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포석-- >
아침에 출근을 해 조회를 마치고 나니, 김 비서실장이 방금 페루 지사장이 인질에서 풀려나왔다는 보고를 했다. 이어 그간 미주, 유럽, 북서 아프리카를 다니며 현지의 투자실정을 파악하던 이범석 전략기획조정 실장이 귀국해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기획실에서 작성한 세계전략 운영지침에 따라, 한국의 대정그룹 같은 규모의 회사를, 세계 각국의 거점도시에 하나씩 세우기로 하고, 그 첫 대상을 물색해 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훗날 대우가 주창한 세계 경영을 우리 그룹이 먼저 창안하여 시도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서실장과 이범석 조정실장을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인터폰으로 차를 주문한 나는 곧 그들을 자리에 앉게 하고 나도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먼저 이 실장의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낯설고 물 설은 외국을 계속해서 쏘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런 외국에 상주하면서 열심히 뛰는 상사원들에 비하면 저야 외국을 다녔다
할 것도 없지요."
"그래, 성과는 있었습니까?"
"흐흠.......! 뭐라 할까? 열심히 다닌 것이 비하면 거둔 결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좀 모양이 빠집니다."
이렇게 운을 뗀 그의 말이 이어졌다.
"미국의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88년에 발효될 미국과 캐나다의 자유무역협정을 이용하여, 캐나다 현지에 생산 공장을 짓는 문제를 집중으로 알아보았으나, 이미 높은 캐나다의 고임금에 별 메리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해서 대안으로 싼 인건비의 멕시코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으나 인프라 등 제반 해서 대안으로 싼 인건비의 멕시코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으나 인프라 등 제반 여건이 아직은 현지 공장을 운영할 단계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때 신입여비서 반 혜리(潘 慧理)양이 물과 차를 들고 들어왔으므로 잠시 이 실장의 보고가 중단 되었다. 차보다도 물을 한 잔 마신 이 실장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직 유럽연합은 말만 무성하지 결성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다, 프랑스 역시 인건비가 높아 별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해서 제가 최종적으로 눈여겨 본 곳은 모로코였습니다."
"모로코 자체가 아프리카의 북서부 해안에 위치해 있어서 스페인, 포르투갈과 바다 하나 사이로 가까운데다가, 머지않아 그들이 추진하는 마그레브 연합이 곧 결성될 같았습니다. 현지의 분위기로 보아 늦어도 3년 안에는 체결될 공산이 큽니다."
"잠깐만요.
"네, 회장님!"
"마그레브 연합이 그렇게 빨리 결성될 것 같습니까?"
"모로코 국왕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므로 빠른 시일 내에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저는 판단했습니다."
"그렇군요. 계속하시죠."
여기서 마그레브 연합이라는 것은,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한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 모리타니가 단일시장의 출범을 위해 결성하려는 연합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내 말에 따라 이 실장의 말이 이어졌다.
"또 국토는 남한 면적의 4배요, 인구는 3천4백만 명으로 남한과 거의 비슷하니, 자체 시장만으로도 매력이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저렴한 인건비입니다. 프랑스의 인건비가 한 사람 당 2,200달러라면, 모로코는 인당 80달러 밖에 안 됩니다."
"흐흠.......! 정말 싸군요."
"게다가 더욱 메리트가 있는 것은 모로코 국왕 하산2세의 유인책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현지에 공장을 세운다면, 그 용지를 99년 동안 무상으로 임차해주는 것은 물론, 그 공장마저 무상으로 지어준다 했습니다."
"확실히 호조건은 호조건이로군요."
"게다가 마그레브 연합이 출범하면 광범위한 자체 시장이 열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웃한 유럽으로 수출도 할 수 있습니다. 해서 모로코에서 유망사업을 따져본 결과 전자산업, 자동차 산업, 인광석을 이용한 비료공장, 1,835km에 이르는 해안선 길이에 따른 어업 및 원양어선의 전진기지, 많은 관광객을 위한 호텔사업, 전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발전소 건설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다 이해가 가는데, 인광석은 좀 생소한데요?"
"인산질 비료를 만드는 천연광물로 모로코, 남아공, 미국, 중국 등에 매장량의 80%가 편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모로코는 세계 제1의 인광석 수출국이기도 합니다. 이외에 석탄과 철이 상당량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회장님!"
"말씀하세요."
지금까지 조용히 경청만 하던 김 비서실장이 나섰다.
"인산질비료의 주 수입국은 바로 소련입니다. 세계시장의 70% 이상을 소련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금번에 소련을 방문하는 바람에 공부 좀 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소련과 잘 매치만 하면 비료 공장도 충분히 승산이 있군요."
"그렇습니다."
이 실장의 확실한 대답을 들으며 내가 최종 결론을 내렸다.
"자동차 외에는 전부 우리가 할 수 있는 분야이니,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을 하도록 하고, 자동차 문제는 내가 현대나 대우와 한 번 상의를 해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우리는 곧 미지근해진 냉커피를 마시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실장은 그로부터 삼일을 국내에 머물고 곧 협상 팀까지 이끌고 미국 및 모로코 여타 몇 개 국가를 차례로 방문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다음 날 현대의 정주영 회장과 대우의 김우중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모로코에서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다. 그 결과 정 회장은 전혀 생각이 없었고, 김 회장은 관심은 있었으나 지금은 그럴 여건이 못 된다고 완곡히 사양하였다.
