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94화 (194/322)

다음날 오전 8시.

각 분야의 조회를 마친 나는 이번 인수전에서 핵심 역할을 한 세 명을 다시 불러들였다. 나는 잠시 이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현대와의 정산은 끝났죠?"

"네. 어제 은행 마감 시간 직전에 그들의 주거래은행으로 송금해주었습니다."

김재익 기획실장이 답변을 했다.

"사명(社名)은 변경했습니까?"

"네. 어제 최종 결론이 지어진 한국중공업 외에, 이번에 우리가 인수한 대한조선공사에 딸려온 업체까지 사명은 물론 대주주 변경은 물론 고시까지 끝났습니다."

김재익 실장의 말 그대로였다. 우리가 조선공사를 인수함에 있어서 몇 몇 업체까지 덤으로 인수하게 되었는데 그 면면을 살펴보면 이러했다.

조선공사의 모기업인 극동해운(極東海運), 그 자회사인 부산수리조선소(釜山修理造船所), 광명목재(光明木材) 등이 그들이었다.

극동해운은 역사가 근 100년에 가까운 우리 기업 중에서는 드물게 오래된 기업체였다. 그러나 오래된 역사만큼 적응을 못해 일반화물선이 20척에 컨테이너선은 5척 밖에 없어, 운항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기업이었기에 끼워 팔기로 우리에게 인도된 기업이었다. 부산수리조선소는 대형조선소가 우리나라에 많이 생기자 요즈음은 그렇고 그런 기업으로 전락해 일감부족으로 만성적자를 기록하는 기업체였다. 광명목재는 이제 재계 1위가 된 대정그룹 전체로 볼 때는 언급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은 업체로, 이 또한 사양 산업인 업종을 제대로 변신시키지 못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회사였다.

나는 이들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김재익 기획실장에게 물었다.

"정상화 방안은 나왔습니까?"

"아직 작성 중입니다."

"내가 요즘 너무 성급한가요?"

"그런 감이 있습니다."

나를 오랫동안 보필해온 김경제 비서실장이 민망한 표정으로 답을 했다.

"흐흠........! 나도 느끼고 있긴 한데 고치려 해도 잘 안 되네요."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빨리 변하니 회장님도 조급증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렇긴 하죠."

김 실장의 답변에 그렇게 답을 하고, 나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오늘은 회의가 어렵다고 보고 세 사람을 내보냈다. 파하기 전 나는 김 비서실장에게 이야기 해 세 사람을 불러드리도록 주문했다. 나의 명에 의해 그룹 빌딩 내에 있던 사람이 먼저 들어왔다. 최우선 대정무역 사장이 그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일단 거 앉아요."

"네, 회장님!"

나는 아직도 나를 어려워하는 최 사장을 맞은편 소파에 앉히고 질문을 했다.

"요즈음 수출은 어떻습니까?"

"선진 시장의 불황으로 모두 어렵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우리 회사만은 펄펄 납니다."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다름이 아니라 금번에 우리가 중공업과 조선을 인수한 것은 아시죠?"

"네, 회장님!"

"그래서 말인데........ 조선이 지금은 일본과 한국이 강세지만 예전에는 영국과 노르웨이 등 북구권이 강세 아니었어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내 알기로 요즘 그들이 한국과 일본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과정에서 폐쇄되는 조선소도 많고 쫓겨나는 일류 기술자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네, 회장님!"

"유럽의 각 지사에 명을 내려 이들 중 우리가 인수한 조선소의 사장이나 부사장 급으로 영입할 인재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해주세요. 특별히 기술이 빼어난 인재라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즉각 유럽지사에 명해 회장님의 지시를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뭐,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유럽과 특히 미국 등이 보호무역 장벽을 점점 높이는데, 현지 공장 등을 세우려면 가급적 빨리 세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시장 개척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그룹 차원에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 공장을 짓는 문제는 기획실에서 지금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고 있으니, 곧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겠으나, 중국 진출 문제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그 부분도 앞으로 계획을 세워 좋은 결과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의 인사에 빙긋이 웃는 것으로 답을 한 나는 조만간 술 한 잔하는 말로 그를 위로하고 내보냈다. 그러고 나서 20분 정도 지나니 정보 팀의 보강으로 파워가 더욱 막강해진 이청신 국내 실장이 외부에서 호출을 받고 급히 들어왔는지 실내에 들어와 한동안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비서실에 바로 차를 주문했다.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아무리 내가 불렀기로서니, 그렇게 급히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조금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본인의 운동 부족이 아닌가 합니다."

