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17화 (217/322)

<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미국에서 모로코로 건너간 이범석 전략기획조정실장은 지금까지 실무자 선에서 논의되던 것을 최종 조율해, 모로코의 황태자 모하메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 내용은 이미 밝힌 대로 지중해 연안에 면한 탕헤르(Tanger) 지역에 500만 평의 공단 용지를 99년간 무상으로 제공하고, 우리가 원하는 공장을 모로코 정부에서 무료로 지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공장에 자동차 조립공장, 각종 전자공장, 섬유공장 등을 짓기로 합의를 하였다. 또한 인산질 비료공장은 인광석이 출토되는 광산과 가까운 조르프 라스파르(Jorf Lasfar)항에 건설하기로 했다.

또한 이 항구에는 모로코의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100만kw의 화력발전소 4기를 순차적으로 건설하기로 했다. 이 대금은 그들이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자원인 인광석과, 철, 석탄을 우리 그룹이 생산해 판매하는 조건으로, 그 대금의 일부로 수년에 걸쳐 상계하기로 했다. 또 우리는 1차로 관광지로 유명한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수도 라바트(Rabat) 간의 2차선 고속도로를 4년에 걸쳐 완공하고, 2차로는 라바트에서 탕헤르 지방까지 2차선 고속도로를 4년간에 걸쳐 완공하기로 했다. 그 대금은 고속도로 통행료로 20년에 걸쳐 지불받으며, 우리는 이를 파이낸싱 자금으로 조달 받을 예정이었다. 이 외에도 우리는 모로코 근해의 석유 탐사권을 20년에 걸쳐 확보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지질 및 지형조사는 물론, 탄성파 탐사. 자력탐사, 중력탐사 등 가능한 온갖 탐사를 동원해 원유를 꼭 찾을 예정이었다. 그 외에 우리는 어업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원양어선의 전진기지를 제공함은 물론 수산물 가공 공장도 세우기로 했다. 또 우리는 관광지로 유명한 하얀 집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에 400실 이상을 갖춘 호텔도 지어 관광사업 분야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런 조항으로 일단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범석 기획조정실장이 귀국하는 것에 때맞추어, 김의철 대정유통 사장도 일본을 거쳐 귀국했다. 나는 그들을 반갑게 맞아 내 방으로 이끌었다. 비서실장도 불러 자리를 함께 하도록 했다.

그러자 이제 우리 기업 문화에 익숙한 반혜리 양도 알아서 들어와 차를 주문받아 나갔다. 나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이범석 조정실장을 보고 물었다.

"후일담도 있을 법 한데요?"

"후일담이라기에는 뭐 하지만, 원래는 하산2세 국왕이 우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로 했으나, 연세가 연세인 만큼 폐렴으로 인해, 모하메드 왕세자가 체결했던 것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 실장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근 백년 간 무상으로 토지를 임차해주고 공장을 지어주는데 대해, 우리도 상호 시혜적으로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금방 현금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통행료든가, 광물자원 등으로 받는 등, 외국기업과는 차별화된 점이 많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했고요. 그 일례로 원유 탐사권 등을 내준 것을 들 수 있겠네요.

"아무튼 서로 윈윈하는 전략으로 모로코와 우리 그룹이 동시에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서로 노력하는 것으로 합시다. 단기적 차익에 눈이 어두워 단물만 쏙 빼먹는다면, 그런 거래는 오래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이번에는 눈을 김의철 유통 사장에게 맞추며 물었다.

"그래, 무슨 해법이라도 발견한 게 있습니까?"

"해법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원칙 하나를 세웠다할까요. 그 준거가 될 만한 것을 각국에서 공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존의 진출국 외에 다른 나라에 진출하려면 이 원칙을 적용해야만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뭡니까?"

내 물음에 김 사장이 서서히 열기를 띠며 말했다.

"일본에서는 슈퍼마켓 체인점인 이토요카도와 손을 잡아 번성했고, 캐나다에서는 페트로캐나다, 에소 등과의 계약으로 여러 주유소에 입점함으로써 번창하고 있었습니다. 또 잠시 귀국길에 홍콩에도 들렸는데, MTR과 KCR등 지하철, 전철역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용이한 것이 특색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각 나라마다 특색이 있으니, 앞으로 다른 나라에 진출할 때는 현지 사정에 정통한 현지 유통업체와 손을 잡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인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보완을 하자면 일본을 예로 든다면, 일본의 데니스 체인 등과도 손을 잡아, 경쟁을 촉발시키는 것도 한 번 고려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또 이런 방법은 어떤지 한 번 깊이 연구를 해보세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통닭집과 같이 배달문화를 접목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나라나 일본, 홍콩과 같이 다닥다닥 붙은 대도시 밀집 지역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미국과 넓은 땅 덩어리에서는 곤란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곳이라도 우리나라 택시요금과 같이 먼 거리에는 시간과 거리에 따라 차별화 된 요금을 받고 배달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도 배달을 시킬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문제도 한 번 연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의 세븐일레븐 매장에 맥도널드와 같이 매장 일부를 비워 패스트푸드점을 열면 어떻습니까? 쇼핑을 하러 와서 먹고 갈 수도 있으니까요. 이곳에 햄버거 외에 치킨도 팔고 생맥주도 팔고 또 배달 문화까지 이곳에 접목시키는 것이죠."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만 일단은 시험적으로 몇 군데 운영을 해보고, 확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에 느낀 것은 우리나라 스토어는 신선 식품의 경우 떨이 문화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오늘을 넘기면 채소 등이 상하니 마감 시간 임박해서는 싸게 팔아 치우는 것이죠. 이것을 신선식품만이 아니라 공산품에도 적용해 유통기간이 가까운 물건은 원가에 팔아치운다는 등 해서, 저는 세븐일레븐 매점 내에 별도의 미니 할인코너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보다 싸게 팔 물건만 모아놓고 파는, 특별 코너가 되겠지요."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바로 시행해 보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이제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편의점을 개설해야겠지요?"

