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30화 (230/322)

<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우리는 회와 초밥까지 기분 좋게 먹고 얼큰한 상태에서 식당을 나왔다. 곧 두 분이 상의하시더니, 바닷가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두 분을 모시고 바닷가로 나왔다. 3월의 바닷가는 한산했다. 아니 거의 인적이 없었다.

나는 내 양 옆으로 나란히 걷는 두 분을 보고 내심 생각했다.

우리 세대나 부모님 세대나 본질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같다. 다만 어릴 때 성장과정과 당시 문화 토양의 차이로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다. 나는 두 분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아니었다. 그런 것을 금기시 하는 환경 속에서 나고 자라서 지금도 그런 면에서는 빵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장난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두 분을 우리 세대로 이끌어 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두 분의 손을 잡았다. 아들이 손을 잡는 데도 어머니나 아버지나 똑같이 흠칫했다. 그렇지만 결코 손을 뿌리치거나 놓지는 않았다.

"따뜻하네요."

내 말에도 두 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제가 손을 잡으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한 마디로 묘하다. 처음에는 놀랍고 거부감이 좀 들었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내가 말했다.

"만약 내가 아닌 두 분이 손을 잡는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똑같으실 것 같은데요?"

잠시 말이 없던 어머니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말씀하셨다.

"호호호......! 징그럽다!"

"결코 그렇지 않을 거예요. 두 분이 손잡고 바닷가를 거닐어 보세요. 그리고 서로 평소에 가슴 속에 묻어두고 못 다한 이야기가 있으면, 이번 기회에 한 번 해보세요. 서로 가슴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한 번 나누어 보시라고요. 어~! 전화가 오네요."

나는 말과 함께 뒤로 물러나며 두 분의 손을 끌어다 서로 쥐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계속 그렇게 걸어가세요. 저는 잠시 전화 좀 받을 게요."

그리고 슬쩍 뒤로 빠졌다. 그런데 이때 진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내가 빠지기 위한 구실로 둘러댄 것이었으나, 실제로 전화가 오니 묘한 조화였다.

"네. 강대정입니다."

"회장님, 접니다."

"누구요? 아, 비서실장님! 그래, 무슨 일로?"

"김재익 알파로메오 자동차 사장이 일시 귀국한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요?"

"오늘 밤에는 들어올 수 있답니다."

"흐흠........! 다른 용건은 없고요."

"네!"

"알겠습니다. 내 오늘 밤에는 늦더라도 귀경을 하지요. 김 사장은 내일 일찍 만나는 것으로 하고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네, 회장님!"

나는 전화를 끊고 두 분을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곧 이 호텔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번거롭게 하기 싫어 알리지를 않았으니, 지금까지의 반응을 본다면 내가 온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여보세요?"

"나요."

"아~! 회장님!"

"내가 지금 이 호텔 앞 바닷가에 와 있습니다."

"연락도 안 하시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부모님을 모시고 왔어요. 그런데 오늘밤 서울로 다시 올라갈 일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내 부모님을 잘 모셔달라는 부탁을 하고자 함입니다."

"물론이죠. 제가 곧 바로 그곳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소."

