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64화 (164/322)

< --제 2부끝없는 도전-- >

동네 어귀에 차가 멎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이 할머니네 집을 향해 뛰었다. 네 살짜리 꼬마들도 언니 오빠들을 따라 같이 뛰다가 인정이 작은 돌에 걸려 넘어져 울음을 터트렸다.

"거 봐라. 엄마랑 같이 가자고 해도 말 안 듣고 그러더니."

얼른 달려가 인정을 안아들며 하는 명희의 말이었다. 중산이는 그래도 사내코빼기라고 잘만 뛰어갔다. 이를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는 미정이었다.

곧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들 손에 이끌려 우리를 마중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며느리들과 아들의 인사에 중산을 안은 어머니가

'어서 들어가자!'

소리만 연발 하시고, 막내 인정을 받아든 아버지가 수염조차 깍지 않은 얼굴로 인정에게 뽀뽀를 하자, 또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인정이었다.

"할아버지가 예쁘다고 그러는 거야."

명희가 달래도 인정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수정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곧 이유를 알아차리고 수정의 딸 효정을 번쩍 안아들었다.

다섯 살로 어중간하니 사랑을 많이 빼앗기는 효정이었다.

"효정아!"

"네, 아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둘 다!"

"요 영악한 것."

코를 잡아 비틀려다 또 하나마저 울까봐 나는 그만두고 녀석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이렇게 걸어가다 보니 어느덧 마당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마당에는 세 계집애 동생들이 서서 우리를 맞았다. 큰 여동생은 벌써 대학교 졸업반이고, 막내가 고1이었다. 중간은 올해 충북대학교 약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전 같았으면 벌써 오빠에게 달려들 막내가 딴전만 치고 있었다.

이제 여고1학년이니 제법 성숙해 벌써 처녀티가 풍기는 막내였다.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놓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오자 습관적으로 할머니 방을 열어보고는

'아!'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할머니는 아쉽게도 작년에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원인은 욕실로 씻으러 가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부러져 그길로 쾌차하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다리에 힘이 없어 넘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평소에도 조심을 해야 한다. 한 번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지니 당연히, 더 더군다나 간신히 거동하시던 것도 못하고, 그길로 자리보전하는 바람에 등에 욕창이 생기는 등 말년에 고생을 많이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이런 할머니를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싸했다. 나는 분위기를 떨치기 위해서라도 문을 쾅 닫고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에는 모두 모여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듯이 한 생명이 흙으로 돌아가도, 그 흙에는 떨어진 씨앗이 발아해 새 생명들을 이어간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밖에 갈 수밖에 없는 숙명. 죽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신의 영역. 다만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할 뿐이다.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에 내가 방문을 열고 멍하니 서 있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왜 안 들어오고 그렇게 서 있니?"

어머니의 말을 받아 내가 활기찬 음성으로 말했다.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세배해야지. 엄마 아빠가 먼저 할 테니, 준비하고 있어!"

"네!"

꼬마들 셋이 세배 돈 얻을 욕심인지 일제히 합장을 했다.

"호호호.......!"

"하하하.......!"

그 바람에 장내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아이들이 내 말에 뒤로 물러나자, 자동으로 나를 중심으로 세 부인이 나란히 섰다. 그리고 내가 장난하듯 구령을 부쳤다.

"일동 차렷!"

"세배!"

아랫목에 나란히 앉은 아버지 어머니를 향해 내가 제일 먼저 엎어지고, 세 아내는 큰절을 올리느라 천천히 주저앉는다.

"어머니 아버지, 오래 오래 사세요!"

"아버님 어머님! 만수무강 하세요!"

내 말에 이어 세 아내가 사전에 연습이라도 한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 대정이는 올해 사업 잘 하고, 세 며느리들도 건강해라! 그리고 인정이 엄마는 올해 아들 하나 낳아야지. 다들 아들이 하나씩 있는데, 혼자만 없어서 되겠니?"

"저 혼자 낳 남요? 별을 봐야 따던지 말든지 하지요."

"호호호.........!"

모두 웃는데 아버지와 나만은 웃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곧 아버지도 정색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 잘 봐라. 그러고 젊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항상 건강 조심하고."

