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88화 (188/322)

다음 날 전략기획조정실 회의를 끝내고 일어나려는 나를 잡는 사람이 있었다.

"회장님!"

나승렬 기획 1팀장이 내게 다가와 불렀던 것이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소?"

"네, 회장님!"

"그럼, 자리를 옮깁시다."

"네!"

나는 곧 소회의실에서 회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차 한 잔 더 합시다."

나는 인터폰을 눌러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나 팀장 역시 하루에 커피를 7잔씩 마시는 커피 광이었기에 나는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주문을 했던 것이다.

"이제 말씀해 보세요."

"대동화학(大同化學)을 인수하는 게 어떻습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전부터 제가 관심을 갖고 있던 곳인데, 금번에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계속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만여 평이 모두 자연녹지인 줄 알았는데, 5,200평은 일반거주 지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요?"

"이 땅의 장부상 평가액은 겨우 3억 원 밖에 되질 않습니다. 이를 인근에 사원주택용으로 구매하려는 한전에 되팔면 큰 차익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대동화학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비닐류 및 화학 업종으로 80년에 흑자부도가 나서, 지금 법정관리 상태입니다.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입니다."

"꽤 자세히도 조사했군요."

"이를 인수해서 되팔면 부지만 해도 300억 이상의 차액을 남길 것 같습니다."

"그래요?"

나는 비로소 흥미가 동해 그의 앞으로 상체를 내밀며 말했다.

"정말 그 정도 가치가 있는 땅입니까?"

"성동구의 요지에 있는 땅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동화학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잠시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자 회사인 대동피혁이 먼저 부도가 났습니다. 그러자 사채업자와 주거래은행 모두 모기업이라고 안전하지 않다고 보고, 자금줄을 조이다 보니, 부도가 나긴 났는데, 그간 유상증자 회사채를 통해 자본증자도 많이 이루어진 상태였지만 최종적으로 부도를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내부거래 의혹이 짙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감독원도 시지 부지 끝내고 말았습니다."

"제 말은 우리가 인수를 하면 전망이 어떠하냐 말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최소 1년 늦어도 2년 안에는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경리부서와 협조해서 인수하는 방향으로 하세요. 은행거래라면 증권의 김 사장의 협조를 받는 것도 괜찮겠네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로부터 3일 후.

나 팀장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김 사장도 조흥은행장을 만났지만 100% 증자를 하는 조건으로만 팔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인수대금이 얼마나 들어가는 것입니까?"

"3억2천만 원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군요. 바로 인수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목례를 꾸벅해 보인 나 승렬 사장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날 우리는 대동화학을 최종적으로 인수했다. 나는 곧 보직이 없어 잠시 전략기획실로 임시 보직을 받았던 배순훈 전 전자 사장을 대동화학 사장으로 발령했다. 그 와중에 나 팀장은 공채로 뽑은 휘하의 부하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쏘다니더니 내게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한전주택조합 측과 접촉한 결과 평당 620만 원에 일반주택용지만 인수하겠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파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만........! 더 살 용의는 없답니까?"

"자연녹지는 건축할 수도 없으니 싫답니다."

"주택용지라면 더 살 용의가 있는지 한 번 더 알아보세요."

"나머지는 다 자연녹지지 더 이상의 땅이 없지를 않습니까?"

"그 문제는 나에게 맡기고, 지금 구입하려는 만큼의 땅을 더 살 용의나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의 명을 받고나간 지 채 두 시간이 되지 않아 나 사장은 그들이 그만큼 더 살 용의가 있음을 알려왔다. 나는 그 길로 서울시청을 찾아갔다. 나는 곧 염보현 서울시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대 대정그룹의 회장님께서 이렇게 친히 납시셨습니까?"

"애로사항이 좀 있어서요?"

"무엇인지 말씀 하시죠."