"네, 회장님! 벌써 밑의 직원들에 의해 마천 점은 물론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상가 내에 입점 계약을 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야지요. 사장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되죠. 전 사원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만, 그 회사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참, 모로코에도 세븐일레븐을 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다음에 방문할 때는 모로코 측과 이 문제도 협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김 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신규 신출 국가의 어느 유통망과 전략적 제휴를 할 때는 사전에 정보실의 검증을 거쳐, 부실한 업체와 계약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 실장이 대표로 대답을 했다.

"없습니다. 회장님!"

"그럼, 바쁘실 텐데, 나가 일 봅시다."

"네, 회장님!"

곧 두 사람이 목례를 하고 나갔다. 이날 퇴근시간 무렵이었다.

나에게 명희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여보!"

"무슨 일인데?"

나는 여자들이 회사로 전화를 거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가급적 급한 일이 아니면 부인이나 아이들이 회사로 전화를 거는 일이 없었다. 그런 내 지시에도 명희가 전화를 거니 자연스럽게 내 목소리는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보,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인데, 그래?"

나는 짜증이 나, 그 기분 그대로 짜증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사 준 차를 잃어버렸어요."

"뭐?"

내가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어이없는 일을 당하니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물음이었다.

"글쎄요. 우리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았는데, 쇼핑을 하고 나와 보니 차가 온데 간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차요원들에게 부탁해 전 지하층을 샅샅이 뒤져봐도 없어요."

"아이고, 멍충아! 관리를 잘 해야지."

"에헹, 이제 어떻게 해요?"

"걸어 다녀."

"정말?"

"그럼, 잃어버린 사람에게 또 차 사줄 여유돈은 없다."

"그러지 말고 하나만 더 빼줘라."

"됐어."

"그러나저러나 당장이 문제네요. 어떻게 집에를 가?"

"택시 타고 가!"

"뭐라고요?"

"택시 타고 가라고!"

"여보, 여보!"

갑자기 명희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또?"

귀찮은 마음에 내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아! 당신 말에 이제야 생각났다."

"뭐가?"

"나 차 잃어버릴까봐, 차 집에 두고 택시타고 왔다."

"아이고, 두야!"

내가 이마를 짚는데, 그녀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지난번에도 한 번 차를 끌고 나왔다가, 차를 어디에 주차해 두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찾느라고 애를 먹었걸랑. 그래서 오늘은 그 고생 안 한다고 아예 집에 놓고 택시타고 오고서는, 이 모양이다."

"정말, 잘 하고 있다."

"에헹, 안 잃어버리면 된 거지요?"

순간적으로 정말 명희의 건망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에 나는 명희에게 급하게 말했다.

"잠시 끊지 말고 기다려."

"네, 여보!"

나는 그렇게 말해놓고는 비서실로 인터폰을 연결해 뇌 과학 연구소의 신희섭 박사가 지금 연구소에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했다. 곧 여비서의 대답이 들려왔다. 신 박사가 아직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급히 환자 하나를 모시고 갈 테니, 잠시 퇴근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명희에게 걸려온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거기 지금 압구정동 백화점이지?"

"네, 여보!"

"그럼, 택시 타고 역삼동 우리 사무실 빌딩으로 와."

"왜요?"

"같이 퇴근하게."

"와~! 신난다."

"알았어요. 내 바로 갈게요."

"기다릴게."

"네, 여보!"

정말 신이 난 목소리로 명희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0분 후, 명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공장 가까이 다 와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비서실에 이야기해 경호원들과 차를 대기시키도록 했다. 그리고 집무실을 한 번 둘러본 후, 정리할 서류들은 정리를 하고, 바로 집무실을 벗어났다. 이렇게 해서 내가 공장 정문에 이르니, 마침 명희가 택시에서 내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내가 명희에게 말했다.

"이 차에 타!"

"네, 여보!"

흥분을 해서인지 발그레 한 게 혈색이 좋은 명희였다. 명희가 내 왼쪽에 타자 차는 출발을 했다. 명희가 오기 전에 미리 분당으로 가자고 목적지를 이야기 해놨기 때문에, 나의 재 지시가 없어도 차는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보, 모처럼 같이 퇴근하는데, 둘만이 외식을 하고 들어가면 안 될까?"

"뭘 잘했다고 외식을 해?"

"아잉, 그래도?"

내 팔을 잡으며 아양을 떠는 명희였다.

"그럼, 한 군데 들렸다가?"

"어디요?"

"가보면 알아. 그러나 저러나 소산이는 가정부 아줌마에게 맡긴 거야?"

"쇼핑하는 동안만."

내가 명희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었던 것은 명희의 건망증이 보통이 아니었으므로, 외출을 할 때 현관문을 열어놓고 다니는 것은 보통이고, 혹여 그러다가 가스불이라도 켜놓고 외출을 하는 날에는, 집에 불이라도 나지 않을까 두려워, 아예 가정부 아주머니 하나를 구해 내부 집안 살림을 그녀에게, 모두 맡긴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수정이 하나만 가정부가 없어 투덜거렸으므로 그녀에게도 아예 가정부를 하나 들였다. 재벌가 치고 가정부 없는 집이 없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넛씩 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상류층은 거의 한 집에 최소 한 명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세월이 자꾸 가면서 인건비가 비싸지니, 가정부라는 직업이 점점 없어지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명희를 데리고 분당의 뇌 과학 연구소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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