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23화 (223/322)

<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우리 호텔은 북경반점(北京飯店)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반점(飯店)이라고 해서 중식당을 이르는 말이 아니고, 엄연한 호텔을 이들은 이렇게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아무튼 대정호텔은 천안문 광장과 고궁박물관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고, 북경의 번화가인 왕푸징(王府) 거리도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요지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가 이 호텔을 짓기 전만해도 좌우의 북경반점과 왕부반점이 최고의 호텔로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 우리 건물이 들어섰으니 빛이 바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호텔 등급을 받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

원자바오를 비롯한 우리 일행이 이 호텔 정문을 지나자 연락을 받았는지, 현지인 호텔 총지배인이 밑의 지배인들을 이끌고 마중을 나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힌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나는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며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이때 원자바오도 내렸으므로 내가 그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주인이 대접을 해야지 어찌 손님이 대접을 한단 말입니까?"

"내일 조어대(釣魚臺)에서 공식 만찬을 베풀어주신다니, 오늘은 제가 접대하는 것으로 하죠."

"하하하........! 그럼, 세계적인 갑부의 대접을 한 번 받아볼까요?"

"수행원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럽시다."

나는 곧 총지배인을 돌아보고 바로 만찬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만찬 준비 좀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어떻습니까?"

"회장님 것은 준비되어 있었으나, 추가분 또한 빠른 시간 내에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안에 내 방에 간단한 음식이라도 넣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일단 가시지요."

"그럽시다."

총지배인은 나를 안내하고, 나머지 지배인들은 나의 지시가 있자, 알아서 우르르 몰려가며 바삐 서두르기 시작했다.

"가시지요. 서기님!"

"그럽시다."

내 건물이므로 내가 주인 노릇을 하며 나는 일행을 이끌고 총지배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고속 엘리베이터는 곧 수직상승을 시작해 29라는 숫자에서 멈추어 섰다.

우리는 곧 총지배인을 따라 VVIP룸으로 안내 되었다. 나와 원자바오 그리고 김경제 비서실장만이 이방으로 들고 나머지는 우르르 옆방으로 향했다. 물론 각자의 통역은 대동한 채였다. 나의 통역으로는 비서실의 방령 과장이 수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응접세트에 자리를 잡자, 총지배인이 물러가겠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그런 그를 서너 발자국 따라나서며 물었다.

"어찌 이 미연 호텔 사장이 안 보입니까?"

"몸이 아프다고 어제부터 안 나오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총지배인이 있어서 더 내색은 안 했지만, 그가 보고 있어도 이마가 찌푸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 호텔이 준공되자 이미연 부장(당시)도 정리를 했는데, 곧 이 호텔 사장으로 발령을 낸 것이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객실 수 1,000개가 넘는 호텔의 사장으로 부장이 발령받는 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우리 그룹의 전무 급 이상은 되어야겠지만, 나는 그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특혜를 베풀었던 것이다. 말없이 내 명을 받들었지만, 오늘의 행사로 그녀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떨쳐버리고 원자바오와 마주앉았다. 이때 김 비서실장이 눈치껏 냉장고에서 음료수와 함께 칵테일 바에서 잔을 가져왔다. 곧 그가 각자의 잔에 음료수를 따랐는데, 내가 예의차원에서 살짝 맛을 보니 밋밋한 이온음료였다. 어찌됐든 입을 축인 내가 원자바오에게 말했다.

"서기님! 이제 우리 지사의 북경 설치도 허가를 내줄 때가 안 되었습니까?"

"음........! 그 문제도 오신다기에 잠시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대정이라는 상호를 피하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흐흠.........!"

아직도 고리타분하게 명분을 따지는 이들을 보니, 저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여기서 뭐라고 한다고 이들의 결정이 번복될 것 같지가 않아, 나는 일단 감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할 말은 했다.

"감사합니다만, 제 기대보다는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지내다보면 조만간 또 좋은 소식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의 원자바오의 말을 받아 내친 김에 한 발 더 내디뎠다.

"양국의 수교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우리가 88올림픽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양국 간의 교류를 좀 더 지켜봅시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86아시안게임이나 88올림픽의 중국 측 참가는, 서로의 품앗이 차원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오늘은 강 회장님께서 작심을 하셨는지, 아주 내 입장이 곤란한 말씀만 하시네요. 저도 강 회장님의 말씀을 전면적으로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 말은 이들이 곧 90년에는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게 되니, 이들이 우리의 잔치에 참가하지 않으면 우리도 참가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으므로, 서로 품앗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궁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이 아무리 90년 아시안게임 개최국이라도 의사가 없었으면 당연히 참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의 북경지사 설치 문제로 약간 엇나간 대화가, 나도 모르게 원자바오를 추궁한 꼴이 되어 나는 급 화제를 전환했다.

"혹시 우리그룹에서 이탈리아 자동차업체를 하나 인수한 것은 아십니까?"

"그것 까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까봐 그룹 차원에서도 별로 홍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무튼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우리 그룹이 좀 더 중국에 투자를 확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면 자동차 공장도 중국에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수교문제가 거론되면 본격적으로 검토를 할 생각입니다."

"흐흠........."