"운동도 해가면서 쉬엄쉬엄 하세요."

"앞으로 운동은 하겠습니다만, 쉬엄쉬엄 하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좋아요. 다름이 아니라 금번에 새로 인수한 조선소에 사람이 필요해요. 해서 유럽 쪽으로 실력을 겸비한 사장이나 부사장급 아니면 이사급이라도 좋아요. 뛰어난 인재들을 해외 파트에 지시해서 물색 좀 해봐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하고, 중국 시장에 대해서 상세한 조사를 부탁합니다. 거기에 만약 우리가 현지에 공장을 세운다면 어느 분야, 어느 지방이 적당한지도 물색해보고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때 신입 여비서가 커피를 두 잔 타왔으므로 우리는 이를 마시고 헤어졌다. 그리고 30분이 있으니 대동화학 사장으로 재직 중인 배순훈 사장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네. 거기에 앉으세요."

"네, 회장님!"

그가 앉기 바쁘게 내가 물었다.

"요즘 대동화학은 어떻습니까?"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했더니 점차 나아지고 있으나, 1년 정도는 더 시간이 경과해야 흑자로 돌아설 것 같습니다."

"그곳을 맡길만한 인물은 있습니까?"

"현 부장인데 아주 성실하고 개혁마인드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됐군요. 오늘부로 그 사람을 사장으로 임명해 모든 인수인계를 끝내고, 내일부터는 창원에 있는 한국중공업으로 출근하세요."

"네?"

"너무 갑작스러운가요? 나는 배 사장님이 가전부분마냥 중공업도 흑자 경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일으켜 세울 것으로 믿어요."

"그 부분은 제 전공이 아닙니다. 회장님!"

"지금 전공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를 개혁할 사람이 나는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임원은 모두 정리하고 배 사장이 믿을만하다 싶은 사람들로 경영진부터 물갈이 하세요. 하고 앞으로는 그 업종에 원자력이나 정유 플랜트 부분도 사업 아이템으로 추가시키도록 하세요. 우리가 그 부분의 영업을 대폭 보강할 테니까요."

한국중공업(韓國重工業)은 현재 발전설비, 산업설비, 선박용 엔진 등을 주로 생산하고 있었서 내가 그런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일부터 관련 분야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며 꼭 중공업도 그룹의 효자 업종으로 만들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장으로 발령을 내는 것이고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앉은 자세에서 꾸벅 인사까지 하는 배 사장을 만류하며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종업원들도 국영기업이라 많이 나타해졌을 겁니다. 가전처럼 1년 안에 흑자가 나지 않는 부분은 전부 정리한다고 해서 바짝 조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 지시는 여기까지고요. 뭐, 다른 묻고 싶은 사항은 없나요?"

"아직 뭐가 뭔지 모르니, 질문할 것도 없네요."

"그렇겠죠. 그럼, 이만 일어나시죠. 바쁘실 테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정중히 내게 인사를 한 그가 빠른 걸음으로 회장실을 벗어났다. 나는 그를 보내고 곧 청주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받았다. 함께 근무하는 약사인 모양이었다.

"강경순 씨 좀 바꿔주세요."

"누구라고 말씀 드릴까요?"

"오빠입니다."

"아, 네! 회장님?"

"그렇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약을 짓고 있어서........"

"알겠습니다."

3분 정도 지나자 경순이 전화를 받았다.

"오빠, 왜?"

"내일이 토요일이지?"

"오빠는 얼마나 바쁘길래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내는 가봐."

"내가 요즈음 그렇게 산다. 다름 아니고 내일 좀 올라와라."

"내일 몽윤 씨가 내려온다고 벌써 약속 잡혔는데?"

"정정하면 안 되겠니? 네가 올라오는 것으로. 데이트는 저녁에 하고 나랑 점심을 같이 하는 것으로."

