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부끝없는 도전-- >
나는 비록 대낮이지만 이화정의 이 마담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 놓았다. 그 시간이 오후 2시였으니 충분히 준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우리가 이화정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5시가 지난 시간이라 짧은 겨울 해는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간이었다.
내가 김 수석을 모시고 지하로 내려가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이 마담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강 회장님!'
"잘 지냈소?"
"네. 이미 준비가 되었습니다. 방으로 모실까요?"
"그럽시다."
"네. 따라 오세요."
이 마담이 앞장을 서자 나는 김 수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가실까요?"
"그럽시다. 요새 이런 곳도 생겼소?"
"예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 것이 요즈음은 더 성업 중입니다. 이제 요정은 한물갔지요."
"변하지 않는 것이 없군요."
"살아있다는 것은 곧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니, 머물러 있다는 것은 곧 죽었거나 죽을 운명이겠지요."
"무슨 설법도 아니지만, 어찌 보면 세상의 오묘한 이치가 담겨있는 것도 같고."
둘은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젊은 영계의 살 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설레임에서 오는 약간의 긴장을 달래고 있었다. 이윽고 이 마담이 우리를 익숙한 7번방으로 안내하고 나를 주시하자, 나는 딱 한마디만 했다.
"전과 동!"
나의 말에 생긋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해보인 이 마담이 나가자 레코드를 틀어놓은 듯한 질문을 또 김 수석으로 받아야 했다.
"많이 와 보셨나 보군요."
"간혹 요. 종종 접대할 일이 있어서요."
"사업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그런 일이 종종 있겠지요."
우리가 이런저런 가벼운 화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예의 이 마담이 두 명의 아가씨와 함께 웨이터에게 술을 들려 들어왔다. 곧 두 명의 아가씨가 우리에게 각자 자신의 소개를 하고, 이 마담은 자리를 벗어났다. 물론 웨이터는 그 전에 나갔다.
내 파트너가 된 김 양이라는 아가씨가 내 잔을 술을 따르고, 김 수석의 잔에는 박 양이라는 아가씨가 술을 따랐다. 모두 새로 온 아가씨들인 듯 앳돼 보였다.
"건배 한 번 하실까요?"
"좋습니다!"
나의 제의에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술잔을 입술에 대었다.
나는 스트레이트요, 그는 나의 예상대로 얼음 위에 부은 술잔을 들었다.
이렇게 몇 순배의 술잔이 돌자 나의 제의로 아가씨들을 모두 내보냈다.
"김 수석님! 저희 회사로 모시고 싶습니다. 기획 이사나 경제연구소를 맡아주십시오."
"허허........! 참으로 난감한 제안이나, 내 적극 검토는 해보리다. 곧 기회가 올 것 같소."
"개각이라도 단행합니까?"
"어떻게 아셨소?"
"척하면 삼척 아닙니까? 저희도 그쯤은 귀동냥 할 수 있습니다."
"허허........! 대기업의 정보력이 무섭다더니 정말인 모양이군요."
"후후후........!"
가볍게 웃은 내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심각한 안색이 되어 말했다.
"제가 김 수석님께만 고백하건데, 제게는 병이랄까 초능력이랄까 하는 헛갈리는 하나의 능력이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정말 궁금하군요. 말씀 해보시죠."
"가끔 예지몽을 꾸는데 그것이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를 불신도 하고 무슨 병일까 하여 병원에도 가보았습니다만, 지금은 소름끼치도록 잘 맞는 그 예지몽을 지금은 하나의 능력이라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허허.........! 확실히 기이한 일은 기이한 일이군요. 그래, 지금까지 무엇이 맞았소?"
"1,2차 오일쇼크는 물론 박 대통령의 서거일은 물론 그 살해인물까지. 더 할까요?"
"놀랍소, 놀라워! 아니 무섭기도 하군요. 그런데 왜 자꾸 흥미가 생기지요."
"전 통의 등장까지 예언함은 물론 다음 대 대통령도 저는 누가 될지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요?"
정말 궁금한지 상체를 내게 더 가까이 접근시키며 급히 묻는 김 수석이었다.
"노태우입니다."
"뭐요? 아직 그 사람은 그렇게 권력 기반을 다지지 못했는데........?"
