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서열 1위 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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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나는 느닷없이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각 공사 현장은 물론 해외 지사를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오너가 현장을 등한히 하면 할수록 그 기업은 어려워진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있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종종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즐긴다.
내 입장에서야 즐기는 것이지, 당하는 입장에서야 불시의 암행 감찰이 되기 때문에 괴로운 일 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만 직원들부터 태만해져 안 된다. 아무리 정신 교육을 시켜도 현장에서의 한 번의 질타가 약효가 오래가는 법이다. 아무튼 나는 미주시장을 시작으로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까지 순방을 마치는데 꼬박 2주가 걸렸다. 이 2주 동안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은 대정반도체와 대정전자는 그런대로 이름이 나있으나, 건설이나 무역 등 여타 업종은 '대정'이 어느 나라 기업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러고 상대편에서 꼭 묻는 것이
'자본금이 얼마인 회사인데요?'
였다. 그들로
서는 자본금의 과다로 그 회사의 크기를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대정무역과 건설, 엔지니어링을 합병해 한 회사로 만들어, 거대 자본금을 지닌 회사로 탈바꿈 시키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또 하나 좋은 점이 있으니 한 회사라는 소속감에 유기적으로 협조가 잘 되리라는 점이었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지휘계통의 혼선을 우려해 각각 독립부서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결심한 나는 귀국하자마자 곧 바로 이에 대한 지침을 내리고 기업공개를 서둘도록 엄명을 내렸다. 2주 안에 모든 자료를 준비해 기업공개를 하도록 한 것이다. 2주 만에 기업공개를 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혹한 조치 같겠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각 사별로는 검토 및 자료준비가 다 된 사안이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숫자야 빠르게 합산을 하는 등 조합을 하면 되었지만, 기업공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무현황과 향후 10년간의 사업계획서, 향후 10년간 추정 재무제표였다. 이것을 믿고 공모주에 청약을 하거나 말거나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 명에 경리부서는 물론 관련부서들이 불이 떨어져 난리 법석을 피우는 속에 세월이 흘러, 드디어 각각 유력 일간지에 '대정건설'로 명명된 합병된 세 회사의 '기업공개 및 공모주 청약 공고'가 연일 일간지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청약 내용은 액면가 500원 짜리 주당 가격을 주당 1천%의 프리미엄이 붙은 5천 원에 공모하되, 주식 수는 전체 주식의 49%에 해당하는 4,900만 주였다. 주관사는 대정증권이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현대증권으로 하였다. 증거금의 창구는 주거래 은행인 신탁은행으로 단일화 하였다. 청약기간은 단 이틀이었다. D - day는 7월 7일.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아침부터 구름 관중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쁠 것을 예상해 우리의 직원들도 은행 창구에 파견에 질서 유지에 힘썼다. 그러나 이것은 도저히 얼마나 사람들이 몰리는지 질서유지지 안 될 정도로 수많은 국민들이 모여들었다. 이틀 내내 수많은 국민들이 청약을 했다. 2,800억 원 모집에 9,600억 원의 청약 증거금이 몰렸다. 대정의 주식은 사두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아, 돼지저금통까지 탈탈 털어 공모주 청약에 응한 국민들이 무척 많았다. 이를 보고 기업가로서의 책임감을 뼈저리게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공모주 청약은 성공리에 마쳤고, 이 열기를 이용하려는지 이틀 후에는 현대건설
도 기업공개에 나섰다. 우리는 청약증거금 모집에 적용되는 기준에 따라, 2,800억 원 외에는 모두 환불을 해주어야 했다. 환불일도 우리의 기업공개에 참여한 사람들이 돈에 묶여 가급적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2틀 후로 잡았다. 신탁은행에서는 이를 반대했다. 하루라도 공짜로 더 묶어두면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업 윤리 상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이틀 만에 모든 서류정리까지 마치도록 했다. 이에 경리과에서 날밤을 홀랑 세워가며 정리를 하는데, 이튿날 저녁 자정쯤 집에 묵고 있는 내게 전화가 왔다. 공병탁 경리이사였다. 나는 조금은 불쾌한 생각이 들어 퉁명스럽게 받았다.
"무슨 일이오?"
"아무리 주식을 맞춰 봐도 1,360주가 벼서 마감을 못하고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그 주식은 내 지분에서 차감하는 것으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번에 고생이 너무 많았는데, 회식이라도 하고 토요일 날은 전원 쉬는 것으로 하세요."
등록일 : 14.02.18 08:10조회 : 7558/7570
"끊습니다."