"급한 일이야?"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면 아니지만, 내 묻고 꼭 할 이야기가 있어서."

"전화상으로는 안 돼?"

"곤란하니까 그러지."

"알았어요. 오빠! 일단 내가 몽윤 씨 하고 통화를 한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릴게요."

"그래. 별일 없지?"

"되게 빨리도 묻네요."

"동생들은?"

"잘 있어요."

"알았다. 끊는다."

"네, 들어가세요."

"그래, 그래."

나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물끄러미 천정을 바라보았다. 사업도 좋지만 가족이나 인관관계도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재 둘째 여동생 경숙은 청주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청주백화점 경리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룹 본사 경리부서에 일하길 원했으나, 서울은 무섭고 도저히 정이 안 간다며 청주에 머물러 있었다. 막내 경자는 올해 스물한 살로 큰언니 경순처럼 약사가 되겠다고 충북대 약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물론 청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 세 자매가 청주에 살아도 나는 명희가 청주를 떠나온 이래로 요즈음은 청주에 자주 가지를 못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특히 여동생들에게 너무 등한히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아무튼 이날 오후에 경순에게 다시 전화가 왔는데, 내일 일찍 올라오겠다는 답변을 해왔다. 다음날 오전 11시 30분.

현대 여성답지 않게 운전을 못해 차도 없는 동생 경순을 위해 나는 직접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다. 내가 차에 기다리고 있으니 경순의 얼굴을 하는 경호원이 그녀를 데리고 내 차로 왔다.

"어서 오너라!"

"웬일, 오빠가 직접 마중을 다 나오고?"

"일단 타라."

"네!"

옆자리에 조신하게 앉는 경순을 보고 내가 물었다.

"점심으로는 뭘 먹었으면 좋겠니?"

"그냥 오빠네 집에 가서 먹으면 안 될까요?"

"언니가 싫어할 걸?"

"잡혀 사는 거야?"

"아이들 키우며 살더니 점점 드세지네."

"참, 내........!"

어이가 없는 얼굴로 나를 잠시 바라보던 경순이 말했다.

"오빠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구나."

"다투기 싫어서.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려나?"

"호호호.......! 하여튼. 그럼, 레스토랑에 가서 칼질 한 번 할까?"

"가든은 어때?"

"학교 다닐 때 레스토랑에 다니는 얘들을 보면 부러웠거든."

"집에 돈은 충분히 줬는데.......?"

"두 분이 다 짠돌이잖아."

"알만하다. 그럼 그곳으로 가자."

이렇게 합의를 보자 내가 말했다.

"부근에 유명한 레스토랑 있으면 갑시다."

"네, 회장님!"

비로소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빠!"

"왜?"

"현대하고는 잘 된 거야? 오늘 아침에 또 통화를 했는데, 분위기가 다르던데. 가식이 아닌 진짜로 잘 대해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

"내가 너 때문에 몇 백억은 손해를 봤다."

"왜, 나 때문이야?"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사업적인 이야기를 여기서 까지 하면 골 아프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그럼, 네가 솔직히 답해라."

"뭐든지."

"뭐든지."

"몽윤이 좋으냐? 싫으냐?"

"음.......! 솔직히 그가 밑지는 것 같아. 모든 걸 떠나서 사람도 좋고."

"그럴 것 같아서 내가 손해를 보았단 말이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나는 내 동생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고마워, 오빠! 아무리 내가 발버둥을 쳐도 오빠의 그늘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나봐."

"오누이 지간에 무슨 말이 그러냐?"

"인간적으로 오빠를 이겨 보고 싶은데, 그럴 가능성은 없고. 다만 더 이상은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았는데, 쉽지가 않네."

"오빠가 생색 좀 내려고 했더니 분위기가 이상해지려고 하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젊은 내가 너무 돈을 많이 벌다보니 질시의 시선이 많아. 너는 모를 것이다 만은, 70년대에 율산 등과 같이 젊은 오너들이 한때 무척 잘 나간 적이 있어. 그러나 딱 한 방이었어. 재계의 모함을 최고 통수권자가 수용하니,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나고 말았지. 나도 그런 꼴 안 당하려고 일종의 보험 든

다는 생각으로, 정 회장에게 양보한 측면도 있다. 그러니 너무 그런 생각 마라."

