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66화 (166/322)

< --제 2부끝없는 도전-- >

금성주택의 나승렬 사장을 만나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차에 오르는데 혁대에 찬 삐삐가 울기 시작했다.

삐삐, 삐삐~!

나는 운전을 담당하고 있는 경호원에게 말했다.

"어디 공중전화 있는 곳에 차 좀 세워줘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우리는 곧 차를 타고 가면서, 누구나 창밖을 바라보며 공중전화기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나만은 삐삐라는 이 무선호출기와 휴대폰 생각에 잠겨 저절로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무선호출기는 물론 휴대폰도 개발해 미국과 이탈리아, 일본 등에 수출하고 있었다. 아직 미국은 마틴 쿠퍼 박사에 의해 휴대폰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상용화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모토로라에 투입된 정보원의 보고로는 약 한 달 후인 3월 달에, 무게 1kg에 달하는 벽돌 크기의 제품 즉 다이나텍 폰이 출현할 모

양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만한 크기는 미국시장에서 양산을 해 팔고 있었다. 대 당 가격이 무려 13,270 달러로 변동환율제를 택해 달라당 752원을 오르내리는 요즈음의 환율로 계산하면, 근 1천만 원에 가까운 가격임에도 전년도 만해도 년 5만대를 조금 넘게 팔았다. 무선호출기도 개발해 대당 20만 원씩 작년도만 5만대를 넘게 팔았다. 미국에서는 무선호출을 벨 보이(bell boy)라고 하는데, 1958년 서비스 업무를 개시한 이래 많은 도시에서 서비스가 행하여지고 있었다.

또 네덜란드에서도 1965년부터 시마폰(shiemaphone)이라고 하는 무선호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았다. 무선호출 수신기에는 보통 전화와 마찬가지로 1대마다 번호가 있고,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삐삐하는 소리나 진동을 내어, 그 사람이 호출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미국은 각 도시마다 서비스업체가 틀렸다. 그래서 우리는 각 서비스업체와 손을 잡고 판매를 하고 있었다. 무선호출기 단말기의 기종은 이 서비스업체가 선정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과 손을 잡고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1982년부터 무선호출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즉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2년 12월 15일 서울시내에서 첫 서비스를 시작한 다음이었다. 지금의 삐삐 사용자는 무언가 한 가닥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었다. 실제로 고급관리나 수사관 또는 기자들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이 삐삐를 이용하고 있었다. 신분의 상징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선호출 서비스를 우리의 자 회사 하나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래 이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나라에서 이를 실시하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전 방위 로비를 해 서비스 위탁 권을 따냈다.

즉 한국 전기통신공사(현 KT)의 자 회사의 하나로, 한국 이동통신 서비스주식회사를 설립했던 것이다. 국가 기간전산망이라 정부의 지분이 51% 우리가 49%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운영도 우리가 투자도 우리가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무튼 이것이 내년 즉 1984년 5월 달부터는 차량전화 서비스(카폰)도 실시할 예정이니, 그 준비를 하라고 해서 지금 서울에만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였다. 아직 준비만 하고 실제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의 지분율을 좀 더 올리기 위해서였다.

투자만 죽어라고 해놓고 나중에 정부에서 회수라도 하는 날이면 낭패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투자에 앞서 지분율을 좀 더 끌어올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모든 가입자를 통틀어도 채 2천 명이 안 되는 호출기의 번호를 확인한 나는 이것이 분당 연구소에 있는 파벨 씨 전용선임을 알았다. 곧 예리한 눈썰미의 경호원에 의해 차가 공중전화 앞에 멎었다. 나는 급히 차에서 내려 공중전화에 동전을 집어넣었다. 곧 신호음이 이어지더니 찰카닥 동전 먹는 소리가 나며 통화가 이루어졌다.

"나요, 파벨 씨!"

"하하하........! 강 사장! 기쁜 소식이 있소. 내 지금......."

