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21화 (221/322)

<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그로부터 근 1년 4개 월 여가 지난, 1988년 2월 21일. 일요일 오전 10시.

나는 지금 보령에 있는 무창포 해수욕장에 와 있었다. 겨울에 무슨 해수욕장이냐고?

어제 우리는 이곳에 또 하나의 대정 콘도를 건립해, 개소식을 가졌다. 그 기념식에 참석하는 길에 나는 가족을 이끌고 와 오늘까지 머물러 있는 것이다. '대정 무창콘도'로 명명된 이곳은 12층 규모로 객실 802석이 있고, 호텔로 사용되는 객실 150개가 있는 규모였다. 나는 그중 VIP룸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 혼자다. 모두 바닷길이 열린다고 해서 갯벌로 호미를 들고 게, 바지락 등을 채취한다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 일행 중에는 내가 처음으로 본 둘째 여동생 경숙과 사귀는 남자도 있었다. 이 둘의 만남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매파에게 둘의 만남을 허용한 후에도 둘의 만남은 한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경숙에게는 그동안 사귀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청주 백화점에 근무하던 구매과장이 그 대상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첫째 여동생 경순으로부터 듣고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내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정보실장에게 내가 지시한 것이다.

그 결과 이 남자는 같은 청주 지방대 출신으로 경숙이 이 백화점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안은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평범한 집안이었다. 나는 둘의 관계를 알고 고민에 빠졌다. 둘이 맺어지도록 그냥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매파가 소개하는 사람과 적극 사귀도록 권유를 할 것인가? 그 결과 나도 속물임을 인정해야 했다. 평범한 사람보다는 검사를 내가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내 마음은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를 썼다. 강제로 떼어놓은 것이 아니라, 이 청년을 나는 서울의 대동화학으로 인사조치 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청년은 이에 순응했고, 둘의 만남도 띄엄띄엄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영미권의 속담을 빌지 않더라도 거리가 멀어지자, 마음도 차차 두 사람은 멀어져 갔다. 청년이 그런 것이라 아니라 경숙의 마음이 그러했던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간의 사랑의 유통기간이 지나 그 색채가 엷어질 무렵, 매파가 자연스럽게 경숙을 파고들었다.

매파가 소개한 사람이 공교롭게도 청주지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백화점을 드나들게 해, 우연처럼 경숙을 멀리 때로 가까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했던 것이다. 장 민호라는 이름의 이 검사 청년은 몇 번의 간접 만남을 통해, 경숙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자 매파는 경숙의 동선을 파악해 경숙이 볼링에 취미가 있어, 볼링장을 자주 드나드는 것을 보고, 이 검사 청년에게 우선 볼링장에서 볼링을 배우도록 적극 권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당연히 장민호 검사는 이에 따랐고, 이렇게 둘은 우연을 가장해 자연스럽게 접촉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작년 여름 무렵이었고, 이후 둘은 자연스러운 만남 속에 사귀게 되었다. 나는 그 과정을 보고 받으면서도 모른 채 내버려두었다. 그러다가 금번에 무창 콘도가 문을 여는 기념식을 가정하여, 언니 경순이 초청하는 형식으로 해서, 둘이 이 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나는 모두 갯벌로 나가 나 혼자 있는 이 호텔 객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시간을 보아하니 얼마 안 있으면 다시 바닷물이 밀려올 시간이라,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방문을 벗어났다. 밖으로 나오니 같은 송림 속에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내 개인 별장이 보였다.

내가 뒤늦게 공사를 지시하는 바람에, 착공이 늦어져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막 호텔 밖으로 걸어 나가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도 갯벌에서 모두 나오고 있었다. 나의 등장에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될 인정이 뛰어오며 말했다.

"아빠, 이것 좀 봐!"

"게 아니냐?"

인정의 손에는 작은 게 한 마리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아빠 내가 잡은 거야."

"어디서 눈 먼 것 하나 붙들어와 가지고는......."

"게는 원래 눈이 퇴화되어 시력이 좋지 않잖아요."

미정이 딸을 역성들기 위해 나섰다. 심통이 난 내가 말했다.

"그럼, 당신 이런 설화는 알아?"

"뭔데요?"

"구운 게도 다리를 떼고 먹으라는 말?"

"잘 모르겠는데요."

"들어봐."

"네."

