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51화 (151/322)

< --정면 돌파-- >

1월 하순이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는 몇 가지 경사가 있었다. 첫째는 미정과 명희가 대학교에 합격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미정은 이화여대 불문과에 합격을 했고, 명희는 청주대 중어중문학과에 합격을 하였다. 두 번째로는 수정이 방송3사의 광고를 타자 그에게 TV연속극 출연 제의가 들어와, 전격적으로 주연에 캐스팅된 사실이었다. '청실홍실'이라는 TBC 연속극이었다.50년대 라디오로 히트했던 것을 TV연속극으로 재구성으로 한 작품으로, 건축기사를 사이에 두고 전쟁미망인과 전후 세대 소녀가 벌이는 전형적인 삼각관계 멜로물에서, 전후소녀로 캐스팅되어 20회 분량에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로는 우리의 광고가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TV방송을 타자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월 주문 물량만 물경 30만 대에 가까운 폭주를

보여, 미처 생산 라인에서 생산을 못해, 소비자들은 주문을 해놓고 기다려야하는 실정이 되었다. 그래도 내 마음에는 미진한 것이 있어서 나는 모처럼 한국일보 장강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남의 장소로는 수정의 마담 언니(?)가 경영하는 룸싸롱 '이화정'이었다. 저녁 7시에 만나기로 했기에 나는 20분 전 7시에 이곳에 도착했다. 퇴근시간 무렵이라 차가 막힐 것 같아 미리 나섰더니, 오늘따라 차가 별로 막히지 않아 일찍 도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는지 이런 업종에서는 초저녁이라 할 수 있는 이 시간에도 몇 곳의 룸에서 벌써부터 외부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젊은 웨이터에게 마담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잠시 후 이(李) 마담이 나타났다. 나의 등장에 이(李) 마담이 아주 반갑게 나를 맞았다.

"수정이로부터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사가 잘 되는 가 봐요. 벌써부터 룸이 다 찬 것 같습니다."

"웬걸요. 8개의 룸 중에서 절반만 찼어요."

"초저녁에 이 정도 되면 되지 얼마나 더 잘되시기를 바라십니까? 욕심쟁이 인가 봅니다."

"설마 사장님만 하겠어요. 전자공장도 잘 나가고 곳곳에 대규모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라고, 그년의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어머, 실례! 남의 '어 부인'을 보고, 이년 저년 하다니. 호호호.........!"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몰라도 웃음 끝에 짓는 눈웃음이 상당히 유혹적이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물었다.

"음악은 악단이 연주하는 것인가요?"

"그렇지요, 뭐. 다른 수단이 있나요? 4인조, 어느 곳은 그냥 전자 올겐 하나로 때우기도 하고요."

"오늘 내 귀빈을 모셨는데, 4인조 악단이 되겠습니까?"

"어머, 이를 어째! 미리 예약을 하시던지. 2개 팀이 있는데 벌써 룸에 다 들어가서 기다리시던지 아니면 전자 올겐만으로 그냥.........."

"그것 참, 곤란하네."

이때 내 머리에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개발을 해놓고도 미처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해 샘플용에 머물고 있는 무인영상 반주기였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의 노래방기기였다. 다만 오늘날과 틀린 것은 디지털화가 되지 않아, 아날로그 방식으로 일일이 사람 손으로 기기를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참에 실제로 시연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나였다. 생각이 일자 나는 곧 행동에 옮겼다.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네, 얼마든지."

나는 연구동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만에야 여 선배가 받았다.

"접니다."

"무슨 일이야, 이 밤중에."

"완성된 영상반주기 좀 제가 보내달라는 곳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일본판, 한국판?"

"일본 것도 완성이 되었습니까?"

"어떻게 된 게 맨날 뒷북이야? 열흘 전에 됐다고, 보고 하지 않았어?"

"기억에 없는 데요."

"내가 보고를 안 했나?"

"하하하.........! 선배님 제발 생사람 좀 잡지 마세요."

"그런가? 어디로?"

"이화정이라고 무교동의 무교빌딩 지하입니다."

"그런데 라면 가끔 나도 데리고 가지........."

"다음에는 꼭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오케이! 한국판으로?"

"네!"

"접수했음!"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데, 장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벌써 왔어? 오늘은 빠른데?"

"언제는 제가 사장님보다 늦게 온 적 있습니까? 벌써 30분 전에 왔습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이 마담한테 물어보세요?"

"그렇습니까?"

"네, 호호호........! 1시간 전에 오셨습니다."

"금방 들통 날 일을........."