"다름이 아니라 성동구 광장동에 있는 대동화학을 저희들이 금번에 인수했는데, 그곳 부지에 사원용 주택을 좀 지으려니 일부가 자연녹지로 묶여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채 5천 평도 안 되는 땅이니 어떻게 해제를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흐흠.......! 그것 참 곤란한 일이군요. 그런 청원이 하나 둘이 아니라서 말이죠. 말썽의 소지도 있고요."

"내무부 장관님의 허락이면 가능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나야 책일 질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

차갑게 말하고 등을 돌리는 염 시장이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모른척하고 나도 바로 등을 돌리고 나왔다.

그리고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염 시장에게로 내무부 장관의 전화가 왔다.

'기업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니 시장님이 협조 좀 해주시지 그래요.'

'알겠소!'

퉁명스럽게 그가 전화를 끊는 것으로 졸지에 자연녹지가 일반 주거용으로 둔갑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우리는 정확히 1만200평을 평당 단가는 조금 내려 600만 원을 받고 한전주택조합 측에 팔아버렸다. 그 대금이 얼마냐? 자그마치 612억 원으로 세전 수익으로 공장을 빼고도 608억8천만 원이 되었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보면 건실하게 기업하는 사람들은 정말 힘이 빠지는 일이었다. 채 2주가 되지 않아 이런 거액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다시피 하니, 이 시절이 좋기는 좋은 시절인 모양이었다. 하긴 눈을 바로 뜬 사람만 생기는 일이겠지만. 아무튼 돈이 생기는데 나라고 싫어할 리가 없었다. 이를 보고 뭐가 뛰니 뭐가 뛴다고 안달하는 사람이 있었다. 곧 이순국 2팀장이었다. 바로 이튿날 이 팀장이 나에게 면담을 신청해온 것이다.

"저도 명예회복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제가 경영하다 법정관리 상태인 온양펄프를 재인수해서 흑자경영으로 돌려놓고 싶습니다."

"흐흠......!"

깊게 침음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말했다.

"일단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기조실에서 한 번 검토를 하라고 지시를 해놓겠습니다."

"네~!"

단번에 승낙을 하지 않자 힘 빠진 대답을 한 이 팀장이 밖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나 팀장이 들어왔다.

"목 좋은 곳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래요? 그게 어디 인데요?"

지난번에 크게 재미를 보았던지라 나는 기대를 갖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동대문 근처에 있는 덕수중학교 용지로 11번이나 유찰이 되어 아주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자꾸 유찰이 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질 않겠습니까?"

나의 우려에도 그는 전혀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동대문이 가까우므로 그곳에 패션타운을 조성해 분양한다면 성공리에 분양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치상으로는 그렇긴 한데......."

"한 번 더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보란 듯이 100% 분양을 해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흐흠.......! 도대체 얼마만한 규모를 생각하고 계신 데요?"

"용지 4천여 평에 지하 6층, 지상 22층으로 연건평 3만7,500평의 국내 최대 패션타운을 조성하려 합니다."

"배짱도 크십니다그려. 그게 분양이 다 되겠습니까?"

"자신 있습니다."

"허허, 참내.......!"

잠시 생각하던 내가 물었다.

"투하 자본이 얼마나 들 것 같습니까?"

"11번째 유찰된 가격이 평당 82만 원이었습니다. 그 가격에 사겠다고 하면 시교육위원회도 두 말 없이 내줄 것입니다. 이 가격이 32억8천만 원이고, 여기에 평당 건축비 25만 원 정도를 계산하면 93억7,500만 원이니, 총 126억여 원 정도 되겠습니다."

"그럼, 분양가는 얼마를 받을 예정입니까?"

"평당 100만 원을 받을 예정입니다."

"그 가격에 분양이 다 되겠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곳에 본래부터가 의류시장과 가까운 곳이니, 모두 분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허허, 그것 참.........!"

헛바람 소리를 내며 나는 내심 생각했다. 막말로 분양이 하나도 안 되어도 지난번에 벌어 놓은 것이 있으니 까먹어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건물을 지어놓으면 사무실로 써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잘 되었을 때를 생각해 암산을 하고 있었다. 평당 100만 원에 37,500이면 375억 원이었다. 그렇게 되면 차액이 줄잡아 250억 원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추진하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인사를 꾸벅하고 팀장이 나가자 나는 김재익 기획수석을 불러들였다.

