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80화 (180/322)

< --공장에 야전침대를 갖다놓다-- >

1985년 2월 초.

"뭐라고요?"

나는 김 비서실장의 보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금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몇 번을 확인해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나가보세요."

"네, 회장님!"

나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천정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무역협회에서 자신의 건물을 짓기 위해 한국의 내노라하는 건설사에 입찰을 붙였다. 대지면적 19만 347㎡, 연건축면적 60만 4705㎡으로 54층에 달하는 매머드 건물이었다. ' 트레이드타워'라 명명된 이 공사의 입찰방식은 특이하게도 '코스트피(cost fee)' 입찰방식이었다.

이는 예정 공사비가 먼저 제시되고 시공사가 챙겨갈 이윤을 두고 경매를 벌이

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이윤을 더 적게 써낸 업체가 낙찰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예정 공사비는 건물이 513억 원, 토목공사비와 이윤을 합쳐 87억여 원으로, 총 600억 원 규모였다. 토목공사비 규모는 40여억 원 수준이었으며 나머지는 이윤 몫이었다. 다른 업체들은 30억~70억 원을 제시했고, 한 업체는 10억 원에 투찰했으나. 어이없게도 1원을 제시한 업체가 있었다.

우리도 45억 원을 적어낸 공사였다. 어찌됐든 당연히 낙찰은 1원을 제시한 업체에게 돌아갔다. 그 업체가 어디 인고하니 바로 국동건설이었다. 총 500억 원에 공사를 수주한 것으로 예정가격에 비한 낙찰가율은 83.3% 수준이었다. 당연히 이를 두고 언론은 물론 국민들도 설왕설래 말들이 많았다. 그러자 곧 정부에서 덤핑 수주가 아닌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윤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지만, 토목공사비용까지 합친 액수가 1원인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공정거래실은 결국 1원 낙찰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낙찰가율이 80%를 넘어 덤핑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국동건설은 트레이드타워 공사에 앞서 건설공제조합과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계약보증의 경우 수수료는 낙찰액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윤 1원 낙찰이기 때문에 최소액인 200원이 적용됐다. 하지만 예정가와 낙찰액의 차액에 대한 보증수수료는 1억3천6백만 원에 달했다. 1원 이윤을 남기기 위해 보험 수수료만 1억 원을 넘게 쓴 것이다. 아무튼 기이한 일은 기이한 일이라 한국일보에서 취재에 나섰다.

그 중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1원에 응찰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작년부터 우리의 수주가 거의 없었어요. 도급액수를 올리기 위한 편법이었어요."

"다른 이유는 없고요?"

"글쎄요? 제가 좀 어리석은지 몰라도 1원의 이윤이라는 것은 너무하니, 무역협회에서 더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솔직히 있어요."

(기자의 웃음)

"남 부총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고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어쩐 일이지 몰라도 이 일이 있은 후 남덕우 씨가 무역협회장에 선임되었다.

또 국동건설이 트레이드타워 공사를 수주한 때로부터 1년 뒤인 1986년 경기도민회가 출범했는데, 초대 회장으로 남덕우 회장이 선임됐다. 당시 부회장단에 국동건설 회장의 이름이 올랐다.

아무튼 이 어이없는 일을 겪고 나니 나는 경각심이 더욱 생겼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급히 9명의 경호원을 더 뽑아 긴급히 수경의 주변에 배치했다. 그 중의 일부는 아이들의 등하교에도, 꼭 따라 붙도록 한 것이다. 벌써 효정도 7살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월 20일.

노신영 전 안기부장을 전격 총리로 기용하는 등 13개 부처의 장관을 경질하더니, 돌연 아침부터 청와대 비서실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전 통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지난 2.12 총선에서 집권 민정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긴 했으나, 신민당의 돌풍은 현 집권세력을 깜짝 놀라게 한 바 있었다. 그런데다 어제 대폭 개각을 했고, 오늘 나를 찾는다니 괜히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급히 김 비서실장만을 대동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나는 요즈음 청주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불시에 찾아가 현장을 점검하는 등, 아직도 가전의 담금질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아무튼 내가 청와대 경내에 들어서서 검문을 통과하자 현관에는 뜻밖에도 이번 개각에서 유임된 김만제 재무부 장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

"유임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각하께서 기다리신지 오래입니다."

