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74화 (174/322)

< --제 2부끝없는 도전-- >

우리가 율량동 천 세대 아파트를 지을 용지에 도착하니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중장비들이 굉음을 토하며 기초 구획정리를 하고 있었다.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도로와 아파틀 지을 터가 확연이 구분되었다.

"어떻습니까? 분양이 잘 되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배 전무가 대답했다.

"서울의 복부인들이 이제 돈독이 올라 전국을 쑤시고 다니니, 이곳도 서서히 아파트 열풍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천 세대 물량 정도면 충분히 소화내리라 봅니다."

"설계에 차별화는 꾀했지요?"

"네, 회장님! 사직주공아파트가 주로 13평형 아니면 16평형이므로, 저희들은 최소25평형 이상으로, 주로 중산층을 겨냥해 33평형을 많이 지으려합니다."

"알겠습니다. 황 사장의 근황은 알고 있습니까?"

여기서 황 사장은 나의 장인이 된, 수정의 아빠 황국태 씨로 영진건설을 운영

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의 물음에 채 이사가 답변을 했다.

"그 분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180세대를 2년에 한 번씩 차근차근 지어 지금까지 성공리에 분양을 마쳤습니다. 올해는 좀 욕심을 부려 240세대를 지으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올해는 우리와 겹칠 것 같은데, 그분에게 타격은 없겠습니까?"

"아니래도 그 문제 때문에 한 번은 저에게 툴툴거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규모를 좀 축소하더라도 45평 이상을 지으라고 권유했는데, 어떻게 하실 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내 입장도 껄끄러우니 가급적 그렇게 하도록 채 이사가 권유를 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여기 아파트를 짓는데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죠?"

"네, 그렀습니다."

나는 배 전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갑시다. 곧 점심때이니 제가 한 턱 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거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듣기 좋은 소리로군요."

홍성부 사장이 가가대소하며 내 말을 반겼다. 우리는 곧 승용차에 올라 내 지시를 따라 만선 횟집으로 향했다. 체육관 뒤편에 위치한 만선횟집은 지난번에 내가 전처였던 최수빈의 부모에게 사준 횟집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 찾아가는 중이었다. 우리가 차에서 내려 횟집에 들어서니 최수빈의 어머니 즉 전생의 장모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오셨어요? 회장님!"

"잘 지내셨어요?"

"네, 회장님! 어서 이층으로 오르시지요."

손수 앞장을 서서 우리를 이층으로 안내하는 수빈의 어머니였다.2층에는 고만고만한 방 네 개가 있어 우리는 가장 큰방으로 안내되었다.

"장사는 잘 되십니까?"

"네, 아직은 잘 되고 있습니다."

"무슨 변화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네. 우리가 번창하는 것을 보더니 청주에도 제법 큰 횟집이 다섯 군데나 생겨서 요즈음은 손님이 분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긴 누가 장사 잘 된다면 그냥 두고 못 보죠. 그래도 아직 괜찮다니 다행이군요."

"이 모든 게 회장님이 베풀어주신 은덕입니다. 이 은덕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벌써 목이 메는 전생의 장모를 향해 내가 분위기 전환을 하기 위해서라도 급히 물었다.

"수빈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아시는 대로 청주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선생을 하다가 작년 가을에 시집을 갔습니다."

"그래요? 청첩장이라도 한 장 돌리시지?"

"그렇잖아도 신세를 많이 졌는데, 거기 다 또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알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없지만, 부군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같은 초등학교 선생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만하면 됐네요. 사람 성실하면 됐지, 더 볼 것 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처갓집에도 아주 잘해요."

"거 잘된 일이군요."

나는 내심 긴 한숨을 불어내며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요새 송어회가 유행이라면서요?"

"네. 아직 귀하기는 하지만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걸로 우리 인원이 먹을 만큼 회를 떠 주시고, 매운탕도 끓여주세요. 그걸로 밥 먹게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술도 올릴까요?"

"회에 술이 빠지면 뭔 재미입니까? 우선 소주 세 병만 줘보세요."

"네.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단정히 목례를 해보인 전생의 장모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이 분이야말로 인물 좋고 사람 좋으나, 전생의 최수빈은 인품 면에서 이분의 반도 못 닮은 것 같았다. 잠시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미리 장만한 풍성한 밑반찬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등 삶은 것, 콩을 깍지 째 삶은 것, 메추리알 삶은 것, 빈대떡, 여타 등등해서 나온 것만 해도 한상 뻑적지근했다. 술도 세 병이 미리 나왔으므로 우리는 스끼다시만을 가지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낮이라 모두 삼가는 분위기이고 홍사장과 나만이 대작을 했다. 두주불사형인 홍 사장은 내가 따라주는 대로 바로 바로 잔을 비웠다. 곧 이어 송어회가 나오자 술이 부족해 우리는 두 병을 더 시켰다. 이렇게 해서 매운탕으로 식사를 끝내고 나니 나도 술기운이 조금 올랐다. 홍 사장도 마찬가지인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자 나의 지시에 의해 문화동에 있는 새시 공장으로 향했다. 아직도 이곳은 새시공사와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하이새시나 유리 등도 아직 팔고 있고 공사도 하고 있었다.

나의 출현에 마이새 상무가 무척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사모님까지 이제 서울로 불러올리셔서, 완전 이곳은 발길 끊는 줄 알았습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 마세요. 이곳이 내 사업의 모태가 된 곳인데, 그럴 수 있나요."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회장님!"

"일감은 꾸준하고요?"

