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81화 (181/322)

< --공장에 야전침대를 갖다놓다-- >

다음 날 오전 6시 20분.

일찍 출근한 내가 이 과장이 타 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가 밖에서 노크를 하고 있었다.

"들어오시오."

"네, 회장님!"

대답과 함께 들어온 사람을 보니 뜻밖에도 기획 1팀장인 나승렬 씨였다.

"아침부터 팀장님이 웬 일이십니까?"

"발견했습니다, 발견 했어! 회장님!"

"여기 앉아 차분히 말씀해 보세요."

"네, 회장님!"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한 것을 깨달았는지 멋쩍은 표정을 지은 나 팀장이 소파에 앉았다.

"이제 무슨 이야기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놈들이 글쎄, 이란에서 받지 못한 공사대금 800억 원도 자본으로 잡아놓

았지 뭡니까?"

"그곳은 벌써 몇 년째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공사도 중단되고 대금도 받지 못하는 곳 아닙니까?"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회장님! 공사를 했어도 받지 못할 기성 분까지 자본으로 계산하면 어찌 합니까? 당연히 이 항목은 삭제가 되어야지요. 손실처리로 말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소. 그러면 당연히 부채가 800억 원이 더 늘어나겠군요."

"맞습니다. 회장님!"

"좋았어! 아주 큰일을 해내셨군요. 역시 모셔오길 잘 했습니다. 역시 경리의 달인답습니다."

내가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자 순진무구한 웃음을 짓는 나 승렬 팀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이 매우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97년 IMF가 터져 자신이 소유한 기업들이 모두 부도위기에 처하자, 다른 기업과 같이 미련을 떨지 않고, 재빨리 스스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자구 계획을 세우는데, 이것이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98년 5월, 자신이 소유한 거평그룹 내 19개 계열사 중 4개만 남기고, 나머지 15개 사는 모두 부도처리한다는 방침을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 사장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세간에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고액체납자 명단에 들어있다는 것은 내가 처음에 이 사람을 보고 이 과장에게 말한 대로 사람은 외면만 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내가 2팀장으로 모신 신호그룹의 이 순국 사장은 어떠한 사람인가?

이 사람 역시 IMF때 그가 일군 그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그 전에 이미 그는 전 종업원들에게 자신의 주식 25만 주 중, 60%에 해당하는 15만 주를, 아무 대가 없이 종업원들의 근로복지기금에 내놓은 사람이었다.

이는 종업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길 바라서겠지만, 나는 너무 순진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나를 받으면 둘을 내놓으라는 것이 종업원들의 심리다. 그래서 나는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무튼 차입에 의한 매수합병의 귀재 이순국 씨와, 경리의 달인이자 남의 재무제표를 한 눈에 꿰뚫을 정도로 타인의 회사에 대한 평가가 정확했던 나승렬 사장, 이 양인의 처세는 극과 극이다.

그렇지만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장점만을 보고 사람을 부려야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이면을 꿰뚫지 못하고 있어서는 크게 당하는 수도 있으니, 그에 대한 경계심과 대책을 아울러 마련해 놓고, 융통성 있게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안배해, 잘 부리는 것이 기업 경영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나승렬 사장을 크게 치하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은밀히 김 비서실장을 불러 최신형 승용차 한 대를 사주도록 지시했다. 그의 승용차가 낡은 것을 내가 알고 있었기에 취한 행동이었다. 800억 원을 졸지에 세이브 해주었는데, 그까짓 몇 백만 원 하는 승용차 한 대가 내 입장에서는 무엇이 아깝겠는가. 아무튼 그가 나가고 얼마 안 있어, 공병탁 경리이사도 내게 들어와 보고를 하는데, 그 역시 800억 원의 숨겨진 진실을 발견했다는 보고였다. 나는 그 역시 크게 칭찬을 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에게도 승용차 한 대를 사주도록 했다.

나는 곧 김재익 기획실장을 불러 그를 꾸짖었다. 어떻게 부하를 다루기에 상관을 무시하고 내게 직보를 하느냐는 꾸지람이었다. 이에 얼굴이 벌개진 그가 바로 나갔으니, 한바탕 군기를 잡지 않을까 생각되어 진다. 등록일 : 14.02.08 00:05조회 : 7814/7825이날 오전 10시. 즉 2월 21일 오전 10시.

제일은행장 이 필선은 아침부터 돌연 기자회견을 자청해, 부도위기에 빠진 부실기업을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그 기업으로 재게 서열 6위의 국제그룹을 지목하고 이를 타 기업에 인수시킨다고 발표했다.

국제상사의 건설부분과 동서증권은 대정그룹으로, 국제상사와 신발부분은 한일합섬, 연합철강과 국제종합기계는 동국제강으로 각각 인수가 결정되었다고 일합섬, 연합철강과 국제종합기계는 동국제강으로 각각 인수가 결정되었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로는 해외 부실공사와 방만한 경영을 꼽고, 더 이상의 금융지원만으로는 국제가 회생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은행마저 부실화 될 위험성이 높아, 전격 해체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기자들의 벌떼와 같은 질문공세가 이어졌으나, 이를 회피한 채 이 은행장은 안으로 사라졌다.