"혹시 무슨 일로 불렀는지 알 수 있을 까요?"

"어느 기업체를 인수하라는 주문이 계시지 않을까 생각되어집니다."

"아이고, 다행이네요. 요새 분위기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서."

"저도 죽을 판입니다. 사실은 저도 내심은 경질되기를 바랐는데, 벌여놓은 일이 있어서."

"벌려놓은 일이라니요?"

"내일이면 자세히 아시게 될 겁니다. 각하께서 강 회장을 부르신 것도 그 일환의 하나고요."

"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대통령 집무실 앞이다. 김 장관이 앞장을 서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당연히 내 뒤에는 김 비서실장이 나를 따르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어서 오시오. 강 회장! 거, 앉아요."

"네, 각하!"

긴장이 되니 여간해서는 전 통을 각하라 안 부르던 나도 저절로 각하 소리가 연신 나왔다. 괜히 입 한 번 벙긋 잘못 놀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요즘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비서실장은 어디 갔어? 차 좀 내오고 그러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김 재무부 장관이 자리에 앉지 않고 재빨리 부속실로 향했다. 내가 소파에 앉자 김 비서실장도 소리 없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른 곳은 모두 교통정리가 끝났는데, 몇 개만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말이지."

"네?"

뜬금없는 이야기에 내가 눈을 치뜨고 반문하자,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전 통이 빙그레 웃으며 부연설명을 했다.

"국제 말이오. 금번에 아예 해체시키기로 했소!"

"아!"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감탄성이 튀어나왔다. 이맘때쯤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날짜를 몰랐는데, 벌써 그 시점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왜? 뜻밖이오?"

내 놀람의 감탄사를 전 통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네."

"솔직히 괘씸해서 말이오. 그렇다고 본인의 이런 말을 어디 가서 옮기거나 하면........"

"저도 일개 그룹을 이끄는 총수입니다."

"하긴 그 나이에 10대 재벌의 반열에 든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이야기겠소? 내 계속해서 믿고 이야기를 하지."

이때 김 장관이 돌아와 전 통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튼 내 좀 서운한 게 있어서....... 내일 부로 국제는 정리가 될 것이오. 하고 이제 어디 어디 남았지요?"

"네, 각하! 성신과 국제토건은 청산하기로 했고, 국제상사의 건설부분과 동서증권이 남았습니다."

"그래요. 이 두 회사를 대정그룹에서 맡아주셔야겠소."

"네........!"

내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을 길게 끌자 바로 전 통의 반격이 들어왔다.

"왜 싫소?"

내가 얼른 둘러대었다.

"그게 아니라, 인수 자금이........."

"대재벌이 죽는 소리는 더 하누만. 큰 부담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받으시오. 내 다른 그룹에 주고 싶었지만 그간 북예멘 이라든가 호주 등에서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를 위해 활약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젊은 사람이 낫구나. 사업을 해도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업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평소에도 여러 번 한 적이 있소. 해서 드리는 것이니 아무 걱정 말고 인수하는 것으로 하시오."

"알겠습니다. 각하! 터키 원전을 수주케 한데 대해서도 미처 감사의 인사도 못 드렸는데......."

내 말에 전 통이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니, 감사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소. 다만 가급적 기존 종업원들 해고하지 말고 잘 이끌어 나가길 바라오."

"알겠습니다. 각하!"

"솔직히 정치 헌금 내는 것을 보면 차례도 안 돌아가지. 그러나 기업 운영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아주 신통할 정도라고. 자원, 건설, 전자 등 우리나라 국익을 아주 많이 선양하고 있어요. 수출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하여튼 대한민국에는 강 회장 같은 기업가가 많이 나와야, 이 나라가 살아요."

