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75화 (175/322)

< --제 2부끝없는 도전-- >

전화를 끊고 나는 서석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이 지금 들어오는 정보로는 금번 개각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의 물망에 오르는 모양이었다. 만약 그가 이를 수락한다면 45세의 나이로 최연소 부총리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이는 저승사자 밥을 받는 것이므로 아까운 인재의 희생을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이 사람을 꼭 우리 그룹으로 끌어들여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서석준이라는 분을 저희 그룹으로 모실 수 있도록 일단 해외 팀에게 접촉을 해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신탁은행의 대출부장 공병탁 씨 역시 우리 그룹의 경리 이사로 모시겠다는 제안을 한 번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지시할 사항은 다 한 것 같군요."

"그럼........!"

이 실장이 공손히 목례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이때 내 집무실의 벨이 울렸다.

나는 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김 재익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수석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저녁에 어떻겠습니까?"

"저야 좋지요. 저녁에 같이 모시고 나오시죠. 전에 한 번 같이 갔던 이화정으로."

"7시에 가능하겠습니까?"

"네. 그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저녁 7시 10분 전 이화정.

나는 미리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마담도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나와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장님 저도 언제 한 번 화진포 별장에 데리고 가주세요."

"우리가 화진포에 별장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갖다올 때마다 수정이의 자랑이 어떻게 심한지. 거기에 있는 해당화며 꽃나무하나까지 제가 떠올릴 정도로 상세히 알고 있답니다."

"허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언제 짬이 나는 대로 한 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감사의 인사드릴게요. 회장님!"

"뭐, 별일 아닌 것을 가지고......."

이때 에칭으로 장식된 강화도어가 열리며 한 떼의 인물이 실내로 들어섰다. 내가 초대한 김 수석 외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나는 그가 소개할 것도 없이 그 면면들을 다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은 내가 지난번에 전통을 만날 때 뵈었던 이범석 비서실장이고, 또 한 사람은 김 재익 수석 밑의 과학기술 담당 비서관으로 있다가, 체신부 차관으로 옮긴 오 명(吳 明)이라는 사람이었다.

"어, 이거 회장님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셨군요."

"저도 태어나길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하하........! 서로 인사들 나누시죠. 이 비서실장이야 지난번에도 뵈었으니 아실 테고, 이 사람은 내 경기고 한 해 후배로 내가 과학기술 담당 비서관으로 데리고 있던 오 명이라는 사람입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의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지 이 실장부터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렇게 점잖은 분이 무슨 그렇게 끔찍한 말을 해가지고 나를 유인하단 말이오."

"하하하.......! 그 말씀입니까? 제가 모시고 싶어 드린 말씀입니다만, 제 말이 틀리는지 맞는지는 채 팔 개월도 안지나 증명이 될 테니, 그때는 비서실장님께서 한 턱 내셔야 됩니다."

"확신에 차 있군요. 이러니 정말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때 오명 비서관이 먼저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오 명입니다."

"반갑습니다. 수석님으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말과 함께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굳세게 잡았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김 수석이 대표로 답변을 하고 내 뒤를 따랐다. 우리의 앞에는 이 마담이 잘 빠진 몸매를 살짝살짝 흔들며 앞장서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곧 우리는 전과 같이 7번방으로 안내되었고, 안내를 마친 이 마담이 내게 물었다.

"오늘도 전과 동입니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이 마담이 나가고 우리가 자리를 잡자 웨이터가 따뜻하게 데워진 물수건 세 개를 들고 들어와 나누어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만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팁으로 그에게 주며 '수고했다'는 말을 했다. 이에 웨이터는 연신 허리 굽혀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했다. 곧 한 떼의 아가씨들을 몰고 이 마담이 나타났다.

전번에 우리 자리에 참석했던 김 양과 박 양을 비롯해 모르는 두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사드려라! 너희들도 눈이 있으면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분들일 것이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분들이니 특별히 실례되는 점들이 없도록 하고."

"네, 언니!"

네 아가씨가 공손히 대답하자 만족한 미소를 지은 이 마담이 말했다.

"차례대로 인사드리도록 해."

"네, 미스 김입니다."

"미스 박 이예요."

"미스 정입니다."

"미스 최입니다."

우리나라 오대 성 씨 중, 이 씨만 빼놓고 다 모인 자리였다. 물론 성도 가짜겠지만, 이 마담이 있으니 다 모인 것인가.

