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나는 바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오빠가 웬일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번 토요일 날은 우리 집으로 놀러 와라."
"나 약 팔아야 되는데?"
"직원들에게 맡기면 되지."
"오빠, 무슨 일이 있구나?"
"그래."
"선 보는 일이면 사양할 테야. 아직 그럴 나이 아니거든."
"설 쇠면 스물여섯이다. 여자나이 그 나이면 적은 줄 아니?"
"아직은 좀 더 청춘을 즐기다가. 미리 가서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토요일 날은 꼭 올라오도록 해."
"일단 올 라는 갈게."
"알았다. 끊는다."
"네, 들어가세요. 오빠!"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결재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네!"
나 승렬 팀장이었다.
"그 쪽으로 앉으세요."
"네, 회장님!"
나는 소파로 이동하기 전에 인터폰을 눌러 차를 주문했다.
내가 자리를 잡자 나 팀장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회장님! 이번 공기업 민영화 1호인 대한중석의 공개경매에 입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계속하세요."
"그동안 제가 대한중석에 대한 경영자료, 보유주식의 현황, 부동산, 여타 자산에 대해 세밀히 재평가한 결과, 그 가치가 두 번씩이나 유찰될 만큼 가치가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 그룹에서 인수를 하면 큰 재미를 볼 것 같습니다."
"그래요? 구체적인 자료들이 있습니까?"
"네, 회장님! 금값이라 평가받는 명동 땅과, 100만 주의 포항제철 주식, 500만 평에 달하는 상동광산용지와 대구공장 부지 등 여타 소소한 자산까지 따지면, 분명 재미를 볼 것입니다."
"명동 땅은 얼마나 되지요?"
"제법 넓습니다. 5천 평이 약간 넘습니다."
"그렇게 넓은 땅이 아직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건가요?"
"방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옛 회사 건물로, 처음부터 면적을 넓게 잡았던 탓이죠."
"하긴 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텅스텐 수출이 그야말로 우리나라 수출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그런데 이번 공개경매의 예상가는 얼마입니까?"
"1,140억 내외로 잡고 있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이번에는 저 평가되었다고 판단하는 업체가 있을 지도 모르니, 예상가보다 조금은 더 써내는 게 유리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 팀장님의 의중대로 하시되, 대구공장 용지는 아파트 건축으로 전용이 가능합니까?"
"네, 저도 그것을 내다보고 인수하려는 것입니다."
"흐흠........! 그렇다면 인수전에 뛰어들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내게 감사할 일이 아니죠. 다 그룹을 위해서 탐장님이 수고해주시는 건데."
"그래도 허락을 해주니 기쁜 것은 사실이거든요."
순박한 미소를 짓는 이면에 누가 능구렁이가 몇 마리씩 들어있다고 생각을 하겠는가. 대화가 막 끝나니 이제야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차가 들어왔다. 그런데 차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이 미연 과장이었다.
"아니, 유 양은 어디 가고요?"
"제가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타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과장의 이야기를 들은 나 팀장이 허겁지겁 뜨거운 커피를 들이키더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천천히 차를 불어마시며 이 과장에게 시선을 주고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그러나 저러나 이 과장은 시집 안 가요. 올 설 쇠면 벌써 삼십인데. 보통 여자 나이 스물여섯 일곱에 가는 게 대세 아니 예요? 남자들도 삼십 전에는 다들 장가가려고 하는데?"
"그 문제 때문 이예요."
"누가 청혼이라도 했습니까?"
"네."
내가 궁금해서 다급하게 물어보았다.
"누군데요? 내가 아는 사람 이예요?"
"네."
"네, 네 소리만 하면 어떻게 해요. 아! 혹시 구 과장?"
"회장님의 눈에도 그게 보였어요?"
"괜히 쓸데없이 얼씬거리는 게,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정도는 했죠."
"귀찮아 죽겠어요. 몇 번을 거절했는데도 저러니....... 회장님이 따끔하게 혼 좀 내주세요."
"전에도 몇 번 청혼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네."
"흐흠.........! 구 과장 정도면 훌륭한 신랑감인데 굳이 거절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래도 저는 싫어요. 오늘 저녁 술 한 잔 안 사주시겠어요? 기분도 꿀꿀한데?"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더라......?"
"제가 회장님 비서랍니다. 아직까지는 저녁 약속이 안 잡혀 있으니, 이런 이야기를 드리지요."
"회사 들어와 처음으로 하는 이 과장의 부탁인데 거절하기도 난감하니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감사해요. 회장님!"
얼른 일어나 공손하게 절을 하고 차 쟁반을 챙겨나가는 이 미연 과장이었다. 그날 저녁 5시 30분.
겨울의 거리는 벌써 어둠이 밀려와 있었다. 나는 약속대로 이 과장을 데리고 회사에서 멀지 않은 마포갈비집이라는 곳으로 왔다.
초저녁이었기에 빈방이 많아 우리는 곧장 빈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나는 곧장 스탠드 옷걸이가 있는 곳으로 가 외투와 양복 윗저고리를 벗어들었다. 이 과장이 시중들려는 것을 거절하고 오히려 내가 그녀의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나는 곧 초인종을 눌렀다.
"돼지 갈비로 시킬까요? 얕은맛은 더 있는 것 같던데?"
"저도 돼지갈비가 더 나아요."
"그럽시다. 그럼."
우리의 의견일치가 다 된 것을 알기라도 하듯 문이 열리며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여기 돼지 갈비 3인분 하고, 소주 아예 3병 갖다 놓으세요. 콜라? 사이다?"
내가 취향을 묻자 이 과장이 직접 주문을 했다.
"콜라로 한 병 주세요."
