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56화 (156/322)

< --그룹의 면모를 갖추다-- >

말의 권위를 더 하기 위함인가, 값을 올리기 위함인가, 한참동안 뜸을 들이던 파벨 씨의 무거운 입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CAT스캐너 즉 단층촬영기를 보다 쉽게 사용하고 선명도가 뛰어나도록 개발한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이용한 신비의 광학카메라,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맞추어 보시게?"

"네?"

"하하하..........!"

나의 표정이 재미있는지 가가대소하던 파벨 씨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MRI!"

"네?"

"하하하.........! 그 부분은 발명자인 피터 맨스필드 씨가 자세한 설명을 해줄 것이네."

오늘 따라 유독 거만한 파벨 씨였다.

파벨 씨의 말에 따라 피터 맨스필드 씨가 입을 열었다.

"MRI는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이라 불리는 현상을 이용합니다. 모든 물체는 자기장 안에 들어가면 자성을 갖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자성을 갖게 된 물질은 외부에서 특정한 주파수의 전파를 가하면 전파의 에너지를 흡수하는데, 이를 공명현상이라고 합니다. 이 현상을 이용한 것이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nuclear 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로 CT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발명품이라 할 수 있죠."

계속해서 맨스필드 씨가 보충설명을 했다.

"CT가 1차원 영상을 제공한다면 MRI는 삼차원 영상을 제공하니까요. 또 MRI는 자기장과 고주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근육이나 인대와 같은 연부조직의 해상도와 대조도가 CT보다 훨씬 좋으며, 조영제와 같은 특별한 약물 없이도 고해상도의 혈관 영상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장점은 특히 뇌신경계 영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해 뇌경색 같은 질환을 진단하고 경과를 관찰하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CT에 비해 검사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1980년대나 개발되는 발명품이 벌써 우리 연구진에 의해 개발되었으니, 그 기분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째집니다."

나의 말에 통역에 어려움을 겪는지 난감한 표정을 짓는 이 박사였다.

대충 내 말을 통역한 이 박사가 슬며시 내 옷을 잡아당겨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의 말을 들으니 한 사람 생각나는 이 분야의 권위자가 있습니다. 내 나중에 소개하리다."

"고맙습니다."

둘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파벨 씨가 아주 뛰어난 광학카메라를 개발했다는 브루노 버지 박사를 직접 소개하며 그에게 설명을 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것이 학술논문 발표장도 아니고 아주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말을 중간에 끊기에는 너무 그를 예우하지 않는 것 같아, 망설이다보니 장장 10여 분에 걸친 그의 장황한 이론을 들어야 했다.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이랬다.

풀잎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부분의 풀잎이 더 크게 보인다. 풀잎에 떨어진 물은 표면장력 때문에 둥그렇게 뭉친다. 이렇게 뭉친 물방울이 빛을 굴절시키는 볼록렌즈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방울이 떨어진 부분이 크게 확대되는 것이다. 사람이 유리로 렌즈를 만들기 훨씬 전부터 물방울이라는 렌즈가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최근 유리 렌즈를 대신해 물방울을 사용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유리 렌즈의 치명적인 약점을 '물방울'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 렌즈의 결정적인 약점은 뭘까. 바로 유연성이 없어 초점을 맞추려면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물방울은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앞뒤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 두께를 바꾸면 초점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눈의 수정체가 바로 이 같은 원리로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서 핵심은 물방울의 두께를 맘대로 제어하는 방법이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렉트로웨팅(electrowetting) 현상을 발견했다. 액체를 맘대로 제어해 유용하게 만드는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그것이다. 즉 일렉트로웨팅은 전기로 액체의 표면장력이 바뀌는 현상으로, 다양한 전자 전기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1870년 가브리엘 리프만은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처음 발견했으나, 당시 제한된 전압 조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널리 응용되지는 못했다. 높은 전압으로도 표면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일렉트로웨팅 현상은 당 연구원인 브루노 버지 박사에 의해 발견된다.