이날 오전 11시.

나는 양 김 즉 김경제 비서실장과 김재익 기획실장을 데리고 다시 제일은행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란의 미수금 건을 따져, 공방 끝에 이를 자본수지 면에서 삭제시켰다. 그러자 부채가 3,600억 원으로 급증했다. 나는 이를 다시 조율해 그들의 안대로 50%를 상각시키고, 나머지 1,800억 원에 대해서는 5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조건으로 상환하되, 우선 운전자금 용도로 1천억 원을 대출받았다. 이 또한 수출입과 같은 정책자금으로 저금리를 적용했다. 또한 동서증권은 자본금 200억 원에 대한 14%를, 액면가 500원에서 현 시세 310원을 대비해 계산하니, 17억3천5백만 원이 나왔다. 나는 이를 아예 현금으로 지불하고 인수해버렸다. 아무튼 나는 회사로 돌아온 즉시 제일은행에서 융자받은 저금리 1천억 원을 자본금으로 하여, '대정 할부 금융'을 설립하도록 했다. 이 자금을 나는 가전 쪽의 각 대리점에 공급해, 이들은 또 소비자에게 할부로 팔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에게는 빌린 것보다 다소 비싼 이자를 받으니, 이래저래 남는 장사였다. 매출 또한 덩달아 올리면서. 아무튼 나는 또한 '동서증권도 대정증권으로 개명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어 우리그룹 산하에는 두 개의 금융회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해외정보 팀에 지시해, 이란에 대한 자세한 실태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도록 했다. 우리가 맡고 있는 공사 현황을 알려주고, 현지의 실제 상황은 어떠하며, 공사는 가능한지, 미수금은 회수가 가능한지.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올리도록 한 것이다.

그런 속에 근 3개월이 훌쩍 흐른 5월 17일, 10시 30분.

나는 오늘 청주시 강서2동 중부고속도로 기공식 현장에 와 있었다. 서울 강동구 하일동(下一洞)과 대전 동구 용전동(龍田洞)을 잇는 145.3km의 중부고속도로(中部高速道路) 기공식을 거행하기 위해 김성배(金聖培) 건설부 장관을 비롯해, 이 공사를 수주한 대정건설과 현대건설 그 밖에 2개 건설사, 그리고 이곳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테이프 커팅을 하기 위해, 흰 장갑을 낀 채 가위를 들고 나란히 섰다. 서울에서 충북 청원군 남이면(南二面)까지 123.6km는 너비 23.4m의 4차선으로 신설하고, 나머지 남이-회덕 간 21.7km는 기존의 경부고속도로 구간을 6차선으로 확장하되, 연속 철근콘크리트 포장기법을 도입하여 고속도로의 생명인 평탄성(주행성)을 살리는 공사 기법이었다. 전 통의 퇴임 전인 1987년 12월 개통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아무튼 총건설비 3천8백67억 원 중 용지 보상비 590억 원, 순수 건설비 2천6백56억 원이 투입되는 이번 공사에서, 우리는 충북 진천에서 청원군 남이면 구간의 공사를 맡았다. 우리가 수주한 금액은 724억 원이었다. 곧 커팅이 되어 오색테이프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고, 김 장관이 첫 삽을 떴다. 그러자 전기발파에 의해 폭약이 터지며 일부의 흙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하늘로 비상했다. 일제히 주민들의 박수가 터지고 공식적인 기공식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자 정 주영 회장이 나를 보고 농담을 했다.

"곧 도급 순위에서도 우리를 제치겠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니야, 빈말이 아니야. 정말 그런 위기의식이 들어."

"아직 멀었습니다."

"무슨 소릴! 대수로 공사 수주했지. 베트남 화력발전소, 보성화력발전소, 울진원전, 이 고속도로, 또 뭐가 있더라? 아! 터키 원전 공사! 아파트를 제외하고도 이렇게 많으니, 이제 우리를 제치는 것은 시간문제겠어. 여기에 참, 거 뭐 시기냐? 호주의 철광석 공사도 EPC 방식으로 수주했다며? 그 공사 금액도 상당히 큰데 얼마였지?"

"55억 달러입니다."

"거봐! 한국 돈으로 치면 그 돈이 도대체 얼마야?"

"줄잡아 4조4천억 원 정도 됩니다."

"굉장하군, 굉장해! 그런데도 우리가 시공하는 아파트의 하청을 아직도 하는 심보는 뭐야?"

"하하하........! 저희들이 시공을 안 하면 그 분야가 불량이 많이 날 것 같아서......"

"일 없네!"

"하하하..........!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보기 좋더고만. 배짱도 있고 말이야."

잠시 싱그러운 하늘을 보던 정 회장이 내게 물었다.

