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89화 (189/322)

나는 미정의 잔에도 포도주 반을 채워주었다.

그러자 전 통이 소리를 질렀다.

"잔은 차야 맛이라네."

질세라 이 여사도 한 마디를 했다.

"내 잔은 가득 채우고, 불공평해요."

"하하하........! 알았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미정의 잔에도 가득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기왕 잔도 채웠으니 우리 건배 한 번 합시다."

"좋습니다."

전 통의 제의에 의해 우리는 돌연 밥을 먹다가 말고 술잔을 들어 올려야 했다.

"나라가 편안하고 강 회장의 사업이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위하여!"

"위하여!"

전통의 건배사에 이어 우리는 일제히

'위하여!'

를 외치며 잔을 입에 대었다.

나와 전 통은 한 잔을 다 비웠고, 이 여사는 반을, 미정은 입만 대었다 떼었다. 두 여자가 다시 수저를 드는데, 나에 이어 전 통이 내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각료들의 의견은 대체로 부정적이었소. 주무부서도 마찬가지고. 언론을 통폐합한 취지가 퇴색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내 내자는 의견이 달랐소. 치유할 돈이 없어서 방치되고 있는 어린 심장병 환자들을 위해, 그 정도의 돈을 쾌척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인품도 따뜻한 사람이니, 절대 나쁜 방송을 해 여론을 호도할 일은 없을 테니, 하나 더 생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이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경청하자, 전 통은 신이 나는지 입가에 거품까지 물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해서 내 각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허할 테니 정말 국민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나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주기 바라오."

"감사합니다. 각하! 뜻을 받들어 절대 나라에 해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정말 흥미 있는 방송으로 각 계층의 시선을 모두 붙들어 매놓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좋소. 내 강 회장을 믿으니 잘 운영해 보도록 하고, 이쯤에서 사업이야기는 그만두고, 술이나 마시며 우리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나누어 봅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강 회장이 건배사를 한 번 해보오."

"네, 각하!"

나는 방송 설립을 허가해준다는 말에 신이 나서 잔을 번쩍 치켜들고 아첨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각하 내외분의 젊음과 금슬이 영원하길 빌며,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강국이 되길 염원하면서 건배를 제의합니다. 건배!"

"건배!"

나의 제의에 따라 일제히 일어서서 잔을 부딪치며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포도주를 목울대로 넘기며 내심 웃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시퍼런 권력으로 산천초목을 떨게 하던 이 사람들도, 권불십년이라고 채 3년이 다 가기 전에 백담사 그 추운 골짜기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을 생각을 하니,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전 통과 내가 깨끗이 잔을 비운데 비해 이 여사는 아직도 잔에 술이 반이나 남아 있었고, 미정은 줄었다고 볼 수도 없을 정도로 그 양이 그냥 그대로이다시피 했다. 이에 내가 내 단골 레퍼토리를 써 먹었다.

"건배라 하면 마를 건(乾)에, 잔 배(杯)자인데, 잔들이 그냥 있으니, 제 건배가 무색하군요."

"호호호.......! 그래요? 그렇다면 다 마셔야지요."

내 말에 웬일인지 이 여사가 아주 즐거워하며, 또 다시 미정의 잔에다가 자신의 잔을 부딪쳐가며 자신의 입으로 술잔을 가져갔다. 이에 울상을 지은 미정이 몇 번을 쉬어가며 이를 다 마시니, 이를 보며 내외는 아주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 다 마신 미정이 급기야는 콜록콜록 사례 들린 기침까지 터트리자, 끝내 웃음을 터트리고 마는 두 사람이었다.

"하하하.......!"

"호호호.......!"

둘과 같이 웃을 수도 없는 나는 그저 빙그레 웃음을 띠고 미정을 바라보는데, 미정은 그 고운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어 전 통이 쓸데도 없는 군 시절의 무공 담을 자랑하는데, 그것도 일이십 분이지, 30분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미정과 나는 하품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열심히 경청하는 척을 해야 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가워하며, 이 여사의 이야기를 종용했는데, 이는 또 부동산 투기 자랑인지라 우리 내외를 아주 질리게 했다. 아무튼 톡특히 그 값을 치르고 나서야 우리는 청와대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

나는 한국일보 사옥 장강재 회장 집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내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들어서자 무엇을 보고 있던 장 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 이제 나보다 더한 재벌이 되니 말도 함부로 하기 어렵군."