"네, 아버님!"

"그만 됐다."

아버지의 말에 따라 나는 벌떡 일어나는데, 세 아내는 각각 봉투 하나씩을 어머니 앞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

"아이들 세배 돈 주라고 저이가 챙겨준 돈 이예요."

미정이 대표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각각 40만원씩이 들어있으니, 결코 작지 않은 돈이었다.

"뭘 이런 걸 다.........."

어머니가 사양하시는 말을 하는데, 아버지는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잘 쓰마!"

오늘 따라 무게를 많이 잡으시는 아버지셨다. 평소 같았으면 두 분의 말이 바뀌었을 텐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아버지가 톡톡히 어른행세를 하시고 계시는 것 같았다. 다음은 아이들 차례였다. 끼리끼리 논다고 큰 놈들 둘이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 섰다. 둘이 알아서 일제히 절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큰 딸 다정이 인사를 하고나자 철산도 한 마디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늙지 마시고 백세까지만 사세요!"

"그래, 그래! 우리 맏손자 최고다!"

앉은자리에서 다가가 등까지 두드려주시는 어머니셨다. 그러자 아버지가 맏손녀를 챙겼다.

"우리 맏손녀 공부 잘하고, 엄마 아빠 말씀도 잘 들어라!"

"네, 할아버지!"

"철산이도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잘 하고."

"네 할아버지!"

"예있다!"

어머니가 각각 신권으로 바꾸어놓은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주셨다. 그러자 미정이 참견을 했다.

"뭘 그렇게 많이 주세요."

"아, 이제 학교도 다니고 머리도 굵어졌는데, 그 정도는 줘야 쓸게 있지."

어머니의 말씀에 아무 말도 안 하는 미정인데 비해, 다정이 제 엄마를 향해 입을 삐죽빼죽 했다. 이어 꼬마들 셋이 절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래 오래 사세요!"

효정이와 중산이 똑 같이 입을 맞추어 말하는데, 막내 인정이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만 하고는 까먹었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에 식구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애들 이름도 헷갈린다. 인정이지?"

"네, 어머님!"

어머니의 물음에 명희가 냉큼 받아 대답을 했다.

"인정아, 무슨 말인지 까먹었어?"

"아니요. 오래 오래 사세요!"

이제야 생각이 났는지 비로소 제대로 말을 하니 또 한 번 장내에 웃음보가 터졌다.

"아이고, 똑똑해라. 그런 의미에서 이 할미가 5천 원씩 주마!"

"고맙습니다!"

그럴 때는 인정이 제일 빨랐다. 그런데 두 녀석들은 냉큼 받지를 못하고 제 어미 눈치들만 보고 있다.

"할머니가 주시는 거잖아 얼른 받아!"

"고맙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내 말에 비로소 돈을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데 아무래도 한 살 더 먹은 놈이 나았다. 중산이는 준 할머니한테만 하는데, 효정이는 할아버지까지 다 챙기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세배가 끝나자 사전에 준비가 다 되어있었던지 금방 떡국이 아내들에 의해 나왔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가셔서 두 경호원들 불러들였다. 어려워하면서도 그들은 함께 어울려 식사를 마쳤다. 우리는 반주 삼아 술 한 잔씩을 하고 바로 성묫길에 올랐다. 선영이 채 1km도 안 떨어진 곳에 있어서 차로 이동을 하니 금방이었다. 미처 돗자리가 준비가 되지 않아 모두 맨 잔디위에서 절을 하는데, 아이들은 옷을 버릴까봐 엉거주춤했다. 그렇기는 아내들도 마찬가지였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고 능선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조상의 무덤들을 바라보았다. 위대 조부터 죽 묘 자리를 써내온 게 아니라 중간에 손자 벌이 끼어들기도 해 엉망진창인 조상의 무덤들이었다. 이를 보니 곧 묘 자리도 한 번 일제히 정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담뱃불을 끄고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내려와 다시 차에 올랐다. 여기까지 와서 명희네 집을 안 들리면 서운해 할 것 같아서, 잠시 찾아뵙고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 얼마간의 용돈도 내가 명희를 통해 드렸다. 그러고 나는 바로 청주로 향했다. 중간에 있는 미정의 친정을 안 들리니 미정이 서운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정이네까지 다 찾아다니려면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아서 나는 아예 모른 척 했던 것이다.