"권력의 비정함을 모르십니까? 그 사람이 기반을 다졌다면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것이 권력의 숙명 아닙니까? 철저히 숨죽이고 있는 자가 끝내는 후계자가 될 겁니다."
"그래, 그것은 두고 보면 알 일이고. 또 있소?"
"네!"
자신 있게 대답한 내가 한동안 말없이 김 수석의 얼굴을 세밀히 살폈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소?"
"그게 아니고요. 불길해요. 불길해."
나의 말이 섬뜩한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김 수석이었다.
"무엇이 불길하다는 말이오."
"올 안에 더 이상 말하기가 어렵군요."
"내가 죽기라도 한단 말이오?"
달려들 듯이 묻는 김 수석이었다.
잠시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듯 하던 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단 피할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더 급히 묻는 김 수석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 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럼,그 불길한 일이 자리와 관계있다는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화가 미칠 일은 없겠소?"
"분명 있습니다. 이범석 비서실장님께도 수석님께서 권해 그 자리를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나에 대해 고맙게 대한 연으로 이런 조언을 드린다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벌써 외무부 장관으로 낙점되어 곤란할 텐데........."
혼자 중얼거리는 김 수석의 말을 나는 들은 체도 않고 곧 되짚어 말했다.
"아니면 죽습니다. 그것도 올 시월 안에."
"허허........!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이거야 말로 난감한 일이군."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이 있습니까? 자리는 물러났다고도 다시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 자리입니다. 그렇지만 죽으면 만사가 끝나는 것이죠. 그러니 제 말을 허투루 듣지 마시고, 우리 회사를 안 오시더라도 꼭 그 자리만은 이번 기회에 분명히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알겠소. 안 들었으면 모르되, 일단 들으니 기분이 나빠서라도, 더 이상은 미련이 없소이다."
"제 말을 올 시월 그것도 중순이 되기 전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니, 반드시 제 말에 따라주십시오. 제가 김 박사님을 아끼지 않으면 이렇게 간곡히 청을 올리지도 않습니다. 괜히 제 능력을 들어내면서까지 입 아프게 떠들 이유가 없죠."
"하긴 그렇소. 아무튼 고맙소. 나를 생각해서 이런 말 했다는 것을 내 잘 알고 있으니, 그 고마움은 마음 깊이 새기도록 하겠소."
"나중에 그 일이 증명된다면 감사의 뜻으로 술이나 한 잔 사 주세요. 네?"
나는 그의 기분을 가볍게 해주기 위해서 조금 어리게 행동했다. 나의 말에 가볍게 허허 웃은 그가 말했다.
"내 일단은 사표를 내고 거취문제는 한 번 신중히 생각하겠으나, 가급적 강 회장의 뜻에 따르리다."
"고맙습니다. 수석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손뼉을 쳐 아가씨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수정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곧 방문한다는 전화였다. 나의 전화에 수정이 아주 기뻐하며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나는 미정에게 효정이네 집을 다녀온다 하고 집을 나섰다. 경호원들에게는 일요일이 특별히 따로 없었다. 하루 12시간을 근무하면 하루를 온전히 쉬는 체제라 그랬다. 내가 대문 밖으로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곧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는 운전석으로 갔고 하나는 차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고 섰다. 나는 뒷좌석에 올라 운전수 아니 경호원에게 명했다.
"효정이네 집으로 갑시다."
"네, 회장님!'나머지 경호원 하나가 조수석에 타자 차는 곧 한남동 주택가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내가 수정이네 집 현관에 도착해 벨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수정이 문을 열었다.
"오셨어요?"
"음!"
가볍게 대꾸하고 나는 가볍게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나의 행위에 미미하게 웃은 수정이 말했다.
"철산이와 이야기 나누고 어디 놀러 가면 안 될까요?"
"어디 가고 싶어?"
"네!"
"어디로?"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 매일 집에만 있었더니 갑갑해서요."
"그렇기도 하겠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 화진포로 가자."
"우리 별장으로 요?"
"그래."
"당신 내일 출근해야 되지 않아요? 당신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요?"
"이제야 황수정이 사람되어가는 모양이네. 남 걱정을 다하고."
"당신은 남이 아니니까요."
"내가 운전하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아!"
"고마워요. 여보!"