나는 그래도 두 기업 중 하나는 우리의 사업에 참여할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부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게 된 내가 인상을 쓰며 거칠게 전화기를 내려놓자, 이를 지켜보던 김 비서실장이 엉뚱한 제안을 했다.
"회장님, 차라리 우리가 자동차 회사 하나를 인수하죠."
"그게 뭔 말이오."
"이탈리아의 자동차 업체 알파 로메오가 세계 시장에 나왔지 않습니까?"
"그래요?"
"내 방에 가서 이야기 합시다."
"네."
아무래도 기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나는 비서실장을 비서실에서 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소파에 앉은 내가 말했다.
"하던 얘기 계속합시다."
"네, 회장님!"
"이 업체를 두고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제너럴 모터스와 피아트가 경합을 벌이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자동차 제조의 허가를 내주지 않으니, 차라리 이를 인수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회장님!"
"흐흠.........!"
"문제는 우리 그룹의 자본 여력인데........?"
"제가 알기로 우리에게 할당된 가스프롬의 지분 15%를 전량 인수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이를 두 그룹에 넘겼으니, 그만한 자금은 충분히 비축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기업공개를 계속하면 각, 자 회사는 그 돈만으로도 자금이 넘칠 테고요."
"아니, 비서실장님은 유독 차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네. 우리 그룹이 반도체나 컴퓨터, 휴대폰 등으로 전자 쪽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아직 이 분야가 만개를 하지 않아 세계적인 거대 기업으로 거듭나지는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자동차 업종을 추가해 세계적인 메이커로 성장시킨다면, 우리 그룹은 양 날개를 달게 된 격이라, 빠르게 비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흐흠........!"
잠시 생각하던 내가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해외정보실장을 시켜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기획 쪽에서는 자동차 업종 진출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요. 비서실장님이 바로 지시를 내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곧 김 비서실장이 빠른 걸음으로 내 방을 벗어났다. 동작에서 자동차 업종 진출에 대한 꿈으로 내심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 주일이 지났다. 아침부터 김재익 기획실장과 김경제 비서실장이 내 방을 찾았다. 알파 로메오 자동차 회사 인수 건에 대한 종합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김 기획실장이 입을 열었다.
"그간 해외정보팀이 수집한 정보와 국내정보팀 그리고 기획실 자체 정보를 기반으로 이의 인수에 대한 실익을 따져보았습니다. 먼저 가타부타 결론을 내리기 전에 알파 로메오 자동차 회사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부터 말씀 올리겠습니다."
한 호흡 쉰 김 기획실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알파 로메오 자동차 회사는 이탈리아의 2위 자동차 업체로서, 드라이빙 카 즉 스포츠카 분야에 장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초창기부터 자동차 경주에 출전해 그 명성을 입증한 바가 있으나, 근래에는 그 명성이 많이 퇴색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스포츠카 분야보다는 일반 차 개발에 역점을 둔 게 그 원인이었습니다. 자체 카 1,500대를 복권 시장에 내놓고 이 기금으로 일반 차 개발에 달려들었으나, 그들이 목표로 했던 꿈의 카는 개발하지 못했고, 그 중간 차종을 내놓았습니다. 이 차만으로도 자체 이탈리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세계시장에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파워의 엔진을 앞세운 빠른 차로 세계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마침 몰아닥친 1, 2차 오일쇼크로 다시 재정난에 부닥쳤습니다.
그래도 아직 유럽 시장의 스포츠카 분야에서는 아직 명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반 차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위축된 게 사실입니다. 어찌됐든 재정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이 업체가 결국 세계 자동차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된 것이죠."
긴 이야기 끝에 물을 한 잔 마신 김 기획실장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볼 때 자동차에서는 엔진이 생명인데 이 업체는 엔진에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서 이 파워에 뛰어난 디자이너를 영입해 미려한 외관을 더하고, 지금의 강점대로 빠른 속도를 살리면, 세계 시장에서도 분명 승산이 있습니다. 요는 어떻게 원가를 절감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것이냐는 것인데, 이탈리아의 부품 업체를 옮길 수는 없지만, 조립공장 만이라도 인건비가 싼 모로코에 건설한다면, 분명 승산이 있습니다.
""하고 중요 부품은 시간을 두고 국산화를 하고, 여기에 풍부한 자금만 투입한다면,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다 좋은데 인수 비용이 얼마나 들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김 기획실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으니, 5천만 달러 내외면 인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김 실장의 말에 요즘 환율 시세인 달러 당 790원을 적용해 보니, 대충 400억 원 내외였다. 큰돈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5천만 달러를 조금 더 써내는 한이 있더라도 응찰하세요. 기간은 언제가 마감입니까?"
"사흘 후입니다."
"좋습니다. 바로 응찰을 하고, 기획실에서는 만약 이 회사를 인수했을 때를 대비한 비상 경영 계획을 마련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장님도 이의 없지요?"
"저는 적극 찬성입니다."
"좋습니다. 그대로 행합시다."
"네, 회장님!"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복명하고 후속조치를 취하기 위해 신속히 내방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