"아무튼 고마워, 오빠!"

"그리고........"

"말씀하세요. 오빠!"

"너도 방송에서 듣고 신문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 오라비가 제일 부자다. 재계 서열 1위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 재산도 제일 많단 말이란다. 비례해서 영향력도 막강하고. 그러니까 이 오라비를 믿고 몽윤과의 관계에서도 너무 저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제 생각도 그래요. 혼인을 안 하면 안 했지,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그 집안의 가풍을 무시하거나 그런다는 것이 아니라, 부부지간에는 평등하게 지내고 싶은 게 제 솔직한 속내 예요. 물론 남편으로서의 예우는 깍듯이 해야죠."

"그런 정신자세면 됐다."

이때 차가 멈추어서고 경호원이 말했다.

"회장님, 다 왔습니다."

"그래요? 내리자."

"네, 오빠!"

우리는 곧 차에서 내려 이층에 위치한 '미락(味樂)'이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경호원들도 줄줄이 차에서 내려 뻗치고 섰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고 조성택 경호조장에게 말했다.

"같이 식사를 합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렇게만 말하면 자신들끼리 교대로 식사를 할 것이다.

"어서 오세요! 혹시 강 회장님?"

마른 체형에 안경을 낀 지적으로 생긴 여인이 무심코 나를 맞다가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 조용한 방 있으면 하나 주세요."

"저희들은 별도의 방은 없고요. 특별히 칸막이를 하여 보호되는 공간은 있습니다."

"그럼, 그 쪽 자리로 주세요."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사인 한 장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하.......! 그럽시다. 오나가나 이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곤란하시면 안 해주셔도 됩니다."

"주인 되시죠?"

"네!"

"끝나고 나갈 때 해드릴 게요. 모시고 온 손님이 있어서."

"오빠, 지금 해줘도 돼요."

"아냐, 끝나고."

"네."

우리는 곧 제일 구석진 창가로 안내되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그곳만 사람 키보다 높게 칸막이를 해놔, 외부의 사람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해놓았다. 자리를 잡자 내가 물었다.

"뭘로 먹을래?"

"함박스테이크!"

"더 비싼 것 시켜도 된다."

"아직 못 먹어봤거든."

"알았다. 그럼 오늘은 특별히 이인 분을 먹어도 된다."

"나 살쪄."

"아니래도 통통한 데 뭐."

"오빠!"

"하하하........!"

나는 경순의 가재미눈에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더 이상의 말을 삼갔다. 그리고 곧바로 주문을 했다.

"함박스틱 2인분 하고요, 사또로 76년 산 정도 있으면 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내가 주인이 물러가자 경순을 보고 물었다.

"오늘 몇 시에 만나기로 했냐?"

"저녁 6시 30분."

"어디서?"

"늘봄농원이 어디 예요?"

"갈비 집으로 유명한데다. 내가 데려다 주도록 하마."

"고마워요, 오빠!"

"됐고. 혼인할 의사는 있냐? 솔직히!"

"지금 같아서는."

"그럼, 5월 달에 아예 날짜 잡자. 괜히 오래 끌어 기자들의 촉수에 걸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이 오빠는 싫다."

"우리가 그 정도 일까?"

"솔직히 너희들이 그 정도 비중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양 가문이 그 정도 위세는 된다."

"접수했음. 음........! 엄마랑도 상의해서 곧 오빠에게 연락드릴 게요."

"그래."

이때 스프가 나왔으므로 둘의 이야기가 끊겼다. 우리가 특별히 주문을 하지 않았으므로 야채와 고기 중 선택을 하도록 했다. 우리는 둘 다 야채스프를 택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사장님이 당황해서 스프의 종류도 묻지 못한 모양 이예요."

핸섬하게 생긴 젊은 웨이터의 말에 나는 미소를 머금고 가타부타 말을 않았다. 대신 경순이 사의를 표했다.

"고마워요."