"거, 앉으세요."

"네 회장님!"

"다름이 아니라 이순국 기획2팀장이 자신이 경영하던 온양펄프를 우리가 인수해주면, 다시 경영해서 흑자로 전환시켜보겠다고 하는데, 이를 한 번 종합적으로 검토해보세요."

조용히 듣고만 있는 김 시장에게 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본 상태, 생산성, 종이업계의 현황, 판로 부문에서는 국내 및 국제로 나누되, 예를 들면 국내 소비가 부진하더라도 수출을 해서 만회할 가능성은 있는지, 또 단순히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업체를 인수해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

"네, 회장님!"

"사실 내 입장에서 이렇게 세세하게 지시를 하는 것 자체가 넌 센스고, 어느 모로 보면 실장님을 무시하는 것으로도 비춰질 수 있어요. 하지만 어느 기업이든 인수를 하는데 있어서, 비록 그 기업이 작을 지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회장님의 마음 충분히 알겠습니다. 최우선적으로 충분히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업공개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습니까?"

"전 부분에 걸쳐 세심하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고 기획실이라는 것이 당면 현안에 대한 검토도 하지만, 미래에 대한 대비도 게을리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지난번 연두 업무보고서에서 말씀드린 바도 있지만, 그 때는 관세를 피하기 위한 제3국에 공장건설 문제를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고임금이 되었을 때에 대한 대비도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

"말씀하시죠, 회장님!"

나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생각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국민의 욕구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올 것으로 나는 봐요.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이제 지금의 마이카 붐처럼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질 때라는 말이죠. 예를 들면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 소득 재분배 문제 즉 월급을 급격히 올려달라든지, 복지문제 등."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는 노조가 결성되어 실력행사를 하려들 수도 있고. 아무튼 선진국의 예를 참조하여 이에 대한 대비도 지금부터 철저히 해야 된다고 봅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아니래도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 급하지 않다는 생각에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에 대한 연구도 진행해, 이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 김 실장님만 믿으니 철저히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회장님!"

"내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목례를 한 김 실장이 등을 돌려 회장실을 벗어났다.

그로부터 오 일이 지났다. 나 팀장이 덕수중학교를 시교육위원회에서 평당 82만 4,000평을 수의계약으로 사들이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고해왔다. 또 자신의 말대로 설계 의뢰도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미 내가 승낙한 사항이기에 나는 알았다는 말로 그를 돌려보냈다. 때를 맞추어 기획실에서는 온양펄프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완료한 김재익 기획실장이 직접 내게 들고 들어왔다. 그가 자리를 잡자마자 내가 물었다.

"어떻습니까?"

"한 마디로 비전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시죠."

"오늘날 한국의 제지업계에서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거나 지명도가 있는 업체는 다섯 개에 불과합니다. 곧 계성제지, 홍원제지, 삼성특수제지, 대한펄프, 온양펄프 등입니다. 그 중에서 온양펄프와 삼성특수제지는 법정관리 상태에 있고요. 여타 세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는 는 정말로 중소규모를 면치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이에 우리가 자본을 투자해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면서 원료서부터 판로까지 일관체제를 갖춘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장래성으로 본다면 제지업에 뛰어드는 것도 비전이 있는 사업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큰 회사를 하나 설립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중소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 덤핑경쟁을 벌일 것입니다. 그러면 국내보다는 전적으로 수출만해야 된다는 이야기인데, 내수를 기반에 둔 수출국내보다는 전적으로 수출만해야 된다는 이야기인데, 내수를 기반에 둔 수출이 저는 안정적이라고 봅니다."

"흐흠........! 그럼, 김 실장님은 몇 개의 큰 기업을 인수하고 더해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까지 인수해 출혈경쟁을 못하게 한 후 일관체제를 갖추자는 복안이시죠?"

"확실히 회장님의 이해가 빠르십니다."

