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70화 (170/322)

< --제 2부끝없는 도전-- >

다음 날 아침 나는 서초동으로 갔다.

연립주택을 짓고 있는 금성주택의 나 승렬 사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오늘도 여전히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지휘하느라 정신이 없는 그였다. 그런 그에게 내가 다가가 물었었다.

"나 사장님!"

"아, 네!"

나의 부름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그였다.

"어떻게 결정은 하셨습니까?"

"아직요."

머리를 저으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짓는 그였다.

"내일 또 찾아뵙지요."

"그럴 것까지야........."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바로 현장을 빠져나왔다.

내가 왜 이 사람에게 이렇게 집착을 하는가? 그의 학벌만 보면 절대 그럴 필요가 없는 인물이 그였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부적이라 할 만큼 숫자 감각에 뛰어난 사람으로, 낮에는 공사판에 다니고 밤에는 경리학원에 다니면서도 그는 경리 일을 열심히 배웠다. 그렇게 해서 최초로 입사한 곳이 한국전자라는 곳이었다. 이곳에 다니면서도 공인회계사를 꿈꾸었던 그는 낮에는 열심히 공사판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더욱 공부를 열심히 했다. 결국 공인회계사는 합격하지 못했지만, 이때 닦은 실력과 깔끔한 일처리, 그의 근면성, 여기에 천부적인 숫자 감각이 어우러져, 그의 일처리 솜씨를 본 사람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한다.

이곳을 나와 다음으로 그가 옮긴 직장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삼강이었다. 여기서 비로소 사업 세계 전반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그였다. 그 결과 그는 남의 재무구조를 읽어내는 비상한 능력을 갖게 되었고, 여기에 지금까지 연희동과 서초동 등 여러 곳에 집을 지어 팔면서, 부동산에 대해서도 비상한 안목을 갖게 되었다 한다. 이런 사람이 나는 지금 절실히 필요했다. 유통을 키우기 위해서는 앞으로 발전할 요지에 자리를 선점할 필요성이 있는 데다, 앞으로 회사를 자꾸 창업하기보다는 M&A를 통해서 성장할 계획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더한 적임자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룹이 이렇게 커지도록 경리에 아주 능한 인물이 제대로 없었다. 처음부터 고생을 함께한 고 경희 양이 시집을 가고서도 계속 근무를 하는 바람에, 지금은 과장으로 경리과에서는 최고의 직급이었다. 물론 그 밑으로 학벌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입사했지만, 아직 그녀를 능가하는 직위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고 양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정말 성실힌 사람이었다.

내가 감사를 한답시고 불시에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장부와 현금을 맞춰본 이래로, 그 후에도 몇 차례 불시 감사를 행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그 후로는 틀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신임 속에서 아직도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나 사장을 기필코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곳을 떠나자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차가 있는 내가 고속버스를 타기 위함은 절대 아니고, 그 바로 옆에 우리가 지어놓은 대정유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 품목별 매장은 전부 분양이 되어 점주들이 한창 오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 매장들 중 1층 전체를 차지하는 대형 슈퍼마켓만은 김의철 사장의 주장으로 우리가 직접 경영을 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내 승용차가 상가 내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1층에 물건을 들이는 과정을 총 지휘하고 있던 김의철 사장이 뛰쳐나와 나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연일 고생이 많습니다. 그래, 오픈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네. 거의 다 들였습니다."

"다른 매장들은 요?"

"다른 매장들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몇몇 점주들만이 미처 물건을 못 들여 오픈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사전에 언론 플레이를 좀 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국 최대의 매장에 제일 싼 가격이라면 충분히 어필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래도 매경 기자가 취재를 해 간 적이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내 책임질 테니, 더 많은 언론사에 이 소식이 언급되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미안한 일이지만 내 일전에 제출한 대정유통의 보고서를 큰 타이틀만 읽어봤어요. 그래서 묻겠습니다만, 크게 기획과 유통으로 대별했던데, 기획이야 이해가 가지만 유통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일층의 우리 회사 매장을 공급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입점한 점주들 중에서도 우리에게 공급을 위탁하면, 그 가격대에서는 최고 품질의 물건을, 최저가로 공급해주는 부서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장차는 전 매장을 관리하면서, 최고의 유통 공급 망을 구축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회사의 모토가 세게 제1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기왕 하시려면 월마트를 능가하는 세계 제1의 유통업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포부에 반해 제가 사장님을 따르게 된 것 아닙니까? 하하하........!"

