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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그룹-154화 (154/322)

< --그룹의 면모를 갖추다-- >

설이 끝나자 나는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사업 전반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그러자 가장 시급한 분야로 떠오른 것이 건설 분야였다. 전자 2공장은 완공이 되었고, 지금은 3공장, 4공장을 연이어 짓고 있지만, 폭주하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청주 아파트는 설계가 끝나 이제 본격적인 건설에 착수할 것이고, 지금의 압구정동 16만 평에 대한 1차 5,000세대 분에 대한 설계를 착수한 상태였다. 이렇게 건설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이 분야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유능한 인재의 확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직도 이 분야는 아는 인물이 별로 없어서인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대우개발의 홍성부 이사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졸라볼 속셈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현장 사무실에 있었던 듯 홍 이사가 전화를 받았다.

"새해 복받이 받으세요. 이사님!"

"아! 강 사장! 강 사장도 복 많이 받고."

"감사합니다. 이사님, 모처럼 술 한 잔 어떻습니까?"

"이거, 어떻게 하나? 모처럼 강 사장이 한 잔 하자는데.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요? 실망입니다. 이사님!"

"허허, 그것 참! 가만히 있어보자....... 내가 만나려는 놈도 노가다 과인데, 생각 있나? 나는 자네만 괜찮다면 같이 해도 상관없을 것 같네 만은?"

"저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만은."

"알겠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고. 오늘 만나자는 말만 하고, 아직 장소가 미정이야. 내 다시 장소 정해.........."

"잠깐만요. 이사님!"

"왜?"

"장소를 제가 정해도 괜찮겠습니까? 무교동에 새로 생긴 업소인데,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물도 좋습니다."

"하하하........! 강 사장이 추천하는 데라면 어련하겠는가. 그 집으로 하지. 구체적으로 어디야?"

"찾기도 쉽습니다. 무교빌딩 지하입니다."

"그래? 그럼, 7시에 그곳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지. 내가 친구 놈은 데리고 나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사님! 그럼, 이따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좋네. 이따 보세!"

"네, 이사님!"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천정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홍 이사를 끌어들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오후 7시.

모두 퇴근한 빈 사무실에서 나는 혼자 이런저런 사업구상을 하다가 6시가 되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이화정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15분 전 7시로 아무도 안 와 있었다. 명절 끝이라 그런지 내부에도 손님 한 팀 없었다. 이에 더욱 반색을 하고 맞는 이 마담이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명절은 잘 보내셨고요?"

"잘 못 보냈습니다."

"네?"

"마누라가 셋씩 되다보니, 볶이느라고 삼일이 한 달 같았습니다."

"정말 부인이 셋이세요?"

아차 싶었다. 괜히 수정이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 나는 얼른 농담으로 돌렸다.

"농담입니다. 농담. 나 같은 놈에게 누가 그렇게 여자들이 달라 들겠습니까?"

"뭔 말이세요. 수정이만 아니면 저도 대시하고 싶고만."

"참, 이 마담도 농담도 잘 하십니다."

"진심 이예요. 저!"

"압니다. 농담이라는 것. 괜히 저 놀리지 마시고, 오늘은 셋이니 자리 하나 미리 봐주세요."

"고맙습니다. 이러다 사장님 덕분에 먹고 사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벌써 손님 많다고 소문났던데요?"

"조금은 있습니다만, 많이는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 아이들한테 일러놓고 참........."

"사장님 파트너로는 지난번 그 아가씨 괜찮죠?"

"저야 그냥 치마만 둘렀으면 됩니다."

"죄송하지만 그 아가씨는 치마가 아니라 미니스커트랍니다."

"하하하........! 이무튼 여자면 다 됩니다."

"호호호.......! 알았어요. 다음에는 할머니로 하나 갖다놔 봐야지."

"그래도 저는 괜찮습니다."

"호호호.......! 알았어요."

웃음과 함께 이 마담이 대기실로 향했다. 잠시 후 이 마담이 대기실에서 나오는데, 입구 쪽의 문이 열리며 홍 이사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홍 이사 외에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어이, 강 사장! 먼저 와 있었고만."

손을 번쩍 치켜들어 아는 체를 하는 홍 이사였다.

"네, 아랫사람이 먼저 와 기다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허~!"