"79년부터 사직주공아파트 물량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그것도 상당한데다, 그 전에는 우리 자체 아파트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 밖에도 부근에 크고 작은 공사를 계속하니 일감이야 항상 넘치지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습니다."

"지용준과 남희태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용준과 남희태는 나와 함께 모충동에 살던 친구로 영업사원으로 오래 전에 발을 들여놓은 친구들이었다.

"꾸준하다니 다행이네요."

"강동선 아저씨는 잘 지내시나요?"

"네. 한 조의 경비대장으로써 여전히 임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아버지의 먼 친척으로 내가 서울에 사시는 것을 불러내려, 청주에서 처음 이 공장을 짓게 한 이래로 꾸준히 작은 공사를 해오시던 분이었다. 그것을 내가 서울로 불러올려 공장 경비의 한 조의 조장을 맡겼다.

연세가 계시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였다.

"특별히 다른 일은 없지요?"

"아무래도 이 터를 주인이 팔 모양 같습니다."

"왜요? 어린 자식에게 물려준다더니요."

"그 어린 자식이라는 사람이 벌써 성인이 되어 사업을 하다가 그만 손해를 많이 본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걸 처분해 어떻게 부채도 갚고 새로운 사업을 시킬 모양인데, 우리에게 정식으로 묻지는 않고, 주문에 나도는 소문을 들으며 하여튼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마 상무의 말에 내가 채 이사를 불러 말했다.

"채 이사님!"

"네, 회장님!"

"사실이 그렇다면 이 공장 터를 우리가 사는 방향으로 합시다. 공연히 이사 다니는 것도 번거로우니까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러고 청주극장도 영 장사가 잘 안돼서 매물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곳은 내가 잘 알고 있던 곳이었다. 칼라 TV 방영으로 영화 관람인구가 격감을 하자, 결국 진로소주에 넘어가 훗날 백화점으로 변경되었던 곳이었다.

'백화점?'

청주극장을 생각하던 나는 백화점으로 바뀌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채 이사를 부르고 있었다.

"채 이사님! 청주극장도 매입하는 것으로 하세요."

"극장을 매입해서........"

"요즘 극장 운영이 어렵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부시고 백화점을 지을까 합니다."

"하긴 아직 청주에는 백화점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마상무의 말이 아니더라도 전생에서는 이 청주극장 터에 생긴, '청주백화점'이 최초로 청주에 생긴 백화점이었다. 내 명에 채 이사가 공손이 명을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우리는 30분 더 담소를 나누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지만, 내가 회장이 된 이래로 직원들이 너무 어려워하는 것 같아, 일부러 피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그로부터 오일이 지났다. 조회를 마치고 아침 8시가 된 시점이었다. 이청신 정보실장이 문을 노크하더니 내가 허락하자 바로 들어왔다.

"거 앉으세요."

"네, 회장님!"

"그래 정보를 좀 얻었습니까?"

"네, 회장님!"

"먼저 서울 신탁은행 대출부장으로 있는 공병탁에 대해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하고도 은행에 입문한 특이한 케이스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리원칙주의자로 업무처리에 빈틈이 없었고, 청렴결백한 인물이었습니다. 단 지나친 원리원칙을 적용하다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 큰 단점이었습니다."

"흐흠........!"

'경리 부서에 등용하면 아주 적격인 인물이군!'

나는 내심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알아보라던 이 순국 씨는 어떻게 되었죠?"

"지금 현재 부도가 난 삼성특수제지의 법정관리인 자격으로 대표이사 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회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도록, 방해공작 방안을 방구해서 보고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서 석준 씨는 요?"

"여기 해외정보팀이 보내온 그의 신상보고서입니다."

"어디 봅시다."

나는 이 실장이 내미는 압축보서를 받아 읽어보기 시작했다. [경상북도 성주 출생. 성주농업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해 1960년에 졸업하였다. 1964년부터 2년간 국제개발기구(AID)장학금을 받아 미국 밴드빌트대학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수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해인 1959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고, 1962년 3월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경제 관료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주로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면서 1967년 물가정책과장, 1969년 물가정책국장, 1973년 경제기획국장, 1974년 차관보, 1977년 차관(1980년에 다시 차관)을 역임하는 등 중요한 직위를 두루 거쳤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물가정책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종래의 개별품목을 대상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는 물가정책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종합적인 물가수급대책으로 물가안정을 꾀하는 합리적인 물가정책을 도입하였다.

이 밖에도 1973년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부단장, 1979년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1980∼1982년 상공부장관, 1982년 한국개발연구원 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상공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중화학공업 투자조정을 마무리하고, 수출 200억 달러의 실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현 미국 하와이대학 동서 문화센터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다.]

"흐흠.........!"

내가 깊게 침음하며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회장실문을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이 미연 과장이 얼굴만 빼꼼이 내밀고 말했다.

"청와대 김재익 경제수석이라는데 전화 받으시겠어요?"

"암, 당연히 받아야죠."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내 전용 전화를 집어 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나, 김재익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여러 명을 데려가도 됩니까?"

"아! 김 수석님이 천거하는 인재라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곧 제가 그 인물들을 데리고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잡아주시죠."

"바로 의논해서 전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석님! 목 길게 빼고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김 수석의 웃음이 수화기 너머로 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작품 후기 어제 찬바람을 좀 쏘였더니 감기가 잔뜩 걸렸네요! 님들도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 오늘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멘트 여기에 굉장히 많은 쿠폰을 주셨군요!

^^ 너무 너무 감사하고요!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도록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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