내 말에 이번에는 원자바오가 침음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마를 찌푸리기까지 하며 생각에 잠겼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동차 공장을 세우는 문제는 대정이 투자를 한다고 해도 간단치가 않아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우리는 1도1사(一都一社)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거대 도시 하나에 자동차 공장 하나의 허가를 내준단 말입니다. 물론 이것이 꼭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하이 같은 경우는 워낙 큰 도시이기 때문에 두 개의 자동차 공장을 허가해 주었지만, 나머지 도시는 이 방침을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원칙 하에서 이미 남방의 큰 도시는 벌써 허가가 다 나갔어요. 이제 큰 도시라야 북경과 천진 등 하남과 하북 쪽 몇 만 남았는데......... 설마 동북삼성을 원하는 것은 아니실 테고?"

"흐흠........! 그렇다면 이 문제는 우리도 그룹 차원에서 재검토를 해보아야겠습니다만, 북경을 내주신다면 투자를 하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하고 이제 수교문제도 본격적으로 공론화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회장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중앙당 차원에서 한 번 검토해보기로 하지요. 그리고 수교 문제를 자꾸 거론하시니 말씀드립니다만, 이것은 내부 방침이라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잠시 한 번 더 생각을 한 원자바오가 다시 입을 떼었다.

"이미 우리 내부 방침으로 한국과의 수교문제는 88올림픽 후에 본격적으로 논의하자고 현재는 유보된 상체입니다. 그러니 지금 자꾸 그 문제를 거론하셔도, 서로의 입장만 곤란해질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이후에 수교문제는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로 하고, 자동차 문제는 한 번 검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이때 총지배인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뒤에는 두 명의 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곧 제법 큰 접시 세 개가 파스텔 톤의 유리 탁자 위에 올려졌다. 음식을 가지고 이렇게 평해서 안 되었지만, 꼭 희멀건한 게 코풀어놓은 것 같은 상어지느러미 스프였다.

"드십시다."

"네!"

원자바오에게 권한 나는 비서실장에게도 말했다.

"실장님은 드시기 전에 천진 지사장 좀 오라 하세요. 난 이미연 사장이 나올 줄 알았더니....... 그에게 지시할 것이 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곧 김 실장이 잠시 자리를 떴다. 이에 나는 손짓으로 원자바오에게 한 번 더 음식을 권하고 나도 스푼을 들었다. 나는 스프 중 잘게 갈아 식감을 강조한 전복, 해삼, 팽이버섯만 골라먹고 거부감이 드는 패류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이때 통화를 끝낸 비서실장이 합류해 같이 스프를 들었다. 나는 스푼을 놓으며 아직도 한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총지배인에게 물었다.

"정찬도 준비가 됐죠?"

"네, 회장님!"

"그럼, 그 음식도 이곳으로 갖다 주세요. 움직이기 번거로우니."

이 호텔에는 양식, 한식, 중식, 일식, 프랑스,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레스토이 호텔에는 양식, 한식, 중식, 일식, 프랑스,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레스토랑 등 총 일곱 개의 레스토랑이 있는 것은 물론, 실내외 풀장, 볼링장, 헬스클럽, 실내골프장, 심지어 지하에는 요즘 유행하는 디스코텍도 갖추어져 있었다. 각종 상점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중국식으로 꾸며진 정원 또한 일품이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프런트에 있는 로비 중앙이 커피숍으로, 각국에서 모인 비즈니스맨들의 모임 장소로 쓰이며, 매주 일요일이면 이 로비에서 클래식 콘서트가 열린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화려한 시설과 편리성으로 인해 벌써부터 장기체류자가 많다는 보고를 나는 받았다. 이어 내 지시대로 계속해서 식사가 나왔다. 우리는 조금씩 맛을 보며 정찬을 즐기다가, 바텐더도 불러 칵테일도 한 잔씩 마시고, 헤어졌다. 원자바오를 보내고 한 시간 쯤 있으니, 내가 부른 천진 지사장이 왔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씩씩한 군인 같은 모습으로 깍듯이 절을 하는 이름도 잘 모르는 천진 지사장을 보고 내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그래, 중국 근무가 어떻습니까?"

"할 만 합니다."

부동자세로 답하는 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이를 참고 계속해서 내 할 말만 했다.

"앞으로 천진 지사장이 바로 설립 될 북경지사장을 맡아줘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가 지사장을 특별히 부른 것은, 우리가 북경에 자동차 합작 공장을 세울지도 몰라요. 그러니 공장 용지도 좀 알바보고 또 ......."

여기서 말을 끊은 나는 지사장을 좀 더 가까이 불러 귓속말을 했다.

"이미연 호텔 사장을 각별히 보살펴 주도록 해요. 이런 말은 쉽게 하기 어려워, 내 특별히 불러 당부하는 것이니 어김이 없도록 하세요."

내 특명에 천진 지사장 노홍렬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만큼 신임을 받고 있다고 느껴서 인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임무 완수에 목숨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내 할 말은 여기까지이니까, 빠른 시일 내에 북경지사도 개설하도록 하고."

"네, 회장님!"

"그만 나가봐요."

"네, 회장님!"

그가 나가자 나는 김 비서실장을 불러 말했다.

"나와 원자바오의 말 들었지요?"

"무슨........?"

"북경지사를 설치는 할 수 있되, 대정이라는 상호는 피해달라는 말."

"네, 회장님!"

"그래서 말 이오만......... 애초 이 호텔 이름으로 거론되던 '천륜(天倫)'이라는 상호를 머리글자로 사용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러면 북경지사의 이름이 대정 북경지사가 아닌, '천륜(天倫) 북경지사(北京支社)'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천륜(天倫)'은 이백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살아있는 사람 모두를 위한 집'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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