나는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 여기가 어디 인가? 충남 보령의 바닷가인 것이다. 이 시대에 이곳에서 휴대폰 통화가 가능한 일인가? 전생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내가 대한민국의 정보통신 사업에 뛰어들면서, 한국의 이 분야에 대한 문화지형이 대폭 바뀌었다.90년대 중반까지 삐삐가 대세였고, 그 이후에나 휴대폰 시대가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빠른 변화인가? 우리그룹의 대대적인 투자로 지금은 삐삐 가입자는 1천5백만 명을 넘어섰고, 무려 가입비가 80만 원이나 하는 휴대폰조차도 가입자가 물경 30만이 넘어섰다. 모든 게 우리 그룹의 대대적인 투자로 전국의 산간오지와 도서벽지를 제외하고는, 삐삐는 물론 휴대폰 통화가 가능하게끔 기지국을 건설하고 기간망을 확장한 덕을, 전 국민이 톡톡히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두 분을 바라보니 정말로 두 분은 내 말대로 지금까지도 손을 잡고 나란히 바닷가를 거닐고 계셨다. 저러다가 두 분이 이제는 팔짱까지 끼지 않을까 나는 내심 걱정을 하며,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제법 키가 큰 사람이 겅중겅중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삼성에서 픽업한 현명관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보령의 무창포 해수욕장에는 콘도와 호텔로 건물이 분리 되어있었다. 우리가 대한민국 땅에서는 처음으로 호텔업에 진출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분야의 외부 인물을 영입할 생각을 하고, 두루 접촉을 하다가 영입한 사람이 이 사람이었다. 제주출신으로 현 48세였다. 제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감사원 부 감사관으로 있다가, 돌연 사표를 내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원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삼성에 부장으로 입사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텔 신라에서 전무로 재직하고 있는 것을, 내가 높은 보수를 주고 우리의 신설 호텔업에 끌어들인 인재였다. 가까이 온 그가 호흡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오셨으면 연락을 주시지 않고요."

"번거롭게 할 것 같아서 조용히 묵어가려했더니, 내 오늘 밤 안으로 올라가봐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오."

"회장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제 부모님 같이 편안하게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그럼 나는 잠시 후에 올라 갈 것이오."

"믿고 맡겨주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아무 불편이 없도록 모시겠습니다."

"가능한 두 분의 의사대로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저 손잡고 바닷가를 거니는 두 분 보이시죠?"

"네. 다정도 하십니다."

"하하하.........!"

나의 웃음에 영문을 몰라 내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는 현 사장이었다.

"사실은 말이오. 내가 보기에는 오늘 처음으로 손을 잡아보는 분들이오. 그것도 내가 억지로 저렇게 해놓았더니,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지 않소?"

"하하하.........! 누가 보면 장 저렇게 지내시는 분들 같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오. 제대로 멍석을 깔아드린 것 같소. 하하하........!"

나는 기분이 좋아 하늘을 보고 크게 웃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조회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비서실장이 세 사람을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마시던 커피 잔을 놓고 벌떡 일어나,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안면이 있는 사람을 크게 반겼다.

"어서 오시오. 김 사장! 객지에서 고생 많았지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오. 자, 우리 자리에 앉읍시다."

"그 전에 소개시켜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은 ........"

"잠깐! 한국인 같은데요?"

"맞습니다. 유성옥 씨라고 알파로메오 디자인 센터에 계신 유일한 한국인 이었습니다. 통역 겸 제가 데리고 쓰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곳에도 한국인이 있을 줄이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회장님!"

"자, 자리에 앉으시고."

"네, 회장님!"

나는 그의 잡았던 손을 놓으며 자리를 권했다.

"또 이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4세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캐나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많은 경험을 한 분입니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고요, 대학원에서 경영, 이어 회계학을 공부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인재입니다. 제가 비서실장으로 데리고 쓰고 있습니다. 이름이, 직접 소개를 하시지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n Marchionne)입니다."

"엉?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나는 손을 내민 채 엉거주춤한 상태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생각해내려 무진장 애를 썼다.

"아! 피아트, 크라이슬러!"

순간적으로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곧 그의 활약상이 머리에 떠올랐다. 2004년 피아트의 CEO로 부임한 이래 120억 달러의 누적 적자에 시달리며, 파산 직전의 피아트를 6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흑자로 돌려놓은 경영의 귀재. 또 이것뿐인가? 2009년에는 역시 경영난에 빠진 미국의 크라이슬러사를 흑자로 반전시킨 명 CEO가 이 사람 아닌가!

"무슨 말씀인지?"

"험, 험........! 갑자기 생각나는 인물이 있어서 말이오. 아무튼 잘 오셨소. 만나서 반갑고요."

"동감입니다. 회장님!"

"자리에 앉으실까요."

"네, 회장님!"