나는 곧 아주머니가 가지고 온 물수건으로 손을 닦는데, 이 양은 빈 컵에 물을 채워놓고 있었다. 이때 바로 문이 열리며 우리가 주문한 것들이 금방 들어왔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게다.
쟁반을 내려놓은 아주머니는 직접 가스에 불을 켜, 고기까지 올려놓고서야 방을 나갔다. 나는 고집하는 이 과장의 집게를 빼앗아 내가 직접 갈비를 뒤집었다. 또 가위로 고기를 여러 토막으로 나누어 빨리 익고 먹기에도 좋도록 했다. 여자의 체면도 잊고 침을 꼴깍 삼키던 이 과장이 내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러고 혼자 따라 마시려는 것을 내가 제지해 한 잔을 채워주었다.
"회장님! 우리 건배 한 번 해요."
"아직 고기도 다 안 익었는데?"
"밑반찬이 있잖아요."
"그럽시다. 그럼."
"회장님의 더 많은 축첩을 위하여!"
"뭐요? 듣다듣다 별 건배사를 다 듣겠네."
"호호호........! 셋이나, 넷이나?"
"그런 소리 말아요. 셋만 해도 여간 피곤한 게 아니 예요."
"새로운 맛도 있지 않을 까요?"
이 과장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이게 여자의 입에서 나올 소리 인가싶어서였다. 이 과장도 말 해놓고는 자신이 너무 나갔나 싶어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험, 험! 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과장이 당찬 줄은 알지만, 너무 오버하는 것 같은데?"
"죄송해요. 순간적으로 착각을 했어요. 이렇게 단둘만이 있으니 처음으로 도쿄 갔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로 추억 여행을 유도하는 이 과장이었다.
"술 초 되겠소."
"아, 네!"
우리는 건배만 하고 아직 잔을 든 채였던 것이다. 둘 다 가볍게 잔을 비운 우리는 서로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그 동안 고기가 한 쪽으로 너무 머물러 있어 타는 것 갖자, 이 과장이 얼른 이를 뒤집었다. 고기가 다 익은 것 갖자 나는 한 쌈을 쌌다. 이 양도 서둘러 쌌다.
내가 막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이 과장이 이를 제지했다.
"잠깐 만요."
"호호호.......!"
그 타이밍이 참으로 애매해서 나는 입을 망연히 벌린 채, 쌈은 입 가까이 된 상태에서 정지상태가 되어 있었다.
"제가 싼 것 먼저 드시고 드세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얼른요."
보채는 이 과장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이 과장의 쌈을 받아먹고, 처치곤란의 쌈을 들고 망설이는데, 이 과장이 선수를 쳤다.
"아........?"
입을 벌리고 달려드니 안 주면 또한 분위기 깨지는 일이라, 나는 이 양의 입에다 내가 싼 쌈을 넣어주었다. 그러고 나는 이 과장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자, 건배!"
"네, 회장님!"
"이 과장이 빨리 시집가길 축원하며."
"쳇, 그런 축원은 싫고요. 그냥 한 계급 승진 기원이나 받고 싶어요."
"이것 진급 시켜달라는 말보다 더 무섭게 들리는군."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해요. 본의는 아니었어요."
"하하하........! 역시 이 과장은 무서운 사람이야. 치고 빠지고, 간을 보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에잉, 그건 아닌데?"
살짝 아양을 떨더니 내가 바라보자 무안했던지 건배도 하지 않고 얼른 잔을 입에 털어 넣는 이 과장이었다. 손수 안주를 싸서 먹으며 이 과장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저는 요. 시집을 가더라도 근무는 계속 하고 싶은데, 가능 하겠어요?"
"이 과장 같으면, 얼마든지."
"기뻐요. 회장님이 제 능력을 인정해주는 듯해서요."
"그러니 걱정 말고 얼른 시집이나 가세요."
"........."
나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무런 답이 없는 그녀였다. 그러더니 돌연 자신이 술을 따라 입에 털어 넣는 이 과장 이었다.
"그러다. 취해요."
"오늘은 취하고 싶어요."
말과 함께 안주도 집지 않고 또 손수 술을 따르기에 마지못해 나는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나도 한 잔을 급히 마셨다.
"아! 하세요."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안주가 들려져 있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소주 세 병이 비워지자, 이 과장이 취한 목소리로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회장님한테, 첫눈에 반한 것 아세요."
"모릅니다."
약간 짐작은 했지만 나는 매정하게 시침을 뚝 떼었다.
"제가 그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말을 했는데, 기억나세요?"
"아니요."
유혹하던 말을 분명 기억하고 있는 나였지만 이 또한 모른 체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막무가내였다.
"오늘도 유효해요."
이런 말을 하면 그녀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답으로 들릴지 몰라도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 선을 그었다.
"저는 더 이상 여자가 필요치 않습니다. 비록 하룻밤 풋사랑 일지라도. 내게는 세 여자도 너무 과분해요."
"실망 이예요. 하지만 저는 회장님을 제 마음 속에서 떠나보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정년이 될 때까지 독신으로 열심히 근무만 할 테니, 회장님도 더는 제게 시집가라는 말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한 가득 고여 이제는 방울,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마지막 남은 잔을 급히 입에 털어 넣고 말했다.
"그래도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 또한 변함이 없을 테니, 회사에서 쫓아내지는 말아요."
"지금과 같이 열심히만 하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좋아요! 그 답만으로도 저는 만족하고, 행복해요. 우리 사랑하는 회장님!"
그러고는 눈물이 뚝 뚝 흐르는 눈으로 활짝 웃음을 짓는데, 종내는 비틀린 웃음이 되어갔다.
============================ 작품 후기 모처럼 만에 세 편을 올리네요!
^^모처럼 만에 세 편을 올리네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