일렉트로웨팅 현상이란 쉽게 말해 전기로 표면장력이 바뀌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1870년 가브리엘 리프만(Gabriel Lippmann, 1845~1921)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유리관에 물을 담으면 유리관 벽은 중심부보다 물의 높이가 더 높은데 이는 물과 유리관 벽 사이의 표면장력 때문이다. 그런데 유리관 대신 금속관을 쓰고 전기를 걸면 벽을 따라 올라오는 물의 높이가 더 높아진다. 전기로 표면장력이 더욱 세졌기 때문이다.

리프만은 이를 '전기모세관' 현상이라고 불렀지만 그 뒤로 1백 년간 이 기술은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전기모세관 현상은 1V 이하의 낮은 전압에서만 일어났고, 이보다 높은 전압을 걸면 물이 산소와 수소로 분해돼 버렸다. 제한된 전압 조건 때문에 이 현상을 응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높은 전압으로도 표면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발견됐다. 브루노 버지(Bruno Berge) 박사는 금속판을 얇은 절연체로 씌운 뒤 그 위에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다음에 금속판과 물방울에 전기를 걸자 전압이 높아질수록 물방울이 얇게 퍼졌다. 이 방법을 쓰자 수십 V의 높은 전압에서도 물방울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다. 족쇄가 걸린 1백 년 전 기술을 열어젖힐 열쇠를 찾은 것이다.

물에 전기를 통하면 표면장력이 변하는 이유는 물 분자 자체가 극성(+, -)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 분자는 산소원자 하나와 수소원자 두 개로 구성돼 있는데, 수소원자가 104.5도의 각도를 이루며 붙어 있기 때문에 (+)인 쪽과 (-)인 쪽이 생긴다. 이 극성 때문에 전기가 흐르는 금속에는 더 끌리는 힘이 생겨 물과 바닥면 사이의 표면장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물과 금속이 직접 만나면 전자를 주고받기 때문에 물이 수소와 산소로 분해돼 버린다. 그러나 그 사이에 얇은 절연체가 있으면 전기장의 영향은 받지만 전자를 주고받을 수 없어 분해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높은 전압에서 표면장력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일렉트로웨팅 현상에 대해 아직 이론적으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일렉트로웨팅 현상. 절연체를 사이에 둔 전도성 액체와 기판에 발생한 전압이 전도성 액체의 표면장력을 제어한다. (L: 전도성 액체, I: 소수성 절연층, S:기판)카메라 그럼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어디에 응용할 수 있을까? 상용화가 가장 빠른 분야는 휴대전화용 액체렌즈다. 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는 급한 대로 쓰기는 편리하지만 줌인, 줌아웃 기능이 없고 거리에 따라 초점을 맞출 수 없어 불편하다.

하지만 딱딱한 유리나 플라스틱 대신 액체렌즈를 쓰면 이런 불편이 사라진다. 두께를 바꿀 수 있어 거리에 따라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액체렌즈는 물과 기름으로 만든다. 물과 기름의 경계면을 일렉트로웨팅 현상으로 변화를 주면 전체 모양이 달라진다. 이를 통해 렌즈의 초점을 5cm부터 무한대까지 맞출 수 있게 된다. 액체렌즈 방식은 렌즈를 이동시키는 방식보다 6배 이상 전력 소모가 적고 제품의 크기도 작아지는 장점이 있었다. 액체렌즈 다음으로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응용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전자종이 분야다. 전자종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꽃으로 불리지만 화면이 바뀌는 속도가 느린 문제가 있어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존 방식은 화면을 표시할 때 전기로 제어되는 작은 입자를 사용한다. 이 입자의 움직임이 느려 화면 반응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입자 대신 유동성이 큰 액체로 전자종이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화면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픽셀에 액체를 채우고 이를 일렉트로웨팅 현상으로 이동시켜 화면을 제어하는 것이다.

랩온어칩(Lab on a Chip)도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이용하는 분야다. 랩온어칩이란 혈액과 같은 액체 한 방울을 작은 칩에 떨어뜨려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한마디로 '혈액 한 방울로 질병을 진단하는 손바닥 위의 실험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워낙 작기 때문에 액체를 극 미세한 관으로 이동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은 액체를 이동시키기 위해 수만 V의 전압을 걸어야 했지만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사용하면 수~수십 V의 전압으로도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또 기존 방식보다 1백 배 이상 빠르게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액체를 이동시키는 방법은 액체 방울의 한쪽 부분만 표면장력의 변화를 주면 된다. 이 방식으로 한쪽 끝에만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일어나면 물방울이 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이용하면 사진처럼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도 쉽게 개발할 수 있습니다."

