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98화 (198/322)

< --재계 서열 1위 다지기.

-- >

86년 5월 15일.

나에게는 오늘이 무척 뜻 깊은 날이었다. 오늘이 방송허가를 받고 그간 준비를 해온 서울방송(SBS)이 첫 전파를 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오전 10시에 나는 정동 임시 사옥에서 회장 취임식을 갖고 직원들에게 훈시도 했다. 이어 오후 5시에 전국을 향해 첫 전파를 쏘았다. 서울방송이 개국을 해, 첫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방송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는 90년도 개국하는 SBS의 전신으로 개국 시기를 4년 앞당긴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다른 점도 있었다. SBS는 서울과 경기 일원을 가시권으로, 좀 더 나가면 강원 영서와 충청도 북부가 가시청 권역이었던데 반해, 금번의 SBS는 그런 제한을 두지 않고 전국에, 심지어 제주도까지 가시청 권역에 두는 전국방송이 다른 점이었다. 아무튼 5시가 되자 개국을 알리는 뉴스가 제일 먼저 첫 전파를 탔다. 남자 아나운서와 여자 아나운서 2명이 화면에 나와 SBS의 개국 소식을 전하면서, 공

공연히 상업방송임을 표방했다. 이어 당시의 보도 지침에 따라 '땡전뉴스'가 시작 되었다. 즉 뉴스의 가치에 관계없이 전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의 동정이 먼저 보도되고 나서, 뉴스 가치에 따라 방송이 실시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지침에 따라 전 대통령이 SBS 개국을 축하하는 영상메시지가 공개되고 나서 다음 뉴스가 진행되었다. 이어 내가 회장으로서 사원들 앞에서 취임식 하는 장면과 함께, 직원들을 훈시하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다음으로는 장강재 사장의 간략한 취임사와 훈시가 보도 되었다. 이어 각계각층의 SBS 개국을 축하하는 영상메시지가 한동안 전파를 탔다.

그 다음부터 오늘의 메인 뉴스라 할 수 있는, 오늘 남북한이 판문점에서 대좌한 소식, 또 도심에 교통난 해소를 위해 고층빌딩의 신축을 금지 하고, 자동차 세율을 인상하다는 뉴스가 차례로 보도 되었다. 비서실에서 잠시 이를 지켜보던 내가 김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갑시다."

"네, 회장님!"

나의 지시에 따라 김 비서실장은 물론 두 비서실 팀장도 내 뒤를 따랐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내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 출발 했겠지요?"

"네, 회장님! 전부 먼저 신라호텔로 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7시에 신라호텔에서 각계각층의 고위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리셉션이 열리게 되어 있었다. 신라호텔은 1973년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있던 서울 장충동 영빈관을, 삼성그룹이 인수해 지금의 호텔신라로 만든 것이다.

내가 이 호텔을 우리의 리셉션 장소로 선택한 것은 그간 소원했던 삼성그룹과의 친교를 회복할 목적이 다분했다. 굳이 척을 져서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내 지시에 따라, 비서실에서 적극 교섭해 사전에 오늘의 리셉션 장소로 결정된 것이다. 방금 뉴스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마이카 붐이 일어 도로로 쏟아져 나오는 차량이 매일 눈에 띄게 는다고 할 정도로 서울 도심의 교통난이 이제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더군다나 지금부터 퇴근시간이라 그 정체는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 일찍 출발한 면도 있지만 오늘의 리셉션의 주최자로서 사전에 진행 상황을 점검할 필요성도 있어서, 나는 물론 그룹의 사장단 등 주요 간부들이 서둘러 현장으로 떠난 측면이 강했다. 나 또한 이런 차원에서 보통 때보다는 일찍 그룹 빌딩을 출발한 것이다. 아무튼 6시가 조금 지나 신라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이곳은 잔치 집 분위기였다. 사전 점검을 하는 그룹 내 간부들이 곳곳에 눈에 띔은 물론, 방송의 주요 간부들까지 사전 점검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 중에는 금번에 사장으로 취임한 한국일보 회장 장강재 씨도 보였는데, 나를 보자마자 깍듯이 목례를 하며 나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별 말씀을......."

"잠시 이야기 좀 나눌까요?"

"네, 회장님!"

내 말에 우리는 미리 여유 있게 잡아 둔 2층의 객실로 향했다. 물론 장 사장이 앞장서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객실 응접소파에 자리를 잡자 내가 장 사장을 치하했다.