"무슨 말씀을,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하하하.......! 그렇지? 그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우리 강 회장님께서 친히 납시셨습니까?"

"격조했습니다만, 차나 한 잔 주시고 말씀하시죠."

"오케이!"

시원한 대답과 함께 인터폰을 눌러 비서 아가씨를 부르는 장 회장이었다.

"차도 시켰으니 급히 나를 보자고 한 용건을 말씀해 보시게."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재벌이 되고서도 나한테 부탁만 한단 말인가? 이제는 날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도 도움 받을 건 받아야지요."

"여전히 넉살은 좋은 사람일세. 무슨 일인지 말씀이나 해보시게."

"제가 이번에 제지업에 진출을 했습니다."

아직 아무 곳도 인수를 안 했지만 나는 제지업에 진출한 냥 화법을 전개해 나갔다.

"신문용지 이야기인가?"

나의 한마디에 벌써 무슨 이야기인지 금방 감을 잡는 장 회장이었다.

"그렇습니다."

나 또한 정색을 하고 말했다.

"흐흠........! 우리가 계속 써오던 곳이 있음을 잘 알 텐데, 그런 무리한 부탁을 하다니.......?"

"이번에는 빈손만이 아닙니다. 확실한 반대급부도 챙겨드리겠습니다."

"그래? 그게 뭔데?"

나의 말에 의자를 당겨 앉는 장 회장이었다.

"곧 정부에서 발표를 하겠습니다만, 금번에 저희 그룹에서는 방송 사업에도 진출을 하려합니다."

"아니! 방송국 설립 허가를 내준단 말이오? 힘들 텐데?"

하긴 이 정권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절대 방송 사업 허가를 내줄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일 게다. 장 회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말과 함께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확실하니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 마시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하하........! 나에게도 국물이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몇 퍼센트의 지분을 줄 텐가?"

역시 노련한 장 회장이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나야 우리가 최대주주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려울 테고, 음.......! 40% 이상을 기대하겠네."

끊임없이 방송 사업에 진출하고 싶어 했지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에 꿈을 접어야 했던 장 회장으로서는,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 돌아온 만큼 즐거운 표정과 기대를 갖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습니다. 41%를 드릴게요. 그리고 나머지 8%는 각각 1%씩 모양을 위해서 회장님이 알아서 채워 넣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나야 좋지. 나도 생색도 좀 내고 말이야."

정말 즐거운 표정이 되어 희희낙락하는 장 회장이었다.

"또한........"

"또 줄게 남았어?"

"운영은 회장님께서 해주십시오. 언론 사업에 대해서는 저보다는 회장님이 더 박학하실 테니까요?"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물론입니다. 단 벌써 편성방침은 결정되었으니, 그 한도 내에서 자율권을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뭔데?"

"한마디로 흥미위주의 상업방송!"

"그야, 당연한 이야기지. 후발주자가 막강한 공영방송을 제치기 위해서는 흥미위주의 차별화 밖에 답이 없어."

이 분야의 전문가답게 벌써 답을 알고 있는 장 회장이었다. 내가 빙그레 미소를 끄덕이고 있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지 잘 아는 그가 화답을 했다.

"강 회장이 그렇게 통 크게 쏘는데, 나라고 멈칫거릴 이유가 없지. 전량 강 회장의 제지회사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하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하기는 내가 더 감사하지. 확실히 내 학생 때부터 크게 될 놈이다, 이거 실례. 아무튼 크게 될 사람이라고 알아봤더니 보답 받는 날도 있군, 그래 하하하..........!"

대소를 터트리는 그를 보고 나는 단지 빙긋이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장 회장과 헤어져 곧장 사무실로 들어온 나는 바로 김 기획실장과 이 순국 기획 팀장을 불러들였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대충 감은 잡았겠지만, 예스인지 노우인지 까지는 모르는 두 사람으로서는 내 입만 주시하고 있었다.