"뭘요. 저도 오늘 직접 회장님을 뵙는 호사를 누려, 눈이 즐겁습니다."

역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 내가 손짓을 하자 웨이터가 물러갔다.

"먹자!"

"네!"

우리가 스프를 다 먹자 바로 우리가 주문한 음식과 함께 포도주도 함께 나왔다. 야채샐러드와 옥수수 콘, 특별히 화채도 같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웨이터가 생색을 내었다.

"특별 서비스입니다."

화채를 말함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사의를 표하고 경순의 잔에 포도주를 반쯤 채웠다. 그리고 스스로 내 잔에도 채우려는 데 경순이 말했다.

"제가 따라드릴게요."

"그럴까? 할머니가 따라도 여자가 따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 정도 예요?"

"너는 할머니보다도 못하지. 천생 손을 댈 수 없는 내 동생이니까."

"호호호.......! 말 되네요."

나는 경순이 따르는 잔을 받고 말했다.

"건배 한 번 할까?"

"네!"

"내 동생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오빠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짠!"

"하하하........!"

"호호호........!"

경순과 달리 반잔이 담긴 글라스를 가볍게 비운 내가 말했다.

"네 뒤에는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하는 오빠가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기죽지 마라. 그렇다고 어디 가서 건방 떨고 돌아다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긍심을 갖고 생활하라는 말이다."

"아니래도 내 생각의 언저리에는 그런 생각이 항상 맴돌고 있어요. 그래서 또래의 아이들로부터는 할머니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고요. 그만큼 처신이 어려웠다는 이야기죠."

"그런 면은 단점이겠구나!"

"보다 많은 이익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 그래!"

"어서 드세요."

"그래. 오늘 모처럼만에 오누이 간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니 기분이 좋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종종 만들자."

"고마워요."

"고맙긴 별 게 다 고맙다."

"정말 식는다!"

"알았다. 알았어!"

이때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나와 우리 집으로 향했다. 물론 식당 주인에게는 사인을 한 장 해주고 나왔다. 종업원들도 해달라고 해서 여러 장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났다.

그동안 경순에게도 연락이 와 우리는 양가 합의하에 5월4일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이날이 일요일이어서였다. 5월5일이 또한 공휴일이라 연휴라 복잡할 테지만 강행하기로 했다. 가정사는 가정사고 내 주된 일은 사업 아닌가. 나는 모든 대책이 수립되었다는 김재익 기획 실장의 보고를 받고 이에 관여한 삼인을 회장실로 불러들였다. 곧 비서실장 김경제와 비서실 2팀장 올리비아 리였다. 올리비아 리는 그녀의 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생부와 이혼한 이래로 모녀 둘 만이 살아 왔단다 한다. 그래서 성도 어머니의 성으로 개명한 이래 죽 그렇게 지냈다 했다. 아무튼 나의 지시에 의해 김 기획실장이 구두 보고를 시작했다.

"대정중공업의 정상화 방안으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함은 물론 사업다각화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그 품목으로는 그룹 내 엔지니어링의 강세를 이용해, 원전 부품, 정유 및 발전 부품을 생산 하는 외에 중장비도 추가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중장비는 우리와 거의 무관한 사업 아니오?"

"그렇지만 전망이 밝습니다."

"알았습니다. 그 분야에 대한 기술 제휴 및 기술자들을 확보해 보도록 합시다."

"네, 회장님!"

"조선 및 여타 회사는?"

"조선은 파악 결과 공기업으로서 방만한 경영도 경영이지만 기술력이 떨어지는 데다, 종업원의 정신력도 많이 해이해 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우리가 노르웨이로부터 수주한 프로보 선(다목적운반선) 6척을 기술 부족으로 제대로 건조하지 못한데다가, 말레이시아와 그리스에서 발주한 배들도 인도가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해이해진 정신력으로 납기를 맞추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해서 기술력과 종업원들의 정신 재무장이 절실합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그 부분은 파악하고 있었어요. 해서 이미 유럽의 우수한 기술자들을 많이 섭외하고 있습니다. 곧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고 이미 일부는 나와 있습니다."

"대정해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보다도 회장님!"

"말씀하세요."