"이제 어디 갈 생각인가?"

"이곳 청주에 백화점 하나를 짓고 있는데, 준공이 가까워서 한 번 들려볼까 하고요."

"내 강 회장과 긴히 상의할 일이 좀 있는데, 시간 좀 내주겠나?"

"그러시죠, 뭐."

"어디 가까운데, 아는 데 없어?"

"제 고향이 이곳 충북입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초평의 붕어찜이 아주 일품입니다. 그곳으로 가시렵니까?"

"강 회장이 산다면 가지."

"하하하........! 알겠습니다. 회장님! 오늘은 제가 한 턱 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봐! 초평으로 갈 테니, 따라들 와!"

멀찍이 서 있던 부하들을 향해 한 마디 하고는 바로 자신의 차로 향하는 정 회장이었다.

참으로 성격도 급한 사람이었다. 나 또한 김 장관에게 가서 급한 일이 생겨 먼저 자리를 떠야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내 승용차를 향했다. 그러자 오늘은 특별히 내 요청에 의해 나를 수행한 김재익 기획실장이 부랴부랴 동승을 했다. 뒤따라 비서실의 이 과장과 구 과장도 황급히 내 차에 올랐다. 내가 목적지를 말해주자 선두 경호차가 앞장을 서고, 그 다음 내 차, 그 뒤로 또 하나의 경호 차량이 뒤를 쫓아왔다. 서둘러 먼저 자리를 떴지만 정 회장은 길을 잘 아는 나를 앞장세우기 위함인지, 아직 출발을 않고 있다가, 우리 행렬의 뒤를 쫓았다. 30분여를 달려 우리는 초평에 도착했다. 도로 안쪽의 공터 주차장에 우리가 차를 세우고, 일제히 내리자, 정 회장 일행도 따라서 차에서 내렸다. 나는 정 회장 곁으로 가 함께 가장 가까운 가게로 향했다.

"아이고, 오늘이 뭔 날이랴? 이렇게 유명한 두 분이 저희 집을 다 찾아주시고."

육순 가까이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인지 할머니인지 애매한 음식점 주인이 우리를 맞아 호들갑을 떨었다.

"방 있죠?"

"그럼유. 이쪽으로 오세유."

"네!"

우리가 아주머니를 따라가니, 방 세 칸의별채가 따로 지어져 있었다. 나는 그 중 정 회장을 모시고 가운데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 다 말이 없자, 방 하나에는 우리 팀이, 다른 방에는 현대 팀이 스스로 찾아들어갔다. 그러자 여덟 명의 경호원이 사방으로 쫙 깔렸다. 문을 열고 모든 사항을 지켜보던 정 회장이 한 마디 했다.

"젊은 사람이 웬 경호원을 그렇게 많이 데리고 다녀?"

"나쁜 짓을 많이 했더니,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요."

"농담인줄은 알겠는데, 정말 강 회장 신기가 있는 겨?"

"무슨 말씀이신지?"

"허허........! 이 사람! 현대의 정보력도 꽤 쓸 만하다고. 몇 사람, 건져 올린 사람들이, 제2의 삶을 산다고, 물불을 안 가리고 충성을 하고 있다는 말이 있던데?"

즉각 정 회장의 말에서 나는 아웅산 테러의 희생양이 될 번하다가 현장에서 목숨을 건지게 된, 김재익, 이범석, 서석준 사장을 떠올리고 참으로 세상에는 비밀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제가 필요한 인재라서 모신 분들입니다."

"애써 변명할 것 없고. 삼성이 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반도체에 투자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병철 회장이 아주 꼼꼼한 사람이거든. 몇 년에 걸쳐 반도체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시킨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두 번 검토도 않고, 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승산이 있다 생각하고 투자를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야."

"장차는 큰 사업이 되겠지만, 삼성을 보십시오. 전 계열사들이 돈 벌어서 아직도 계속 그 곳에 쏟아 붓고 있질 않습니까? 당분간은 아마 밑 빠진 독에 물 붓도 계속 그 곳에 쏟아 붓고 있질 않습니까? 당분간은 아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일겁니다. 최소 3년은 더 투자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강 회장은 겁도 없이 거기에 그 많은 돈을 투자했나?"

"우리는 이미 상당한 연구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라인 건설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래도 전자에서 번 돈이 그쪽으로 상당히 투입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권하건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럭키도 지금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아는데, 중복 투자로 인해 잘못하면 제 살 깎아먹기 십상일 것입니다."

"그렇긴 한데 말이지.........."

"제가 볼 때 회장님은 중후장대한 장치산업이나 건설, 조선쪽이 어울리십니다."

"그렇지?"

"네! 한 번 발 잘못 들여놓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잘못하면 삼성도 넘겨박힙니다."

"에고,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도체는 꿈을 접어야겠고만."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때 누가 시켰는지 모르지만 '도리뱅뱅'이라고 작은 민물 생선 튀긴 것과 소주가 들어왔다.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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