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서열 1위 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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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우리는 의외의 낭보를 접하고 무척 기뻤다. 노르웨이 선주사인 오로라 LPG사로부터 VLGC 4척(옵션 2척포함)에 대한 건조 의향서(LOI)를 체결했다는 국제 전화를 받았다. 이를 받고 나뿐만 아니라 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환호했다.
VLCG는 액화석유가스(LPG)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운반하는 4만t 규모의 대형 선박을 말한다. 수주금액은 척당 7600만 달러로, 총 수주액은 3억400만 달러(약 2,706억원)에 달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오로라 LPG는 앞으로 8~12척 가량 선박을 추가로 발주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이는 노르웨이 최대 선사의 중의 하나인 아커야즈 선사 출신의 중역을 우리가 부사장으로 영입했는데, 이 사람이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커야즈(AKER YARDS)가 불황으로 대량 감원을 실시함에 따라, 자진 옷을 벗은 그 회사의 부사장 비욘 올레 비욘슨(Bjørn Ole Bjørnsen) 씨가, 평소
부터 친분이 두텁던 발주처의 회장을 만나 이루어낸 쾌거였다. 나는 이 소식에 고무되어 어제의 고단함도 단번에 날아갔다. 기쁨이 진정되자 전화를 받은 이 팀장에게 내가 물었다.
"비욘슨 씨는 언제 귀국한 답니까?"
"내일이면 한국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소식은 없고요?"
"비욘슨 씨가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대정그룹이 능력이 된다면 노르웨이 선사를 하나 인수했으면 좋겠다는 푸념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함부로 이 팀장에게 했단 말입니까?"
"내가 이야기 끝에 물었죠? 한국인에게 기술 자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떠냐고요."
"그래서요?"
"차라리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보다는 그게 빠를 것 같다며 나온 이야기입니다."
"흐흠.........!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마땅한 업체가 있을까요?"
"그가 귀국하면 한 번 물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낫겠네요. 아무튼 수고했습니다."
"뭘요. 저도 기쁜 소식을 전하니 기분이 좋은 걸요."
방긋 미소를 짓고 자리를 떠나는 이 차장이었다. 다음 날 오후.
비욘슨 씨가 이 차장의 말대로 귀국을 했다. 나는 그의 귀국 시간에 맞추어 이 미연 차장을 김포공항으로 급파해 바로 그를 본사로 맞아들이도록 했다. 오후 3시가 되자 그가 이 미연 차장을 따라 비시실로 들어왔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나는 그를 반갑게 맞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고 열심히 흔들었다.
"헛수고가 되지 않아 다행입니다."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회장실로 갑시다."
"네, 회장님!"
나는 눈짓으로 이 차장과 비서실장을 따라오도록 했다. 모두 자리를 잡자 내가 물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쉽게 수주를 한 것 같아 어리벙벙합니다만........?"
"사실 그게 내가 대정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입찰을 받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아커야즈는 유람선이나 중소형급 페리선이나 만들지, 그런 배를 만들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막상 부임하고 나니 그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나 사장님과 긴밀히 상의하여 입찰에 참여한 게 금번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네요."
"아무튼 고생하셨고, 고맙습니다. 헌데 어느 선사를 인수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무슨 말 이예요?"
"얘기 도중 푸념 비슷하게 한 말을 가지고........"
머리를 긁적이며 이 팀장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입을 열었다.
"사실 말로는 내가 지진 옷을 벗었다고 했지만 아커야즈에서 해고된 것이나 마찬가지 예요. 세계 경제가 불황이다 보니까 유람선 주문도 뚝 끊겼어요. 그래서 아커야즈 측에서는 지분 일부를 매도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그룹이 이를 인수한다면 내 분풀이도 되겠다 싶어 꺼낸 말이.........."
"아커야즈 측은 얼마 정도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나요?"
"약 40%입니다."
"얼마면 인수 할 수 있을까요?"
"대략 8억에서 10억 달러입니다."
"그렇게 비쌉니까?"
"야커야즈를 얕잡아 보지마세요. 세계 3대 유람선 제조업체일 뿐만 아니라, 중소형 페리 분야에서는 건조실적 세계 랭킹 1위랍니다. 그러고 유럽 전 지역에 18개 야드(yard:개별 조선소)를 갖고 있는 큰 조선소예요. 작년 수주실적만 해도 48억 달러에 달하는 메머드 조선소라는 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유럽인의 자존심상 후발조선국에서 이를 인수하면 경영권 장악이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도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계속 하시죠."