"알겠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가 더 이상 무슨 내용인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치고 들어가, 출발한다는 소식만 전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모든 전화는 정부에서 도청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전화상으로 떠들어 봐야 기밀만 누설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나는 곧 경호원에게 지시해 분당 '대정연구소'로 직행하도록 했다. 대정연구소 산하에는 지금 크게 분류하면 다섯 개의 연구소가 존재하고 있었다. 통신장비연구소, 반도체 및 컴퓨터 주변기기 연구소, 일반 전자연구소, 헬스 케어연구소, 건설 및 엔지니어링 연구소 등이 그들이었다. 통신장비연구소는 문자 그대로 통신장비를 연구 개발하는 부서로서 이곳에서 무선호출기는 물론 휴대폰, 카폰 등의 기본 장비가 연구되어 생산되고 있음은 물론 차세대 기술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반도체 밀 그 주변기기 연구소는 말 그대로 메모리 비메모리를 망라한 반도체와 컴퓨터의 하드웨어 부분은 물론 소프트웨어 부분까지 연구를 하고 있었다. IBM의 모니터 10만 대를 수출을 시작해 생산기술을 시작한 우리는 지금은 년 100만대의 모니터를 OEM 방식으로 생산해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자체 공장 지을 터를 물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연구소에서 4 메가디렘의 반도체를 개발한 것은 물론 평판 디스플레이 개발도 끝났기 때문에, 상용화할 라인을 설비하려는 것이다.

이 공장이 갖추어지면 컴퓨터 모니터는 물론 TV모니터, 전자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디지털 카메라에 채택될 예정이었다. 또 이곳에서는 다음 세대 기술인 초박막액정표시장치(thin film transistor-liquid crystal display)도 연구를 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79년이 되자 일본의 소니를 비롯한 몇 몇 업체들이 우리와 유사한 제품의 미니 카세트플레이어를 개발해 시장에 쏟아내자 우리는 곧 기존의 제품에 녹음 및 라디오 기능을 추가해, 시장에서 선두주자라는 프리미엄과 업그레이드 된 제품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선두주자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여기에 우리는 독일 지멘스사의 보청기에 대한 기술 이전을 바탕으로 이제 이어폰까지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연간 600만 대 판매는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위와 같이 일반 전자연구소는 기존 제품을 개량하거나 또는 디지털 카메라나 노트북 등 신제품을 개발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또 헬스 케어연구소에서는 제 4대 검진장비인 CT, MRI, PET 등을 융합한 장비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좀 더 간편하게 검진 할 수 있는 여러 장비도 개발 중이었다. 그리고 건설, 엔지니어링 연구소에서는 21세기에나 활용될 기술을 미리부터 연구하고 있었다. 세일가스 추출 장비, 드릴십·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 또 이 보다는 시장이 배나 큰 해수면 밑에 설치되는 채굴·분리·이송 설비, 보통 '서브시(Subsea)'로 불리는 채굴 장비 등도 연구개발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초고층 아파트를 설계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자체 원전설계 기술 연구 또한 행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작년 포니 투로 바뀐 내 승용차는 분당의 연구소에서 간단한 검문을 받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회장인 나마저도 차에서 내려 검문과 검색대를 통과해야할 진데 다른 사람의 통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아직 카드나 홍체 인식기술 이 발달되지 못한 탓이었다. 눈 쌓인 황량한 겨울 산 사이에 군데군데 상록수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일정한 거리 이상 떨어진 각각 12층의 연구동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나는 그 사이 사이로 2차선으로 포장된 길을 달려 파벨 씨가 수석 연구원으로 있는 통신장비연구소 건물 동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층마다 수십 칸의 연구원들이 방이 있지만 파벨 씨는 이곳에서도 가장 높은 12층의 1/4을 차지하는 호화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연구소가 우리는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벨리에도 이만한 규모의 연구동이 있었다. 한국으로 입국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소로, 세계 각국의 연구원들이 모여 우리 기업이 원하는 제품이나 이론을 개발하기 위해오늘도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연구소를 키우기까지 나는 지금까지 전자와 건설에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을 이곳에 투입함은 물론, 세계의 뛰어난 석학들을 모시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해야 했다. 아무튼 그 연구들이 하나둘 지금 빛을 발해 속속 내가 전생에서 알고 있던 앞선 세대의 기술들이 속속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이곳에 도착해서도 삼엄한 경비들의 인사를 받으며 12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뜻밖에도 모니카 부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부인께서 웬 일이십니까?"

