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83화 (183/322)

< --공장에 야전침대를 갖다놓다-- >

오전 9시 재무부 장관실.

나는 김만제 장관과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제는 밤늦게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니 너무 예의를 차릴 것 없소."

"사실........."

이렇게 입은 떼었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몰라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어제 7살 난 딸아이가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런........! 그래서요?"

"범인을 몇 잡아 취조를 한 결과 국동건설 사장의 사주를 받았다는 자백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로 긴급 사장이 호텔에서 유아납치 사주 및 마약투약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흐흠........!"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듯, 국동건설 사장이 장관님도 아시는지모르지만, 제 내자인 탤런트 황수정을 옛날부터 연모해 오던 차,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간단한 내 몇 마디에도 대략의 사건이 유추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김 장관이었다.

"이 과정에서 경호원 하나가 괴한의 칼에 찔려 오늘 새벽에 절명하기도 했습니다."

"그 기분을 알만 하오."

잠시 장관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던 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국동건설을 제가 인수하고 싶습니다."

"부도직전으로 빈껍데기만 남았을 텐데?"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래도 그 문제 때문에 이필선 행장과 한차례 모임을 가진 적도 있었소. 한차례 긴급 자금을 방출하기도 했지만, 이번 무역협회 수주사건을 보노라니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심하고 있었소. 문제는 지금 부채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고, 또한 무역협회 및 인도네시아의 복합개발 공사 여타 소소하게 진행 중인 공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요."

"이를 인수하는 업체가 승계를 해야겠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공사라서......."

"그렇게나 말이오. 1원이 뭐요, 1원이. 아무리 도급순위를 끌어올리는 것도 좋지만 말이오."

"재 발주는 어렵겠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펄쩍 뛰는 김 장관이었다.

"그 공사까지 제가 모두 인수하겠습니다."

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고 김 장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흐흠.......! 그렇게까지 한다면야,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지요. 부실기업을 정리해 사회전반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각하의 특명이니까. 하고 며칠 전 보도를 보아서 아시겠지만, 일체의 부동산 투기도 용납 안겠다는 것이 각하의 엄한 뜻이기도 하오."

"......."

내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자, 김 장관이 이어서 말을 했다.

"일단은 내가 각하께 품신해, 내락을 얻은 뒤 집행하는 것으로 합시다."

"고맙습니다. 장관님!"

이후 나와 김 장관은 주변의 이야기로 잠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5분 후 나는 그곳을 벗어났다. 이틀 후.

나는 김경제 비서실장, 김재익 기획실장을 데리고, 제일은행을 방문했다. 우리는 곧 이필선 행장과 마주앉았다. 서로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이 행장이 두툼한 보고서 하나를 내 앞으로 밀치며 말했다.

"우리가 자체 제작한 내부 보고서요. 한 번 읽어보시면 국동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오."

이렇게 운을 뗀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작년, 저 작년 두 해 동안, 짓고 있는 아파트의 원가 상승과, 미분양으로 310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소. 그러나 이들은 분식회계를 통해 흑자인양 가장을 했소. 그래서 지금까지의 누적 적자를 포함한 총 부채가 700억 원에 이르오."

"하지만 시가 350억 원 대의 국동빌딩과 여타 부동산 그리고 회장이나 사장의 저택을 처분하면 부채는 상계될 것이라는 것이 자체 판단이오."

"위에 열거하신 것들이 모두 담보로 제공되어 있겠지요."

"당연한 이야기요."

"흐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가 이 보고서를 검토한 후, 최종 조건을 협의하는 것으로 하죠."

"그럽시다."

삼일 후.

우리는 다시 행장실에 모여앉아 있었다.

"우리의 자체 보고서와도 일치하는 군요. 일단은 우리가 그 부채를 인수하는 것으로 해서 국동을 인수하되, 물건들이 경매가 되는 대로 상계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것만이 일 처리를 질질 끌지 않고 빨리 처리하는 지름길이지요."

"언제 발표를 하시겠습니까?"

"내일 오전 10시."

"알겠습니다."

그 다음부터 우리는 일사천리로 실무적 절차를 밟아나갔다. 다음 날 오전 10시.

이필선 행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동건설의 부도사실을 최종 발표하고, 그 정상화 방안으로 이를 대정건설에 인수시키겠다는 안을 전격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회견 말미에 흑자경영을 한 것처럼 각종 재무제표를 조작해 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혐의로, 회장과 국동건설 사장 이하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대검 특별수사본부 팀이 꾸려지고, 이들은 국동 측이 분식회계를 통해, 국내 금융기관과 외국계 증권사의 보증을 받아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400억 원을 조달해 선량한 투자자들을 기만한 행위에 대해 기소를 제기했고, 범인의 일관된 진술에 따라 국동 사장은 살인교사 및 분식결산회계 혐의까지 죄명이 추가되었다. 나는 그동안 국동의 정상화 방안을 놓고 건설과 전략기획조정실 간부들을 불러놓고 연일 회의를 개최했다. 오늘도 그 연장선상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리비아 현장에 있다가, 인도네시아 공사 현장을 돌아보고 급거 귀국한 홍성부 사장을 보고 물었다.

"인도네시아의 복합개발 공사건은 어떻게 되어 있소?"