"어느 효자가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효행이 널리 알려져 고을 사또가 포상 상신을 하려고 했어. 그래서 아전들에게 내사를 시켰는데, 마침 효자가 게를 얻어 구워먹고 있는 거야."

"발각이 되었으니 포상 상신을 못 받았겠는데요?"

"그렇지. 그런데 이 묘막에 가려면 개울을 건너야 돼. 또 이 개울에는 다리가 있고 말이야. 그래서 이 개울에 놓인 다리를 떼어놓고, 게를 구워먹었으면 아전에게 발각되지도 않고, 효자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데 애석하게 된 일이지. 그래서 매사에 방비를 잘하라는 뜻이야."

"저는 게 다리를 떼어놓고 먹으라는 줄 알았더니, 개울에 놓인 다리를 떼어놓고 먹으라는 말이었군요."

"하하하........!"

"호호호.......!"

이때 경숙이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고 자랑을 했다.

"오빠, 나도 바지락 몇 개 주웠다."

그러면서 손바닥을 벌려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 가지고는 모자라겠는데?"

"우리 식구가 잡은 것 전부 합치면 한 때는 국이라도 끓여 먹겠는데요."

명희의 말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전부 모아봐."

"그러자!"

말을 꺼낸 명희가 나서서 잡은 것들을 모두 자신의 검은 봉지에 담도록 했다. 명희의 건망증은 그 이후 약물치료도 병행해 어느 정도 차도가 있었으나, 아직도 간혹 깜빡깜빡하곤 했다. 나는 이들을 이끌고 모두 객실로 돌아왔다. 우리는 식구수가 많기 때문에 여섯 개의 방을 잡아 머물고 있었다.

내 방에는 세 부인만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두 개의 방을 잡아주었다. 또 경순과 몽윤이 객실 하나를 썼고, 경숙과 장민호 군은 아직 혼사 전이기 때문에 각자 따로 하나씩 객실을 잡아주었다. 아무튼 내가 세 부인과 함께 내 방에 머물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경순이 찾아왔다.

"오빠, 미처 못 드렸는데, 이것 하나씩 드세요."

"뭔데?"

큰 검은 봉지에 든 내용물이 궁금해 내가 물었다.

"종합비타민제인데, 언니들 각각 하나씩 하고, 오빠 것까지 예요."

"참, 약국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냐?"

"오빠! 내가 시집을 간지가 몇 년인데.......?"

"알았다, 알았어. 그 얘기나 해봐."

"처음에는 없애 치울까 하다가 막내 경자도 약대에 들어갔으니, 걔 졸업하면 그것이라도 하라고, 지금도 내가 운영하고 있어요. 대신 같이 근무하던 약사들에게도 20%씩의 지분을 주어, 주인의식을 갖고 운영하도록 했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순국 사장의 전례가 생각나 물었다.

"그 지분을 무상으로 준 거냐? 유상으로 준거냐?"

"그냥 나누어줬죠."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우리 기업의 어느 사장도 무료로 종업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가 좋은 꼴 못 봤다. 사람 심리가 하나를 주면 둘을 내놓으라고 하니, 항상 이를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돼."

"지금 와서는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이야, 할 수 없지. 그런 일이 있으면 나랑 상의 좀 하지. 아무튼 됐고. 나만 비타민 챙겨줄게 아니라 시골 부모님도 좀 챙겨드리지 그랬어?"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봐요. 아니래도 매달 부쳐드리라고 했으니, 지금도 배달되고 있을 거예요."

"그러면 다행이고."

"아기 소식은 아직 없는 것이냐?"

내 물음에 경순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제 임신 2개월 됐어요."

"잘 됐다. 남의 집에 시집을 갔으면, 그 집 자손을 번창하게 해 줄 의무가 있는 거야."

"오빠도 어떻게 그렇게 노인네들하고 똑 같은 소리를 해."

"사고방식이야 부모님이나 나나 다 비슷하지, 뭐."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야."

"됐고. 가풍이 좀 엄하다고 하던데, 지내보니 좀 어떠냐?"

"평소에는 떨어져 사니 잘 모르겠는데, 집안에 제사가 있거나 명절 때는 아주 죽어나지."

"뭔 말이야?"

"그런 날은 예외 없이 아침 일찍부터 아버님 댁으로 모여 음식을 장만하는데, 그때 윗동서가 군기도 잡고, 그런 게 있어."