'감사' 소리만 하다 전화를 끊는 공 이사였다. 아무튼 나는 이로써 5,000억 원의 거대 자본 기업을 하나 탄생시켰고, 여기에서 내 지분은 51%였다. 이렇게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나는 보수적인 운영을 한 셈이었다. 참고로 이 당시의 주가를 소개하면 종합상사는 대우, 삼성물산 등이 1,200원에서 1,400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고, 종합건설업은 삼환이 1,349원 이고, 나머지는 500원인 액면가에도 밑돌 정도로 가격이 형편없었다. 그러니 우리 주식이 국민들에게 얼마만큼의 신뢰와 아낌을 받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1차 기업공개를 성공리에 마침으로서 한시름 던 나는 머리도 식힐 겸 해서 가족 여행을 떠났다. 돈을 버는 목적이 무엇인가? 가족들과 즐겁게 살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데 본말이 전도되어 일에만 매몰되어 산다면, 그것도 나는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업가로서의 성취감은 크게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본인만의 만족감이고, 가족은 등 뒤에서 한숨짓는다면, 이는 분명 무엇이 잘못 된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가급적이면 가정에 충실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번 가족 여행도 그 일환으로 계획되어진 일이었다. 가족여행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집을 떠나 가족이 함께 놀러 가면 가족 여행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일단 고향집으로 아침 일찍 출발을 했다. 우리만 놀러가기에는 왠지 미안했고, 때 이른 더위가 찾아와 이 더운 날에 일을 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죄스러워서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어머니와 아버지도 함께 모시고 갈 생각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막상 고향집에 도착하니 집에는 또 아무도 안 계셨다. 그래서 나는 혼자 부모님을 찾아 나서려는데 유독 나를 따르는 효정이 '아빠, 같이 가자'며 나를 쫓아 왔다. 일시적으로 같이 가면 아무래도 늦어질 것 같아 거절하려 했지만, 사슴처럼 큰 눈망울이 나의 거절로 눈물이 맺힐 것이 뻔한 지라, 나는 효정을 걸려 함께 찾아 나섰다. 나는 햇빛이 쨍쨍 내려쬐는 들길을 효정의 손을 잡고 걸으며 효정에게 말을 걸었다.
"효정아!"
"네, 아빠!"
"이 더운 날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을 하고 계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무척 힘드실 것 같아요. 이런 날은 일을 안 하고 쉬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농사를 망치는데? 입으로 밥이 못 들어간다고."
"무척 배고플 것 같아요."
"그렇지?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힘들게 일을 하는 줄 알아? 다 너희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를 보내기 위해서야. 그러기 위해서 고생들을 하는 거지."
"그럼, 나는 어른 안 될래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되고, 안 되고 싶다고 안 되는 것은 아니지. 효정이가 내년에는 2학년이 되듯이 자꾸 자라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거야."
"에잉. 나는 어른 되기 싫은데."
이때 내 눈에 더워서 메리야스만 걸친 채, 고구마 밭에서 풀을 뽑아주고 계신 어머니가 보였다. 나는 효정을 등에 업고 걸음을 빨리해 그곳으로 갔다.
"어머니!"
"아니, 전화 한 통 없이 갑자기 웬일이냐?"
"그냥 보고 싶어서요. 오늘은 우리도 오고했으니 좀 쉬시지요."
놀러가자고 하면 어쩐지 안 가실 것 같아서 다른 말로 일단 어머니의 일손부터 멈추게 하는 나였다.
"알았다. 이 고랑만 매고 가자."
이에 나도 같이 거들어 잡초를 뽑아주는데, 효정은 무엇을 뽑아야 할 지 몰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나만 졸졸 쫓아다녔다. 금방 한 고랑의 풀을 뽑은 우리는 함께 집으로 가면서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요?"
"농약치고 계신단다. 이 더운 날 죽으려고 환장을 했지. 장마 지기 전에 쳐놓는다고 고집을 세우니, 원."
"제가 아버지도 모시고 갈게요."
"갈 것 없다. 아마 지금쯤은 다 치고 집으로 가셨지 싶다."
"그럼, 일단 집으로 가볼까요?"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냐? 갑자기 왜 내려왔어?"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내려오나요? 그냥 보고 싶어 왔다니까요."
"너도 나이가 드나보다. 자꾸 부모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하하하.......! 그런 가요?"
이때 효정이 갑자기 물었다.
"할머니 힘 안 들어?"
"힘들기는 너희들 입에 떠 넣을 생각을 하면 하나도 힘 안 들어."