"이 팀장 자신이 있소?"

"네. 두 업체를 인수한다면 조기에 정상화시키는 것은 물론 더욱 발전시킬 자신도 있습니다."

김재익 기획실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지, 내용을 알고 답변을 하는 이 팀장이었다.

"좋소! 인수하되, 신문용지는 한국일보에 납품하도록."

"벌써 거기까지 손을 쓰셨습니까?"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묻는 김 기획 실장이었다.

"뿐만 아니지요."

"네?"

영문을 몰라 더욱 눈이 커지는 김 실장이었다.

"곧 정부 발표가 있겠지만, 우리가 방송 사업에도 진출을 하게 되었소."

"그런 일이........."

해연히 놀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김 실장이었다. 이 팀장 역시 다르지 않아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둘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기에 바쁜 둘이었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둘이었다. 곧 둘을 내보낸 나는 이번에는 김 비서실장을 불러 지금까지의 전개된 내용을 전부 일러주고, 이 사업들을 꼼꼼히 체크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라 나는 모처럼 외식을 하기 위해 회사 정문을 나섰다. 혼자 먹기가 그런지라 나는 카폰을 들어 명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어쩐 일이세요. 낮에 전화를 다 주시고요?"

"누가 들으면 생전 낮에 전화 한 번 안한 사람인 줄 알겠다. 여러 소리할 것 없이 회사 앞 금룡(金龍)으로 인정이 데리고 나와."

"네, 여보!"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여보, 당신'이라 호칭하는 명희였다. 아무튼 이제 와서 말이지만 세 여인에게도 나는 각각 한 대씩의 승용차를 사주어 손수 운전해 다니고 있는 요즈음이었다. 내가 먼저 중식집인 금룡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으니 명희가 인정을 데리고 나타났다. 미리 카운터에 이야기 해놓았기에 내가 앉아있는 방으로 쉽게 찾아온 것이다. 문이 열리고 나를 보자마자 나를 부르며 넘어질듯 달려드는 인정이었다.

"아빠! 보고 싶었져!"

"그러다 넘어진다."

달려들어 안기는 인정을 번쩍 안아든 내가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꽤 차네요."

"그럼, 겨울인데."

"그런데, 여보! 올해는 인정이도 유치원에 보내야지요?"

아직 설을 쇠지 않아 올해 여섯 살인 인정이었다. 다른 집은 여섯 살부터 유치원에 보내는 집안도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이 너무 일찍 공부에 내몰리는 것이 싫어, 모두 일곱 살이 되어야만 유치원에 보내도록 했다. 그래서 명희가 묻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보내야지. 그러나저러나 인정이는 제 이름 석자는 쓸 줄 아나?"

"아빠, 아빠! 나 이름은 물론 국어책도 다 읽을 수 있어."

"벌써?"

자랑스럽게 말하는 인정을 나는 꼭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셈도 다 할 수 있어."

"누구한테 배웠는데?"

"엄마한테."

"하하하........! 누구 딸인지 똑똑하기도 하다."

"아빠 딸!"

"그러면 그렇지. 우리 인정이도 아빠를 닮아서 공부를 잘 할 거야."

"쳇!"

나의 말에 웬일인지 고개가 외로 돌아가는 명희였다.

"당신은 내 말을 부정하는 거야?"

"또 자랑하시는 것 같아서요."

"내가 그것 빼놓으면 낙이 없다."

"알았어요. 인정이 내려놓으시고, 뭐 시킬까요?"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시켜."

나의 말에 제일 먼저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인정이었다.

"나는 탕수욕."

"저는 볶음밥 먹을 래요."

"나는 짜장면."

"짜장면 질리지도 않으세요?"

"나는 좋은데.......?"

"알았어요."

방안에 벨이 있는데도 굳이 나가서 시키려는 명희를 보며 나는 말리지 않고, 추가로 배갈 한 독구리를 주문했다. 그러자 명희가 우려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대낮부터 술 드셔도 돼요?"

