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건국 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치르는 잔치라 국민들은 상당히 들떠 있었다. 모이면 아시안 게임 이야기요. 보느니 게임 내용이었다. 이렇게 온 국민 소란스러움 속에 아시아인의 잔치가 펼쳐지고 있는데, 우리 식구는 우리 식구 나름대로 소란스러웠다. 한남동 집이 준공되어 오늘이 이사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사하는 날이라고 해서 내가 특별히 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1시간을 당겨 일찍 퇴근했다. 집에 들어와 보니 이사는 다 끝났고 대충 짐정리도 되어있었지만, 제대로 완벽하게 정리를 하려면 며칠은 갈 것이다. 어찌 되었든 사전에 이사를 연락을 해서 촌에서 부모님들도 올라오셔서 한몫 거든다고 거드셨으나, 여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머님이 명희네 집에도 이야기를 하셨는지 명희네 부모 즉 나에게는 장인 장모가 되는 분들도 함께 오셔서, 벌써부터 집들이 하신다고 술타령을 하고 계셨다. 나의 등장에 어른들이 술상을 한쪽으로 밀치면서 일어나 나를
맞으셨다.
"어서 오너라. 이사한다고 해서 일찍 퇴근했냐?"
"네,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물음에 대충 대답을 하고, 미정이 안 보이기에 물었다.
"다정이 엄마는 어디 갔데요?"
"떡을 맞췄는데, 시간이 안 돼도 안 가지고 온다고 전화를 하더니 무슨 일인지 쫓아갔다."
어머니 말씀에 고개를 끄떡인 나는 비로소 장인 장모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오셨어요?"
"그래. 고생 많지?"
"괜찮습니다."
장인의 말에 대충 둘러댄 나는 장모를 보고 물었다.
"어째 볼이 부으신 것 같은데요?"
"이가 아파서 그래. 이제 나이가 먹으니 성한 이가 없어. 언젠가는 이가 아파 치과를 같더니, 쓸 만한 이가 없다고 전부 빼고 틀니를 해야 된다고 하지 않겠어? 기가 막혀서 아무 대답도 않고 그냥 지나치다가, 가끔 이렇게 치료받는 정도로 지내는데, 갈수록 아픈 날이 많아지네."
"아무래도 의사의 말을 믿어야겠지요. 의사말대로 전부 빼시고 틀니를 하도록 하세요. 돈은 일체 제가 대드릴게요."
"어디 돈 때문에 그러나. 내 이가 최고지. 그것 해 눠봐. 얼마나 성가시겠어."
"아프시니까 문제죠. 제가 볼 때는 잇몸에 염증이 있거나 하여튼 잇몸 고장이 원인 일거예요.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잇몸이 다 망가져서 나중에는 틀니 하기도 힘들 거예요."
"의사도 그렇게 말 하드라만, 영 내키지를 않아서."
"이 사람아, 사위 말 들어. 괜히 사서 고생하지 말고."
모처럼 큰 소리를 내는 장인어른이셨다.
"제 말대로 꼭 하세요. 지금도 돈이 없어 틀니도 못하고 그냥 계시는 노인들이 한 둘이세요? 틀니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꼭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잇몸이 성하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셔야지요. 정말 더 늦으면 틀니도 못할지 모른다니까요."
나의 간곡한 설득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시는 장모님이셨다.
"기왕이면 시골보다는 나을 테니 올라오신 길에 아예 하고 내려가세요. 내 인정이 엄마보고 매일 모시고 다니라 할 게요."
"얘기를 들으니 아무리 망가진 이라도 하루에 몇 개 이상은 절대 안 빼주는 모양이야. 그러면 세월이 많이 걸릴 텐데, 농사는 어찌 하고."
"그놈의 농사야, 못 지으면 말지. 우리가 밥을 굶어 용돈이 궁해. 사위가 부쳐주는 돈만 가져도 우리 두 늙은이는 충분하잖아."
"애들 학교는 안 가르쳐요?"
"그 놈들한테 들면 얼마나 든다고 그래, 철따라 제 매형이 학비 다 대주지, 방 제공하지, 뭐가 걱정이야?"
"그래도.........."
"사위 말대로 해."
"알았으니 그만 소리 질러요."
"하하하........! 누가 들으면 두 분이 싸우시는 줄 알겠어요. 그러나 저러나 이 사람들은 뭐 하는 거야? 자기네 집 정리하나?"
"글쎄 아까부터 뭐 하는지 모르겠어. 대충 해두고 말지."
장모님의 말씀에 어머니도 마뜩치 않은지 인상을 찌푸리셨다. 이때 미정이가 들어왔다. 나는 모른 체하고 물었다.
"어디 갔다 와?"