"에이, 거짓말. 나는 더워서 일하는 것 싫은데."
"그래도 어른이 되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된단다."
"그래서 나는 어른 되기가 싫다니까."
"요놈의 주둥이는 누가 깠는지 몰라도 아주 똑똑하네."
이렇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다시 집에 왔다.
집에 와보니 정말로 아버지가 와 계셨다. 찾으러 갔으면 길이 어긋날 뻔했다.
"농약은 다 치셨어요?"
"그래. 무슨 일이냐?"
"오늘은 그만 쉬시지요."
"고구마 밭마저 매야 되잖아?"
어머니를 보고 묻는 아버지셨다.
"얘들도 오고했으니 오늘은 쉽시다."
"그럴까?"
"이왕 쉬시는 것 어디 가까운데 놀러 가시죠?"
내 말에 어머니가 물으셨다.
"어디로?"
"화양동은 어떨까요?"
"너무 멀어."
아버지가 답하셨다.
"그럼요?"
"멀리 갈 것 뭐 있냐? 동네 개울도 좋잖아? 얘들도 고기라도 잡으라고 하면 아주 좋아 할게다."
"투망 있어요?"
"투망은 무슨. 쪽대는 있다. 얼기미(채) 하고."
"알았어요. 그럼, 준비해서 냇가로 가죠."
"그래."
"어머니 삼겹살은 우리가 사왔는데, 상추는 텃밭에 있지요?"
"그럼, 그것 좀 뽑아가고, 김치도 좀 가져가야겠다."
"얘 엄마들 보고 하라 하지요?"
"살림살이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시켜? 내가 하는 게 빠르다."
그 동안에 아버지는 헛간으로 가셔서 정말 쪽대와 채를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고 고기를 잡으면 담아 놓을 그릇으로 조루도 챙기셨다. 아예 양은솥까지 챙긴 우리는 동네 가게에서 라면도 열 봉 사고 해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냇가로 갔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신났다. 내가 풀 섶에 쪽대를 대고 있으면 아이들은 내 지시에 의해 멀리서부터 고기를 몰고 왔다. 텀벙거리며 몰고 와 눈 먼 미꾸라지나 송사리라도 한 마리 걸릴라치면,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아주 좋아했다. 이것도 효정이를 비롯해 중산이, 인정이만 하고, 다정이와 철산이는 제법 머리가 굵어졌다고, 나무 그늘에 앉아 제 엄마들과 함께 삼겹살만 축내고 있었다. 어머니 또한 이 시원한 나무그늘에 계시며 이것저것 참견을 하시는데 반해, 아버지는 구멍이 숭숭 뚫린 채를 가지고 혼자 물고기를 잡으시는데 제법 잘 잡으셨다. 이때 저희들이 어느 정도 먹고 배가 불렀던지 우리보고 삼겹살 먹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그늘 밑의 여자와 큰 아이들이었다. 아버지와 나도 잠시 고기 잡는 것을 멈추고 소주 몇 잔과 함께 삼겹살을 먹었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기를 먹고는 다시 고기잡이에 나섰다. 이렇게 점심때까지 잡으니 족히 20마리는 잡았다. 작은 붕어도 있고, 모래무지, 미꾸라지, 하다못해 송사리도 아이들 때문에 잡아넣은 것도 있었다. 나는 큰 양은솥에 물을 올려놓고 그동안 이 고기들을 손질했다. 그리고 끓기 시작하는 물에 넣고, 라면과 함께 삶았다. 그야말로 어죽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어죽을 작은 그릇에 한 그릇씩 퍼주니 맛있다고 너도나도 다시 빈 그릇을 내밀었다. 이렇게 점심을 먹고 낮잠을 한숨씩 잔 아이들은 오후가 되자 물놀이를 하며, 저희들끼리 즐겼다.
우리는 그늘 밑에 모여 100원짜리 내기 고스톱을 쳤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스톱도 칠 줄 몰라 나와 아내 셋이 치는데, 내가 제일 많이 땄다. 나는 따는 족족 그 돈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여자들은 따면 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고 돈이 떨어지면 지폐를 꺼내 다시 시작하곤 했다.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도 열심히 응원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내들도 요령이 늘어 저희들 끼리 상대편이 약을 걸면 먹지 않는 등, 짜고 치는 바람에 내가 연전연패를 했다. 제미가 덜해진 내가 화투판을 치우게 하니, 그때부터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종당에는 어른들까지 옷들이 다 젖어 속살이 비치는 등 해서, 우리는 더 민망해지기 전에 집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많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많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