아무튼 미스 김과 미스 박이 전과 같이 우리 곁에 앉자, 미스 정이 이범석 비서실장에게로, 미스 최가 오명 비서관 곁에 가서 앉았다. 이때 웨이터가 때를 맞추어 양주 세 병을 들고 들어왔다. 양주는 물론 내가 항상 즐겨 마시는 시버스리갈이었다. 그리고 캔에 들은 실런티도 6개나 나왔다. 이 실런티라는 제품은 홍차인데 마치 양주 색깔하고 똑 같아서 잔에다 이를 따라 놓으면 양주를 따라 놓은 것과 구별이 안 된다. 그래서 약은 아가씨들은 술 대신 이것을 대신 따라놓고 취객을 희롱하기도 했다. 즉 손님들이 안 볼 때 받아놓은 양주는 밑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이 실런티로 대체해 놓는 것이다.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마냥 있지 말고 한 잔씩 올려라!"

"네, 회장님!"

내 명에 젊은 영계들이 일제히 합창을 하고 차례로 술을 따랐다. 순서는 올해 62세로 가장 연장자이자 직급이 높은 이범석 비서실장, 올해 46세인 김재익 경제수석, 다음으로 45세인 오명 비서관, 제일 늦게 내 잔을 채우도록 나는 사전에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 아무튼 모두의 잔이 채워지자 내가 이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건배사 한 번 하시죠."

그러자 김 수석이 끼어들었다.

"대정그룹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실장님!"

"자네가 나를 이제 가르치러드나?"

"그게 아니고요."

"알아, 알아! 아예 자네가 오금을 박으려 하는 것도."

"그게 아닌데........"

김 수석이 억울한 표정을 짓자 갑자기 호탕하게 대소를 터트린 이 비서실장이 말했다.

"하하하........! 그렇게 너무 억울한 표정 짓지 말게. 여기까지 자네를 따라 올 때는 나도 이미 각오가 선 다음이야. 오늘 내 각하께도 말씀 드렸네. 도저히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 외무부 장관 직은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그랬더니 각하께서 뭐라고 하신 줄 아나?"

"궁금하군요."

나의 말에 빙긋 웃음을 지은 이 비서실장이 말했다.

"비서실장님이 고사를 하면 어떻게 합니까? 비서실장님만한 인물이 어디 있다고요. 그래서 내가 답변을 드렸지. 말씀은 고마우나 저 같은 인재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고. 그랬더니 나보고 한 사람 천거하라하시더군. 그래서 나는 그런 주변머리는 없다고 사양하고 말았네."

"어때 이만하면 다 된 것 아닌가?"

이 비서실장의 말에 내가 물었다.

"그것으로 놓아주실 것 같습니까?"

"내 고집도 보통이 아니거든. 한 번 안 한다면 안 해. 세상없는 사람이 누가 뭐래도."

"알겠습니다. 오 비서관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선배님이 자신의 말 안 들으면 때려죽인다고 하니 어쩔 수 없어서라도 저는 끌려 다녀야할 판입니다."

"하하하.......!"

모두가 대소를 터트리며 잔을 들어올렸다.

"대정 그룹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모두 잔이 깨질 정도로 세차게 부딪치며 대정그룹의 발전을 축수했다. 아가씨들이 자신의 파트너에 술을 따르는 것을 지켜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비서실장님께서도 뜻을 굳히셨다니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번에 저는 실장님이 오신다면 그룹 내에 '전략기획조정실' 이라는 직제를 하나로 새롭게 만들려 합니다. 이 부서 실장의 직급은 사장 급이고요, 임무는 우리 그룹의 나아갈 바를 연구하는 동시에 감사, 기획, 법무, 통상, 정보 등의 제반 부서들이 이에 포함될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말을 끊고 이 비서실장의 표정을 한 번 살폈다.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시종 온화한 표정으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에 용기를 얻어 더욱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김 수석님은 전략기획조정실에서 기획실장을 맡아 우리의 나아갈 바를 전적으로 연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급은 전무 이사급을 드리겠습니다. 그러고 오 명 비서관님은 내년부터 새롭게 출범할 가칭 'DC텔레콤'의 수장을 맡아주세요."

"그럼, 저 후배가 내 위에 있게 되는 것 아닙니까?"

"외부의 직급 상으로는 그러하나 제가 장담하건데, 기획실장이면 아마 우리 그룹 내에서 넘버 쓰리 정도의 파워를 가지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할 만 하군."

"하하하.........!"

김 수석의 말에 모두 가가대소했지만, 사실 김 수석이 자신의 후배가 설령 사장이 된다고 해서 질투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모두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DC텔레콤'이라는 곳은 내년 초에 출범할 휴대폰과 삐삐 사업부로, 원래는 우리 그룹의 영문이니셜인 DJ텔레콤으로 하려 했으나, 누구의 이름을 연상시키므로, 이를 수정해 ㅈ의 강한 발음이 되는 ch에서 C를 취해 DC텔레콤으로 작명했던 것이다.

