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면 돌파-- >
내가 세 부인을 이끌고 싸리문을 들어서니 포근한 날씨 덕에 마당에서 전을 부치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맞으셨다.
"어서 오너라!"
그러던 어머니가 수정의 모습을 보고는 멈칫했다. 잘 한 일도 아니라, 수정의 존재를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은 탓이었다.
"어머니! 셋째입니다."
나의 말에 눈을 하얗게 흘기는 수정이었다. 아들 철산이를 명희가 달래도 안 주고 꼴 끌어안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너는 어쩌자고 하는 사업이나 잘 하지. 뭔 놈의 여자들을........."
그 말에 표정이 확 바뀌는 수정이었다.
"손자입니다!"
"뭐?"
표정이 급변해 달려들 듯 수정이 앞에 접근한 어머니가 새삼 수정을 다시 아래위로 훑고, 포대기에 싸인 아기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아이는 텔레비 연속극에 나오는 애 아니야?"
"맞아요. 어머님! 황수정 어머님께 인사 올릴게요. 손자 이름은 철산이고요."
납신 절을 하던 수정이 아예 포대기 째 철산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겼다.
"그래? 아무튼 반갑다. 어디 보자! 우리 손주!"
품에 안고 연신 아이를 추켜올렸다 내렸다하니, 아이가 깨어나 울었다.
"으앙.........!"
"아이고, 안 되겠다. 모두 방으로 들어가자. 애기도 기저귀고 갈아주어야겠다. 아니지. 할머니 먼저 뵈러가자."
손자 소리에 정신이 없는지, 오늘 따라 유독 횡설수설 하시는 어머니셨다.
이 소동에 방이란 방의 방문이 모두 열리며 한 마디씩 쏟아냈다.
"왔냐?"
"오빠!"
"애들 온 겨?"
할머니가 열린 문 사이로 문지방을 딛고 일어서시다가,
'아이구!'
소리와 함께 옆구리를 짚고 다시 주저앉으셨다.
"조심하세요. 어머니!"
손자를 안은 채 얼른 뛰어가는 어머니셨다. 며느리들 또한 빠른 걸음으로 시어머니 뒤를 쫓았다.
"괜찮다."
할머니가 어머니의 걱정에 다시 주저앉으며 하시는 말씀이셨다.
"어머니 손자며느리들도 다 왔는데, 안방으로 가시죠?"
"그럴까?"
할머니가 또 문지방을 짚으시기에 내가 얼른 달려가 말했다.
"할머니, 업히세요."
"그래 모처럼 우리 손자 등에 한 번 업혀보자."
"그러나저러나 어머니, 이제 소원 푸셨어요!"
"뭔 말이냐?"
엉거주춤 일어서시던 할머니가 물으셨다.
"증손자 보셨다고요."
"뭐? 귀가 어두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여기 있잖아요. 증손자."
기어이 할머니 앞에 포대기 째 들이대는 어머니셨다. 고부간의 말씀에 나만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되었다.
"아니, 갑자기 웬 증손?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게야? 아니지. 누가 애 가졌다는 소리도 없이, 벌써 낳았어?"
"그게 아니고요. 글쎄 대정이 놈이 손주며느리를 또 하나 봤다네요. 그것도 아주 유명한 배우를."
"거 놈, 재주도 좋다. 그러다 우리 집에 아예 잠자리도 모자라는 거 아니야?"
"지금도 모자라는데요. 뭐."
"하긴 그렇다마는. 너는 뭐 하고 있어. 얼른 업지 않고. 증손은 안방에 가서 제대로 한 번 보자."
"네, 할머니!"
나는 냉큼 할머니를 업고 안방으로 향했다. 그 뒤를 며느리는 물론 손부, 여기에 방에서 뛰쳐나온 동생들까지 대 부대가 뒤를 따랐다. 다만 아버지만이 대청마루에서 우리를 맞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는 수정이만을 유심히 살피고 계셨다.
내가 할머니를 업어다 아랫목에 내려놓자 모두 방으로 들어섰는데, 입추의 여지가 없어 동생들은 윗방으로 올라가 서로 보려고 다투고 있었다.
"어디 보자!"
어머니가 철산이를 할머니 앞에 내려놓고 기저귀를 갈며, 자연스럽게 녀석의 고추를 확인하셨다. 이때 재치 있게 수정이 기저귀를 갖다 대령했다.
"보셨어요? 어머니!"
"그래, 그래! 그런데 누굴 닮아 이렇게 불알이 커?"
할머니의 말씀에 세 며느리들의 귀가 빨개지고, 어머니는 무엇이 좋은지 녀석의 사타구니를 연신 쓰다듬고 계셨다. 이를 한 옆에서 우두커니 내려다보시던 아버지는 연신 헛기침만 하셨다.
"우와, 우리 다정이 많이 컸다!"
그래도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간다고 눈치가 있는 바로 밑의 여동생 경자가, 미정이 무안하지 않게 다정이를 챙겼다.
"싫어, 싫어!"
