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78화 (178/322)

< --공장에 야전침대를 갖다놓다-- >

11월 8일.

우리의 방송 3사를 통한 이미지 광고보다도 더 한 빅뉴스가 연일 터져, 우리 그룹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끌어올리고 있었다. 어제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 오늘은 터키 원전 수주 소식이 연일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었다.

이 공사는 우리의 대정 엔지니어링과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터키 원전공사에 함께 참여한 국제입찰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공사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입찰한 팀들이 워낙 막강했던 데다,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소문을 정보 파트에서 수집한 결과로는, 이미 다른 팀이 낙찰이 확실시 됐기 때문이었다. 그 팀으로는 미국의 GE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서독의 카베우(KWE)가 최저가로 응찰했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늘 발표로 우리와 캐나다 팀의 신승이었다. 나는 발표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얼마 전에 터키의 에브렌 대통령이 전 통을 예방한 일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전 통이 남남협력을 강조하면서 가

급적 우리 기업에게 이 공사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뜻밖에도 터키 대통령이 승낙하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수주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제일 많은 혜택을 본 것은 캐나다 원자력공사였다. 총 12억 5천만 달러의 공사 중 우리에게 배당된 공사 금액은 겨우 2억5천만 달러였고, 나머지가 그들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공사에서 세부설계, 원자로의 일부, 스팀 제너레이터, 압력용기, 탱크 류, 보조설비, 열교환기 공급을 맡는 외에 공사를 총 지휘하게 되어 있었다. 아무튼 연이은 쾌거에 우리 그룹의 광고를 자연적으로 한 셈이 되어 나는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연이은 쾌거에 들뜰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든 돈 먹는 하마인 가전을 정상화시켜야겠기에 오늘도 나는 그룹의 사장단은 물론 소사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비교해보니 어떻습니까?"

나는 배순훈 가전사장과 서석준 전자사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서로 눈치를 보던 둘 중 배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OEM 제품이 80% 이상은 우수했습니다."

"가격은 요?"

"가격도 오히려 OEM 제품이 더 저렴했습니다."

"그런 일이........"

잠시 생각하던 내가 다시 물었다.

"서로 호환성이 있습니까?"

"일부는 가능하나 모델이 달라 그렇지 못한 부품이 더 많습니다."

"흐흠.......!"

잠시 침음하던 내가 곧 결단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일단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한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에게 우선권을 가전에도 주되, 모델이 다른 것은 우리 가전에 맞게 개발을 하도록 하죠. 이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1차로 원가를 더 다운 시키고, 2차로 품질 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래도 정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외국사 부품을 들여오는 한이 있더라도 조악한 부품은 받지 맙시다."

"네, 회장님!"

지금 우리의 대화는 흑백이나 칼라TV, 라디오 같은 경우 대정전자도 만들어서 소니에게 전량 납품하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한 표현은 우리가 만든 제품에 소니의 상표만 달아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제품이 전 대한전선의 제품보다도 품질과 가격 면에서 더 나은 부품이 많다는 것이다. 이유는 우리가 소니 기술진의 지도를 받은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대OEM 제품에 납품하는 부품업체 중, 구 대한전선의 납품업체보다 품질과 가격이 나은 곳으로 1차로 그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도록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델이 달라 부품의 크기가 차이나는 것은 금형 개발만 새로 하면 되므로 별 것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전에도 그들의 부품을 사용해 가전도 품질과 가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자는 것이었다. 물론 이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1차적으로 부품 업체의 원가를 다운시켜 가격 경쟁력을 꾀하고, 2차로 품질개선을 통해 세계시장에 진출하자는 전략이었다. 솔직히 우리나 금성, 삼성의 품질은 도진 개진으로 누가 낫다고 할 것도 없이 거기서 거기였다. 한 부품업체가 3곳에 공히 같이 납품하는 업체가 많다보니 생기는 현상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차근차근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했다. 11월 10일.

본사로 급히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곧 그곳으로 전화를 걸어 그와 연결이 되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분 문제 때문에 협의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무슨.........?"

"폴 앨런(Paul Allen)이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뇌종양 판정을 받아, 우리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소식이군요."

"그래서 그의 의사로는 자신의 지분 25%를 저와 회장님께 전량 매각하고 싶어 합니다만, 제가 권유하길 반을 가지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지금 대정의 컴퓨터가 세계를 휩쓸고 있으니, 조만간 우리는 돈방석에 앉을 것이다. 치료비로야 절반만 우리에게 넘겨도 충분하지 않겠느냐?"

"그래서요?"

"제 뜻대로 절반만 넘기기로 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대해서 장님과 협의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넘기는 지분 전량을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수는 없고요. 6%만 회장님이 추가 매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장님은 요?"

"제가 7%를 매입하게 되는 것이죠."

"흐흠..........! 제가 7%를 매입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제 과반 이상을 회장님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1%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에게 양보하시죠."

"흐흠........! 좋습니다. 지난번 선의를 베풀어주신데 대한 보답으로 이번에는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대정이 이번에 선보인 컴퓨터가 그야말로 타사는 흉내도 못 낼 정도로 압권입니다. 제가 예측한 대로 미국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조만간 한 번 뵙고 싶습니다. 회장님!"

"네. 제가 미국에 가게 되면 반드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회장님!"

