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71화 (171/322)

< --제 2부끝없는 도전-- >

나는 채 30분이 되지 않아, 대정 2차 아파트 내 소유의 아파트 중 하나인 707호실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려고 서 있는데, 안에서 왁자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 익숙한 웃음들이었다. 세 아내의 웃음소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시골에 계신 줄 알았던 명희 어머님의 웃음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 또한 웃음의 잔상이 남은 얼굴로 인터폰을 눌렀다.

"누구세요?"

명희의 목소리였다.

"내 얼굴 안 보이냐?"

"아, 오빠! 익숙지가 않아서요. 열어드릴게요."

"알았다."

곧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고 바로 명희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쪽!

"어머!"

기습 키스를 당한 명희가 비명에 가까운 놀라움을 표시하고, 그 세월에도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어서 들어가세요."

"짐 정리는 다 되었고?"

"대충요."

"장모님도 오신 것 같은데?"

"네. 제가 어젯밤에 연락을 드렸더니 새벽같이 택시를 타고 나오셨더라고요."

"극성이시군."

"표현이 좀 그렇다. 오빠!"

"또 장모님 계시는데 그렇게 불러라."

"헤헤헤........! 연습을 해야지. 어서 가세요. 여보!"

쑥스러운지 자신이 불러놓고도 목을 움츠리며 살짝 얼굴을 붉히는 명희였다. 꽤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났으면서도 처녀적 순수함이 남아 있는 그 모습이 나는 더욱 좋았다. 그래서 나는 백허그 자세로 안고 말했다.

"오늘 모두 일찍 쫓아버리자!"

"오빠!"

내 말에 격앙된 목소리를 토해내는 명희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가슴을 가볍게 주물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오셨습니까? 장모님!"

"그래. 일찍 퇴근했네."

"이사 하는 걸 알면서도 못 도와줘서 면 세우려고 일찍 나왔습니다."

"집안일은 여자들이 알아서 어련히 잘 하려고."

"네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므로 나는 애매하게 답변하고 비로소 내부를 둘러보았다. 비록 쓰다 가져온 냉장고지만 깨끗이 청소되어 주방 한 벽을 차지하고 있고, 곳곳에 아직 풀지 않은 짐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커튼을 해달지 않아서 밖의 밤풍경이 다 보였다.

"저녁은 요?"

미정의 물음에 내가 답을 한 것이 아니라, 수정이 답을 했다.

"당연히 안 하셨겠지."

"아이들이 하나도 안 보이네."

"전부 안방에서 장난감 갖고 노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장난감이 별로 없을 텐데?"

"당신이 인정이 것으로 미리 사놓은 것을 오늘 줬더니, 그것을 가지고 서로 못 놀아서 다투고 그래요."

아닌 게 아니라 저희들 끼리 대투는 소리가 제법 거실까지 크게 들려나왔다. 그동안 어느새 명희는 식탁에 저녁상을 차리고 있다가 나를 부른다.

"식사하세요. 여보!"

불러놓고 얼굴을 붉히는 것은 또 뭐람.

"다른 사람들은?"

"아까, 가까운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고, 그 남은 것을 먹었더니 배들이 불러서 이러고 있어요."

미정의 대답에 내가 말했다.

"그래서는 안 되지. 그 것 가지고 저녁이 되겠어? 모두 먹을 때 같이 식사하자고. 설마 저녁 준비가 안 된 것은 아니지?"

"다 됐어요. 걱정 마시고 먼저 드세요."

명희의 말에 내가 장모님을 돌아보며 말했다.

"장모님 것만이라도 같이 치려."

"네!"

"아닐세. 나도 떡 좀 주워 먹었더니 아직 생각이 없네. 자네나 어서 식기 전에 드시게."

"그럼, 먼저 먹겠습니다."

"그래, 그래!"

나는 곧 식탁에 앉아 정갈하게 차려진 저녁상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다 끝내고 입을 닦는데 장모님이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집이 좋기는 좋네!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넓기도 하고."

"네. 애초부터 인정이 엄마 주려고 빼놓은 아파트입니다."

"마음 씀씀이가 고맙군. 나는 그보다도 사위가 이 수많은 아파트를 지어 다 팔아먹었다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아."

"하하하.........! 저를 아직도 고향에서 코나 흘리던 모습으로 기억해서 그런 것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무튼 볼수록 사위가 장하네!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저년이 어디서 그런 복을 타고 났는지, 지금도 나는 자네들을 생각하면 혹시 꿈이 아닐까, 잠결에 꼬집어보기도 한다네."

"하하하.........! 별 말씀을....... 혹시 약주 한 잔 하실래요?"