"그 업체에 대한 타당성 검토 내지는 인수대상 기업은 선정하셨습니까?"

"아직 타당성 검토까지는 끝내지 못했지만 제지의 특성상 품목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으니, 인수할 만한 업체는 대여섯 개 찍어놓은 상태입니다. 하고 우리에게 하나 유리한 점은 이 순국 사장이 이 분야에서는 아주 전문가라는 사실입니다."

"그 점은 나도 인정합니다. 내가 그를 스카웃한 배경은 한마디로 우습지도 않아요. 벌써 꽤 오래되었는데, 4~5년 전쯤의 연말로 기억이 나는데, KBS의 대담프로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는 당시 상공부장관인 현 우리의 전자 사장인 서석준 씨와 각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토론회가 열렸었는데........."

한 호흡 쉰 나의 말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저명한 인물들이었어요. 유창순 무역협회장이라든가, 이헌조 희성산업 사장, 연세대 박진근 교수 등. 그런데 그 틈에 아주 젊은 경영인이 하나 참여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 삼십대 중반의 이순국 팀장이었죠. 그런데 하는 발언마다 예사롭지 않은 발언만 해서, 내가 그때부터 주목을 하다가 스카웃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해서 나는 그가 언젠가는 빛을 보리라 생각했죠.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있으니, 회계분야의 날카로움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일단 말을 끊은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기자. 김 실장도 조용히 생각에 잠겨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갔겠으나, 예의상 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생각을 더 하던 내가 다시 물었다.

"얼마만한 자본이 투하되면 업계를 평정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한꺼번에 무도하게 뛰어드는 것보다는, 위험부담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단계적으로 하나씩 인수하는 것으로 하되, 우선 법정관리 상태인 온양펄프와 삼성특수제지를 먼저 인수하는 것이 순서라고 봅니다."

"흐흠........!"

잠시 생각하던 내가 다시 물었다.

"두 회사를 인수하는 데는 얼마만한 자본금이 필요하겠습니까?"

"온양 펄프는 연간 40만 톤으로 증설을 하는 바람에 자본금이 14억인데, 자본 잠식 상태가 8억 정도로 비교적 양호한 상태인데 반해, 삼성특수제지는 자본금은 7억인데 자본잠식 상태는 60억으로 외관상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합니다."

"그런 것을 뭐 하러 인수합니까?"

"제지업을 하려면 가장 많이 쓰이는 품목의 삼박자를 갖추어야 하는데, 온양의 골판지, 삼성의 백상지와 신문용지입니다."

"신문용지라고요?"

"네."

신문용지라는 말에 나는 장 강재 회장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금은 사장이 아니라 회장이 되어있었다. 부친이 78년도에 작고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일단은 좀 더 세밀히 검토를 해보고, 내가 한 사람을 만나본 후에 최종 결정하기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 실장이 돌아가자 나는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연결하도록 했다.

곧 윤 양이 전화를 바꾸어주었다.

"전화 바꾸었습니다."

"무슨 일인데 강 회장이 직접 전화를 주시고......?"

"각하와 독대할 시간을 마련할 수 없을 까요?"

"그야 내가 함부로 할 사안이 아니니, 일단 보고는 드려보겠소."

"고맙습니다. 실장님!"

"자주 좀 뵙시다."

"네, 실장님!"

나는 그와 몇 마디 안부 인사를 나누다가 곧 전화를 끊었다. 10분 후 비서실장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는데, 내일 오전 10시까지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이야기였다. 다음 날 오전 9시 40분.

나는 김 비서실장만을 대동하고 일찌감치 청와대로 찾아들었다. 비표를 받아든 시간이 15분 전 10시라 나는 비서실장이 내려 보낸 비서관을 따라 올라가 잠시 비서실장의 방에서 환담을 나누었다. 2분 전 10시가 되자 박 비서실장이 잠시 대통령집무실을 다녀왔다. 보나마나 내가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으리라. 대통령의 허락이 떨어졌는지, 비서실장이 나를 전 통의 집무실로 안내를 했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

"편안하셨습니까? 각하!"