"대정조선소의 용지가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대형 배는 만들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좀 더 주변 부지를 확보하고, 도크도 좀 더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할 숙제입니다."

"알겠습니다. 내 곧 조처하도록 하죠."

"네, 회장님! 다음으로 회장님이 물으신 대정해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노후 된 선박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툭하면 부산수리소에 들어 앉아 있는 날이 많은 정도로, 거의 모든 선박들이 노후와 된데다, 현 경영진은 이를 타개할 의욕도 없었습니다."

"대책은 요?"

"노후화된 선박은 모두 폐기처분하고 물동량이 많은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또는 특수 화학 운반선, 유조선 등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우리 그룹의 자체 수출입 물동량만 해도 컨테이너 수요가 엄청 많을 뿐만 아니라, 장차 개발될 호주의 철광, 이미 개발되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유연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도 벌크선이 필요하고요."

"유조선은 아시다시피 예멘 광구의 물량을 우리 자체 해운으로 소화할 필요가 있는데다가, 곧 체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나이지리아의 원유를 소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또 특수화학선 등은 부가가치가 높아 꼭 운용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대로 실행하는 것으로 하죠. 대정수리소와 대정 목재는 어떻습니까?"

"대정 수리소는 대정조선소와 합병을 해서 함께 운용하는 것이 좋겠고요. 대정목재는 매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적자나는 기업을 누가 인수하려 하겠습니까?"

"거저줍다시피 한 것이니,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파는 게 낫겠습니다. 우리 그룹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너무 작지 않습니까?"

"나는 생각이 좀 달라요. 대동화학이나 제지 분야도 우리 그룹으로 보면 작지요. 하지만 이런 것도 사들여 운용하고 있는 판 이예요. 아예 대형화를 시켜서 흑자가 나면 그때 한 번 매각은 검토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때 올리비아가 얄밉게 한마디 했다.

"대정 목재 건은 실장님이 실수한 것 같네요. 미처 회장님의 자존심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불찰이죠."

"역시 비서실에 근무하는 사람답습니다."

김 기획실장이 오히려 올리비아를 칭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니 머쓱해지고 마는 그녀였다.

"비서실장님!"

"네, 회장님!"

"금번에 섭외한 유럽인 들 중에 조선의 사장으로 적합한 인물이 있던 가요?"

"없었습니다. 사장님의 명대로 기술진 위주로 선발을 하다 보니, 최고 부사장 정도는 가능하겠으나, 사장은 아무래도 한국인이 낫겠습니다. 의사소통 문제도 있고요."

"흐흠........!"

잠시 생각하던 내가 말했다.

"나승렬 팀장은 어떨까요?"

"아직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이 안 돼서........?"

비서실장의 말에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이 겉보기와는 달리 내면은 아주 강한 사람 이예요. 마인드도 적격인데 은근히 매운 구석이 있어요. 그 분야에 문외한이라는 것이 흠이긴 하죠. 하지만 누구는 처음부터 아는 사람 있습니까? 배워가며 경영을 하는 것이죠."

"현 조 상덕 조공 사장이나, 남궁 철 부산수리소 사장은 어떻습니까?"

비서실장의 말에 내가 답했다.

"자격 미달입니다. 그들이 능력이 있다면 적자가 낫겠어요? 다만 나 팀장이 이 분야를 모르니 당분간은 부사장으로 유임시켜서, 조언을 받는 정도로 합시다. 이것이 싫다면 할 수 없는 일이고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올리비아는 할 말 없어요?"

"중공업은 그렀다 쳐도 조선은 영업 능력을 대폭 보강해야 할 것 같아요. 누가 가만히 있는데 일거리 갖다 주지는 않을 거잖아요."

"좋은 지적입니다. 이 또한 외부에서 영입도 하고, 자체적으로는 무역 파트에서 선발해서 대폭 보강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회장님!"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이만 마치고, 비서실장님은 중공업의 배 사장에게는 오늘의 회의 결과를 통보해주고, 나 팀장은 좀 내방으로 불러줘요."

모두 내게 목례를 하고 물러나자, 나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지금 같으면 실내 흡연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이 당시는 이를 당연시 했다. 잠시 후 나 승렬 팀장이 내 방으로 들어와 인사를 꾸벅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거 앉아요."