"세상에 별일이네요. 떡집에서 어떻게 떡을 했길래 떡이 다 설었다고....... 화가 나서 막 뭐라고 했더니, 남의 떡을 우리 주고, 그 집은 좀 늦는다고 양해를 구하더라고요."
"급할 것도 없는데, 뭐 하러 그랬어. 되는 대로 하라고 그러지."
"아버님 어머님도 오셨는데, 이사 떡이라도 한 쪽 내놓을 라고 그랬지요."
"너는 아무 말 마라. 내가 볼 때는 다정이 엄마가 잘했다. 그 따위 집이 어디 있니!"
중간에 어머니가 나서셔서 며느리 편을 들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말았다. 이때 현관문이 불쑥 열리며 못 보던 중년인이 외쳤다.
"떡 가져왔습니다."
"거기다 놓고 가세요. 돈은 드렸죠?"
"네, 사모님! 고맙습니다."
미정에게 인사를 꾸벅한 떡집주인이 얼른 문을 닫고 사라졌다.
"떡은 내가 안으로 들여놓을 테니, 당신은 가서 철산이 엄마하고 인정이 엄마 오라고 해. 정리는 나중에 하라고 하고."
"알겠어요."
미정이 대답을 하고 나가자 나는 떡판을 번쩍 들어 주방으로 옮겨놓았다. 같이 쫓아오신 어머니가 나에게 물으셨다.
"칼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당체 남의 살림이다 보니."
"내버려 두세요. 다정이 엄마가 오면 다 썰 거예요."
"도와 줄 라고 했더니 안 되겠다."
내 말에 다시 거실로 향하시는 어머니셨다. 이때 장인어른이 나를 부르셨다.
"사위도 이리 와.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잠시 만요. 아이들 엄마 오면 갈게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주방에서 칼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장 꽂아두는 곳에 없었다. 아직 채 정리가 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나는 내버려두고, 거실로 향하는데 미정을 필두로 수정과 명희가 현관문을 밀고 들어왔다.
"오늘 같은 날은 밖으로 잡아 다녀야지."
안으로 문을 미는 바람에 현관 안쪽에 벗어놓은 신발들이 밀려서 엉망진창이 되자, 내가 소리를 지른 것이다. 내 잔소리에 무안한 표정을 지은 세 여인이 대충 신발장에 신발을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른들이 왔으면 짐 정리는 나중에 하고, 대접을 해드려야지........."
"그래도 대충은 치워야지, 귀신 나오겠어서, 어디 두고 볼 수가 있어야죠."
"아범아, 그만 해라."
수정의 대꾸에 내가 뭐라고 하려는데 어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어 말리셨다.
"지금 몇 시야? 5시 조금 넘었으니 아직 치과 열었겠네. 인정이 엄마는 얼른 장모님 모시고 치과에 다녀와."
내 말에 명희가 친정엄마한테 다가가 물었다.
"더 아프세요?"
"약을 먹으면 가라앉곤 했는데, 지랄하느라고 오늘은 서둘러 오다가 약도 깜빡하고 안 가져 왔잖냐."
"엄마, 가세요. 당장 가서 치료하고 약도 받아오자고요."
"그래야겠다. 아프니 심란해서 아무 일도 안 된다."
어지간히 아프긴 아프신 모양이었다. 순순히 따라나서시는 걸보니.
내가 앞장을 서는 명희를 보고 말했다.
"틀니하고 내려 보낼 거니까, 그때까지는 모시고 같이 병원에 다녀."
"알았어요, 여보! 치료비는?"
"내가 다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에고, 나는 내 용돈에서 내라는 줄 알고 겁먹었네."
"하하하........!"
"호호호........!"
명희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지만 시선은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재벌 놈이 얼마나 짠돌이 같이 굴길래, 딸이 또는 며느리가 저런 소리를 하느냐 하는 표정들이었다. 이에 나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풍족하게 준다구요. 괜한 엄살이지. 내말 맞아, 틀려?"
"여보야의 말이 맞긴 맞죠. 그런데 그 용돈 가운데에서 제가 임의로 몇 개 적금을 들었더니 항상 쪼들리더라고요. 괜히 오늘 다 들통 났네, 내가 적금 타도 당신은 노터치예요?"
"알았다. 알았어. 추한 말로 거지 똥구멍의 콩나물을 빼먹지, 내가........"
"말을 해도........."
명희가 내게 눈을 흘기고 친정엄마를 모시고 나갔다.
"그러나 저러나 왜 얘들이 하나도 안 보여?"
내 물음에 수정이 답했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와봐야 가로고치기만 한다고, 내가 전부 우리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놀고 있으라고 했어요."