"디스트릭트 복합개발사업은 인도네시아의 유력 부동산 개발회사인 아궁세다유그룹(Agung Sedayu Group)이 발주하여 자카르타 SCBD(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지역에 56층과 41층 오피스빌딩 2개동, 36층 아파트 3개동과 상업시설 등 복합시설을 건설하는 공사로, 국동건설은 현지 건설업체인 엑셋(Acset)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한 공사였습니다."

"총 8,200만 달러의 공사 중 국동 측의 지분은 49%로 4천만 달러가 조금 넘는 공사로 현재 15%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지면에서는 어떻겠습니까?"

"15% 정도의 수익성은 있어보였습니다."

"다행한 일이군."

안도한 나는 이번에는 배용석 전무를 보고 물었다.

"무역협회 건물은 어떻소?"

"제가 정밀하게 판단한 결과 빠른 공기와 우리의 신기술을 적용한다면 그래도 10%는 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천만다행한 일이군."

나는 반색하며 기뻐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게 고층건물에 대한 공사기법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상가로 적용한 건설 방법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5년은 뒤처진 기술과 공법들을 적용해 예상가를 뽑았습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나는 크게 안도하며 배 전무를 크게 칭찬했다.

"역시 많이 배우고 대형 건설사에서 배운 사람이 뭐가 달라도 다르군."

나의 칭찬에 머쓱한 표정을 짓는 배 전무였다.

"규모가 커서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이 두 공사죠?"

"네, 회장님!"

"여타 소소한 건은 영진건설보고 신속히 처리하라고 합시다."

"네, 회장님!"

"무역협회 공사는 배 전무가 담당을 하고, 인도네시아 건은 홍 사장님이 힘드시겠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챙겨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두 사람의 복명에 흐뭇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던 나는 곧 회의를 파하고 바로 집무실을 벗어났다. 잠시 비서실 실내를 왔다 갔다 하던 나는 집으로 전화를 걸게 했다. 수정이 받았다.

"병원에 다녀왔어?"

"네, 한동안 안정을 요하라고 하더군요. 또 트라우마가 생길지 모르니, 각별히 신경 써서 잘 보살피라 하더군요."

"당분간은 당신이 좀 더 효정이에게 신경을 써. 당분간은 유치원도 보내지 말고."

"알았어요, 여보."

"당신은 어때?"

"저는 괜찮아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소. 효정이한테 물어보오? 화진포 별장에 며칠 놀러갔다 오는 것은 어떤지?"

"네, 물어보고 전화 드릴게요."

"그래, 그래."

나는 곧 전화를 끊고 김 실장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평소에 가족들에게 잘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그길로 다시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뭐해?"

"어머, 당신이 낮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참, 효정이는 어때요?"

"괜찮아. 많이 좋아졌대."

"다행이네요."

"효정이도 그렇고 하니 화진포나 한 번 갑시다."

"정말 이에요?"

"다정이까지 다 데리고 갈 테니 준비해요."

"알았어요, 여보! 고마워요. 쪽!"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이번에는 명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동안 신호가 가도 아무도받지를 않았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전화를 끊는데, 밖에서 노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들어오세요."

비서로는 막내인 유진선 양이 들어왔다. 이대 영문과 출신으로 미정의 후배가 되는 아가씨였다.

"무슨 일로?"

"계속 통화중이라고 효정이 어머니께서 비서실로 전화가 왔어요. 돌려드릴게요."

"알았소."

"네, 회장님!"

곧 내 집무실의 전화가 울었다.

"여보, 효정이도 가고 싶대요."

"잘 됐네. 철산이도 데려갑시다."

"네. 참, 인정이 엄마가 방금 우리 집에 도착했어요."

"그래서 전화를 안 받았군. 인정이네 식구도 같이 가는 것으로 알려주오."

"네, 여보."

"뭐? 빠진 것 있지?"

"요즘 정신이 없다보니........ 사랑해요, 여보! 쪽!"

"1시까지 전부 당신 집으로 모이게끔, 당신이 다정이 엄마한테도 전화를 해요."

"네, 여보!"

나는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았다. 이제 11시로 아직 두 시간이 남아있었다. 더디게 시간이 흘렀다. 12시가 되자 나는 강제로 비서실 직원들을 다 내쫓았다. 그러고 나 혼자 창밖을 바라보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맞아 곳곳에 심어 놓은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더욱 푸르러지고 있었다. 순환하는 계절은 어김없건만, 그 속에서 인간만이 희로애락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감상에 빠져들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퇴근 시간이 되자, 사무실 동 현관 앞에는 이미 내 승용차와 함께 8명의 경호원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더욱 눈들이 초롱초롱해지고, 예리한 빛을 뿜어내는 경호원들이었다.

이들도 들었을 것이다.

내가 순직한 경호원의 처우를 어떻게 했는지.

이 당시 일억 원이면 현재 가치로 최소 2억 원의 가치는 있었다. 아무리 희생을 당해도 이렇게 파격적인 보상을 하는 곳은 대한민국 천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아무튼 이들도 그 소식을 듣고 최소 안도는 했을 것이다.

'내가 만약 회장님을 위해서 아니 가족들을 경호하다 죽더라도, 최소한 남은 식구들의 생계 걱정은 안 하겠구나!'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가족의 걱정을 덜 때, 이들은 최선을 다해 직무를 다 할 수 있고, 비겁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며 나는 말없이 승용차에 올랐다. 그리고 수정의 집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 차는 연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가로수 길을 빠르게 달려 압구정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읽어주시고, 추천, 멘트, 많은 쿠폰을 쾌척해주신 님들께 거듭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대단히,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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