"아니야. 사위나 생각 있으면 한 잔 하시게."

"저도 별로입니다."

나는 곧 아이들이 노는 방으로 가보았다. 나의 등장에

'아빠!'

를 부르며 서로 안기려 다투는 꼬마들이었다. 나는 차례로 아이들을 안아 올려 세 명을 안고 있으려니 벅찼다. 그래서 모두 내려놓고 너희들끼리 놀라하고 방문을 닫아주었다.

"큰 애들은 하나도 안 보이네."

"이제 공부해야죠."

미정의 말에 수정이 받아서 말했다.

"철산이는 공부를 안 하려해서 큰일 났어요. 학원을 보내도 빼먹는 것이 다반사예요. 그렇게 혼을 내도 벌써부터 내 말은 잘 안 들어요."

"권위가 안서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죠."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수정에게는 그동안 우역곡절이 많았다. 나 또한 거기에 일부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발단은 수정이 드라마에서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처음의 주연급 조연이 인기를 끌자, 수정은 계속해서 드라마에 출현하게 되었다. 그것도 당당히 주연으로 '장희빈', 대춘향전'에서의 춘향 역 등, 많은 드라마에서 인기 몰이를 하자, 국동그룹의 김세종의 협박은 날로 도를 더 해져갔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수정이 어찌 됐든 녀석의 곁을 떠나 내게 와, 그것도 TV에 출현해 자꾸 얼굴을 보이자, 한 번 만나자고 치근대던 것이 어느 순간에는 수정의 과거를 전부 폭로하겠다는 협박으로 돌변했다. 이 모든 상황을 그때마다 수정은 전부 나에게 고해, 그 대처 방안을 물었고, 나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도록 했다. 그러고 나는 급히 이 청신 당시 정보 팀장을 시켜, 그의 기업 비리는 물론 과거 여인의 행적까지 모두 캐도록 했다. 그 결과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여자관계가 지저분했을 뿐만 아니라, 국동건설의 분식회계까지 단행했다는 엄청난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국동건설 출신의 최 계용 과장의 증언을 바탕으로 내부자까지 포섭해 얻은 극비 정보였다.

아무튼 나는 이를 바탕으로 같이 맞대응으로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부친에게 이를 고해 바쳤다. 그 결과 그는 동생에게 사장 직위까지 빼앗기고 한동안 근신하라는 처분까지 받게 되었다. 이에 앙앙불락하던 그는 자신과의 염문이 아니라 수경이 나와 결혼했다는 사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아들까지 있다는 사실을 언론에 슬쩍 흘렸다. 이 정보를 받은 사람이 하필이면 일간스포츠의 연예담당 기자였다. 그 당시 스포츠 신문은 일간스포츠 밖에 없었는데, 주로 이 스포츠 신문이 연예란을 비중 있게 다루었으니, 이는 타이틀 기사로 대문짝만하게 실릴 쇼킹한 뉴스였다. 그래도 한국일보에서 한 솥밥을 먹는 정리가 있다고, 이 기자가 보도 전에 나와 협의한 바, 나는 그에게 특종을 주기로 결심했다. 녀석이 언론에 흘리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제는 막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녀석과 연루된 부분만 빼놓고 모두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러자 온 나라가 뒤집어질 정도의 폭발력을 몰고 왔고, 그때부터 수정은 은둔의 여인이 되어야 했다.

나와 함께 찍은 미니 카세트플레이어의 광고는 물론 이어 몇 개 더 그녀 단독으로 찍은 우리 회사의 광고는 사전에 모두 내려지는 일을 당연했고, 그녀는 이 여파로 한동안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겪어본 바로는 기분이 갑자기 업 되었다가 다운되는 조울증 증세가 있었는 데다가, 이로 인해 우울증까지 겹쳤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강제했고, 약물과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은 그녀는 서서히 회복되어 이제 정상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들 철산이 입은 상처도 컸는데, 평소 자랑스럽게 여기던 엄마가 그 청순한 이미지와는 달리 벌써, 그 나이에 한 아이까지 갖은 엄마라는 사실은, 온 국민들에게 일종의 배신감까지 느끼게 했으니, 그 타격이 당연하게도 철산에게도 미쳤다. 거기에 본인이 그 당사자이니, 아이는 나이에 비해 엄청난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이 아이 역시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고, 이 과정에서 철산은 또래의 아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신적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녀석에게는 항상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내가 겉으로 취하는 태도는 일반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대하기 때문에, 모자도 실제는 나의 마음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튼 회상에서 깨어난 내가 말했다.

"내 조만간 집을 방문해 그 녀석과 상담 좀 해야겠으니, 당신은 그렇게 알고 있어."