"네, 회장님!"

"대정 프레야는 잘 되고 있지요?"

덕수중을 인수한 자리에 세워지고 있는 패션다운을 말하는 것이다.

"네, 이미 기초공사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그 분야는 건설 팀에 맡기고, 다른 일을 좀 해줘야 되겠어요."

"참, 분양은 어떻게 됐죠?"

"올 백 퍼센트 분양 완료되었습니다."

"역시 팀장님이십니다."

나의 칭찬에 그 나이에도 얼굴이 붉어지는 나 팀장을 보고 있노라니, 내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그런데 회장님!"

"말씀하세요."

"평당 백만 원은 못 받았고, 평당 95만 원에 분양했습니다."

"잘했습니다. 백만 단위보다는 그래도 십만 단위가 듣기에도 훨씬 싸보이 잖아요?"

"그걸 노린 측면도 있습니다."

"잘 하셨고요. 음........"

나는 생각하는 척하며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내가 불쑥 말했다.

"조선을 맡아주세요."

"네? 그건 너무........"

손까지 저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나 팀장이었다.

"외유내강 형의 나 팀장이라면 나는 오히려 더 잘 할 것으로 봅니다. 따뜻한 어머니와 같이 겉으로는 품지만, 끝까지 개혁을 추구하다 보면 머지않아 장래에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제가 볼 때 조공은 근로자들보다도 경영진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술 개발은 않고 단기성과에만 급급하고, 좀 생기는 성과는 나눠먹기 급급했으니, 잘 될 리가 없죠."

"요는 제가 그 분야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대책도 세워놨어요. 유럽의 우수한 기술진들을 대거 영입해 중역 및 간부로 앉히고 기술 지도를 할 거예요. 내가 볼 때 우리의 인건비가 앞으로 급격히 오를 거예요.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말이죠. 아니 내년 당장부터도 폭등할 거예요.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노동자들의 욕구가 폭발할 조짐이 곳곳에 보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내 머리에는 내년에 터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머리에 떠오르고 있었다. 이것이 6.10항쟁의 도화선이 되고, 이를 통해 민주화를 쟁취하지 않는 가 말이다. 이것이 국민의 승리였지만, 기업하는 입장에서 보면 같이 항복 선언한 효과와 마찬가지로 이제 갑, 을이 교체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아무튼 내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면 자명해요. 인건비가 오르면 보다 기술력을 높여, 좀 더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을 건조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유조선이라든지,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드릴 십, 쇄빙선, 더 나아간다면 초호화 유람선 같은 것 말이죠. 우리 연구소가 그 전부터 연구하고 있는 해양유전 개발에 꼭 필요한 부유식 원유생산저장 및 하역설비(FPSO)라든가, 크리스마스트리 기술 등이 접목되면 큰 성과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나의 말이 이어질수록 더욱 굳어지던 나 팀장의 얼굴이 어느 순간 결연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내 말이 끝나자마자 굳은 결의를 표했다.

"그렇다면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안 되면 영도 앞바다에 빠져죽을 각오로 말이죠."

나의 말이 그의 승부사 기질에 불을 당겼나보다. 그의 격한 발언에 나 또한 즉시 화답했다.

"좋습니다. 오늘 이 순간 부로 나 승렬 팀장을 전격 대정조선의 사장으로 발령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필생의 과업으로 알고 적극 도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그의 손을 맞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그 날 저녁 아파트로 퇴근을 했다. 명희네 집 바로 앞집이었다. 그간 이웃집들과 진행되던 인수 건이 모두 끝나, 이제 세 집을 다 허물고 새 집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시중의 시세보다 20%를 더 주고 양쪽 집을 매입하기는 했지만, 옹색한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그대로 매입을 지시한 결과였다. 그러나 너무 늦게 시작을 하는 바람에 경순의 결혼 전에는 준공이 어림없게 되었다. 그 보다도 양쪽 집안의 다툼이 되던 예식장이 오늘 최종 결정되었다. 현대 측에서는 서울의 한 호텔을 예식장소로 고집했지만, 나는 증평의 시골예식장을 끝까지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초호화 결혼식이니, 재계의 1, 2위끼리의 트러스트(trust) 구축이니 하는 구설수를 피하고자 그런 제의를 했고, 그 결과 오늘 나의 의도가 극적으로 관철된 결과라 하겠다. 아무튼 내가 퇴근을 하니 아이들부터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빠!"