"오늘은 날도 춥고 하니 딱 한 독구리만 하지 뭐. 그리고 나가는 길에 경호원들도 물어봐서 먹고 싶은 것, 죄다 시켜줘."

"알았어요, 여보!"

명희가 방을 나가자 나는 인정이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고, 인정이를 한층 더 다정스럽게 불렀다.

"인정아!"

"네, 아빠!"

"그냥 불러봤다!"

"에이, 아빠도 싱겁기는."

"하하하.......! 요것이 별 소릴 다하네."

나는 말과 함께 인정의 코를 살짝 잡아 비틀자 인정이 과장되게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에 깜짝 놀라 뛰어드는 명희였다. 이를 보고 나는 대소를 터트렸고, 속을 건 안 명희는 곱게 눈을 흘기고 다시 주문을 하러 갔다. 본의 아니게 저희 엄마를

속이게 된 인정도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며 갑자기 내 볼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아빠! 용돈 좀 주세요. 엄마는 너무 짜요."

"그래? 얼마를 줄까?"

"만 원!"

"뭐? 뭔 가시나가 이렇게 통이 커."

"그래야 한동안 사먹고 쓰지요."

"알았다. 그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물론이죠. 아빠, 약속!"

"그래, 약속!"

말과 함께 앙증맞은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인정이었다. 나는 그 작고 가냘프기 짝이 없는 딸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는데 명희가 쏙들어오며 말했다.

"부녀지간에 나 몰래 속이는 것 있죠?"

"그럼~!"

"뭔데요?"

"안 가르쳐줘. 가르쳐주면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똑 같게."

"쳇. 몰라도 되네요. 얼마 못가 인정이가 다 가르쳐줄 텐데, 뭐!"

"이번에는 안 그럴 걸? 그렇지 인정아?"

"네, 아빠!"

"아잉, 억울해. 나만 빼놓고......"

"이리 와봐 알려줄게."

내 말에 급히 무릎걸음으로 다가오는 명희였다.

이를 본 인정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아빠!"

인정에게 눈을 찡긋해 보인 내가 명희의 귀에다가 속삭이는 척하다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어머!"

화들짝 놀라며 볼을 쓰다듬는 명희는 아직 삼십이 되지 않은 풋풋한 청춘이었다. 그날 저녁.

내가 퇴근을 하니 미정이 이상한 말을 했다.

"매파가 다녀갔어요."

"무슨 말이야?"

"글쎄, 큰아가씨한테 혼담이 들어왔는데, 깜짝 놀랄만한 가문 이예요. 어디인지 맞춰보세요."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털어놔봐."

"헤헤헤........! 당신도 들으면 놀랄 걸?"

"안 놀래. 나 강심장인 거 몰라?"

"안 놀라면 재미없는데......"

"빨리 말이나 해봐."

"뜸 좀 들여야지."

"빨리 말하라니까."

"싫어요. 조금 있다가."

"정말 이 여편네가........"

"어머, 무슨 상소릴........!"

금방 낯 색이 변해 훌쩍거릴 것 같은 미정인지라 나는 얼른 그녀를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순간적으로 욱한 나의 말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미안, 미안! 어서 말해봐."

내가 급 사과를 하고 달래자 미정도 풀어져 말했다.

"정주영 회장한테서 왔어요."

"뭐? 그 양반이......."

나도 잠시 놀래, 그의 가족들을 더듬어 보았다.

그에게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두 아들이 있었다. 막내와 7남이 그들이었다. 하나는 나보다도 두 살이 많았고, 하나는 나보다도 두 살이 어렸다. 설을 쇠면 서른두 살이 되는 몽윤과 막내 몽일이 그들이었다.

"당사자가 누구인데?"

"몽윤이라는 사람이 누구예요?"

"음.......!"

나도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라 곧 전화기 앞으로 갔다.

이청신정보실장에게 전화를 걸려는 것이다. 이어 나는 곧장 다이얼을 돌렸고, 상대가 나왔다.

"나요."

"네, 회장님!"

"정주영의 아들 중 몽윤과 몽일에 대해서 알아봐 주세요."