"하하하.........! 사실 차가 안 막혀서 20분 전에 왔습니다."

"일찍 오긴 왔군. 룸 있습니까? 우리 강 기자가 신종으로 생긴멋진 곳 하나 소개한다고 해서 오긴 왔는데......?"

"이를 어쩌죠? 룸이야 당연히 있지만 4인조 밴드가 없으니......."

"제가 4인조 밴드 특별히 불러놨으니, 룸이나 하나 주세요."

"정말이세요?"

"4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대신 제가 아가씨들은 퀸카들로만 들일게요."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누굴 들여도 이 마담만은 못하겠는데요?"

"설마요?"

장 사장의의 농담에 곱게 눈을 흘기며 미소로 받는 이 마담이었다.

"이 쪽으로 오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앞장을 서서 우리를 7번 룸으로 안내하는 이 마담이었다.

'요새는 어느 곳을 가나 7자로 노네!'

스치는 단상을 끝내고 나는 이 마담이 스위치를 넣은 방으로 들어갔다. 6인용의 아담한 방이었는데 이미 모두 세팅이 되어있었다.

"술은 뭐로 올릴까요?"

"씨버스리갈로 주세요."

"네, 사장님!"

마담이 곧 물러가고 우리 둘은 마주보고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내가 쫄다구이니 문을 등지고 앉았다. 곧 웨이터가 양주와 함께 물수건을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팁으로 미리 준비한 5천 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곧 아가씨들 들이겠습니다."

웨이터가 물러가자 곧 마담이 두 명의 잘 빠진 아가씨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인사들 드려라. 최고의 VVIP 손님들이시니, 절대로 실례되는 점이 없도록 하고."

"네, 언니! 인사드리겠습니다. 미스 홍입니다."

"저는 미스 차 예요!"

"미스 차가 강 사장님 옆에 안고, 홍 양은 저 중후한 사장님 옆으로 앉아라. 혹시 한국일보 사장님?"

교통정리까지 마친 이 마담이 이제야 장 사장을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그야, 실례된 말씀이지만 문희 양의 어머! 계속 실수를. 부군으로 몇 번을 TV화면에서 봤죠."

"알아봐주시니 영광입니다. 자꾸 이러면 나도 이곳을 단골로 삼아야 되는데........."

"그러면 저야 좋죠. 많이 모시고 오세요. 그러면 사장님만은 특별히 저렴하게 모시겠습니다."

"하, 이거! 상술이 보통이 아니네요."

"호호호........! 이만 말씀들 나누시고, 퇴물은 이만 여기서 물러가렵니다."

"이 마담이 퇴물이면 여기 퇴물 아닌 사람이 없겠소이다. 그러지 말고 첫 잔은 이 마담께서 한 잔씩 따라주고 나가시죠."

"그래도 될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런 영광을 주시다니........"

나이는 이제 24~5세로 보이는데 수완은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곧 이 마담이 장 사장과 내 잔에 술을 따랐다. 따르자마자 급히 스트레이트로 한 잔을 비운 장 사장이 바로 자신의 잔을 이 마담에게 권하며 말했다.

"제 잔 한 잔 받고 나가시죠."

"술은 잘 못하는데.......... 사장님 체면을 봐서 안 받을 수도 없고, 조금만 주세요."

장 사장이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정말 약하답니다. 금방 얼굴도 달아오르고. 그만 따르세요. 저 장사 못합니다."

"하하하........! 정말 못하기는 못하는 모양인데.......?"

돌아서서 아미를 찡그리며 간신히 반 잔을 비운 이 마담이 다시 장 사장에게 술을 한 잔 따라드렸다. 비로소 파인애플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이 마담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즐겁게 노세요. 정말 이 퇴물은 물러갑니다."

그러고는 정숙하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문을 꼭 닫아주는 이 마담이었다.

"자, 차 양도 한 잔 받아라!"

내가 술잔을 비운 후 내 파트너에게 술잔을 넘기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너도 한 잔 받아!"

장 사장도 자신의 파트너에게 급히 한 잔을 마시고 권했다.

이렇게 술을 몇 잔 마시고는 내가 아가씨들에게 말했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줘.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네, 사장님!"

"뭐 심각한 이야기인가? 아가씨들을 다 물리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들어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아서."

"뭔가, 말 해보시게."

아가씨들이 모두 방을 나갔으므로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희 대정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미니 카세트플레이어를 개발해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 내놓은 것은 아시죠?"

"계속 해보시게."

"어째 모르시는 것 같은데? 요새 통 TV도 안 보십니까?"