"그럼, 세 집 아이들이 전부 거기 있는 거야?"
"네, 효정이가 잘 볼라나 모르겠네. 안 그러더니 중산이 하고, 인정이가 요즈음은 만나기만 하면 그렇게 싸우더라고요."
수정의 말을 받아 어머니가 한 말씀하셨다.
"키 크느라고 그러지 뭘."
"떡 좀 썰어 내오지. 그러나저러나 칼이 안 보이던데?"
"아직 짐을 못 풀어서 그래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 볼 일이나 봐요."
미정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내 볼일이야, 술 먹는 것밖에 더 있어."
"그건 알아서 하시고요."
요즈음은 술 소리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미정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다 내 건강 챙기라나, 뭐라나. 아무튼 내가 어기적 어기적 거실로 가서 술판에 동참을 하려는데, 뜻밖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정이 엄마 아버지셨다.
"아니, 장인 장모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급히 일어나 맞았다.
"다정이 에미는 이사를 하면 한다고 해야지. 우리가 이렇게 알고 찾아와야겠니?"
장모님의 말씀에 미정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사한다고 전화 한 통 안 드렸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어요?"
"다 아는 수가 있지........."
생색을 내려고 장모님이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이를 장인어른이 산통을 다 깼다.
"너희 집에 전화를 걸어도 안 받는 거야. 그래 무슨 일이 있나, 사방으로 전화를 하다가, 효정이네 집에 있는 걸 알았다. 그래서 캐물어서 알게 된 거야."
"뭔 남자가 그렇게 입이 가벼워요?"
자기가 밝히려고 한 것을 남편이 밝히자 타박을 하는 장모님이셨다.
"아무튼 잘 오셨어요. 이리 앉으세요."
내 말에 장인어른은 털퍼덕 술자리에 자리를 잡는데, 장모님은 그 자세에서 미정에게 물었다.
"뭐, 도와 줄 일은 없고?"
"없어요. 그냥 앉아 계세요."
"벌써 짐정리가 다 끝난 거냐?"
"대충은 요."
말을 하면서도 미정은 칼이 든 짐을 찾느라고 시종 눈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침내 칼이 든 짐을 찾아냈는지 미정이 하나의 박스를 뜯기 시작하자, 별로 할 일이 없는 장모님도 우리 자리에 자리를 함께 하셨다.
"어째 안사돈이 안 보이세요?"
앉자마자 묻는 미정의 엄마 말에 명희 아버지가 대꾸하셨다.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갔습니다."
"나도 가끔 이가 아픈데, 남일 같지 않군요."
이 말을 짐을 풀며 듣고 있던 미정이 참견을 했다.
"엄마도 시원찮으면 다 빼고 틀니 해 넣으세요."
"이 나이에 무슨 틀니냐?"
"엄마 나이가 젊은 줄 아세요?"
"그건 아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제 말대로 하세요. 삽으로 막아도 될 일은 나중에 가래도 못 막게 하지 말고."
두 사람의 대화에 내가 끼어들었다.
"치아가 어느 정돈데 그러세요?"
"어금니 쪽이 완전 썩어서 빼냈더니, 그 다음이가 흔들리더니 자꾸 그 옆으로 번져."
"다른 이들은 괜찮고요?"
"그거, 세 개 외에는."
"그럼, 틀니가 아니라 부분 치료를 하면 되겠네요. 장모님도 올라오신 길에 그것 아예 해 넣고 내려가세요."
"사위는 나이도 젊은데 별걸 다 잘 알아?"
이 자리에서 내 전생의 나이를 어떻게 들먹이겠나, 그래서 내가 적당히 둘러댔다.
"주변에 그런 사람을 많이 보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아버지 어머니는 치아는 괜찮으신 거예요?"
"그것도 다 집안 내력인가보다. 네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 하나는 어디 하나 상한데 없이 말짱하시더니 나도 그렇다."
어머니 말씀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젊어서부터 어머니가 그런 걸 보고 부쩍 이에 신경을 썼더니 아직은 괜찮다."
"다행이네요."
"아, 뭣들 하고 있어. 모였으면 한 잔들 해야지?"
미정이 아버지가 술을 마시자고 바람을 잡으셨다. 그 바람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잔과 수저가 준비되고, 부실한 안주도 보충이 되었다.
그러자 이때부터 이른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미정이 떡을 다 썰어 내왔지만 아무도 떡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술이 들어가니 떡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수정과 미정이 서로 의논하더니 이웃에 떡을 돌린다고 둘이 떡을 들고 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머지는 열심히 술을 마시느라 그들이 나가던 들어오던 관심 밖이었다. 이렇게 술판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데 때 아닌 아이들이 들이닥쳐, 술판은 일시 중지가 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