웃고 있는 이 순간만은 참으로 순박해보였지만, 이 모습이 그의 모습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고대 역도부에 몸담고 있었다. 역도부 출신답게 한 등치하는 다부진 체격에 일벌레로 소문난 사람이 그였다. 일벌레가 아니라 일중독자가 더 정확한 표현으로, 얼마나 일을 열심히 일을 했는지, 첫 직장으로 들어간 한신공영에서 2년 만에 과장을 달았고, 그 후에도 미수금 회수, 회사의 경비절감, 공개입찰에서도 계속 공사를 따내는 등, 한신공영 오너의 눈에 들어 그의 맏사위까지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환갑을 맞은 오너가 후계자를 선정해 키우는 과정에서, 장남만 너무 편애하는 바람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유통분야에 적극 진출할 것을 건의했던 그의 의견은 번번이 무산되고, 오너의 지시로 회사의 모든 중역들이 장남에게만 지지가 쏠리니,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때 내가 그에게 접근해 세계적인 유통 회사를 하나 만들고 싶다하니, 나의 포부에 동감해 적극 참여한 사람이 지금의 김의철 사장이었다. 아무튼 이 사람이 얼마만한 일중독자인 가를 증명하는 일화가 한 가지 있었다. 그의 경영학과 동기들 모임에서 한 번은 말레이시아로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부부동반의 이 여행 역시 김 사장은 한 번도 휴가를 가보지 않은 사람답게, 이 여행의 동참 요구마저도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그래서 오죽하면 동기들이 왕복항공권까지 끊어가지고 설득을 하니 마지못해 함께 처음으로 여행을 간 사람이 이 사람이었다. 여행지도 쿠알라룸푸르가 아닌 오지로 선정해 그곳에서조차 일을 하려는 그의 의도를 원천봉쇄하면서 까지 말이다.

아무튼 이런 김 사장이었기에 나는 전폭적인 신임을 보내며,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기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앞선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알려주어야 할 것은 제대로 알려줄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입을 떼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컴퓨터가 보급될 것입니다. 그 때는 어느 부서보다도 빠른 전산화를 시행하세요. 그래야만 수작업에 투입되는 인원들을 대거 줄일 수 있고, 정확성을 기할 수 있으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기왕 여기까지 온 것, 매장이나 한 바퀴 돌아볼까요?"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그가 앞장을 서자 나는 수행원들과 함께 그의 뒤를 따라 내가 보기에 개선할 점이 있으면 즉시즉시 지적을 하며, 매장 전체를 두 시간에 걸쳐서 돌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11시가 되어 나는, '일벌레' 외에 또 하나의 별명, '미스터 블도저'라 불리는 김의철 사장과 작별을 고하고, 일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과정 내내 나는 앞으로 우리 회사를 더욱 키우기 위해서는 인재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차 나의 계획에 의하면 몇 몇 부서의 최고책임자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부서에 어울릴만한 사람들을 생각하다보니, 내 머리에 몇 사람이 섬광처럼 스쳐지나갔다. 곧 나는 이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고 회사로 들어오자마자 이청신 정보실장을 찾았다.

"불러계시옵니까? 회장님!"

"네, 거기 앉으세요."

회장실 소파에 이 실장을 앉힌 나는 곧 미리 작성한 명단을 내주며 말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보다 광범위하고 정확한 정보를 모아주세요. 해외에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그런 사람은 해외정보팀의 협조를 받도록 하고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곧 이 실장을 내보내고 수북이 쌓인 결재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4시였다.

오후 내내 결재서류를 하나하나 검토하며 결재를 하고 있는 내게, 평소와 다르게 상기된 모습의 김경제 비서실장이 나타났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무엇이 잘 안 되고 있소?"

"네, 회장님!"

