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에 야전침대를 갖다놓다-- >
나는 카를르스 슬림 사장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이리 와, 자리에 앉으세요. 방금 해외정보실장으로부터 대충아니마 귀하가 하려는 사업 내용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어요. 해서 그 사업에 대해 투자를 하려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나의 말에 카를루스 사장이 급 희색을 띄는 반면에 우리 그룹의 간부들이 이제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얼마에, 지분은 얼마를 주시겠습니까?"
"경영은 제가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49%의 지분에 협상을 해보아야 알겠지만, 4,500달러에 대한 49%이니까, 대충 2천2백 달러 남짓이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가계약을 체결하고, 본 계약은 인수 후 체결하는 것으로 하죠. 어떻습니까? 단 앞으로 어느 기업을 인수할 때는 내게 제1의 우선권을 주어, 투자 지분을 준다는 단서조항을 명시해야 됩니다."
"좋습니다! 저야 언제든지 환영할만한 내용이군요."
황당하게도 이렇게 해서 두 건에 대한 투자 건이 졸지에 마무리 되었다. 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솔직한 내 심정은 설령 이번 투자 금을 다 날리더라도, 앞으로 계속 그와 유대관계를 맺고 투자를 할 수 있다면 이익이라는 심정으로 펜을 놀리고 있었다. 왜 내가 이렇게 서둘렀는가는 그에 대한 인물 소개로 대신하겠다. 카를로스 슬림은 멕시코의 기업인이자 통신재벌이다. 아메리칸 모빌, 카르소 글로벌 텔레콤 등의 기업을 소유, 경영하고 있으며 '멕시코의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소유한 텔셀이라는 통신회사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하며, 보험, 은행 등 금융업을 다루는 인부르사와 항공, 건축, 정유, 건설, 운송 등 거의 모든 사업 분에 진출하여 그가 소유한 기업들의 총 생산량은 멕시코 GDP의 5%나 되어 '슬림제국'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미국의 재산까지 합치면 6.7%까지 올라간다. 아무튼 그가 소유한 '아메리칸 모빌' 주식의 가치가 올라 2007년에는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1위 갑부에 오르기도 했다. 그 뒤 빌 게이츠에게 1위를 내주었으나, 그 후 재산이 늘어 2010년 3월에는 다시 세계 갑부 1위로 등극하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별 볼 없었고, 훗날 즉 90년 대 멕시코의 통신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훗날 이번에 매입한 보험사 세구로스 데 멕시코는 2014년 기준 현재 가치가 15억 달러 수준이고, 산보른스는 현재 세전수입만 5억 달러의 우량기업이 되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이 그룹에 투자를 계속하니 두고 볼일이었다.
그가 나가자 나는 다시 엄삼탁 해외정보실장에게 눈을 돌려 물었다.
"이란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직도 이라크와 전쟁 중이라 대부분의 석유 생산시설은 파괴되었고, 쌀을 비롯한 식량은 물론 모든 생필품이 대부분 크게 부족해 큰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수금은 회수할 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공사를 재개해야만 대금을 줄 수 있다하나, 그것도 원유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허허, 그것 참.......!"
쓴 입맛을 다신 내가 다시 물었다.
"전쟁 중인데 무슨 공사를 하라는 말입니까?"
"전쟁 중이지만 실제 전투는 소강상태고 남부 전선 일부에서만 간헐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나, 모든 전쟁물자까지 동이 난 이란은 아예 많은 인구를 이용한 인해전술로 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전쟁을 한다고........"
"그래도 평화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는 곳은 오히려 이란입니다."
"호메이니의 그 고집으로 똘똘 뭉친 얼굴을 보세요. 앞으로 최소한 3년은 더 갈 것입니다."
내 말 대로였다. 이란?
이라크전쟁은 1980년 9월 22일 이라크가 이란을 기습 공격하면서 일어났고, 1988년 8월 15일 양국 간 평화협상을 마무리함으로써 종전되었고, 8월 20일부터 정식으로 휴전이 발효되었다. 아직도 길고 긴 여정이 남은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내 머리에는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곧
'위험이 있는 곳에 큰 이익이 있다.'
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를 다른 말로 포장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엄 실장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만약 우리가 공사를 감행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부는 모르겠지만 국제건설이 공사를 벌이던 북부는 현재 안전지대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100%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도 가끔은 적의 포탄이 떨어지기도 하니까요."
"흐흠........! 참으로 난감하군. 만약 휴전이 된다면 전후 복구사업을 위해 세계의 이름 있는 기업이란 기업들은 모두 달려들어 한 건 하기 위해 승냥이처럼 모두 달려들 텐데 말이죠. 역으로 너무 고립되고 고단한 형세인 이때에 우리가 그들을 도와준다면, 전후 복구사업에서 큰 공사를 많이 차지는 하겠지만, 이것은 위험을 담보로 하는 일이니........."
내게 고뇌에 찬 표정으로 이마를 짚자, 엄 실장이 말했다.
"제가 종전에 말씀 드린 대로 공사를 감행해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공사를 재개하고 당장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을 구입해준다면 큰 이문이 남을 것 같습니다."
"석유생산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으니, 어디서 돈이 나오겠습니까? 당장 그들에게 그 물품 값을 받지 못하는 게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범석 실장의 말에 그 부분은 수긍하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엄삼탁 실장이었다. 나는 다각도로 생각을 하다,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내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분명 기회입니다. 이런 판단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신디케이트론(Syndicated Loan)에 대해서 알아보고 난 후,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회장님!"
나의 말이 이치에 합당했으므로 모두 나의 말에 찬동했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신디케이트론(Syndicated Loan)에 대해 설명을 하면 이렇다.