"하도 빨리 모시고 오라고 해서, 제가 10분 전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던 중입니다."

"하하하........! 얼마나 뛰어난 제품을 개발했기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고맙습니다.!"

미소와 함께 내 칭찬에 화답을 한 그녀가 조용히 나를 안내 했다.

"지금은 화초나 채소 등을 안 가꾸십니까?"

"지금은 겨울철이라........ 마련해준 채마밭은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넓은 연구소에는 곳곳에 운동기구와 놀이시설은 물론 산책로 등의 휴식 공간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꽃이나 채소도 기를 수 있는 채마밭도 조성이 되어 있었다.

"온실이라도 만들어 겨울에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곧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내 말에 이 미연 과장은 물론 구 인철 과장도 급히 메모를 해 약속을 잊지 않도록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내가 파벨 씨의 대형 연구실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니 함박웃음을 지은 이윽고 내가 파벨 씨의 대형 연구실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니 함박웃음을 지은 그가 곧 나와 나를 맞았다.

"강 회장님! 어서 오시오!"

"무슨 발명을 하셨기에 그렇게 숨이 넘어가십니까?"

"아! 강 회장이 원하던 플립 폰을 내 개발하지 않았소. 그러니 한 시라도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하하하.........! 아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과장된 제스처와 웃음으로 그를 끌어안고 그의 노고를 치하해 마지않았다. 모토로라가 1990년이 되어야 제품으로 세상에 내놓는데 비하면, 우리가 상용화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5년은 앞서 개발을 완료했으니, 내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우리가 지금 제품 크기의 1/3 수준에, 무게는 근 9/10가 줄어든 100g 대의 제품의 상용화단계까지 개발을 끝내, 양산할 공장 터를 물색하고 있다지만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어 그로부터 근 30분에 걸친 지루한 공훈담을 애써 들으며, 연속해서 그의 노고와 우수한 발명가적 기질을 칭찬해야 했다.

물론 그 혼자 개발한 것이 아니라 밑에 있는 수많은 연구원들의 합작품이긴 해도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를 비롯한 연구원들에게 통 큰 격려금 지불을 약속하고 나서야, 그의 지루한 공훈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는 연구소에 온 길에 여러 연구동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구소를 빠져나와 사무실로 곧장 가도록 했다. 아무래도 공장 용지 매입을 서둘러야 하겠기에 이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늦은 점심 식사를 하게 했지만, 나는 채 선장 이사부터 불러들이도록 했다. 나의 호출에 채 이사가 허겁지겁 달려와 숨을 고르느라 한동안 말을 못하고 서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미소를 띠고 바라보다가 물었다.

"청주 시장과의 공장용지 교섭 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청원군 오창면에 500만 평의 용지를 순차적으로 마련해주기로 했으나, 아직 1차로 조성될 200만 평의 용지 보상이 지지부진한 관계로 늦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내 직접 가서 채근을 해야지."

"서둔다고 서두르나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겠는데........ 가만 있자, 그러면 이는 좀 더 윗선에서 결정할 일이니.........."

나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고 이내 결심을 하고는 곧 차를 준비하도록 했다. 이에 미리 식사를 끝낸 김 실장이 점심 문제를 거론해, 여비서에게 김밥이라도 몇 줄 사오도록 지시했다. ============================ 작품 후기 덕분에 무사히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오후 늦게 돌아와 겨우 한 편을 썼네요.

한편을 더, 쓰는 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변함없는 사랑에 감읍하며,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대단히, 대단히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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