이렇게 말하고도 무엇이 분한지 그답지 않게 한참을 씩씩거리던 김 비서실장이 다소 안정을 회복하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언사에는 분노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일개 부장 놈이 감히......."

"무슨 일인데, 김 실장님답지 않게 흥분을 하고 그러오?"

"어제 서울 신탁은행의 김 행장과 결정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1,300억을 5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하기로. 게다가 인수에 필요한 자금 100억 원에 대한 대출까지."

"그랬었지요. 헌데 왜? 오늘 와서 김 행장이 번복이라도 했습니까?"

"김 행장이 아니라 일개 부장 놈이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김 행장도 난처한 모양입니다. 해서 내일 잘 설득해 다시 한 번 만나자는........"

"어느 부장이기에 그렇게 파워가 막강합니까? 그러고 반대하는 이유가 뭡니까?"

"아니래도 말씀 드리려 했습니다. 대출 부장인데요. 너무 한 기업에 특혜를 준다고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조건을 다시 수정해야한다고 강경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일개 부장의 말이라면 무시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글쎄, 다른 동기들은 모두 이사다 빠른 사람은 상무이사까지 진급을 했는데, 워낙 원리원칙을 주장하다보니 밉보여 아직도 부장에 머문 자랍니다. 그런데 그 파워는 막강해서 그 친구의 동문들이 한국은행은 물론 재무부, 경제기획원, 상공부 등, 요소요소에 고위직 공무원으로 포진하고 있으니, 함부로 하기에도 좀 껄끄러운 인물인 모양입니다."

"허허........! 그것 참! 가만.......! 이 정보실장 좀 불러주세요."

"네, 회장님!"

곧 돌아선 김 비서실장이 부하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하고 돌아왔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여 비서 중 막내인 유진선 양이 곧 비서실장에게 보고를 했다.

"업무 차 지금은 밖으로 나가 내부에 없다는 보고입니다."

"알겠어요. 회장님이 찾는다고 들어오라는 대로 오라고 하지?"

"그렇게 전했습니다."

"가서 일봐요."

"네!"

유양이 단정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자 내가 김 비서실장을 보고 말했다.

"내가 이 정보실장에게 하려했던 지시는 그 인물에 대해 아주 소상하게 조사하라는 명을 내리려 했습니다. 혹시 내가 바쁜 일로 그를 못 만나게 되면 그에게 그렇게 지시를 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천상 내일이나 돼야 최종 계약이 체결 되겠네요."

"그렀습니다. 회장님!"

"대한전선의 반대는 없었고요?"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는데 어쩔 겁니까? 회사가 하루아침에 날아가지 않으려면, 그 명에 따라야지요."

"하긴 그렀습니다. 아무튼 수고하셨고요. 내일은 꼭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 회장님!"

이후 나는 빠른 속도로 결재를 끝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퇴근시간이 약간 지나있었다. 그러자 나는 얼핏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청와대의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전화를 연결하도록 했다. 마침 자리에 있는지, 바로 나를 바꾸어주는 유진선 양이었다.

"강 대정입니다!"

"아, 강회장님!"

"오늘 술 한 잔 하는 것은 어떨까 해서요?"

"빠르기도 하십니다. 어제 그 말 꺼내시더니, 오늘 바로 전화를 주셨군요. 음.......! 오늘은 일정상 곤란하고요. 내일이 토요일이니, 내일 오후가 어떻겠습니까?"

"오후 2시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시간이면 각하께서 찾으실지 모르니, 3시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목 길게 빼고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럽시다."

그의 웃음 끝을 따라서인지 내 입가에도 어느덧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 20분 지나있었다. 그래도 내 눈치만 보고 퇴근을 못 하고 있는 비서실 직원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일도 없고 해서 내가 먼저 퇴근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오늘 명희가 이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종일 깜빡하고 있었다. 하긴 일일이 가정사에 메이다보면 회사일 처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일단 회사로 출근을 하면 의식적으로라도 가능한 한 가정사에 대해서는 잊고 회사 업무에만 집중하려 노력해왔다. 아무튼 나는 바로 이사한 곳을 찾아가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비서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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