쪽!
나의 입술에 제법 진하게 입을 맞추는 수정이었다.
그때였다.
"엄마!"
내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는데도 안 들어오자, 확인 차 나왔던 효정이 제 어미가 나에게 뽀뽀하는 광경을 보았나 보다.
"이리와 우리 공주님!"
내가 손을 벌리자 얼른 내 품으로 달려오는 효정이었다. 나는 효정을 번쩍 안아들고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효정아! 엄마가 아빠에게 뽀뽀하는 것을 보니 무슨 생각이 들어?"
"엄마도 아빠도 나한테만 해줬으면 좋겠어."
"둘은 서로 하지 말고?"
"네!"
"그러면 효정이 동생 못 만드는데?"
"없어도 돼. 엄마 아빠가 나만 사랑해주면 돼."
"너무 이기적인 생각 아닐까?"
"나, 그런 어려운 말 몰라."
"하하하.........! 요것, 커서 뭐가 되려고 벌써부터 이렇게 똑똑한가?"
"엄마 같은 대 스타가 될 거야."
"누가 엄마가 대 스타라고 그래?"
"엄마가."
"참, 나........!"
나의 어이없어 하는 웃음에 수정이 살짝 윙크를 했다.
"오빠, 뭐 하지?"
"오빠 방에서 공부 할 거예요."
"가서 오빠 나오라고 해. 아니다 내가 들어가 보마."
나는 효정을 내려놓고 철산의 방을 노크했다.
"아빠다. 들어가도 되겠니?"
"네. 들어오세요. 아빠!"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 하고 있었지?"
"공부도 안 되고 해서 이것저것 그냥........"
머리를 긁적이는 철산이었다.
"철산아!"
내가 아들 녀석을 정색을 하고 불렀다.
"네, 아빠! 말씀하세요."
"너는 네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니?"
".........."
아무런 대답이 없는 철산이었다.
"부끄럽니?"
무언의 긍정인 듯 또 대답이 없었다.
"엄마가 도둑질을 했니? 아니면 사기를 쳐서 남의 돈을 갈취했니? 그런 것은 아니지?"
"네!"
"그런데 왜 부끄러워해야지?"
"네 엄마는 말이다. 아무 잘못도 범하지 않았다. 다만 네 엄마 인상이 청순하다고 모두 생각을 하니까, 행동 또한 그러리라 모두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지. 아빠를 만나 너를 갖게 된 거야. 그래서 사랑했던 마음들이 모두 실망감으로 돌아선 거야. 그 뿐이다. 네 엄마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 자신들이 먼저 사랑하고, 스스로 사랑을 내려놓은 것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네!"
"남자는 말이야, 이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만약 육체적 힘이 약하다고 치자. 그런데 어쩌다 다투다보니 아주 주먹이 센 놈을 만났어. 내 비록 힘이 약하지만 죽기 살기로 싸우던가 아니면 싸우기 전에 미리 항복을 하던지 해야 할 판이지. 결국 맞기 싫어 네가 그 녀석에게 싸우기도 전에 굴복했어. 자꾸 이런 일이 되풀이 된다면 종내에는 어떻게 되겠니? 이 분야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않겠어?"
"공부도 마찬가지고, 인생사가 자꾸 어렵다고 피해가다 보면 끝내는 밑바닥 인생이 되는 거야. 어려움을 만나면 절대 피할 생각 말고, 정면 승부를 해라. 몇 대 얻어터질지언정 죽지는 않아. 어려움을 만나면 피하는 것도 종내는 습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부터라도 태권도나 검도를 배워라. 운동도 열심히 기본 체력을 기르고, 공부도 열심히 해봐. 해보고 안 되면 또 아빠랑 상의해보자. 할 수 있겠니?"
"........"
"이놈의 자식! 왜 대답이 없어?"
"제 마음에서 우러나야 되잖아요. 이제 결심이 섰습니다. 하겠습니다."
"좋았어! 약속의 의미로 아빠랑 악수 한 번 할까!"
"네!"
우리 부자는 두 손을 꼭 맞잡고 한동안 흔들었다. 우리 부자는 두 손을 꼭 맞잡고 한동안 흔들었다. 우리 부자는 두 손을 꼭 맞잡고 한동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