"아빠!"

인정이와 중산이 각각 나를 부르며 내 품에 안겨왔다. 바로 앞집이니 명희네도 놀러온 모양이었다. 나는 두 놈을 각각 한 팔로 번쩍 안아들었다.

"잘 놀았어?"

"네."

"누구랑 놀았어?"

"중산이."

"중산이는 누구랑 놀았어?"

"인정이."

어른들이 들으면 어이없는 질문이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같이 관심 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므로, 나는 이런 질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두 놈들에게 각각 뽀뽀를 해주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때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지, 큰딸 다정이 제 방에서 나오며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어요? 아빠!"

"그래! 엄마는?"

"막내 작은 엄마랑 시장 보러갔어요."

"몇 시인데 아직 안 와?"

"좀 전에 가셨어요."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아빠!"

제 엄마를 홀대한다고 다정이 나를 불렀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일찍일찍 다니지, 여자들이 뭐 하러 이렇게 늦게 다녀."

"낮에는 낮대로 볼일이 있었겠죠."

"너도 같은 여자라고 편드는 것이냐?"

"헤헤........! 그것은 아니지만."

"뭐 먹을 것 없냐?"

"제가 저녁 차려드릴까요?"

"하, 이제 다정이도 다 컸나보네. 아빠 저녁을 다 차려준다고 하고."

"저도 이제 숙녀란 말 이예요."

"두 번만 숙녀였다가는 시집간다고 하겠다."

"헤헤헤........! 어떻게 할까요?"

"됐다. 네 엄마 오면 같이 먹지 뭐."

"알았어요."

제방으로 들어가려는 다정을 내가 잡았다.

"다정아!"

"네?"

"뭐 먹고 싶은 것 없냐? 아빠가 시켜 줄게."

"정말이세요?"

"그럼."

"저는 통닭 요."

"아빠, 우리도 통닭, 통닭........!"

어린 두 놈도 내게 매달리며 통닭 소리를 수십 번은 했다.

"아예 세 마리 시켜라. 그리고 너희 엄마 오기 전에 우리끼리 얼른 먹어치우고 말자."

"좋았어요. 아빠! 바로 주문할게요."

말과 함께 냉장고로 달려가는 다정이였다.

냉장고 옆에 잔뜩 스티커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방 통닭을 주문한 다정이 내 옆으로 오며 말했다.

"아빠! 매일 일찍 들어오세요."

"왜?"

"통닭 얻어먹게요."

"먹고 싶으면 엄마한테 사달라면 되지."

"엄마는 짠돌이라 안 사준단말 이예요."

"그래?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안 사주고 그래."

"저녁 안 먹는다나 뭐라나?"

"하긴 그런 면도 있겠다."

"쳇, 아빠도 엄마랑 똑 같은 견해예요."

"그런 면으로 보면 그렇다."

"저녁까지 먹으면 살찐단 말 이예요."

"다정이는 살이 좀 더 쪄도 되겠는데? 엄마 닮아 날씬해."

"안 돼요. 그러면 아이들이 돼지라고 놀린단 말 이예요."

"아이들이 진짜 돼지를 못 봐서 그래."

"그래도."

부녀간의 대화가 한창인데, 두 녀석은 내가 관심을 안 두자 같이 놀다, 인정이가 넘어져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나는 그런 인정을 안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미정과 명희는 함께 사우나에 갔다가 늦게 서야 젖은 머리로 들어왔다. 물론 시장바구니도 든 채였다. 그동안 나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노느라고 사업하는 것보다 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나는 그 벌로 두 여인을 한 방에 데리고 잤다. 오히려 이게 나에게는 기운 축내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나뭇잎들은 날로 그 푸르름을 더해 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읽어주시고 선작, 멘트, 추천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더불어 크고 작은 많은 쿠폰을 주신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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