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49화 (149/322)

< --정면 돌파-- >

이때 아주머니가 국수를 삶아왔으므로 나는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러고 주위를 둘러보니 장모님도 거실에 안보였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장모님은 다른 방으로 가셨는지, 미정과 다정이만 보였다.

다정이를 재우고 있던 미정이 내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살며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오시냐는 뜻인지, 할 말이 없어서 인지 다소곳이 서 있기만 했다. 다 차려진 밥상이었다. 밥만 뜨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도 해결 못 해서야 남자라 할 수 있겠는가. 미정이 어찌 됐든 집안으로 들어온 이상은 내가 잘 달래야 했다.

"잘 왔다, 잘 왔어!"

나는 스스럼없이 다가가 미정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여보, 미안해요."

"뭔 말이야. 내가 잘못했지."

"많이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갑자기 나를 꼭 끌어안는 미정이었다.

"나도 많이........"

"여보.......!"

미정이 말없이 더 세차게 끌어안았다. 나또한 미정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리고 떼어내 그녀와 키스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아빠!"

"엉? 우리 다정이 안자고 있었어?"

나는 얼른 미정을 떼어내고 다정이를 일으켜 안았다.

"아빠,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져."

"얼마나?"

"이 만큼........"

팔을 벌리려다 내 턱을 치고 마는 다정이였다.

"하하하..........!"

나는 웃음 끝에 다정이의 볼에 뽀뽀를 했다.

"아, 따가워!"

그 동안 제대로 면도도 안 한 모양이었다. 나는 얼굴을 떼어내고 다정이에게 물었다.

"외할머니하고 잘까?"

"싫어, 싫어. 엄마하고 잘 거야."

"내가 데려다 주고 올 게요."

"알았어."

나는 다정이를 미정에게 넘겼다. 가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다정이를 어르고 달래, 기어코 장모에게 갖다 주고 오는 미정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무릎을 척 꿇는 미정이었다.

"무슨 짓이야?"

"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하세요! 이번에 당신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뭐야, 이거! 그러면 더 더욱 내가 할 말이 없잖아."

"나 계속 사랑해줄 거죠, 여보?"

"물, 물론이지. 이리 와봐. 당장 사랑해 주게."

"쳇.......!"

살짝 삐친 양 하며 비로소 일어서는 미정이었다.

나는 그런 미정을 끌어안고 침대로 쓰러졌다. 그 다음부터 우리는 그 어느 날 밤보다도 열정적이고 뜨거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나는 하루 빨리 여자 문제에서 벗어나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전 간부들의 조회가 끝나자, 건설 부분의 과장급 이상 세 명만 별도로 회의실에 남도록 했다.

"지난번 내가 천명한 대로 이제 우리는 아파트 건축 시대를 열 것입니다. 그 첫 작품으로 청주에 작은 물량이나마 시작하려고 합니다. 나는 이것을 모두 바쁘고 하니, 일단은 외주처리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짓는 아파트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시간 날 때마다 들락거리며 현장도 체크할 겸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일단 말을 끊고 한 호흡 쉰 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그 대지를 한 번 보러 갑시다. 추 부장의 차로 함께 움직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정확히 10시 50분에 만납시다. 아시겠지요?"

"네, 사장님!"

"바로 현장으로 가셔서 현장 조회 끝나고, 출발하시는 것으로 합시다."

"네, 사장님!"

나는 세 사람을 내보내고 내 자리로 돌아와 김수근 건축설계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직 출근 전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전화를 끊고 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정이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네, 여보!"

"어머니 좀 바꿔줘 봐."

"나한테도 할 말이 있잖아요."

"알았어. 사랑해!"

"쳇, 옆구리 찔러 절 받기지만 그래도 들으니까, 기분은 좋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알았어."

잠시 후.

장모님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접니다. 장모님!"

"응, 강 서방!"

"지금 당장 장인어른한테 전화 거셔서, 11시에 국보제약 회사 정문 도로 앞에서 만나자고 전해주세요."

"그럼, 사위 말대로 이행이 되는 건가?"

"네, 장모님! 오늘 제가 사놓은 땅을 보려고 장인어른을 뫼시는 겁니다."

"그래? 아주 잘 됐네! 역시 우리 멋쟁이 사위야! 그런데, 사위!"

"네, 장모님. 어려워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나도 청주 내려가 구경하면 안 될까? 수정이 아빠가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럼, 그렇게 하세요. 저도 오늘 청주에 내려가야 하니, 제가 8시 50분에 들르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준비하고 계세요."

"고맙네, 사위!"

"별 말씀을 요."

"그럼, 끊네."

"네, 네!"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다시 김수근 설계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으나,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 결국 내가 사무실을 떠나기 직전인 8시 40분이 되어서야, 통화가 되었다. 나는 김 소장에게도 청주 사직동 국보제약 앞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바로 출발을 해, 수정이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정확히 10분 전 9시였다. 내가 벨을 누르자 준비를 끝낸 장모님은 물론 수정이까지 아기를 안고 따라나섰다.

"당신은 왜?"

"집에 혼자 남아 있으면 심심하잖아. 당신이 사놓았다는 땅도 보고 싶고, 아빠도 이번 기회에 만나보게. 왜 내가 가면 안 돼?"

"아니야. 얼른 차에 타기나 타. 시간 없어."