"내가 TV볼새가 어디 있는가? 술 먹기 바쁜 사람한테."

"하하하........! 여전하십니다. 그런데 이 세계 최초의 제품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언론이 한 군데도 제대로 다뤄주는 데가 없어요. 영 서운한 일이죠. 심지어 제 밑의 외국지사장들에게까지 특명을 내려 언론에 어필하라고 했는데도, 성과가 미미합니다."

"그럼, 한국일보에서 한 번 크게 취급해달라는 이야기인가?"

"그것도 있고요. 아무래도 해외특파원이 현지 언론에는 밝지 않겠습니까? 해서 그들의 협조를 얻었으면 해서요. 요즈음도 주미, 주일 특파원 밖에 없습니까?"

"그 부분에서는 자네가 깜깜이 이군. 주 영, 주 파리 특파원도 있다네."

"그렇습니까? 거 잘 됐네요. 사장님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내가 갑자기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하하하........! 어쩐지 내가 술 산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좋아! 우리 강 기자의 청인데, 내 그 정도도 못 들어주겠나. 내 특명으로 지시를 할 테니, 자주나 만나세. 기사도 좀 쓰고."

"고맙습니다. 사장님! 명에 따르겠습니다."

"하하하........! 언제 만나도 우리는 죽이 맞아. 아주 유쾌하고. 할 이야기 다 했지?"

"네, 사장님! 제가 나가서 아가씨들 들일 게요."

이때 내가 무언으로 가운데 다리를 잡고 엉거주춤 서서 말했으므로, 장 사장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래, 그럼."

나는 사실 오줌이 마렵다기보다도 마담이나 웨이터에게 노래방기기가 도착하면 내 방에 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이때 마침 이 마담이 카운터에 있었으므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아가씨들도 다시 들이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아가씨들과 어울려 음담패설도 주고받고 가슴이며 밑도 만지는 등 짓궂게 놀고 있는데, 마담이 문을 두드려 노래방 기기의 도착을 알렸다. 나는 곧 이를 전원에 연결하고, 우선 책자에서 노래를 찾아 입력했다. 그리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서양의 아가씨들이 화면에 등장하는데, 젖통이 꼭 목장의 젖소만한 여자들이 나와서 스트립쇼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래는 영 후져서(?) 남 인수가 부른 '삼팔선의 봄'이라는 노래였다. 장 사장과는 이런 자리가 꽤 여러 번이라 나는 그의 노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새 유행하는 포크송이 아니라, 흘러간 노래를 선곡한 것이다.

"우와~! 저게 뭐야! 웬 기계에서 반주가 흘러나오고 저 영상은 또 뭔가? 가라오케를 본 뜬 것인가?"

"네,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입니다. 코인 형태가 아니고, 시간만 누르면 그 시간 동안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죠. 그리고 우리나라 곡, 2,000곡이 있어 웬만한 노래는 다 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뒷전이 되었다. 아가씨들도 화면을 쳐다보느라고 할 말을 잃었다.

"흐흠.........! 이런 업소에서는 꽤 유용하겠는데?"

"사실, 이쪽 시장을 겨냥해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죠."

"하여튼 재주는 많은 사람이야. 이제 만들다, 만들다 별 걸 다 만드는 군."

"어떻습니까? 사장님이 보시기에도 괜찮죠?"

"정말 쓸 만해. 제대로만 알려진다면 수요가 급증하겠어."

"아가씨들 생각은 어때?"

"저희들 생각도 동일해요. 그런데 저 아가씨들 때문에 우리의 위치가 불안해지는 것 아닌가요?"

"아니,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할 걸? 나중에는 노래방 도우미라는 신종 업종이 생길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때 이 마담도 이상한 기계가 들어오자 호기심에 들어와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여자의 행태 때문에 한 번 놀라고, 기계가 반주를 토해내니 놀란 것이다.

"어마, 이런 기계가 우리 가게에 있다면, 전자 올겐보다 훨씬 낫겠다."

"하나 들여 놓으시겠습니까?"

"이것 진짜로 파는 거예요?"

"샘플로 만든 것인데, 머지않아 양산이 될 겁니다."

"제가 1번입니다. 방마다 하나씩 8개 주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제일 먼저 뽑아드리도록 하죠."

"목적은 바로 이거였구만. 안 그래? 강 기자?"

"하하하.........! 겸사 겸사입니다."

"하여튼 난 사람은 난 사람이군!"

이렇게 해서 나는 오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비록 술값으로 선 투자를 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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