"보석 같은 두 사람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니, 김 사장님의 복이 많은가보오."

"그렇습니까?"

내 칭찬에 두 사람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요즘 알파로메오의 경영 상태는 어떻소?"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님!"

"그러시오, 그럼."

"처음 제가 그곳을 방문하니 이것은 정말로 한 마디로 엉망이었습니다. 중역은 중역대로 생산라인은 라인대로 따로 놀고, 그나마 생산시설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포를 했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탈리아 조립공장을 폐쇄하겠다. 대신 모로코에 신규로 공장을 짓겠다."

"그랬더니요?"

"그때부터 노사분규가 시작된 겁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그래서요?"

나는 계속 추임새를 넣으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좋다. 그럼 여기서 생산을 하되, 나에게 뭔가를 보여줘라. 나의 양보에 생산라인은 활기를 띠고 무언가를 하려는데, 중역과 중간 관리자들은 그래도 구태의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중역들을 대거 자르고, 중간관리자들 또한 나타한 자들은 대거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신규, 신진 인력을 대거 수혈했습니다. 그때 들어온 사람 중의 하나가 옆의 제 비서실장 세르지오 마르치오네입니다."

"그 후 저는 스포츠카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나중에 생산하자고 설득하는 한편 디자인 팀에게는 새로운 소형 및 준 중형차의 디자인을 의뢰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릴 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기존의 스포츠카를 개량 생산하면서 최대한 판매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 결과........."

갈증이 나는지 여기서 다시 한 번 말을 멈춘 김재익 사장이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결과 모든 면에서 호전이 되었지만, 아직 흑자로 전환은 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이번에 디자인 팀에서 꾸준히 개발해오던 신 모델의 디자인이 완성 되었기에, 회장님과 상의 드리려고 일시 귀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모로코 자동차 공장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모로코 정부에 양해를 구해 잠정적으로 미루고 있는 상태입니다."

"믿고 맡겼기에 지금까지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신경을 좀 써야 하겠군요."

"회장님, 우선 이 디자인부터 보아주십시오. 우리의 수석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Walyer de Silva)가 디자인한 작품입니다."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누구라고요?"

"왜 이렇게 놀라십니까? 발터 드 실바라고 내가 부임하기 직전 우리 회사에 부임한 사람입니다."

"그런 일이........"

나는 잠시 그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평소 자동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 세계 3대 디자이너 행적 정도는 어느 정도는 꾀고 있는 나였다. 잠시 그 사람을 생각하자니, 이 사람은 결국 알파로메오를 떠나 독일 회사인 아우디로 가서야 빛을 본 사람으로 아직은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때였다. 이 사람을 생각하자니 나머지 3대 또는 4대 디자이너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현재 위치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급히 옆의 비서실장을 통해 이청신 정보실장을 불러들이도록 했다.

잠시 후 이청신 실장이 건물 내에 있었는지 헐레벌떡 달려왔다. 나는 그가 숨 돌릴 새도 없이 그간 내가 메모한 용지를 내밀며 말했다.

"모두 자동차 디자이너들입니다. 해외정보팀이나 지사에 의뢰해서 이 사람들의 정확한 소재를 파악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가 그에게 건네준 쪽지에는 정확히 네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피터 슈라이어, 크리스 뱅글, 이안 칼럼, 일본인 반 후이동크가 그 사람들이었다. 다 자동차 디자인 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고, 현재도 현역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청신 실장을 기다리는 내내 보고 있던 디자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금 시대의 흐름이 직각 차체에서 서서히 곡선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볼 때 그 흐름이 너무 완만해요. 좀 더 파격적인 곡선흐름을 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회장님이 자동차 디자인에도 일가견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나는 김 사장의 말에는 가타부타 말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앞으로는 점점 파격적인 작품이 선보일 거예요. 디자인도 마찬가지 예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돼요. 좀 더 파격적인 각과 뒤태, 앞태가 나와야 될 줄로 압니다."

내 말에 멍하니 나만 바라보고 있는 김 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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