"공개적인 매집을 통해 압도적인 지분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문제는 복잡합니다."
"왜요?"
"유럽 전역에 퍼져 있어, 각 나라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커요. 일례를 들면 프랑스의 생 니제르 지방에도 아커야즈 조선소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군함도 만들어요. 그런데 이를 프랑스 측에서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뭐, 방산기술을 빼간다는 등의 이유를 붙이겠지요. 군함 건조가 아닌 다른 분야의 배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말 이예요."
"잘 알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하고요. 내부적으로 한 번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푹 쉬시고 일에 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가 물러가자 나는 이청신 정보실장을 불러 노르웨이의 아커야즈 조선소에 대한 정보를 획득해 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러면서 내심, 그가 어렵다하니 이상하게 정복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며 꼭 인수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6월 초가 되었다. 우리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을 접했다. 5월 달에 입찰에 참여한 쿠웨이트의 석유화학 플랜트 입찰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우리가 제1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어 금액을 조정하다가, 금번에 확실한 수주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번 우리가 쿠웨이트에서 따낸 공사는 석유화학플랜트로, 위치는 쿠웨이트의 수도 쿠웨이트시티 남쪽 45km 부근이었다. 이번 공사의 내역은 알하마디와 압둘라 정유공장의 생산량을 늘리고, 유황 함량이 낮은 청정연료 생산 플랜트를 짓게 되는 공사였다. 사업비만 총 120억 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1조 680억 원 규모였다. 이중 대정엔지니어링은 37억 9천만 달러짜리 정유공장 및 신규 확장 사업과, 48억 달러짜리 청정연료 생산 공장을 짓게 되어 있었다. 현대건설은 나머지 공사 중에서 공장설비 개선 분야를 맡게 될 것이다. 부대공사의 하나인 이것을 내가 주선해서 테크닙 측으로부터, 수주 성공 시 사전에 주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이 공사 금액은 12억 5천만 달러였다. 아무튼 이번 공사는 완공까지 장장 4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쁜 소식은 하루 차이로연이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유럽에서 날아들었다.
우리가 아커야즈 지분 39.4%(4,456만 주)를 약 8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이 기쁨도 잠시 나는 여세를 몰아,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증권시장에서 공개 매집을 지시했다. 완전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세월이 좀 걸릴지라도 어정쩡하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고, 경영권을 장악해 그들의 고급 기술도 입수하고 싶었다. 월이 되니 날씨가 더웠다. 아직은 초라 덜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더 더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간혹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날도 있어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다. 나는 일요일을 맞아 모처럼 아이들까지 전부 이끌고 잠시 기분전환 삼아 촌의 고향집을 찾았다.
집을 찾아드니 예고도 없이 와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삽살개 한 마리만이 오래간만에 봤는데도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나는 재 너머에 있는 우리 밭을 찾아갔다. 아무래도 이 맘 때쯤이면 밀을 베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밀농사라고 해서 많이 짓는 것은 아니고 촌에서 사서 먹지 않을 만큼만 지어 자급자족하는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대 부대를 이끌고 그 밭에 가보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밀밭에 엎드려 밀을 베고 계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 꼬마들이 먼저 좁은 들길을 따라 뛰었다.
"아니, 너희들이 어쩐 일이냐? 그러다 넘어져 다친다."
어머니가 기겁을 해서 낫은 그냥 밀밭에 팽개치시고 달려 나오셨다. 아버지도 일손을 놓고 밀밭을 걸어 나오셨다.
"으앙........!"
아니나 다를까 인정이가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음을 터트렸다. 제일 작은 놈이 언니 오빠들을 쫓아가려니 이런 일이 꼭 생긴다. 아니래도 인정은 유독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어머니가 그런 인정을 안아 일으키며 달랬다.
"아이고 착해라, 우리 인정이! 어디 아파? 이 할미가 호 해줄게."
할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금방 울음을 그친 인정이 바지를 툭툭 털며 말했다.
"할머니, 괜찮아. 이제 다 나았어!"
"아이고 착해라. 우리 인정이! 누굴 닮아 이리 착하노?"