"고마워요. 여보!"

나는 말없이 미소를 띠우고 수정의 손을 꼭 쥐었다가 놓아주었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소설 속에서와 같이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가 아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온갖 풍파가 다 몰려와, 이리 깨지고 저리 웃으며,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다음 날 오후 4시.

김 재익 경제수석은 약속시간보다도 1시간 늦게 나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늦어서 미안하오. 강 회장!"

"전 통이 잡았겠지요."

나의 '전 통'이라는 말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던 그가 곧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갑자기 12시에 불러들이더니 장장 3시간이나 경제 현안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바람에 빠져나오기가 그랬소. 그런데 강 회장은 분명 좀 전에 '전 통'이라고 불렀소?"

"평소 그를 그렇게 부르다보니 습관이 되어서 무의식중에 나온 말입니다. 기분 나쁘시더라도 너무 마음에 담아주지 마십시오."

내가 이와 같은 거물을 모셔놓고 실수 할 리는 없었다. 나도 철저하게 계산을 깔고 하는 의도적 실언이었다.

"허허........! 내 평소 강 회장이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게 되는 단초가 되었소."

"기분 나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정색한 나의 정중한 태도에 김 수석도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또한 그가 저지른 5.18사태라든가, 독재 행위를 흔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오. 솔직히 못마땅하기는 하지. 하지만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누구를 모시든 내가 적당한 자리에 앉아 내 뜻을 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나 또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오."

"수석님의 심정을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 말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하고, 수석님의 정신을 높이 삽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이 정부 하에서 수석님의 할 일은 다 끝났다고 봅니다."

"거, 무슨 말이오?"

"수석님의 의견이 모두 반영되어 5공 경제정책의 기틀을 잡은 이상은, 누가 수석님의 후임이 되더라도 잘 굴러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허허, 그런 뜻이었소? 나는 내가 필요 없는 존재라 욕하는 줄 알았소."

"누가 감히 수석님 같이 뛰어난 분을 욕하겠습니까? 다만 때가 되면 스스로 물러날 줄도 알아야 나중에 큰 화를 당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건방진 말씀을 드렸습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스스로를 알아, 때맞추어 물러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강 회장은 계속해서 나보고 이 정부에서 물러나라고 종용하는데 어디 밥벌이 자리는 하나 마련해두고 물러나도 물러나야지, 이 순자 여사에게 지청구를 듣지 않을 것 아니겠소?"

"어찌 그 일이 영부인께 지청구를 들을 일입니까?"

나의 질문에 파안대소를 한 그가 말했다.

"공교롭게도 내 내자와 전 대통령의 부인 이름이 한자까지도 같소."

"하하하........! 그렀습니까? 하하하........!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군요."

"나와 내자도 이 일 때문에 처음에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오."

"아무튼 잘 알았습니다. 전날 제가 모신다는 약속대로 저희 회사의 1급 기밀을 수석님께는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되오. 내가 뭐라고........ 오히려 부담만 되오."

"아닙니다. 수석님은 반드시 알고 계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한 나는 급히 미리 준비한 샘플 몇 개를 내 서류가방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처음 보는 기물들이로군요. 아니 하나는 알겠군요. 하나는 분명 대통령 집무실에서 보았던 것 같소."

"그렇습니다. 그것이 휴대폰이고요. 나머지 이 하나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4메가디렘이라는 반도체요, 또 하나는 평판 디스플레이이라고, TV 화면이나 컴퓨터 등 다용도에 쓸 수 있는 제품입니다."

"허허.........! 이런 기물들이 벌써 세상에 출현했다는 것이 놀랍고도 놀랍소! 대정전자야 말로 세계 제1의 전자 회사 아니오?"

"현재는 아니지만 미래에는 분명 그럴 겁니다. 그런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고 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잠시 감탄한 얼굴로 세계 최초의 발명품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김 수석이 진중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이런 최첨단 제품과 내가 사표를 내라 종용하는 데는 상호 연관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내 추측이 맞소?"

"옳게 보셨습니다. 저희 회사로 모시고 싶습니다."

"내 강 회장의 말과 행동을 보고 조금은 짐작을 했지만, 정작 입으로 그 소리를 들으니, 한마디로 난감하오, 난감해!"

"더 깊은 이야기는 장소를 옮겨 듣고 싶습니다."

"허허.........!"

헛웃음과 함께 잠시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럽시다."

"모시겠습니다."

나는 샘플을 도로 잘 원위치 시킨 다음, 회장실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함께 밖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변함없이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멘트, 게다가 많은 쿠폰을 주신님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대단히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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