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부끝없는 도전-- >
차까지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전 통이 입을 열었다.
"경제에 대해서는 내 공부를 한다고 해도 아직 본인이 여러 모로 모르는 것이 많소. 경제수석이 있으면 그의 고견을 들어봅시다."
이 비서실장을 보고 전 통이 말했다.
"김 재익(金 在益)수석 있으면 들어오라고 하시오."
"네, 각하!"
다시 또 이 비서실장이 밖으로 나갔다. 이때 여비서관이 차를 내왔으므로 김 경제수석을 위해 다시 차 한 잔을 주문하는 전통이었다. 나는 그동안 꿀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안경을 낀 인물이 훤칠한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
전 통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신임하여 경제수석으로 임명한 김 재익 씨였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거 앉아요. 강 회장이 카폰에 대한 지분을 이야기하는데 한 번 들어보세요."
그래서 내가 입을 열었다.
"5공화국 들어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하여 금융과 재정을 긴축하고, 수입을 자유화하며, 임금상승은 생산성 증가의 범위 내로 억제하고, 환율과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의 능률 향상을 위해서는 개방과 경쟁이 필수적이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다시 한 번 차로 목을 축인 나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위의 열거한 사항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김 재익 경제수석의 주장을 5공 정부에서 그대로 채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의 지론이라 해도 되지만 꼭 그렇게 말해 최고통수권자의 심기를 거슬릴 것은 무엇인가. 말이 '아' 다르고, '어'다르니 나는 그래도 전 통이 듣기 좋게 이야기 했던 것이다.
"이 통신 분야도 비록 기간망이긴 해도 민간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렇다고 욕심 사납게 저희 회사 단독으로 독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방침대로 다른 주파수 하나를 다른 재벌에게 내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정부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려는 전자식 교환기 등에 대대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최소한 한 가정에 전화기 한 대 꼴은 갖추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흐흠........!"
나의 말에 전 통이 다시 한 번 침음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에 반해 김 수석은 눈을 천정으로 향한 채 무슨 생각인지 그 또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 후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이렇소.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아직 1천 달러도 못 되오. 이 시점에서 카폰이니 휴대폰을 쓸 사람이 얼마나 되겠소? 지금 전국망을 구축한다는 것은 공연히 투자만 해놓고 적자만 유발하는 행위요. 그래서 내 생각은 우선 무선호출 분야에 먼저 투자를 해주시고, 카폰이나 휴대폰은 나중에 결정을 하는 게 낫겠소. 이 분야만은 강 회장의 말대로 정부의 지분은 완전히 철수를 시키고, 1개 통신사를 더 인가를 내주어 경쟁 체제로 가는 게 좋겠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전국망으로 설치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제 생각으로는 최소한 5년 정도를 투자기간으로 본다면, 88서울 올림픽에 맞추어 전국적인 완성 망을 구축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때쯤이면 우리의 형편도 크게 나아질 뿐만 아니라 관광을 오는 외국인이나, 경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도 한국이 더 이상 개발도상 국가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보는 데요."
등록일 : 14.02.03 00:00나의 발언이 끝나자 전 통이 입을 열어 교통정리를 했다.
"내 들어보니 무선호출기가 뭔가는 김 수석의 말이 맞고, 휴대폰 분야는 강 회장의 생각이 맞는 것 같소. 그러니 양쪽을 절충해 진행하시오."
"각하의 말씀대로라면 둘 다 최소한 한 군데 이상의 업체를 더 선정하여 투자를 진행해야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게 시행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각하!"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우리의 대화가 다 끝나도 서울 신탁은행장과 대한전선의 사장인지 회장이 나타나지 않으니, 전통이 갑자기 역정을 내었다. 이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어느 비서관의 안내에 의해 허겁지겁 들어오는데, 나도 아는 인물이었다. 곧 제일은행장으로 있던 김만득 행장이었다. 참으로 얼마나 처신을 잘 하는지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4공 때의 행장이 비록 타 은행이지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가 얼마나 처신을 잘 하는지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왜 이리 늦었소?"
"차가 막혀서 그만........"
"여러 소리 할 것 없이, 거 앉아 여기 강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오."
"네, 각하!"
김 행장이 전 통의 지시에 김경제 비서실장 옆에 엉거주춤 주저앉았다.
"제가 볼 때 1,500억 원이라는 인수자금은 터무니없이 비싸요. 솔직히 마음속으로야 200억 이상을 깎고 싶지만.........."
내가 여기까지 말하는데 전 통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내가 대정전자에게 대한전선의 가전부문을 맡기려는 것은 수출실적이나 뭐로 보나 실력은 1등인데, 국내 판매를 하는 가전제품이 거의 없으니, 이곳에 맡기면 반드시 살려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지만 자꾸 가격을 가지고 너무 따지면, 비록 카 오디오만 생산 판매하는 곳이지만 대우도 있소. 내 그곳에 맡길 수도 있으니, 너무 가격을 가지고 논하지 마시오."
'젠장 대한전선은 얼마나 정치헌금을 했기에 이렇게 감싸고도는 거야.'
내심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어 내가 말했다.
"비록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최소 100억은 깎아야 합니다. 대신 저는 종업원들은 일체 한 사람도 자의적으로 해고하지 않고 전원 승계하겠습니다."