분위기를 모르는 다정이 경자가 안으려 하자 손으로 떠밀며 거부를 했다. 이에 아버지가 비로소 뭔가 눈치를 채셨는지, 다정이를 번쩍 안아들고 말씀하셨다.
"우리 다정이 엄청 많이 예뻐졌네. 키도 한 뺨이나 자라고."
몇 번 봤다고 할아버지는 거부하지 않는 다정이였다.
"다정아, 이 할애비에게 뽀뽀 한 번 하렴?"
"싫어, 싫어! 따거워!"
"허허.........! 이 놈 봐라. 그래야 이 할애비가 용돈도 주고, 다정이 설빔도 주지."
"그래도 싫어. 나 내려줘. 엄마하고 놀거야."
"그놈 참!"
마지못해 내려놓으니 다정이는 아장아장 걸어 제 엄마한테 갔다.
"왜? 할아버지가 우리 다정이 엄청 예뻐하시는데?"
"그래도 싫어. 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
"야, 강 다정! 이 아빠는?"
"아빠도 좋아! 따갑게만 안 하면."
"하하하........!"
"호호호........!"
다정의 말에 집안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그놈, 씨내릴 것 다 닳겠다. 그만 만지고, 먹을 것, 뭣 좀 내오지?"
"어머, 내 정신 좀 봐! 두부 전 부치던 것 다 타겠다!"
"하하하.........!"
"호호호.........!"
뛰어나가시는 어머니를 보고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리는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머니, 같이 해요."
명희가 소리 지르며 뛰어나가자, 우르르 뒤를 쫓는 며느리들이었다.
"그래, 우리 착한 명희구나! 아니지, 이제 우리 며느리지. 잘 지냈고?"
"네, 어머니!"
"너도 어서 얘 하나 낳아야지?"
"저 올해 대학교 들어갔어요, 어머니!"
"뭐? 그 나이에 뭔 대학을? 얘나 낳아 잘 키우면 되지."
"오빠가 자꾸 권해서요. 자기한테 뒤떨어지면 안 된다나, 뭐라나."
"저 놈의 자식은 오나가나 욕심만 많아가지고?"
"아이고, 정말 새까맣게 다 탔네."
"다 닦아내고 다시 부치지요, 뭐?"
"그래, 그래. 그러자꾸나."
이때 미정과 수정이 멋쩍게 서있자 어머니가 소리 지르셨다.
"너희들은 어서 들어가 얘들이나 잘 돌봐라. 여기는 명희하고 둘만 있어도 된다."
"그래도........."
미정의 말에 어머니가 손까지 저으며 말리셨다.
"벌써 다 부쳤다. 먹을 전 몇 조각만 부치고 나도 끝낼 거야. 어서 들어가 있어. 추운데 괜히 나와 있지 말고."
둘이 서로 눈치를 보던 수정과 미정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안방으로 향했다.
"다정이 엄마!"
"네, 어머님!"
"이거나 가지고 들어가라. 먼저 부쳐놓은 전인데, 대정이하고 다 먹게. 그리고 부엌에 가면 막걸리 받아다 놓은 것도 있다. 그놈도 좀 같이 들고 가고."
"네, 어머님!"
"너는 뭐시냐? 손자 이름이 뭐라고?"
"네, 어머님! 철산이라고, 강 철산이라고 그 이가 지었어요.
""나는 잘 모르겠다만은 이름이 너무 무겁지 않니?"
"저도 잘 몰라요. 그이가 좋다고 지었으니, 그런지 알지."
"그러고 참말로, 연속극에 나오는 그 뭐 시기냐? 황수정이 맞지?"
"네, 어머님!"
"참, 대정이 놈은 재주도 좋다. 어떻게 너 같은 미인을 다 꼬셨을 꼬?"
"저만 예쁜가요? 두 며느리들도 얼마나 예뻐요?"
"하긴 어디가도 인물 하나는 빠질 인물들이 아니지. 심성들도 다 착하고."
"그러고 보면 어머님이 복이 많으신가 봐요. 꽃 같은 며느리들을 셋씩이나 보시고."
"하긴, 그렇게 보면 그렇기도 하다. 어서 너도 들어가. 아니 저 부엌에 가서 같이 좀 들고 들어가던지."
"네, 어머님!"
방안에는 곧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안주라야 부침개와 두부 전과 동그랑땡 등 주로 기름으로 둘러낸 것들이지만 서도. 이때 마당에서는 고부간의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명희야!"
"네, 어머니!"
"자꾸 명희라 불러 안 됐다 만은........."
"괜찮아요, 어머니! 제 이름이 원래 명희잖아요."
"호호호.........! 그래. 요것만 부치고 친정에 한 번 가봐야지?"
"아니 예요. 어머니. 출가외인이라 하지 않아요. 저 내일 제사 다 모시고, 그때나 찾아 뵈오려고요."
"이렇게 심성 곱고 인물이 예쁘니, 네 시아버지가 일찌감치 며느리로 점찍었지."
