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이때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이 내 몸의 일부까지 떨리게 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폰을 열었다.
"강 대정입니다."
"삼성의 이 건희입니다."
"아니, 이 회장님께서 웬 일이십니까?"
"한 번 찾아뵙고 논의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요? 내 지금 동생 약혼식이 있어서......."
"아니, 소리 소문도 없이 무슨 약혼식입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곤란하겠고, 언제 한 번 시간 좀 내주세요."
"그럽시다. 내 스케줄을 보고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바로 폴더를 닫아버리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날 보자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서이다. 작년(87년) 12월에 이병철 회장께서 작고하시는 바람에 삼성의 회장직에 오른 지, 채 3개월이 안 된 이건희 회장이다. 그렇지만 나이는 나보다 15년이나 연배라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잠시 그와 삼성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이왕 나온 김에 다시 담배 한 대를 꼬나물었다. 삼성에 대한 생각이 담배를 물어도 이어졌다. 그들은 사활적으로 쏟아 부은 반도체 사업에서 아직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256K디렘을 개발해내는 동안 항상 뒷북 만 쳐 이제 64K디렘을 개발해 내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재계 순위도 5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순개발해 내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재계 순위도 5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순위를 잠시 언급하면 이러했다.1위가 물론 우리 기업인 대정이고, 2위가 현대, 3위가 대우, 4위가 럭키금성, 5위가 삼성이었다. 그러니 총수에 오른 지 얼마 안 되는 그로서는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기업을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3월초라도 오늘은 날씨가 쌀쌀한 편이었다.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 성급하게 내복을 벗곤 하지만, 심술궂은 겨울은 쉽사리 자리를 물러나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담배를 끄고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약혼식은 다정이 우리 가족을 소개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조회가 끝나자 김경제 비서실장을 내 방으로 불러들였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죠?"
"부모님의 건강진단 결과에 대한 확인 차, 병원을 방문하신다는 외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습니다."
"흐흠........! 그렇다면 삼성 이건희 회장을 연결해서 나 좀 바꿔줘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곧 비서실장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전화가 기음을 토해냈다. 보니 내부 선이었다. 나는 곧장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연결되었습니다. 회장님!"
"알았소."
나는 내 전용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이건희입니다."
"잠시 짬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10시에 어떻겠습니까?"
"모든 일정을 취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달려가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따 뵙도록 하죠."
"네, 네!"
나는 바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5분 전 10시.
비서실에서 이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보던 결재서류들을 다시 원 위치시키고 밖으로 나갔다.
"어서 오시오. 이 회장님!"
나는 좀 과장스러운 제스처로 양팔을 벌리며 환대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재계의 위상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열다섯 어린 나에게도 깍듯한 이 회장이었다.
"자,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갑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나는 앞장을 서며 말했다.
"여기 차 좀 내오고 비서실장은 기획실장도 불러 함께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 실장이 곧 대답하고 밑의 비서들에게 무엇을 지시하는 것을 보며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곧 나를 따라 3인이 들어왔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그 전에 제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회장님!"
"그러시죠."
"안경을 낀 이분이 소 병해 비서실장입니다. 78년부터 장장 10년 가까이를 아버님을 모셔온 분이죠. 이 분은 그룹 구조조정실장이신 이 수빈 전무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둘과도 차례로 손을 맞잡아갔다.
"자, 자리에 앉으실까요?"
"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여전히 깍듯한 이 회장이었다.
이 회장을 따라 3인이 나란히 앉았다. 잠시 후에는 차와 두 사람이 들어왔다. 김경제 비서실장과 이한구 기획실장이 내 좌우로 나뉘어 앉았다.
"자, 한 잔씩 드시고 하실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죠."
"네."
각자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 나 이외에는 모두 녹차일색이었다. 우리 비서실도 점점 건방져가나 보다. 남의 기호도 묻지 않고 일괄 그냥 내오다니. 내가 이를 보고 비서실장에게 한 마디 했다.
"언제부터 손님 접대가 이렇게 소홀했습니까? 앞으로는 꼭 손님의 기호를 물어서 대접하도록 하세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녹차가 어떻습니까? 건강에도 좋고 괜찮습니다."
혼나는 비서실장을 보더니 무안했던지, 이를 덜어주려 애쓰는 이 회장이었다.
차를 다 마시고도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 회장이 입을 열었다.
"선친이 작고하고 막상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특히 반도체 사업이 그렇습니다. 한강에 돌 집어넣기 마냥, 끝도 없이 여기저기서 자본을 끌어다 투입해도, 끝이 안 보이니 더 그런 심정입니다."
일단 말을 끊었던 이 회장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대정이 전 세계를 상대로 70%도 넘게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면, 우리는 겨우 10%선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간부들도 모두 손을 떼자고 아우성입니다. 다른 계열사까지도 위험하다고 말입니다."
사실 나는 그의 말을 백 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리 그룹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그들은 다른 계열사에서 남는 이익금 모두를 반도체 하나에 지금까지 쏟아 붓고 있었으니 말이다.
"계속하시죠."
"그래서 저도 이 사업을 접고 싶습니다. 대정에서 우리 반도체를 인수할 의향은 없습니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헬스 케어 부분을 넘겨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흐흠........! 간단한 문제가 아니로군요. 너무 갑작스러운 제의라서 이 자리에서 뭐라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고요. 우리도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충분히 검토한 후에, 답을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하고 기왕이면 우리 그룹도 회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처럼 서로 윈윈하는 전략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야 환영할만한 일이죠. 서로 도울 수만 있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좋은 일이고요. 그러니 앞으로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갑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과한 기대는 금물이고요."