"좋소! 여러 소리, 설왕설래 할 것 없이 강 회장 말대로, 최종 1400억에 대정전자에서 대한전선의 가전부분을 인수시키는 것으로 하고, 대신 종업원들은 약속대로 전원 승계하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각하!"
나의 대답에 이어 얼른 일어나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힌 김 만득 행장이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각하!"
"이제 다 정리가 된 것 같으니, 편하게 차 한 잔 하고 나가서 일들 봅시다."
"네, 각하!"
이렇게 해서 우리는 차 한 잔씩을 마저 비우고, 전 통만을 그의 집무실에 남기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잠시 이야기 좀 하실까요? 강 회장님!"
의외의 김 재익 수석의 청에 나는 이 비서실장의 방으로 갔다. 김 경제 비서실장이야 오늘만은 나와 한 몸이니 당연히 나를 따르는 게 당연하지만, 김만득 행장까지 김 수석의 찌푸린 눈썹에도 꿋꿋하게 비서실장의 방으로 따라 들어오는 것은 무슨 행태인가.
"강 회장님에게 볼 일이 있어서요."
이 비서실장의 눈총까지 받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는 김 행장이었다.
"비서실장님! 차도 한 잔 없어요?"
"하하하........! 알았소. 각하의 총애가 남다른 김 수석의 청인데, 내 어찌 거절하겠소."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 이범석 비서실장이 그렇게 말하고, 곧 한 옆에 붙어있는 여 비서관의 방으로 들어가 차를 청했다.
"강 회장님! 다름이 아니고, 대정이 수출은 많이 하는 것으로 알지만, 그렇게 거금을 투자할 여력이 되겠소?"
"경제수석님이 저희 기업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얼마든지 투자가 가능합니다."
"하하하........! 노파심에서 내 한 말이니 너무 고깝게는 생각지 마오."
"언제 비서실장님하고 두 분을 한 번 모실 기회를 주시죠. 간단하게 술 한 잔 하고 싶습니다. 절대 무슨 청탁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낮에 우리 기업을 한 번 방문해주시면 저희 회사가 전자부분에서는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고, 그 결실이 하나둘 맺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요? 언제 토요일 오후에 내 시간 한 번 내리다. 연락 한 번 주세요."
"꼭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내 한 번 방문하리다."
이때 인삼차가 한 잔씩 나와 우리는 이를 마시고 비서실장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우리의 뒤에는 신탁은행장 김 만득 씨가 따르고 있었다.
"강 회장님! 꼭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면 안 되는 이야기요?"
내가 청와대 1층 현관에 멈추어 서서 말했다.
"여기선 좀........"
"알겠습니다. 그럼, 행장실로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급히 앞장을 서는 김만득 행장이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해 신탁은행 본점 행장실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자마자 내가 말했다.
"차는 지금까지 마셨으니 됐고, 본론이나 이야기 합시다."
"네! 다름이 아니고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대한전선도 더 이상은 가격에 대해 논할 게재가 못 될 것이고, 인수대금 1,400억 중 대한전선이 우리에게 1,300억의 부채가 있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그렇소이다."
내 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김 행장이 말했다.
"제 청을 하나만 들어주시면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해보시오."
"아직도 제일은행 거래하고 계시죠?"
"그렇습니다만?"
"주거래은행을 저희 신탁은행으로 옮겨주세요. 그러면 인수대금으로 발생하는 우리 은행에 대한 부채를 5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유예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리는?"
"1%더 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빼주시오."
"그럼, 역마진이 나서 곤란합니다. 지금도 제 성의를 다한 것입니다."
"별 혜택도 없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옮기겠소? 제일은행에 부탁하면 나도 그 정도 대출은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소."
"거참, 역시 만만치가 않으십니다. 제 최후의 패입니다. 1.5% 빼주도록 하겠습니다."
비로소 나는 김 비서실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김 실장님의 의견은 어떻소?"
"그만하면 행장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신 것 같습니다."
"좋소. 거기에 하나만 더 얹읍시다. 대한전선에 지불할 현금 100억 원만 더 융자해주시오."
"그 정도야 얼마든지 융자 가능합니다."
"좋소! 오늘은 늦었고, 내일 바로 우리도 주거래은행을 옮기고, 대한전선측도 이곳으로 나와 계약서 작성하는 것으로 합시다. 오전 10시 30분에 만나는 것으로 하고, 김 실장이 나머지 실무는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고맙습니다. 회장님!"
새삼 내게 인사를 꾸벅하는 김 행장이었다. 이런 수완이 있으니 실로 오래 버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나였다. 그길로 우리는 바로 신탁은행을 빠져나와 회사로 돌아갔다. 아무튼 우리는 오늘 청와대 행으로 소득이 만만치 않았다. 비록 적자가 나는 기업이지만 대한전선을 돈 한 푼 안들이고 인수한데다, 오늘의 대화로 인해 한 달 후에는 제반 통신법이 입법화 되어, 011이라는 무선휴대전화에 대한 우리 회사만의 고유번호를 받게 되었고, 무선호출기 식별번호인 012와 함께 본격적인 통신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훗날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 선경 현 SK는 015와 016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아 통신사업의 양대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뿐인가. 부족한 용지난까지 해결했으니, 오늘은 큰 성과를 거둔 셈이 되었다. 등록일 : 14.02.03 00:00조회 : 7499/7512추천 : 181선호작품 : 7444(비허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