오늘은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깍듯이 존칭을 사용했다.

"한동안 소원하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 나를 만나자고 하는 게요?"

"차라도 한 잔 주시고........"

"하하하.........! 내가 좀 성급했나?"

마침 여비서관이 차 주문을 받으러 왔으므로 나는 커피를 시키고, 각자 알아서 자기의 기호대로 차를 시켰다.

"그래, 강 회장의 소원대로 차도 주문을 했으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놔 보세요."

"88올림픽을 대비해서 방송사 하나가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뜬금없는 소리요?"

"저는 단번에 국민들을 바보상자 앞으로 끌어 모아 눈을 떼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자면 당연히 상업방송이 되어야 하고."

"흐흠........!"

내 말에 비로소 솔깃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전 통이었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해서 전 통이 아주 골치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일환으로 81년도에 프로야구의 창단도 허락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와 같이 상업방송을 통해 국민의 시선을 돌리자는 이야기였다.

"흥미 위주의 오락프로그램과 연속극 또한 젊은이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스포츠 중계 등을중점적으로 편성해 이들을 텔레비전 앞에 잡아 놓을 계획입니다. 더불어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100억 원을 쾌척하겠습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심장어린이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말은 곧 정치헌금을 의미했다. 이 재단의 회장이 이 순자 여사로서, 이곳에 돈을 내겠다는 것은 곧 정치헌금의 동의어이기도 했다.

"흐흠.........!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일단은 관련 장관에게 내 적극 검토해보도록 지시를 하겠소."

"감사합니다. 각하!"

"그 이야기뿐이오?"

"저희 반도체에서는 극비리에 16메가디렘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나, 시장 수요보다 너무 앞서나가는 느낌이 있어서, 아직 보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허허........! 그런 자랑스러운 일이! 역시 강 회장이오."

"또 잘 하면 나이지리아 광구 일부도 인수해서 우리나라의 석유 수급을 보다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허허........! 내 강 회장의 말만 들으면 그야 말로 사기충천이요. 아주 힘이 불끈 솟는다는 말이오. 그래 그렇게 나라를 위해 많이 헌신해 주오."

나는 80%는 성사 단계에 있는 나이지리아의 유망유전에 대한 정보까지 그에게 제공하며 환심을 사려 애썼다.

"언제 시간 나는 대로 전화 한 번 주오. 서로 바빠 소원하지만 내 강 회장이 시간을 낸다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리다. 술이나 한 잔 합시다."

"감사합니다. 각하! 조만간 짬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할 이야기는 다 했지요?"

"네!"

"자, 그럼 차나 한 잔씩 들고 일어섭시다."

"네, 각하!"

이렇게 해서 나는 낚싯밥을 깔아놓고 때가 올 때를 기다렸다.

물론 그 안에 청와대도 한 번 들어가 전 통과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나는 정치 이야기는 피했고 주로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자 내부 검토가 끝났는지 하루는 전통이 나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이 날은 낮이 아니라 저녁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조건이 붙었는데 나 혼자가 아닌 동부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데려가기로 말하면 미정이를 데리고 가야했다. 엄연히 나와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서실장에게로 전화를 걸어 이 순자 여사가 나와의 자리에 참석할 예정인지를 물었다. 그의 답변은 '확실히는 모르지만 참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결정했다. 미정이만 데리고 가기로.

만약 내가 세 부인을 다 데리고 간다면 될 일도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보는 눈은 남자와 달라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볼 공산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결정이 되자 나는 미리 미정에게, 어디 중요한 파티에 가니 미리 준비하라는 언질을 사전에 주었다. 마침내 그 날 당일이 되어 나는 미정만을 데리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에 우리를 맞은 박 비서실장이 나를 안내한 안내해 가는 곳은 내 예측대로 청와대 식당이었다. 미정은 청와대 소리를 꺼내는 출발시간부터 긴장을 하더니, 한층 더 긴장된 모습으로 조용히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가 식당에 들어서니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듯, 전 통 내외가 문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따뜻이 맞아주었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 내외분!"