허파에 바람 빠지는 괴상한 소리를 낸 홍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거, 괴상한 논리네. 나는 사장이 이사보다 낮다는 소리는 오늘 처음 들어보았어!"

"하하하........! 그렇습니까? 마담 우리 몇 번 방?"

"아, 네! 말씀들을 너무 재미있게 하시니, 지켜보다가 실례를 범했네요."

"오늘은 3번방으로 드세요. 넓고 깨끗하답니다."

"알겠소."

말과 함께 스스로 앞장서서 안내하는 이 마담이었다.

"들어가세요."

불을 켜놓고 우리에게 들기를 청하는 이 마담이었다. 곧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홍 이사와 내가 문가에 나란히 앉고 낯모르는 두 사람이 안쪽으로 앉았다.

"네 분이시네요?"

"네. 네 사람으로 준비 좀 해주세요."

"네, 술은 뭐로 올릴까요?"

"전과 동!"

"단골인 모양이군."

"저도 이제 두 번째입니다."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모시고온 분들 소개나 시켜주세요."

"허허, 내 정신 좀 봐. 내 소개하지. 저 앞쪽 왼쪽에 앉은 사람이 나랑 서울대 건축과 동문인 벡텔의 이 상백 박사!"

"네? 벡텔 요?"

"그래. 왜 이렇게 놀라나? 벡텔 처음 들어보나?"

"그게 아니고요. 원체 유명한 세계적인 토목회사니 놀라워서 그러죠."

"토목회사라는 말은 옛날 말이야. 요즈음은 정유, 항공, 원자력 안 끼는 데가 없는 다국적 회사야."

"저도 압니다. 벡텔이 우리나라 원전까지 관여하고 있다는 걸."

"강 사장 말 잘했네. 이 앞에 앉은 사람이 우리나라 원전에 관여했던 바로 그 사람이야. 현대건설에 들어갔다가 인연이 되어 벡텔로 옮겼지. 이 정도면 친구 놈의 낯짝에 금칠은 잔뜩 했고, 옆 분은 나도 잘 모르니 자네가 소개 좀 하시게."

"그래. 이 사람은 일본 굴지의 건설회사인 시미즈(靑水)건설의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배 용석 박사네."

"그 분도 박사 세요?"

"그렇소."

"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우리 서울대 동문 후배지. 내가 모종의 일로 시미즈와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 그래서 명절이라고 일시 귀국한 걸 실례인줄 알면서도, 같이 청했으니 친구도 양해하시게."

"아니, 잘 왔어요. 아예 오늘 동문 모임을 갖지. 여기 옆의 강 사장도 서울대 공대 재학 중이야. 하하하.........! 그러고 대정 그룹이라고 건설, 전자, 무역 분야를 지금 한창 키우고 있지. 자네도 알 걸.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거, 뭐냐? 미니 카세트플레이어라고, 세계 최초로 그 제품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젊은 친구라고."

"그렇습니까? 대단합니다. 대단해! 어디 우리 후배 손 한 번 잡아봅시다."

이 상백 박사의 말에 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러고 엄연히 후배가 되니 이제부터는 편하게 말씀 놓으세요."

"그럴까?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일어선 길에 배 차장 아니 배 선배와도 인사 나누지 그래?"

"네!"

"배 용석입니다."

"강 대정입니다. 선배님도 편하게 말씀 놓으세요."

"그럽시다."

우리가 이렇게 요란한 인사를 끝내고나자 우리는 어느새 길게 늘어선 여자 일개 군단을 볼 수 있었다. 이 마담이 말했다.

"홍 양부터 차례로 인사드려요."

"미스 홍입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안 그래도 예쁘다."

"하하하........!"

홍 이사의 농담에 우습지도 않은데 웃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딴에는 고국의 여자들을 모처럼 만나니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미스 우 예요"

"미스 정 이예요."

"미스 김 이예요."

"정말 한결같이 예쁘네!"

홍 이사의 말에 두 사람이 긍정한다는 듯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홍 양은 강 사장님 옆에 앉고 나머지는 너 네들이 마음에 드는 분 찾아가봐."

그러자 우 양이 잽싸게 홍 이사 옆에 앉았고, 미스 정은 이 상백 씨 옆에, 미스 김은 배 용석 차장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잘 모셔!"

한 마디 한 이 마담이 나가려 하자, 내가 이 마담에게 말했다.