내 귀에는 그 의 끝말만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왔다.

"세계최초로 액체렌즈 방식으로 130만 화소의 휴대카메라 모듈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라는 말, 그 것이었다. 후일담이지만 이 사람은 3년 후에는 200만 화소 제품을 내놓아 세상을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한다. 어찌됐든 우리 연구진에 의해 전자 종이, 혈액 한 방울로 질병을 진단하는 손바닥 위의 실험실이라는 랩온어칩,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등을 차례로 개발하는 것이 결코 꿈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휴대폰 촬영 장치에도 응용이 될 것이다. 아무튼 이후 우리는 이들과 지루한 특허권 양도 싸움을 벌여야 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파벨 씨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우리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지는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종적으로 결과는 3인 모두 일시불로 10만 달러를 받기로 했으며, 또한 이것이 제품으로 출시는 날, 이익금의 2%에 해당되는 로열티를 지급받기로 했다. 아울러 우리 연구소에 적을 두고 일정액의 연구비와 함께, 앞으로는 이사급에 해당하는 월급을 지급받기로 하고, 최종 특허권 양도에 관한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황소 뒷걸음 식으로 어쩌다 우리가 최초의 미니 카세트플레이어는 출시했지만, 이들이 개발해 놓은 발명품을 뒷받침할 부품을 비롯한 기초소재 부분의 역량이 우리에게는 터무니없이 취약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기술 제휴를 통한 OEM방식의 생산이었다. 즉 이를 통해 기초기술을 쌓아 더 나은 미래의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OEM 생산방식으로 상표는 기술을 제공한 회사의 상표를 달고 세계 시장에 수출되지만, 곧 이 제품은 그들의 얼굴이므로 허투루 생산하게 하여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량을 다한 기술지도와 철저한 품질관리로 우리의 전자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기술제휴 및 OEM 방식의 생산을 허용할 선진 인류 업체를 선정하고 이들과의 기술제휴를 체결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 동안 서 이사는 우리가 사들인 원천 기술을, 한국은 물론 세계 유수의 선진국에 또 다시 특허등록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서 한가한 틈을 내어 이상백 박사가 나에게 자신이 소개하고 싶다던 사람을 소개했다. 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로 재직 중인, 세계적인 뇌 과학자 조 장희(趙 長熙) 박사였다. 조 박사는 75년 미국 UCLA 교수로 재직할 당시 세계 최초로 독자적인 원형 PET를 개발해 세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당시 조 박사가 학회에 처음 발표 한 최초 원형 PET는 '조스 펫(Cho's PET)' 혹은 '조스 링(Cho's Ring)'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이 원형 PET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는 PET 개발에 이론적 실체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즉 조 박사는 PET는 물론 MRI 분야에서도 세계에서 손꼽을 수 있는 과학자라는 점이다.

여기서 PET는 MRI의 다음 세대인 양전자단층촬영장치((Positron Emission Tomograph, PET)를 말한다. PET는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의약품을 이용해 인체의 생화학적 상태를 3차원 영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기기다. 양전자란 전자와 물리적 특성이 유사하지만 양(+) 전하를 갖고 있는 입자로 18F, 11C, 13N, 15O 등의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온다.

아무튼 나는 곧 이 박사에게 그와 접촉해 우리 연구소로 끌어들일 것은 지시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고 부언까지 하면서. 한편으로 나는 이를 통해 다른 한 사람이 생각이 나, 그와 만나기 위해 바로 움직였다. ============================ 작품 후기 어제는 모처럼 친구들이 찾아와 술을 마시느라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술도 못 하는 놈이 얼마나 퍼마셨는지, 하루 종일 시체처럼 누워 지냈습니다.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 있고요. 아무튼 죄송하고요!

^^ 내일 부터는 하루 세 편씩 정상적으로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저도 47일 만에 3연참이 끊기니 매우 섭섭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편씩 정상적으로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