나는 전화를 끊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회상에 잠겼다. 금년 2월 나는 미국지사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를 찾아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 매입을 타진한 바 있었다. 그 결과는 예상한 대로 일언지하의 거절이었다. 생각도 않고 있는 지분을 어느 검은 머리 이방인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팔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팔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내 전략대로 움직였다. 우리가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 작전 끝에 공수된 컴퓨터를 보는 순간 빌게이츠는 물론 동업자 폴 엘런까지도 눈이 뒤집혔다. 인텔이 1989년에나 개발하는 386성능의 컴퓨터 사양 즉 CPU(중앙처리장치)를 탑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본 순간 놀람을 넘어 감동을 한 그들과 이때부터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첫 요구는 그들의 윈도우 2.0을 이곳에 탑재하는 대신 그들이 가진 주식 51%를 요구했고, 그들은 절대 절반을 넘게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100만 달러에 대한 49만 달러를 주고, 우리 그룹이 그들의 주식 49%를 소유하게 되었고, 그들은 각각 빌 게이츠 26%, 폴 엔런 25%의 주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랬던 것이 갑자기 오늘의 통화와 마찬가지로 뇌종양 판정을 받아 신병 치료차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빌 게이츠의 이야기로는 폴 엘런은 아예 주식을 전량 매각할 의사가 있었던 모양인데, 빌게이츠의 권유로 12%는 갖고 있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오늘의 통화로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식 55%를 갖게 되었지만, 나는 경영권에 간섭할 의도는 없었다. 내버려두면 잘 할 것을 괜히 벌집 쑤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우리는 미국 시장에 우리의 컴퓨터를 출하한지 채 한 달이 안 되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컴퓨터 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시중에 나온 컴퓨터보다5~6년을 앞선 우리의 컴퓨터 성능 때문이었다.

그 성능은 미국 유명 매체의 광고에 등장하는 문구 하나가 이를 웅변해주고 있었다.

'빛의 속도에 가까운 20MHz CPU에 2MB 메모리, 256색 비디오카드를 장착한 강력한 PC.'

위의 문구가 우리 컴퓨터의 실물 모형에 뜨는 것이 우리의 주된 광고 내용이었다.

이것을 우리가 얼마를 받느냐?

인텔이 89년에 받았던 가격인 8,499 달러였다. 여기에 모니터와 마우스는 별도 판매였다. 8,499 달러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을 하면 얼마나 될까?

오늘 달러 기준율이 795원이다. 그러니까 6백75만 원 돈이 약간 넘는다. 이 가격으로 만드는 족족 세계 시장으로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11월 12일 토요일이다.

나는 모처럼 청주에서 올라와 집에 들렀다. 내가 수정과 명희까지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불렀더니,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와, 모처럼 집안이 '사람 사는 집 같다'는 미정의 말이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우리는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들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저희들 끼리 수다를 떠는 바람에, 나는 대화에서 소외되어 그냥 텔레비전이나 무의미하게 보고 있었다. 벌써 벽시계를 보니 시간이 꽤 지났는지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안방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곧 9시 뉴스를 할 것 같아, 나는 뉴스나 잠깐 보기로 하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런데 웬 놈의 선전을 그렇게 오래하는지 우리 회사의 이미지 광고가 두 번이나 되풀이 되어 나오고 있었다.

"대정이 만들면 분명 다릅니다. 절대 저렴한 가격은 아닙니다만, 한 번 믿고 써보십시오. 대정 가전"

이라는 여자 성우의 멘트와 함께 우리의 원전 건설장면, 보령화력발전소 건설장면, 미니카세트 플레이어, 386컴퓨터 등이 배경 화면으로 스쳐지나가는 광고였다.

"아빠! 우리 회사 또 나온다!"

어느새 내 뒤에서 텔레비전을 어깨 너머로 보고 있었던지 효정이 손가락질을 하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효정을 끌어당겨 무릎에 앉히며 물었다.

"너는 왜 같이 안 놀고?"

"인정이와 중산이 저희들끼리만 놀아. 나는 한 살 많다고 한 쳐줘."

"하하하.........! 따돌림 당하기는 아빠나 효정이나 똑같구나. 그럼, 우리 둘이 놀자."

"좋아, 아빠!"

"뭐하고 놀까?"

"말 타기 놀이 아빠가 나 등에 태워줘."

"그럼, 아빠가 말이야?"

"응!"

"효정이가 아빠를 태워주면 안 될까?"

"아빠는 무거워서 효정이 금방 쓰러져서 안 돼."

"에효.! 그럼 아빠가 천상 말 해야겠네."

"네!"

결국 나는 효정을 등에 태우고 방바닥에 엉금엉금 기는데, 텔레비전에서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방한을 해, 전 통과 1차 정상 회담을 한 내용을 가지고, 한참이나 떠들고 있었다. 이때 집의 전화벨이 울렸다.

미정이 쫓아가 받았다.

"비서실장님이시라는데요. 받으시겠어요?"

"그럼, 받아야지."

나는 효정을 내려놓고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중동지사에서 온 전화인데요. 회장님!"

"말씀하세요."

"갑자기 북예멘의 살레대통령이 생산개시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회장님도 참여했으면 하는 저쪽 장관의 요청이 왔답니다."

"날짜가 언제죠?"

"12월 8일로 아직 여유는 있습니다만........"

"그럼, 참석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네, 회장님!"

나는 곧 전화를 끊고 회상에 잠겼다. 효정이 같이 놀자고 해도 나는 딸네미를 달래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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