"영상반주기를 웨이터 시켜 이쪽으로 들이지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지난번에 가지고 온 것이 여기 그냥 있었고, 주문 받은 나머지는 아직 공장 라인이 꾸며지지 않아 생산을 못하고 있었다. 금형개발까지 끝나 업체 선정도 마친 상태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노래방 기기에서 선곡을 해 노래를 하게 되었는데, 모두 감탄을 했다. 또 한 번 단단히 PR을 한 셈이 되었다. 양주 다섯 병이 비워지자 술이 거나해진 이 상백 박사가 자신의 본심을 털어 놓았다.

"명절이라 연차를 내고 일시 귀국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다보니 이젠 돈보다도 고국이 그리워. 이제 웬만하면 그냥 국내에서 직장 잡아 생활하고 싶어. 안식구도 그걸 바라고."

"선배님 저도 동감입니다. 이제 일본에 머무는 것도 싫증이 나네요. 웬만치 보수만 맞으면 저도 국내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나는 내심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치우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갑자기 큰 절을 올렸다.

"두 분 선배님! 절 받으십시오."

"강 사장 이게 무슨 짓인가?"

이 박사가 소리를 질렀다.

"저희 회사로 모시고 싶어서 큰절부터 드렸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금번에 압구정동에다 15층 이상으로 1만 세대를 지으려 합니다. 그런데 아직 국내 기술로는 15층 이상을 대단위로 짓는 것이 곤란합니다. 해서 곳곳에 인재를 청하는 중입니다. 두 분 선배님이 저 좀 도와주십시오. 오늘도 아니면 홍 선배님한테 매달릴 참이었습니다."

"허허, 아주 잘 됐구만. 이 친구가 아직 젊지만 사업 수완이 보통이 아니야. 채 2년도 안 되어서 그룹의 모양새를 갖췄다니까."

"그래요? 대단한 친구인 모양이구만."

홍 이사의 말에 이 박사도 서서히 구미가 당기는지 긍정적인 말을 토해냈다.

"배 박사는 어찌 생각하나?"

이 상백 씨의 물음에 배 용석 씨가 답변을 했다.

"제 전공이 고층 전문 아닙니까? 구미가 당기는데요."

"강 사장 뭐 하고 있어? 얼른 다시 한 번 큰 절이라도 올리지 않고."

홍 이사의 말에 손을 저어 만류한 이 박사가 말했다.

"그 보다도 근무조건이 맞아야지. 괜히 너무 부담주지 말게."

"이 선배님 같은 경우 직급은 이사급으로 하고, 보수는 더는 못 드려도 벡텔에서 받던 것만큼은 드리겠습니다."

"배 박사는?"

나의 말에 이 상백 씨가 배 용석 씨의 조건을 물었다.

"직급은 부장으로 하고, 배 선배님도 일본에서 받던 것만큼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가?"

내 말에 이 박사가 배 차장의 의사를 물었다.

"선배님은 요?"

"나는 허락할 셈이네."

"저도 그 정도 조건이면 좋습니다. 하고 15층 이상의 아파트라면 제가 배운 기술을 한국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겠습니까?"

"잘들 생각했네. 내가 강 사장을 만난 지 꽤 되지만 사업 수완만 좋은 게 아니야. 사람도 정말 진국이야. 변함이 없어. 그러고 내 듣기로도 아직 회사는 작지만 국내 최고대우를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네. 해서 인재가 몰리고 있으니, 장차 그룹으로 성장하는 건, 일도 아닐 걸세."

홍 이사의 말에 이 상백 박사가 일침을 놓았다.

"그런 자네도 이 기회에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겠나?"

"아니라도......."

이 말이 나와 홍 이사의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

"하하하.........!"

한바탕 장내에 폭소가 터지는데 얼른 웃음을 마무리한 내가 말했다.

"선배님부터 말씀 하세요. 저는 아니라도 오늘도 선배님을 청하려 했다는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저런, 저런! 하하하.......!"

"내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김 회장에게 청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홍 이사가 말했다.

"나한테는 큰 절 안 해도 되네."

"선배님, 그게 아니고요. 이제 아이들 불러 풍악이라도 좀 울리려고요."

"하하하.......!"

우리가 사업이야기로 번지자 아가씨들이 화장실에 간다고, 그동안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내가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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