"우선 제가 알고 있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칠 남 몽윤 씨는 작년에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따고, 현 현대 화재해상보험의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팔 남 몽일 씨는 올해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지워싱턴대학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를 모아주세요."

"네, 회장님!"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몽윤이 그 상대라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또 나는 자연스럽게 내 동생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내 바로 밑의 여동생인 경순은 올 설을 쇠면 스물여섯으로 지금 현재는 청주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충북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우리 회사에 근무하기를 바랐으나, 이를 마다하고 그녀는 스스로 벌어서 시집가겠다고, 약국이나 하나 차려달라고 해서, 내가 그 부분은 지원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경순은 현재 약사 둘을 더 두고 청주에서는 제일 큰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그렇게 순종적이더니 대학교 들어가고서 부터는 자아가 뚜렷한 당당한 여성이 된 그녀였다. 그렇다고 그 성품이 완전히 바뀐 것이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 거듭 났다는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히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맺어지느니만 백 번 못한 일기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시 서서 생각을 하다가 미정의 말 때문에 더 이상의 생각을 접어야 했다.

"여보, 어서 씻고 식사하셔야죠."

"알았어."

나는 곧 욕실로 들어갔다. 재빨리 샤워를 하고 나온 나는 식탁에 미정과 마주앉자마자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뭐라고 했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했죠. 당신하고 상의해서 답변 드린다고."

"일단은 상대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하니, 계속해서 나한테 미뤄."

"알았어요, 여보! 어서 식기 전에 드세요."

"그래."

이때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었다.

"제가 받을 게요."

미정이 말과 함께 얼른 일어나 전화기 앞으로 달려갔다.

곧 송화기를 틀어막은 미정이 나를 보고 말했다.

"여보, 인정이 엄마인데요?"

"알았어. 내 받지. 당신은 이리 와 식사하고."

"네~!"

나는 천천히 전화기 앞으로 가 전화기를 들고 다짜고짜 물었다.

"왜?"

"너무 퉁명스러워요. 하고 싶은 말도 못 꺼내겠네요."

"뭔데 그래?"

"갑자기 족발이 먹고 싶지 뭐예요?"

"애 서나 왜 그래?"

"생리가 없긴 한데........"

"뭐?"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세요."

"알았다. 내 저녁 먹고 사가지고 갈 테니 기다려."

"고마워요. 여보."

전화를 끊고 식탁에 마주앉는 나를 보고 미정이 물었다.

"임신했데요?"

"그런 가봐."

"누구는 좋겠네. 나는 이미 끝났는데."

"뭐가 끝나 아직 팔팔한데?"

"임신중절 수술을 했으면 여자로서의 한 생명이 끝났다고 봐야죠. 뭐."

새초롬하게 말하는 미정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알았어. 당신의 마음 이해가 가니 어서 밥 먹어."

"........."

그래도 대답 없이 잠시 먼 곳을 주시하던 그녀가 눈물을 씻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밥 먹는 것이 영 틀렸다. 깨지락거리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 역시 밥맛이 달아나 몇 숟갈 더 먹다가 숟가락을 놓고 집을 나섰다. 40분 후.

나는 족발 두 개를 사들고 명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빠!"

역시 제일 먼저 달려들어 내 품에 안기는 인정이었다.

"저녁은?"

"안 먹었어요. 당신하고 족발 먹으려고요."

"나는 먹고 왔는데?"

어떻게 하나 보려고 나는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에잉, 나 혼자 무슨 맛 이예요. 당신하고 먹어야 맛이 있는데."

"인정이도 있잖아."

"그래도."

"알았어, 알았어. 같이 먹자. 혹시 집안에 술 없어?"

"오늘 낮에도 드셨잖아요."

"간에 기별도 안 갔는데, 뭘."

"알았어요. 그런데 소주뿐인데?"

"소주면 됐지 뭐. 나 서민적인 거 알잖아?"

"호호호........! 용 됐다고 올챙이 적 생각 못하면 안 되죠."

"뭐?"

나의 버럭에 찔끔한 그녀가 말했다.

"애 떨어져요."

"그래, 그래. 어서 먹자."