막상 DC텔레콤이라 작명해 놓으니, 요금을 깎아주는 이미지를 주는 것 같아, 만장일치로 이 회사명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모두 나의 말에 동의했으므로 그 다음부터는 흥겨운 주연이 베풀어졌다. 먼저 아가씨들도 한 잔씩 술잔을 돌려 그들도 어느 정도 취한 속에 흥을 돋우게 하며, 어느 정도 술이 더 들어가자 우리는 우리에게서 구입한 노래방기기를 틀어놓고,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노래를 하라고 하니 모두 사양하므로 내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불렀다. 옛날 곡 치고는 무척 빠른 템포의 곡이라 모두 어깨를 들썩이는 가운데서 내 노래가 끝나자, 다음으로 이 범석 장차 전략기획조정실장이 백년설의 '고향설'라는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향이 이북인 이 실장은 이 노래가 18번지라고 하며, 흉보지 말 것을 신신당고향이 이북인 이 실장은 이 노래가 18번지라고 하며, 흉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이렇게 노래가 진행되는 가운데 어디든지 판을 깨는 사람이 있으니, 오늘은 김 수석이 그러했다.

갑자기 가곡 '선구자'를 불러 판을 식혀놓으니, 오 명 장차 텔레콤 사장이 '봄날은 간다'를 불러 분위기를 다시 띄워놓았다. 모두 옛날 사람이 되다보니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옛날 곡으로 흘러, 나는 최신 곡은 하나도 못 부르고 끝을 맺었다. 여기서 사표가 수리되는 대로 우리 회사로 옮기게 될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소개를 하기 위해 잠시 그들의 이력을 소개하고 넘어가겠다. 김재익(金在益)은 경기고등학교 2학년 때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한국은행에 재직하는 중에 도미하여 하와이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973년 박사학위를 얻은 해에 귀국하여 한국은행에 적을 둔 채 청와대비서실로 들어간 김용환 경제수석 밑에서 자문역으로서 관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때 부가가치세 도입의 이론적인 바탕을 마련하였다.1974년 경제기획원으로 자리를 옮겨 비서실장, 경제기획관을 거쳐 경제기획국장이라는 요직을 차지하였다. 1980년 전두환은 김재익을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였다. 금융실명제, 물가안정화 정책, 정보화 정책, OECD 가입, 수입자유화 정책 등을 입안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범석과 오명의 경력은 이곳에 계속 소개하게 되면 너무 장황하므로 후기 란에 옮겨놓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만 보세요.

============================ 작품 후기 이범석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평양에서 생활하였으며, 1942년 평양 제2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10월 동경법정대학 예과를 수료하였다. 광복을 맞아 1945년 9월 보성전문학교 경제과 2학년에 편입학, 1947년 6월 졸업함과 동시에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2학년에 편입학하여 1949년 9월에 졸업하였다.

그 뒤 기독교인으로서 적십자활동에 투신, 뛰어난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1951년 미국적십자사 국제사업 한국대표가 되었으며, 대한적십자사 고문행정보좌관을 거쳐 1952년 고문서리가 되었다.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거한 전쟁포로송환교섭을 위하여 국제적십자단 한국수석대표로 참가하여 1년 동안 그 직무를 수행하였다.1955년 대한적십자사 청소년부장 겸 서울지사 사무국장에 임명되었으며, 1957년 제19차 국제적십자회의 한국대표, 1958년 청소년지도자국제회의 대표로 참석하였다. 1959년에는 재일교포북송저지를 위하여 제네바회의에 대표로 참석하여 한국의 처지를 대변하였다.

또한, 외교능력을 인정받아 1961년 6월부터 제16차∼제19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단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62년 주유엔 한국대표부 및 주미 한국대사관의 참사관으로 임명되어 외교관이 되었다.1965년 외무부 의전실장을 거쳐 1970년 주(駐)튀니지 특명전권대사로 일하였고, 남북대화가 중요시된 때인 1972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돌아와 그 해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에 임명되었다.1976년까지 부총재로 계속 연임되는 동안 남북문제에 헌신하였으며, 그러한 경력이 인정되어 1980년 국토통일원장관에 기용되었다. 1982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오명(吳明, 1940년 3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전자공학자, 교육자, 행정관료, 공무원, 언론인, 기업인으로, 체신부 장·차관, 교통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동아일보 회장, 아주대학교 총장, 건국대학교 총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본관은 동복(同福)이고 서울 출생이며 호는 지호(芝湖)이다.1980년대 체신부 장·차관으로 일하면서 4메가 디램반도체와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을 이끌어서 대한민국 정보통신산업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현재는 웅진태양광에너지 회장이다.1958년 서울 경기고등학교 졸업.1962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18기 졸업 (공학사).1966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공학사.1970년 미국 New York 주립대 스토니브룩 대학교 대학원 전자공학과 공학석사.1972년 미국 New York 주립대 스토니브룩 대학교 대학원 전자공학과 공학박사.1979년 육군 대령 예편.1979년-1980년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1980년-1981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실 과학기술비서관.1981년-1987년 체신부 차관.

감사합니다!

^^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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