"물론이죠. 앞으로 삼성도 일신해서 더욱 발전할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한 번."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뭐, 다른 이야기 더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도록 합시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곧 헤어졌다. 그들이 가자 나는 곧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피부에 닿은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 앞으로, 우리 그룹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병원을 방문하겠다는 일정도 전격 취소하고, 나는 내 집무실에 집거한 채,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전생의 기억과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 승승장구 했지만, 앞일은 모르는 일이었다. 나도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생길지는.
나는 허루 종일 생각 끝에 저녁나절 비서실장과 기획실장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고민해오다 답을 얻은 내 생각을 말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도 들어 알다시피 삼성의 고민이 남의 일이 아니오. 장래 우리 그룹의 고민이기도 하오. 그래서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을 말하겠소."
이렇게 말하고 그들의 표정을 한 번 살핀 내가 다시 입을 떼었다.
"기업을 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을 남겨, 우리 그룹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익을 돌려주고, 또 남은 이익의 일부로는 국가에 세금을 납부해, 나라 재정에 이바지하는 것이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이제 우리 그룹은 한 발 더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하오."
"우리 그룹은 국내가 아니라 세계 일류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워야 하되, 국내의 다른 그룹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하고, 다른 그룹은 물론 국가마저도 할 수 없는 사업이나. 우리나라가 원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는 사업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주항공 산업이 그 한 분야이고, 식량과 에너지는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로 옮기지 않는 한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오. 이런 부분을 우리의 미래 산업 전략으로 삼되, 물론 그 중간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커나가는 과정 즉 자본축적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돈을 벌어 최종은 이런 사업에 도전해야겠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해서 기획실장님께서는 산하에 경제연구소를 설립해 우리 그룹의 중장기발전 계획을 속히 수립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돈을 벌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보탬이 되자는 내 말을 명심하시고, 우리 그룹의 백년대계를 세워주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내 말은 여기 까지요. 하실 말씀 있습니까?"
"오늘 아침 이건희 회장의 말을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계획실장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거업은 인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니, 우리 그룹을 기준으로 이해득실을 철저하게 따져, 그 바탕 위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 말 외에는 현재 내 생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곧 그들을 돌려보내고 나도 집으로 퇴근을 했다.
"아이고, 이제 좀 살 것 같다!"
내가 퇴근을 하니 어머니가 하시는 첫 말씀이었다.
오늘 종합 진단을 받는다고 어제 밤부터는 밥은 물론 물도 제대로 못 드셨다가, 검진을 끝내고 돌아오셔서 방금 식사를 마친 모양이었다.
이에 한 옆에서 빙긋이 웃고 계신 아버지께 내가 물었다.
"아버지도 뭘 좀 드셨어요?"
"그래. 밥 한 공기를 아주 맛있게 비웠다. 더 먹고 싶은데, 굶었다가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안 좋다는 다정이 엄마 말에 참았다."
"하하하........! 건강진단 몇 번만 받았다가는 몇 키로는 빠지겠어요. 그렇죠?"
"내 말이 그 말이다."
내 말에 얼른 어머니가 나서서 동의하셨다.
"잔단 결과는 언제 나온 데?"
나는 한 옆에 서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미정에게 물었다.
"모레는 되어야 나온 다 네요."
"그럼, 내려갔다 올라오시기도 그러니, 죽 여기에 계셨다가 결과를 보고 움직이시는 게 좋겠네. 어떤 분야는 재검진을 받으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제 생각도 그게 좋겠어요."
"제 말대로 하세요."
"글쎄다?"
말과 함께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의 의향을 묻는 어머니셨다.
"얘들 말대로 합시다. 아직 크게 바쁜 것도 없으니."
"올라오신 길에 무창포 호텔에 한 번 가보실래요?"
내 물음에 어머니가 답하셨다.
"그러기에는 너무 짧지 않니?"
"내일 아침에 내려가셔도 이틀은 계실 수 있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여기 있어도 무료하니, 거기나 가 볼까? 거기는 얼마나 잘 꾸며놨는지."
아버지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거기뿐이 아니 예요. 무주에도 지금 공사를 하고 있고요. 남해안, 제주도, 곳곳에 공사를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가서 머무실 곳이 많을 거예요."
"뭔 놈의 돈이 그렇게 많아 자꾸 놀 곳을 지어?"
"하하하........! 우리 가족이 놀기만 하는 곳이 아니죠. 돈도 벌어준다고요."
"그러면 모를까."
내 말에 다소 안도를 하며 입을 닫는 어머니셨다. 나는 돌아서서 미정에게 물었다.
"장인 장모님은 언제 올라오신다는 데?"
"내일 올라오신다고 했어요?"
"명희 네는?"
"거기도요."
"수정이 아버지도?"
"네."
"그럼, 누가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무창포 가?"
"기사들만 시키면 안 될까요?"
"에이, 그래도 누가 따라가 이것저것 보살펴 드려야지. 어려움이 많잖아?"
"우리끼리 한 번 상의해 볼게요."
"알았어. 밥 주라."
"상 차릴 동안 우선 씻으세요."
"알았다."
나는 곧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 몸으로 맞으며 생각했다.
'내 곧 머지않아 내 부모와 같이 되리니,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아 계실 때 잘 모셔야겠다.'
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