"네."

명희는 술상을 챙기러가고 나는 족발을 그냥 거실에 펼쳐놓았다. 그런데 인정이 침만 삼키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 안 먹어?"

"엄마가 어른들 드시기 전에는 손대지 말랬어요."

"아이고, 착하지. 우리 인정이, 잘도 배웠네."

"빨리 먹고 싶은데........"

아이는 아이라서 내 칭찬에도 엄마 쪽으로 시선을 주며 명희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인정이었다.

술상을 거실바닥에 내려놓는 명희를 보고 내가 툴툴거렸다.

"하필 왜 족발이야?"

"돼지 같은 자식 낳으려고 요."

"뭐?"

나의 버럭에 화들짝 놀란 명희가 급 정정을 했다.

"아니고요. 오빠 쏙 빼닮은 아들 하나 낳고 갖고 싶어요."

"자식이 물건이야, 갖게?"

"오늘 당신 왜 이렇게 까칠해요."

"하하하........! 그렇게 되었나? 어서 먹자."

명희마저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자 나는 당황해서 얼른 족발 한 첨을 상추에 싸서 명희의 입에 넣어주었다. 도리질을 하며 안 받아먹을 듯하다가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자 냉큼 받아먹고 아양을 떠는 명희였다.

"오빠! 내 배 더 부르기 전에, 오늘 밤은 알죠?"

"알았다. 인정이 하고 같이 자자."

"아이 좋아라! 아빠, 아빠!"

인정이 좋아서 내 볼에 뽀뽀를 하고 난리인데, 명희의 표정은 낙망의 그늘로 덥혀 연신 쳇쳇 거리고만 있었다. 다음 날.

퇴근 시간 무렵이었다.

뜻밖에도 아니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내게 정주영 회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거두절미하고 그가 말했다.

"오늘 술 한 잔 어떤가?"

"좋지요. 회장님이 사신다면."

"하하하......! 좋네! 약속 장소는 강 회장이 정 하시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좋습니다. 이화정에서 7시에 뵙지요."

딱 한 번 그와도 그곳에서 마신 적이 있어 그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알았네."

약속이 정해지자 바로 전화를 끊는 그였다. 나는 곧 이청신 정보실장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모은 정보가 있는지 물었다. 아직 많이 모으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정보를 브리핑하는 그였다. 들으니 크게 하자 잡을 것은 없었다. 더 정보를 세밀하게 모으도록 하고 나는 그를 내보냈다. 10분 전 7시에 나는 그곳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정 회장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니, 회장님이 벌써 웬일이십니까?"

"나라고 일찍 오면 안되남?"

"그것은 아니지만."

"목마른 놈이 샘 파게 되어있는 거야."

그의 할 이야기가 대충 감이 와 나는 빙긋 웃고 말았다.

우리는 곧 이 마담에 의해 7 번방으로 안내되었다.

정 회장은 술부터 청하고 이어 부르지 않는 한 아무도 방에 들이지 말라고 엄하게 명을 내렸다.

잠시 후 웨이터들에 의해 술상이 차려지고 우리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변죽만 울리는 대화를 싫어하네.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네 동생을 우리 집 며느리로 주시게."

나는 이미 모범답안을 준비해 놨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답변했다.

"부모님이 계시니 부모님도 의견도 들어봐야겠고, 제일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의견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자네가 잘 설득을 하고, 당사자끼리 한 번 날 잡아 만나보게 하는 것은 어떤가?"

"알겠습니다. 일단 동생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요."

"그래, 그래. 두 가문이 맺어져 나는 우리 둘이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기를 바라네."

"알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를 자네도 짐작 할 걸세.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가고, 미래는 강 회장 같은 신세대들의 세상이 아니겠나? 혹시라도 나에게 뭔 일이 생기면 우리 가문을 잘 부탁하네."

"별 말씀 다 하십니다. 이제 그런 이야기 그만하고 아가씨들이나 들여 즐겁게 술이나 마시죠?"

"좋아! 그렇게 함세."

이후 둘은 아가씨들을 들여 두 시간 동안 술을 마시다가 헤어졌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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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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