"그동안 개국 준비를 비롯해 인재영입 등 여러모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뭐, 별로 고생한 것은 없습니다만, 회장님의 치하를 들으니 기분은 좋군요."

"리셉션은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죠?"

"네, 회장님!"

"처음에 제가 만나 얘기한 대로 저는 명목상의 회장으로 남고, 가급적 방송에는 관여를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사장님께서 전권을 쥐고 방송을 잘 이끌어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책임이 무겁지만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의 1등 방송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오늘 3부 요인들은 다 오는 건가요?"

"네. 대통령 각하께서는 직접 못 오신다고 벌써 축하 화분과 함께, 박영수 비서실장을 파견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다 오시는 거고요?"

"그렇습니다. 대통령을 대리에 정부에서는 노신영 국무총리, 이재영 국회의장, 김용철 대법원장 등 모두가 참석 의사를 전하셨습니다. 여기에 리처드 워커 주한미대사를 비롯해 주요주한 외교사절들이 전원 참석하는 것으로 통보가 왔습니다."

"성황을 이루겠군요."

"그렇습니다. 또 재계에서도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회장, 구자경 럭키금성 회장 등이 모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흐흠........! 혹여 너무 비좁지는 않을 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연회장이 크니 모두 수용할 것으로 압니다."

"2부의 진행도 차질이 없겠지요."

"TV에 방영될 개국축하 쇼에 나온 연예인들이 그대로 다 섭외가 되어, 2부 공연을 빛내 줄 것입니다."

"방송이 녹화였기에 가능한 얘기겠지요?"

"그렇습니다."

"아무튼 잘 진행되기를 바라겠고,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외람된 이야기입니다만, 감개를 금할 수가 없군요. 배달을 하던 어린 소년이 기자를 거쳐 이제는 대한민국의 으뜸기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빠른 시간 안에 제4의 권부라는 언론매체의 회장직에 까지 올랐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홍소를 터트리는 장 사장의 만면에는 진정으로 기쁜 빛이 가득했다. 그의 말이 좀 민망하기는 해도 나를 칭찬하는 말이기에 뭐라 할 수 없어 나는 잠시 딴전을 치다가, 나도 리셉션 장을 한 번 점검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검이 문제가 아니었다. 30분 전부터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연회장 입구 레드카페를 밟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하객들을 맞아 악수를 하는데 벌써 손이 뻐근할 정도였다. 예의도 없이 어느 인간은 얼마나 손을 꽉 쥐는지 단단한 내 손이 고통을 느낄 정도였다. 보나마나 이 상태로 계속 손님을 맞다가는 내일 아침에는 손이 퉁퉁 부을 것 같았다. 이에 잠시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객실에 앉아 있는데, 노크와 함께 이미연 차장이 들어와 말했다.

"정주영 회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몇 시인데 벌써 오셨소?"

"20분 전입니다."

"그 양반 이렇게 빨리 올 사람이 아닌데,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일찍 왔지?"

"사돈지간이니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이 아닐까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무슨 사연이 있겠지."

말과 함께 객실을 벗어난 나는 1층 로비로 향하고 있었다.

"여어! 강 회장!"

마침 현관을 들어서고 있다가 손을 번쩍 들어 아는 체를 하는 정 회장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일찍 오셨습니까?"

"하하하.........! 거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네. 내 오늘 울산에 내려갔었는데, 오늘 방송 개국을 깜빡한 거야. 스케줄 비서가 알려줬을 때는 차로 출발해서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울산공항으로 달려갔지. 이게 재수 없느라고 그러는지, 만석이야. 그런데 우리 임원 한 놈이 서울 출장을 간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그 놈은 다음에 출장 가라하고 내가 빼앗아 타고 왔지. 하하하........!"

종내는

'나 잘했지?'

하는 의기양양한 어린애 같은 표정을 보니 나 또한 실소를 금할 수 없어 같이 웃고 말았다. 웃음이 남은 표정으로 내가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급히 왔더니 갈증이 나네."

"안에 들어가시면 모든 음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

"네."

이때 생각지도 않은 노신영 국무총리의 이른 출현에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정 회장이 말했다.

"뭐 하는 게야. 어서 가보시게."

"네, 그럼. 이 차장이 안내 좀 해드리세요."

"네, 회장님!"

"거, 잘 됐고만. 냄새 나는 남자보다는 향기로운 분내 나는 여자가 백 번 낫지."

"그 연세에도 여자를 밝히시는 겁니까?"

"나 아직 팔팔해. 보여줘?"