명희와 인정을 떼어놓고 가려니 기분이 언짢았다. 그래서 나는 내심 생각하길 이제 명희도 청주 사업체를 돌본다고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서울로 이사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할 준비하고 있어."

"네?"

"혼자 여기다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어. 바로 서울로 이사시킬 테니, 준비하고 있어."

"나는 여기 있는 게 좋은데."

"나는?"

"헤헤헤.........! 오빠를 생각하면 이사를 해야 되고요."

"여러 소리 말고 내 말대로 해."

"네, 알았어요."

"인정아, 아빠한테 뽀뽀! 아빠 가신단다."

"네!"

쪽!

내 입술에 뽀뽀를 하는 인정을 꼭 붙들고 내가 물었다.

"아빠랑 서울에 가서 살까?"

"싫어. 엄마랑 살 거야."

"호호호........!"

그 말에 모두 웃는데 명희의 웃음소리가 제일 컸다. 다음날 나는 우리의 오랜 관습대로 아침 조회를 하기 위해 일찍 출근을 했다.

새벽 5시에 나는 집을 나섰다.

겨울이라 아직 캄캄했지만 나는 차를 몰아 역삼동으로 향했다.

이제 우리의 사무실이 그곳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이었다. 압구정동의 공장과 사무실이 있던 부지는 최종까지 남겨져 있다가, 지금은 10층짜리 대규모 백화점이 들어서 있었다. 이제 우리는 유통업에까지 진출을 한 것이다.

물론 그 전에 5천 세대를 분양하고 남은 절반의 터에도 5천 세대의 아파트를 다음 해에 지어 성공리에 분양을 마쳤다. 그 과정에서 대지를 담보로 애초에 빌렸던 제일은행의 대출자금은 분양대금으로 모두 갚아 타인의 재산권 행사에 아무런 지장이 없게 했다. 아무튼 텅 빈 도로를 빠르게 달려 20분 만에 역삼동에 도착하니, 100만 평의 대지가 지금은 공장과 여타 시설로 꽉 들이차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환하게 불이 밝혀진 12층짜리 사옥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두 명의 경호원 중 한 명이 뛰다시피 해서 먼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나를 경호하는 경호원은 총 6명인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12시간씩 하루 2교대를 하고, 한 조는 하루를 온전히 쉬는 제도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물론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내 요청이 있으면 6명이 총 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청와대 경호원에 적을 두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떠난 사람들을, 아파트 특별 분양 건으로 알게 된 전두환 현 대통령의 소개로 채용한 사람들이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어 서자 경호원 한 명이 먼저 들어가 순식간에 내부를 살폈다. 그리고 회장실이 있는 12층을 눌렀다. 곧 내가 타고 마지막으로 경호원이 뒤를 한 번 살피더니 탔다.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사업부에서 개량한 초고속 엘리베이터라 확실히 속도가 빨랐다. 나는 12층에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회장실로 직행했다. 그곳에는 벌써 출근한 비서실장 김 경제 외에도 총 10명의 비서진이 일제히 허리 굽혀 나를 맞았다. 그 중 세 명이 여자였고, 여인 중에 한 명은 과장으로 승진한 이 미연 양도 보였다. 내가 단지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열혈 전사로 변신한 이 과장이 살갑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잘 다녀오셨어요? 회장님!"

"네, 회사에는 별일 없지요?"

"네! 차 한 잔 드릴까요?"

"그럽시다."

나는 집무실 책상으로 가 앉으며 또 한 명의 과장 구 인철(九 仁哲) 씨에게 물었다.

"4메가 디렘 개발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개발을 마쳤다는 연구실장의 보고입니다만,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좋습니다. 절대 보안을 유지하고, 계속 연구만 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회장님!"

나는 흐뭇한 시선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먼 산에는 눈이 쌓여 희게 보였지만 봄은 멀지 않았으리라.

============================ 작품 후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세요! 또한 계획하시는 일 두루 성취하시고요!"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한 날들 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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