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08화 (208/322)

< --재계 서열 1위 다지기.

-- >

1986년 8월 19일.

비서실 방 령 과장이 노크와 함께 내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내일 10시에 중국 측이 자기네들의 아시안 게임 참가소식을, 양국이 일제히 발표하자는데 어떻게 할까요? 회장님!"

"잠시 자리에 앉아 기다려 봐요. 내 전 통과 상의해서 알려 줄 테니."

"전 통이 누구예요? 회장님!"

"음.......?"

난 항상 그렇게 불러왔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호칭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그녀를 보고 이상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중국이나 홍콩에서 주로 거주한 그녀로서는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명을 해주었다.

"전두환 대통령을 지칭하는 거요. 간단하게 줄이면 그렇게 되잖아?"

"그렇긴 하네요."

살포시 미소를 띠고 대답하는 그녀는 외국에서의 경력을 인정해, 금번에 정식

으로 과장으로 발령받았다. 또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니 전담 소련어 통역원인 이오노바가 그녀였다. 그녀 또한 과거의 경력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과장으로 발령이 났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곧 대통령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전 통과의 통화를 요청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접니다. 각하! 대정의 강 대정!"

"오~! 강 회장! 무슨 일이오?"

"중공 측에서 내일 정식으로 자신들의 아시안게임 참가 사실을 밝히겠다는데, 우리도 내일 10시에 동시 발표를 하는 것으로 하죠? 시끄런 날로 날 잡으려 했더니 요즈음은 그런 날도 없고요."

"하하하........! 강 회장은 시국이 시끄러워지길 바라는 사람 같고 만."

"그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이제 아시안 게임도 한 달 밖에 더 남았소? 국민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하루라도 빨리 알려주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각하!"

"다른 일은 없고요?"

"네,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 통화하기로 하고, 이만 끊읍시다."

"네, 각하!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네!"

곧 전화를 끊은 나는 방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중국 측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연락해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단정하게 목례를 올린 그녀가 곧 뒷걸음질로 내 방을 벗어났다. 참으로 예의범절은 제대로 배운 아가씨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흐뭇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방의 문이 노크도 없이 불쑥 열리며 김경제 비서실장이 튀어들어 왔다. 금방 방령 과장과 대비되는 행동이라 나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치듯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오?"

"큰일 났습니다. 회장님!"

"무슨 일인데, 천하의 비서실장이 그렇게 당황하는 것이오?"

나는 그의 표정에서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하고 일부러 여유를 부렸다.

"남미 페루 지사장이 '센데로 무리노소(빛나는 길)'라는 무장단체에 납치 되었다는 남미 총괄 법인장의 보고입니다."

"그래서? 그놈들이 요구하는 게 뭔데? 요구하는 것이 있을 것 아니오? 무작정 납치해서 죽이자는 것은 아닐 테고?"

나도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빠르게 많은 말을 쏟아냈다.

"1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답니다."

"큰돈은 큰돈이구만. 그렇지만 사람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니, 일단은 주는 것으로 해서 석방 교섭을 벌이도록, 남미 총괄 법인장에게 지시하시오."

"그렇게 되면 선례가 되어, 세계 각국에 상주하는 우리의 상사원들이 표적이 되어,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면 어찌 합니까?"

"그 말도 일리는 있으나, 그렇다고 1만 달러 아끼자고,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킬 수는 없잖소?"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무력단체나 특공대를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나라나 현지의 대사관에 무슨 뾰족한 대책이나 힘이 있소? 그것도 아니잖소? 이럴 때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으로 부럽단 말이야. 일개 국민이 납치되어도 최선을 다하니까 말이야."

나는 푸념삼아 나답지 않게 마구 떠들었다. 이런 일이 없다가 이런 일이 갑자기 발생하니,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던 탓이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회장님 지시대로 행하겠습니다."

"후속대책도 철저히 세우도록 긴급 지시를 하세요. 세계 각국의 상사원들에게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긴급 훈령도 발하고 말이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최우선 사장은 어디로 갔소?"

"소련과의 지사 설립문제를 논의한다고 소련에 체류 중입니다."

"후속조치를 수행하고 있구만. 체르노미르딘 의장이라면 그만한 힘이 있지, 암!"

나 혼자 고개까지 끄덕이며 중얼거리듯 말하고 있지만, 내 말은 사실이었다. 가스프롬이 소련 자체에 대단히 영향력이 큰 기업인데다, 체르노미르딘 이라는 인물 자체도 거물이라서, 곧 도래할 엘친 시대에는 러시아 총리(總理)까지 지내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나가봐요."