두 개 이상의 은행이 차관단을 구성하여 공통의 조건으로 일정한 금액을 중장기적으로 융자해주는 대출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이루어지나 일반적으로는 유로 시장과 미국 금융시장에서 대규모의 금액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국제적인 무담보 신용대출이다. 전통적인 은행대출 업무와 투자은행의 인수업무 기능이 혼합된 융자 형태라 할 수 있었다.
차입자의 입장에서는 대규모의 소요자금을 단일조건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으며, 차관단에 참여하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특정 차입자의 채무 불이행에 따른 대출위험을 공동융자방식을 통해 분산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국제금융시장에서 중소은행들의 경우 신디케이트론에 참여함으로써 유로 도매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대규모 은행들의 신용정보나 거래 기법들도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즉각 앉은 자리에서 런던 금융 팀을 연결해 신디케이트론에 대해 알아보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날 오후 리비아로 날아갔다. 나는 이곳에서 대수로 공사와 각종 공사 현장을 돌아보다가 3일 후에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렇게 2주가 흐른 어느 날, 유럽 금융 팀에서 내게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통화 내용인 즉 이란 정부가 보증을 하면 10억 달러는 모집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나는 즉각 중동지사장을 이란으로 급파해 이란의 고위 관리와 접촉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이란 정부는 'NIOC(이란국영석유공사)'라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해왔다. 나는 즉시 이를 런던 금융 팀에 알렸다. 신디케이트론에 참여할 은행들에게 PR할 말까지도 전하며.'이란의 국영석유공사라면 이란의 외자를 조달하는 창구이자, 국가가 운영하는 독점 사업체이기 때문에 정부 보증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10억 달러의 공여된 신디케이트 자금을 가지고, 이란이 필요로 하는 각종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가 이란의 곡물 수입 창구가 되었다는 정보를 신속하게 입수한 자들이 제일 먼저 달려들었다. 소위 말하는 세계 7대 곡물메이저들로 '세븐 시스터즈(7sisters)'가 그들 이었다. 미국의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콘티넨털, 콘아그라, 프랑스의 루이드레퓌스, 아르헨티나의 벙기, 스위스의 앙드레가 그들이었다. 우리는 이들에게 입찰을 붙여 이란 정부가 요구하는 쌀, 밀가루, 콩 등을 1차적으로 5천만 달러어치 공급했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중에서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수출하기로 하고 그 품목과 수량을 요구했다. 그러자 자동차, 각종 파괴된 건물을 복구하기 위한 건축 자재, 각종 전자제품 여타 각종 생필품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품목 중에는 설탕, 비누, 칫솔, 페인트는 물론 생리대, 기저귀, 화장지 등 온갖 물품의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자동차 부품에 대한 수요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만이 아니라 전쟁물자도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이 사업을 인도적 차원에서 하고 있다. 그러니 전쟁에 말려들게 하지는 말라!'
나의 의지를 전해들은 그들도 더는 내게 전쟁 물자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우리는 이란이 요구하는 수많은 물자를 공급하다 보니, 채 6개월도 못가서 10억 달러가 금방 소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우리는 기존 신디케이트론에 참가한 은행들에게 내년 분 10억 달러를 또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정 급한 생필품을 보급해주기 위해, 국내 신디케이트론 2억 달러를 일으켜, 그들의 불요불급한 품목만 조달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간신히 85년도를 넘겼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올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가전부분의 정상화라 할 것이다. 비록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나 역시 고생을 많이 해서 인지 제일 기억에 남았다.
우리가 대한전선에서 인수한 품목은 정확히 총 13게 품목이었다. 그러나 연말에 살아남은 것은 6개 품목 뿐이었다. 흑백TV, 칼라TV, 라디오, 세탁기, 냉장고, VCR 등이고, 펙시밀리를 비롯한 절반 이상이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아예 라인을 철수하고 그곳에 종사하던 사원과 종업원들은 해고를 당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적자나는 사업부는 내 명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모두 정리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내 사람이나 종업원이 되었던 사람들은 대체로 나는 잘 버리지를 않는다.
이듬해 정시 모집을 통해 나는 일종의 플러스알파를 주어 그들이 대거 채용되는 혜택을 누렸다. 아무튼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을 맞아 나는 더욱 분주해졌다. 회사 일도 일이지만 내 개인적인 사교모임이나 가족들에게도 시간을 할애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세 식구를 모두 한남동으로 모이도록 했다. 가급적 한 집에서 지내고 싶지만 아무래도 모아 놓으면 분란이 생길 것 같아서, 나는 아직도 세 집 살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이브는 어느 해 보다 포근해서 마치 봄날 같았다. 그래도 겨울이라 우리는 모두 두터운 겨울 외투나 파카를 입고 잔디밭에 모여 송년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작은 돼지를 통으로 바비큐 해, 계속해서 따뜻한 음식이 올라오는데다, 뷔페식으로 장만된 음식들 또한 계속 따뜻하게 덥혀지고 있어서 먹는데 하등 지장이 없었다. 나는 세 부인과 자식들을 모두 화톳불 가까이 불러 놓고 간단하게 인사말을 했다.
"올 한해 우리 가족에게도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나는 모두 이 자리에서 웃음 띤 얼굴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 큰 행복감을 느낀다. 내년에도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 무엇보다도 건강하기 바란다. 이상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말은 마치고 이제 따라놓은 술과 음료수를 들면서, 모두 축배를 들자!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위하여!"
모두 힘차게 건배를 하고 우리는 웃고 떠들며 또 한 해를 마감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보람차고 좋은 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보람차고 좋은 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