤의 차에 타자 경호 차량 한 대가 먼저 출발을 하고, 그 다음 우리 차, 제일 끝에 또 한 대의 경호 차량이 따랐다.

"어디로 모실까요? 회장님!"

"단골로 가지요. 이화정."

"알겠습니다. 회장님!"

조 조장의 대답과 동시에 조수석에 탄 경호원 하나가 선도 차량에 방향을 지시했다. 차는 빠르게 한가한 도로를 내달렸다. 노란 가로등 불빛에 금빛이 된 한강물이 뒤로 휙휙 스쳐지나갔다. ============================ 작품 후기 행운이 가득한 3월 되세요!

^^또한 즐거운 주말되시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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