"네, 회장님!"

내 명에 김경제 비서실장이 내 지시를 이행하러 가고, 나는 기분이 별로라 이날은 조기 퇴근을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은 명희네와 이웃에 살다보니 두 사람은 가까이 했지만, 수정에게는 통 들리지 못한 까닭에, 나는 해가 있어서 수정의 집 현관에 도착해 있었다. 얼마 전에 한남동 우리가 살던 곳의 건축 현장에 가보니, 벌써 외부 건축은 끝났고 내장공사가 한창이었다. 조만간 입주가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 지금 집 세 채를 건축하고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은 3층으로 올리고 있고, 양쪽 집은 각각 2층으로 올려, 명희와 수정이 각각 1채씩 맡아 살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담을 헐고 하니 옛날보다는 훨씬 넓은 공간이 생겼다. 그곳에는 잔디와 정원수를 심어 집을 좀 더 아름답게 가꿀 생각이었다. 이런 것이야 여자 몫이고, 내가 할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내가 현관에서 벨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한 사람이 뛰쳐나오는데 수정이었다.

"어머! 당신 웬 일이세요? 아직 해도 안 떨어졌는데? 나는 철산이가 오는 줄 알았어요."

모처럼 만의 나의 방문에 횡설수설하는 수정이었다.

"들어갑시다."

"네, 여보. 엄마 와 계세요."

"장모님이?"

"네, 낮에는 심심하시니까 주로 우리 집에서 지내세요. 저녁에는 혹시 당신 오면 불편할까봐, 안 오시지만."

"알았소. 어서 들어갑시다."

"그런데 당신 표정이 그렇게 밝지는 않네요?"

"오늘 좀 회사에서 그런 일이 있었소. 그렇다고 회사 일을 집까지 끌어들이는 사람은 아니니, 걱정 말고."

"맞아요. 회사 일로 집에서 짜증부리는 일을 나는 한 번도 못 봤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다 보니 어느덧 거실이었다. 수정의 말대로 정말 장모님이 계셨다.

"안녕하세요? 장모님!"

"오늘은 어쩐 일로 햇기가 다 있어서 들어오나?"

"그렇게 됐습니다. 아직 저녁은 안 드셨죠?"

"저녁 먹기에는 좀 이르지 않은가?"

"하긴 그렀네요."

현관문을 잠그고 들어온 수정이 내게 말했다.

"여보, 있잖아요."

"말해봐. 너무 뜸들이지 말고."

"호호호........! 철산이가 글쎄 올 백을 맞아왔지 뭐예요. 당신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눈 후에는 정말로 사람이 180도로 달라졌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은 운동을 하러 간 건가?"

"네. 당신마냥 태권도와 검도 유단자가 되겠다고, 평일 날은 하루도 한 걸러요."

"잘 하고 있다니 반갑군. 그런데 왜 효정이가 안 보여?"

"당신이 왔는데 집에 있었으면 벌써 튀어나왔지 여적지 있었겠어요. 요새 이웃에 친구를 하나 사귀었거든요. 그 얘네 집에 놀러갔어요."

"제법 친구도 사귀고 그러는 모양이네."

"효정이가 날 닮아서 붙임성이 있잖아요."

"뭘, 너를 닮니? 사위 닮았겠지. 너 같이 어려서부터 까탈스러운 얘가 있었을까?"

"엄마!"

수정이 장모님에게 고함을 질렀지만 장모님은 여유만만이었다.

"사실이잖니? 왜? 내 말이 틀려?"

"그래도 그렇지, 강 서방 있는데 꼭 그런 말을 해야겠어요?"

"나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뭐. 나한테 얼마나 거만하게 굴었는지 생각 안나? 얘 둘 낳더니, 그 성질이 지금은 다 죽어서 그렇지."

"여보, 이젠 당신 까지."

울상을 짓는 수정을 향해 장모님은 한 술 더 떴다.

"내가 네 어렸을 때, 네 행실을 사위에게 다 말하랴?"

"엄마, 내가 이렇게 빌 테니, 제발 좀 그만 하세요."

"호호호.......! 우리 잘난 딸년이 나한테 애원하는 걸 다보겠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이때 벨이 딩동 거리며 울었다. 이 집은 현대에서 먼저 지은 집이라 전혀 보안이나 최신시설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누가 온 모양인데? 효정이 인가?"

혼자 중얼거리며 문을 열어 주러가는 수정이었다.

"아빠!"

제 엄마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나를 부르며 총알 같이 튀어오는 효정이었다.