이 말에 가까이 있던 이 차장이 질겁을 하고 몇 보 물러났다.

"하하하.......! 도망가지 않아도 돼! 요새 사업에 너무 신경을 썼더니 이놈이 말을 안 들어."

이 또한 너무 지나친 농담이라 이 미연 양이 발그레 홍조를 띠고 서 있다. 그러나 나는 노 총리가 지척지간에 이르렀으므로 그를 더 이상 상대할 수 없었다.

"어서 오세요. 총리님!"

"축하합니다. 강 회장!"

"감사합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만사를 제쳐놓고라도 꼭 와야죠. 괜히 언론이 밉보여 씹힐 필요는 없잖아요."

점잖은 분까지 이런 대사를 남발하니 오늘 단체로 어떻게 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는 나였다. 아무튼 언제 왔는지 뒤에 서 있는 올리비아 리에게 노 총리를 맡기고 나니, 이른 시각인데도 벌써 김용철 대법원장이 근엄하게 무게를 잡으며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대법원장님!"

"축하드립니다. 강 회장님!"

나이 차가 상당함에도

'님!'

자 까지 붙여가며 예우하는 것을 보니, 법복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는 나였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법원장님!"

새삼스러운 나의 인사에 그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오늘은 그 어느 리셉션장보다 성황을 이룰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으로 드실까요."

"고맙습니다."

시종 깍듯한 김 대법원장이었다. 내가 막 김 대법원장을 손수 안으로 안내하려는데, 이번에는 리처드 워커 주한미대사가 몇몇 대사들과 담소를 나누며 전면에 출현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사님!"

"축하하오. 축하해!"

"감사합니다. 대사님!"

"내 이분들을 소개하리다."

"네."

그때부터 몇몇 대사를 소개하는데, 어느 사람은 국명도 잘 모를 나라의 대사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를 전혀 내색할 수는 없어 나는 시종 똑같은 자세로 그들을 예우했다. 아무튼 그를 들여보내고 나니 이번에는 꼬장꼬장하게 생긴 이병철 삼성회장이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

"축하합니다. 강 회장님!"

70 고령임에도 내게 '임' 자를 붙여 깐깐한 그의 면모를 드러내는 이 회장이었다.

"너무 부럽소?"

"네?"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부분 말이오."

"아~! 네!"

"우리는 계속해서 투자만 하고 결실 하나 못 거두는데, 세계를 주름잡고 있으니....... 계속 투자를 해야 할지 말지, 요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오."

"넉넉히 이해가 갑니다. 아무도 모를 총수들만의 피 마르는 고통이지요."

"허허.......! 하긴 젊은 강 회장님도 같은 고뇌일지니, 남의 일 같지가 않소. 남은 이룩한 부를 보고 모두 부러워하겠지만, 나만은 그 말 못할 고통에 일종의 연민이랄까, 그런 것을 느낀단 말이오."

"동병상련이 아닌가 합니다."

"맞소. 이 심정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지."

"그렇습니다."

"아무튼 우리 그룹의 호텔을 연회장소로 선정해줘서 고맙소. 내 일찍 둘러본다는 게 일본에서 손님이 찾아와서 말이오."

"참석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무슨 영광씩이나! 우리 좀 더 자주 만납시다. 강 회장님 혼자만 잘 나가지 말고, 네게도 훈수 좀 해주고 말이요."

"지나친 겸양이십니다."

"아니오. 내 폐부에서 우러나서 하는 말이니, 우리 그룹을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소."

"알겠습니다. 회장님!"

"저기 또 누가 오는 모양이니 나 먼저 들어가리다."

"네, 회장님!"

깍듯이 목례를 해보인 나는 다음손님인 이재영 국회의장을 만나러 갔다. 이때 나는 그보다도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갔으니 내 마누라들이었다. 오늘 이 여자들에게는 이렇게 비하된 표현이 맞았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일찍 준비를 해서 손님을 맞을 것이지. 이제야 나타나다니, 한마디로 괘씸했다. 보나마나 이유는 뻔할 것이다. 미장원에서 머리 손질하느라 늦은데다가, 차가 러시아워로 인해 너무 정체되었다는 변명일 것이다. 손님 많은데서 내가 화를 낼 수도 없어 노한 눈을 한 번 부릅떴다가,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 국회의장을 맞으러 나가는데, 세 부인은 저희들이 한 짓이 있어서인지, 일제히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신속히 내 뒤로 접근해 왔다.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즐거운 날들 되세요!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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