"어머니 저요."
명희가 얼른 나섰다.
"너는 안 닮았다."
"왜요?"
"아직 손자를 못 낳으니, 안착하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머니!"
"그게 우리 강 씨네 집안의 법이다."
"별 법이 다 있네."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의 점점 불러오는 배를 어루만져 보는 명희였다.
"그만 집으로 가자."
그때 어머니의 말을 받아 아버지가 나서셨다.
"마저 베어야 하지 않겠소?"
"오늘 못하면 내일 하죠."
그러자 내가 나섰다.
"우리 있을 때마저 베고 말죠."
"낫질도 못하는 사람이 뭔 도움이 된다고."
"저도 벨 수 있어요. 어머니!"
"낫질 한 번 안 해본사람이 잘 베겠다."
"낫질은 기본 아니 예요?"
그러면서 나는 성큼성큼 밭으로 들어가 어머니가 팽개쳐 놓은 낫을 집어 들고 밀을 몇 단 베기 시작했다. 이때 중산이 사내코빼기라고 자신도 하고 싶은지 나섰다.
"아빠, 나도."
"네가 무슨 밀을 베, 이놈아!"
"할 수 있어. 아빠!"
"그럼, 어디 해봐라."
이제 일곱 살 유치원에 다녀 제법 낫질을 하는 중산이었다.
"생각보다 잘 하는데?"
"그렇지 아빠?"
신이 나서 싱긋 웃고 낫질을 하던 놈이 갑자기 낫을 팽개치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
"아니!"
나뿐만 아니라 온 식구가 다 깜짝 놀랐다. 낫을 잡아당기다가 미처 힘을 제대로 안 주었는지, 밀은 안 베어지고 낫이 손을 타고 올라와 왼 무명지를 크게 베어놓은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피가 안 통하는 것인지, 뼈가 보이는 것인지 손가락을 보니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하얗다. 깜짝 놀란 내가 손가락을 자세히 살펴보니 다행히도 뼈까지 다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곧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급한 마음에 사방을 둘러보나 약이나 지혈을 시킬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웃통을 훌훌 벗어, 안에 입고 있던 하얀 런닝 셔츠를 힘을 주어 쭉 찢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손목부터 손가락에 이르기까지 지혈을 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피가 배어나오는 것이 아무래도 지혈이 덜 된 듯싶었다.
"얼른 집으로 가자!"
"약이 있어요?"
"있다, 있어. 어서 가자!"
나는 겁이 나서 하얗게 질린 중산을 업고 뛰었다. 탈색되기는 마찬가지인 미정도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소리만 연발하며 내 뒤를 쫓았다. 아버지와 두 부인도 자신의 아이들을 챙겨 내 뒤를 따랐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숨을 헐떡이고 있는 어머니에게 내가 소리를 질렀다.
"약이 어디 있어요?"
"거 매달렸잖아, 지칭개 꽃!"
"지칭개 꽃 이 뭐야?"
투덜거리며 어머니 손가락을 따라 처마 밑을 살피니, 하얗게 핀 꽃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그 놈을 다친데 바르면 금방 아물어."
나는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하얗게 마른 꽃을 따서 중산의 지혈된 손가락을 풀고, 그 위에 꽃을 덮어 씌었다. 그러자 조금씩 나오던 피도 완전히 멎고, 민들레 홀씨 같은 놈이 딱 달라붙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엉겅퀴 꽃으로 그 꽃잎을 말려놓으면 지혈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약이 없던 옛날부터 내려오는 민간처방의 상비약이었다. 피가 안 나자 계속해서 겁에 질려 울던 중산이 놈도 이제야 살았다 싶은지 울음을 뚝 그쳤다.
이제야 달려온 미정이 덩달아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집에 구급함 하나 없어요?"
"구급함이 다 뭐냐? 우린 그런 것 모르고 살았다."
"오늘 당장 증평에 가서 구급함 하나 사다가 집에 비치해놔야겠어. 급할 때 쓸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러고 중산이도 아무래도 꿰매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지금 증평으로 나가자고."
"네."
미정이 제일 먼저 대답을 하고 중산을 이끌고 차로 향했다. 이렇게 초여름에 하루 휴가를 잡은 날은 엉망이 되었다. ============================ 작품 후기 고맙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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