"하하하........! 그나마 그래도 일 년에 몇 번 안 돼 다행이겠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매일 그렇게 하면 못 살지."

"하하하.........! 알만하다. 그러나 저러나 경숙이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이제 약혼이라도 시켜야 하지 않을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네가 가서 둘을 이 방에 데리고 와봐라. 내 두 사람의 의사를 물어 봐야겠다."

"알았어요, 오빠! 내 금방 갔다 올게."

"그래."

경순이 방을 빠져나가자 나는 세 부인을 돌아보고 물었다.

"둘을 약혼시키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둘만 좋다면 질질 끌지 말고 약혼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혼례를 올리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가씨 나이도 이제 스물여섯인데, 적당하고."

"나도 동감."

미정의 말을 받아 수정도 간단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인정 엄마는?"

"응? 뭐 물었어요?"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명희는 그동안 딴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비타민 영양제를 먹으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과하면 안 되겠지만 적당하면 더 좋겠지."

"그렇지, 여보?"

급 화색이 돌며 표정이 밝아지는 명희였다.

"경숙이와 장 검사를 약혼이라도 시켰으면 하는데, 당신 생각을 말 해봐."

"얼른 얼른 치우죠. 나이 찼으면."

"다 똑같은 생각이군. 어머니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시겠지?"

"물론이죠."

"좋았어. 내가 밀고 나가지. 그 전에 양가 부모들의 상견례는 있어야겠지?"

"당연하죠."

내 물음에 미정이 명쾌하게 답변을 했다.

이때 경순과 경숙 그리고 장민호 검사가 들어왔다.

울산 학성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올해 서른 살의 장 검사는, 175cm정도의 키에 인물도 영준한 게 잘 생겼다.

"거기 의자에 앉아 봐. 내 두 사람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 불렀으니, 솔직하게 답해 봐. 우선 장 검사부터."

이렇게 운을 뗀 내가 장민호를 직시하며 물었다.

"경숙이와 약혼이라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자네의 의견은 어때?"

"저는 찬성입니다."

"흐흠........! 경숙이는?"

"저는 오빠의 뜻에 따르겠어요."

조신하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고

'내숭은?'

그런 생각이 내심 얼핏 들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전에, 양가 부모들의 상견례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참 어머니 아버지는 한 번 만나 뵈었냐?"

"서너 번 시골에 찾아가 뵈었습니다."

장 검사의 대답에 나는 경숙을 향해 물었다.

"너는?"

"저는 아직 한 번도........."

"그럼, 울산으로 한 번 찾아 봐야 하는 것 아니야?"

"제가 다음 주라도 데리고 내려가 한 번 부모님을 뵙도록 하겠습니다."

"남자가 돼 가지고........ 패기가 있어야지. 진즉 진즉 했어야 할 일을. 아무튼 그렇게 하고. 그 자리에서 약혼 문제도 상의 드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만약에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자네가 경숙이와 결혼을 한다 해도 그 직장을 계속 다닐 생각인가?"

"달리 길이 없지 않습니까? 이 나이에 벌써 변호사 개업할 수도 없고요."

"꼭 변호사만 하라는 법은 없지? 우리 그룹의 법무법인에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니면 광장이나 김&장과 같은 법무법인 하나를 설립해 운영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 뭐라고 답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래, 아직 시간이 많으니 그 문제도 신중하게 한 번 생각을 해보도록."

"일단은 부모님에게 경숙이를 소개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조만간 약혼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자고."

"경숙이 너도 이의 없지?"

"네, 오빠!"

"그래. 혹시 모르니 지금까지는 내 생각이고, 내 부모님께도 의견을 물어보도록 할 테니 그런지 알고, 즐겁게 놀다 가도록해."

"초대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회장님!"

"초대 당사자는 내가 아니라 여기 있는 현대 가의 며느리일세."

내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듯 하던 장 민호가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 경순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언니!"

"거 호칭 한 번 희한하네."

내 말에 멋쩍은 표정을 짓던 장민호가 경숙과 눈짓을 하더니, 말했다.

"저희들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올라가봐."

"네, 회장님!"

"갈게요. 오빠!"

"그래, 잘 해!"

"네!"

둘을 보내고 나는 생각난 길에 아예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기로 하고 전화기가 있는 응접세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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