"아이고, 우리 딸내미. 잘 있었어?"

"네, 아빠!"

나는 그렇게 말하며 효정을 번쩍 안아 올렸다. 이제 제법 커서 힘이 들었다.

"아, 이제 아빠도 힘에 부치네."

"그럼, 벌써 얘 등치 좀 봐. 무리지."

거드는 장모님이셨다.

"팔 아프면 내려놔, 아빠!"

"그럴까?"

"네."

"친구 사귀었다며?"

"네, 우리 반인데요. 옆 동에 사는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한 번은 내가 게네 집에 놀러가고요. 어떤 날은 민정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와요."

"그래, 그렇게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도록 해."

"우린 안 싸워요. 그 친구가 얼마나 착하다고요. 얼굴도 예뻐요."

"그래도 우리 효정이만큼 예쁘지는 않을 걸?"

"그건 사실 이예요.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예쁘데요?"

"그럴 거야. 아마 대한민국에서 우리 딸이 제일 예쁠 걸?"

"아빠, 그건 아니다."

"하하하........! 내 눈에는 우리 딸이 제일 예쁜데."

"팔불출!"

"뭐?"

"어른들이 그러면 팔불출 이래요."

"아이고, 이제 주둥이가 까지니 못하는 말이 없네."

이때 부녀간의 하는 짓을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던 수정이 나섰다.

"효정아, 그만 해. 아빠 아직 샤워도 안 하셨단다."

"네~! 알았어요. 아빠, 얼른 씻고 저하고 또 놀아요."

"그래. 내 얼른 씻고 나올게."

"네~!"

"나는 그동안 저녁 준비할 게요. 엄마도 여기서 잡숫고 가세요. 집에 가서 별도로 저녁하지 마시고요."

"그럴까?"

"그러세요. 장모님! 평소에도 식사는 여기서 하는 것으로 하세요."

"저년의 음식 솜씨가 워낙 좋아놔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흔드는 장모님이셨다.

"요즈음은 학원도 다니고 해서 많이 나아졌잖아? 그렇지, 여보?"

"그럼, 처음에 비하면 괄목상대지.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자부심을 갖고 해봐."

"어머, 여보! 고마워라!"

쪽!

장모님이 계시거나 말거나 갑자기 달려들어 내 볼에 입을 맞추는 수정이었다.

"아이고 남사스러워라!"

장모님이 눈살을 찌푸리셨고, 수정은 아랑곳없이 한술 더 떴다. 갑자기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내 입에 입맞춤까지 하는 그녀였다.

"엄마!"

이에 효정까지 나서 지탄을 하니 그제야 주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수정이었다. 이때 또 벨이 딩동거리며 울었다.

"오빠다!"

효정이 달려 나갔다.

문을 따주니 정말 철산이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얼른 인사를 하는 철산이었다.

"안녕하셨어요? 아빠!"

"그래, 도장 갔다 오는 길이니?"

"네. 학교 끝나도 놀 시간이 없어요. 도장 두 군데, 저녁 먹고는 또 영어 학원에 가봐야 돼요."

"어려서부터 열심히 배워두면 다 네 것이다. 아무도 안 빼앗아간다. 아니 못 빼앗아 가지. 천하 없는 대도(大盜)도 네 머리에 든 지식과 손에 익힌 기술만은 빼앗아 갈 수 없으니, 부지런히 익히고 배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빠. 저녁은 요?"

"나도 금방 왔다. 아직 저녁도 안 된 모양이다 만."

"얼른 먹고 학원 가야되는데.........."

"있는 밥 그냥 줄까? 우리끼리 먹으면 그냥 먹어도 된 다만은, 모처럼 아빠가 오셨으니 뜨신 진지 지어드리려고."

"저는 있는 밥, 그냥 주세요. 시간이 없어요."

"그래, 엄마가 금방 된장국이라도 끓여줄게."

"된장은 냄새가 나서 싫고요. 그냥 계란 후라이 두 개만 해주세요."

"요새 얘들은 된장을 안 먹어?"

장모님의 푸념이었다.

"알았다. 너도 대충 씻어라."

"네, 엄마!"

철산이 바로 욕실로 직행했다. 나 또한 안방 욕실로 향했다. 효정이 그런 나를 따라오며 재잘거렸다.

"있잖아요. 아빠!"

"말해."

"아빠, 사랑해요!"

"너, 용돈 떨어졌지?"

"헤헤헤........!"

"옛다!"

나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주었다.

"고마워요. 아빠!"

절을 하더니 쏜살같이 안방을 벗어나는 효정이었다.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