시어머니의 말에 다소 얼굴을 붉히며 괜히 솥뚜껑에다 들기름만 더 들이붓다가 기어코 한마디 듣는 명희였다.
"얘야, 그만 붜라. 이제 다 구웠다."
"네, 어머님!"
"참, 어머니!"
"왜?"
"제가 드릴게 있는데요."
"뭔데?"
"용돈요."
"뭐?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사실은 요. 오빠가......."
"또? 오빠가 뭐니 오빠가. 그렇게 살았으면 다르게 불러야지."
"죄송해요. 어머니! 습관이 돼서 잘 안 고쳐지네요."
"그래도 고쳐야지."
"네, 어머니! 사실은 그 이가 어머니 드리라고 우리한테 각자 나누어 준 거예요."
"그놈이 아주 곰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여우네, 여우야!"
"어머니 여기 있어요."
"그래, 사양 않고 받으마. 잘 쓸게."
"고마워요. 어머니!"
"어찌 주는 네가 고마우냐? 내가 고마워해야지."
"저를 며느리로 받아주셔서."
"호호호.......! 살다 살다, 별 소릴 다 듣겠네. 세상에 너 만한 며느리가 흔한 줄 아니? 나는 속으로 네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표시나 게 굴 수도 없고."
"어머니, 이잉잉.........."
"얘가 왜 갑자기 울고 그래."
"너무 고마우니까 그렇지요."
"호호호.........! 아예 네 활개를 치고 울어라!"
"호호호.........! 그건, 싫어요."
"아이고, 요 예쁜 것!"
"헤헤헤.........!"
기름 묻은 손으로 기어코 코에다 기름칠을 해도 헤헤거리는 명희였다.
한편 안방. 술판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아버지가 할머니보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왜?"
'오늘은 안방에서 저와 함께 주무셔야겠어요. 사랑방에는 얘들 자라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자."
"모처럼 어머니 찌찌도 만져보고 그러려니, 쉽게 잠이 안 오겠네요."
"다 찌그러진 쭈글쭈글한 젖 만져서 뭐 하게."
"그래도 저는 좋더라고요. 옛날 생각도 나고요."
"호호호........! 그럼, 오늘 만 내 허락 하마."
"어머니 혹시 회춘하셔서, 젖 나오고 그러는 건 아니시죠?"
"데끼 놈........! 이 어미를 아주 가지고 놀아라."
"하하하........!"
그날 밤이었다.
할머니가 안방에서 주무시고, 우리는 사랑방에서 모두 자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를 대우는 한다고는 하며, 제일 아랫목에 재우는 것이 아닌가. 내 옆에는 명희가 눕고, 그 위로는 미정, 수정 순으로 누워 잠을 청하게 되었다.
"오빠! 아니지. 오늘 어머니한테 오빠라고 불렀다가. 되게 깨졌다? 그러니까, 여보라고 불러야지. 여보!"
"왜?"
"나, 언니들이 부럽다."
"왜?"
"나도 얘기 하나 갖고 싶다. 응?"
"학교는 어떻게 하고?"
"휴학계 내지 뭐."
"여기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이 또 하나 있네."
"미정이 언니도 그랬어?"
그러며 돌아보기까지 하는 명희였다. 이에 얼굴을 붉히며 못들은 척하는 미정이었다.
"우리 단체로 임신하면 안 될까?"
"지랄, 무슨 임신공장 차릴 일 있냐?"
"안 돼. 나 애기 갖고 싶어. 오늘 보니 나만 아기가 없으니까. 찬밥이던데, 뭐."
"시어머니는 엄청 예뻐하시던 것 같던데?"
"그래도. 손자라도 하나 낳으면 더 예뻐하시겠지, 뭐."
"차차 생각해보자."
"안 돼. 지금 당장 만들어."
"뭐?"
가끔 뜬금없는 명희의 대담성에 종종 놀라곤 하는 나였다.
"정말? 후회 없기?"
"그럼!"
"먼저 벗어!"
"좋아!"
정말로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하는 명희였다.
"명희야, 오빠 사정 좀 봐줘라. 우리 둘만 좋으면 뭘 하냐, 언니들 잠 못 자는 것은 어쩔 건데?"
"언니들이야, 아이라도 하나씩 있으니 나보다는 절박하지 않을 것 아니야. 그러니 오늘은 언니들이 양보하기."
"아이고, 두야!"
머리를 감싸 쥐는 나였다. 다음 날.
나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다녀온 다음에 명희와 함께 명희네 집을 찾았다. 여기서도 똑 같이 50만원을 드리고, 수정의 건에 대해 사과를 드렸다. 너무 잘난 사위 얻어 그렇다며 양해를 하시는 명희 부모님들이셨다. 이렇게 고향에서의 명절도 끝나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미리 설 분위기를 내 보았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읽어주시고, 선작, 멘트, 추천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더 더군다나 크던 작던 흔쾌히 쿠폰을 던져주신 님들께도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
"대단히,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