"지나친 과찬이십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내 평소 강 회장의 배짱이 두둑한 걸로 아는데 상기된 얼굴을 보니, 이제야 젊은 청년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오. 하하하.........!"

".........."

나도 따라서 빙그레 웃기만 했다. 이때 여비서가 차를 내와 각자의 앞에 놓고 물러갔다. 오늘도 인삼차였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소?"

"없습니다."

"그럼, 세부적인 문제는 말이오. 여기 김 장관 또는 제일은행의 이필선 행장을 찾아가 협의하는 것으로 하고, 서로 바쁠 테니 차나 마시고 헤어집시다."

"네, 각하!"

이렇게 해서 우리는 대통령 집무실을 물러나왔다. 나는 복도에서 김만제 장관에게 물었다.

"우리가 국제건설과 동서증권을 인수하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인수 가격이나 조건 등을 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각하와 내가 협의하여 이미 큰 틀과 지침을 이필선 행장에게 통보하였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이 행장과 논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목례를 해보인 나는 곧 청와대를 빠져나와 김 비서실장을 데리고 제일은행 본점으로 향했다. 행장실에서 마주 앉은 우리의 분위기는 냉랭 그 자체였다. 우리의 주거래은행이었다가 우리의 예금 대부분을 신탁은행으로 옮긴 여파가 아직도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십시오. 국제건설과 동서증권에 대한 당 행의 처리 지침이오."

두툼하게 타이핑된 처리 지침서 및 세부 내역을 내 앞으로 쓱 밀어놓는 이 행장이었다.

나는 말없이 이를 들어 앞부분의 요약부분만 읽어보았다. 국제건설.

자본잠식 상태로 자본보다 부채가 2,800억 원 더 많음.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당 행은 부채 2,800억 중 50%는 당 행 자체로 상각처리하고, 나머지는 대정그룹이 떠안는다. 단 500억 원에 한해 장기분할상환 조건으로 대출을 해준다. 동서증권.

자본금 200억 원과 부채 비율을 비교한 결과, 14%의 플러스 요인이 있으므로, 이를 현 시가로 대정그룹에서 매입한다.

(참고로 14%는 당 행이 보유하고 있음.)이를 읽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이것만 보아서는 세부내용을 알 수 없으므로, 우리가 이를 자세히 검토한 후, 세부 사항을 조율하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소."

우리는 서로 정감 없는 악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곧 바로 그룹 회장실로 돌아온 나는 비서실장을 통해 기획실장과, 경리 이사, 기획 1팀장을 소환하도록 했다.

내 명에 의해 잠시 후 비서실장과 함께 세 명이 회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곧 김재익 기획실장, 나승렬 기획 1팀장, 공병탁 경리이사였다. 공병탁 경리이사는 신탁은행 대출부장 출신으로 내가 삼고초려까지 했으나, 우리 그룹으로 오길 계속 거부하길래 나는 극양처방을 했다.

김만득 행장에게 이의 해고를 부탁했던 것이다. 이에 김 행장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라도 내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은 앓던 이 빠진 것과 같이 시원했겠지만 말이다. 김 행장이 내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는 타 그룹과 달리 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50% 밖에 되지 않았다. 즉 자본이 배가 더 많으니, 어느 은행이든 우리 그룹은 꿇릴 게 없었다. 그랬기에 어느 은행이든 당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아무 때라도 주거래은행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해고된 공병탁 씨를 그 후에도 나는 네 번을 더 만나서야 우리 그룹의 경리 이사로 들일 수 있었다. 고집이 아주 쇠심줄 같이 질긴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앉을 기회도 주지 않고 제일은행에서 가져온 처리지침서를 내주며 말했다.

"면밀히 검토해서 대안을 마련해 보고해주시오. 기한은 단 하루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들이 모두 물러가자 나는 이것이 실인지 득인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제건설은 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많았지만 동서증권은 우리가 원하던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현재도 그 자체로 이 분야에서는 랭킹 4위를 달리는 우량 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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