"편안하셨습니까? 사모님!"

"이 사람이 이제 나는 보이지도 않는 거야, 뭐야?"

"각하께는 점수 딸만큼 땄으니, 오늘은 영부인님께나 점수 좀 따려고요."

"하하하........! 영리한 사람이네. 내가 와이프한테는 꼼짝 못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호호호........! 어서 와요. 우리 젊은 새댁은 이리로. 어머! 곱기도 해라!"

이순자 여사의 말에 돌연 전 통이 질투가 나는지 엉뚱한 말을 꺼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부인이 셋이라는데 정말이오?"

"그렇게 됐습니다."

"그 말이 정말이세요?"

이 순자 여사도 들은 바가 있을 테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어머! 이렇게 고운 부인을 두고, 어쩌자고 셋씩이나........"

"들려오는 말로는 하나 같이 절색이라니 누구 하나 버리기 어려웠던 게 아니오?"

"그게 아니고요. 저랑 맺어지기 전에 한 분은 이미 약혼 상태였고, 첫사랑이라는 사람은 어쩌다보니 아이가 생겨서........."

미정이 나를 변호한답시고 나섰으나, 이들 부부의 공세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하하하.........! 아무튼 욕심은 사나운 사람이군."

"그러게나 말 이예요."

두 사람의 공세에 나는 아예 뻔뻔스럽게 나가기로 하고 이렇게 말했다.

"사내의 아랫도리 이야기를 너무 이야기하는 것도 실례입니다."

"하하하.........! 강 사장의 말대로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합시다."

"네!"

동의를 하나 내 얼굴을 한 번 더 뚫어지게 바라보는 이 여사였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우리는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나란히 앉아 마주보게 되었다. 이미 테이블에는 많은 음식들이 술과 함께 치려진 상태였다.

"내 내자에게 강 회장의 얘기를 했소. 심장재단에 100억을 쾌척한다고 했더니, 우리 어부인께서 한 번 만나보고 싶다기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이오."

"감사합니다. 영부인님!"

"차린 것은 많이 없지만 많이 드시고, 즐겁게 놀다 가세요."

"감사합니다."

영부인의 인사말에 나는 살짝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우선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눕시다."

"네, 각하!"

이때부터 식사를 하는데, 나야 그렇다 치지만 미정은 어디로 밥이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반찬도 어려워서 멀리 있는 것은 수저가 나가지 않고 간신히 제 앞에 있는 것만 후비 후비 파먹었다. 그러자 이게 안 되어 보였던지, 이 여사가 때로 맛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을 나름 집어다, 미정의 밥 위에 올려주기도 했다. 이렇게 반쯤 식사가 되어가자 전 통이 적포도주 병을 들어 내 잔에 따르며 말했다.

"한 잔씩 하며 식사를 합시다."

"네, 각하!"

나도 그에게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영부인님도 한 잔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딱 한 잔만 주세요."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옆자리까지 가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앉아서 따르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 또 실례이기도 하고. 잔을 받은 이 여사가 말했다.

"일어나신 김에 부인도 한 잔 따라주세요."

"네!"

내가 따르고 나니 전 통이 한 마디 했다.

"내가 따라 드릴 걸."

"아닙니다."

내가 급히 부인을 하고 미정은 상기된 얼굴로 뭐라 말도 못했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보기 좋은지 내외는 이를 보고 더 흐뭇하게 여겼다. ============================ 작품 후기 대동화학과 덕수중의 일은 실제로 나 사장이 1991년도에 행한 일로, 당시의 시가는 대동화학의 일반주거용지만 평당 850만 원씩 5천 평을 팔아먹었습니다. 실제 사들인 가격은 같고요. 그것을 조금 시대를 앞당기는 바람에 평당 가격을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덕수중은 91년 같은 해에 행한 일로, 모든 것은 다 그대로이나, 다만 건축비나 구입비는 제가 추정한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도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멘트, 많은 쿠폰을 주신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대단히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감사합니다!

^^인사 올립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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