"고마워, 여보!"

쪽!

갑자기 내 볼에 입을 맞추는 수정이었다.

"이것아, 아무리 좋기로서니 가려서 해. 어른이 보거나 말거나 아무데서나 쪽쪽거리지 말고."

"호호호.........! 엄마, 미안! 질투하시는 건 아니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타기나 타, 이것아!"

"그래요, 엄마!"

수정이 조수석에 타고 아기는 뒷좌석에 탄 엄마에게 넘겼다. 참 편하게 사는 수정이었다. 나는 한마디 할까 하다가 그냥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내가 조금 빠르게 차를 몰아 정확히 10시 45분에 시외버스터미널 정문 앞에 차를 대었다. 그들은 벌써 와 있었다. 1톤 트럭에 세 명이 타고, 세 명의 눈동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접근해, 내 차 뒤를 따르도록 하고, 채 100m 밖에 안 되는 신호등에서 좌회전을 했다. 또 그곳에 채 100m도 안 되는 곳에 국보제약이라는 제약회사가 있었다. 쥐약이나 만드는 곳이지만. 그곳에는 나의 예상대로 이제 장인이 된 황국태 씨와 김 소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전부터 아는 사이인지 길거리에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내가 내려서 인사를 하고, 내 뒤를 쫓아오도록 했다. 그곳에서 채 500m도 안 되는 곳에 있는 현장에 일행 모두가 도착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일제히 차에서 내렸다. 일행을 한 번 둘러본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저 야산 밑을 기점으로, 거의 네모반듯한 이 부근 전체의 논과 밭 2만 평이, 금번에 아파트를 지을 곳입니다."

"상당히 넓은데 꽤 많이 짓겠어."

장인의 싱글벙글에 내가 초를 쳤다.

"이것을 한꺼번에 다 지으면 분양이 안 될 것 같아요. 청주에서는 최초의 아파트인데, 아파트 인식도 아직 덜 홍보가 됐고, 그러니........."

일행의 표정을 한 번 살핀 나의 말이 이어졌다.

"제 생각으로는 10층 정도로 해서, 한 동에 3통로 즉 60세대씩 해서, 3동 즉 180세대만 일단 짓고 싶어요. 그래서 반응이 좋으면 추가적으로 계속 지으면 됩니다."

"또 아직은 서민보다는 돈이 있는 사람 위주로 42평형을 120세대 정도 짓고, 나머지는 52평, 60평형으로 대학교수, 의사 등 상류층을 겨냥한 분양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제 생각에 대한 의견들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내 생각도 사위의 생각과 동일하네. 우선 부자들을 겨냥한 아파트 건립이 돼야 돼. 서민들 용은 좀 더 인식이 보편화 된 다음에 보급하기로 하고."

영진건설의 황 사장이 내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나 김 소장은 조금 의견을 달리했다.

"내 생각은 그보다는 평형을 한 단계 낮추는 게 좋을 것 같네. 32평 위주로 짓고, 42, 52평 형 정도로. 그러면 아무래도 수요자가 더 많을 듯싶어."

"일리가 있습니다. 장인어른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김 소장의 말이 나은 것 같아."

"그럼, 그렇게 결정하기로 하고, 소장님은 설계를 부탁드립니다. 하고 장인어른은 우선 모델하우스 한 채를 꾸미도록 하세요. 모델 하우스야 남의 눈길이 많이 닿는 곳이 좋겠죠. 그 전에 장인어른께서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이는 대정건설이 발주자고, 영진은 이의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진행이 될 겁니다. 하고 공사 추진단계에서도 철저히 감리의 말에 순종해야 된다는 각서 한 장 정도는 써주셔야 되겠습니다."

"이 사람 걱정이 참 많고 만. 내 그리 하도록 하지. 허허......! 그러고 보니 어느새 우리 사이가 역전되어 버렸네 그려. 올 중순만 해도 내가 하청을 주었는데 말이야."

나는 그의 말에 그냥 멋쩍게 웃는 것으로 답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10층 정도의 건물은 지어보셨나요?"

본말이 전도된 물음이었지만, 나는 노파심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국동 그 새끼한테 받아 더한 15층 20층짜리도 몇 동 짓다가, 다 중간정산하고 줘버렸지."

죽어도 빼앗겼다 소리는 안 하는 황국태 씨였다. 나는 내심 웃음이 나왔지만 참고, 대정건설의 간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들으셨겠지만 앞으로 이곳이 아파트를 지을 현장이니 수시로 드나들며 여기 계신 황 사장님께 많이 배우시기 바랍니다."

"네, 사장님!"

어떻게 황 사장이 보는 앞에서 감시하라는 말을 하겠는가. 사전에 내가 한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만 말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사람들이었다.

"하고, 김 소장님은 공장 뒤의 16만 평의 부지 보셨죠. 그곳에 순차적으로 15층 이상, 1만 세대를 지을 예정이니 우선 가설계를 해서 저와 의논 좀 하시죠."

"뭐라고.........?"

나의 말에 황 사장 아니 이제 장인이 된 황국태 씨가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린 채 닫지를 못하고 있었다.

"알겠네. 이거, 내 횡재한 기분이군!"

"그 대신 이 현장에는 감리를 깐깐한 사람 내려 보네세요. 우리가 짓는 최초의 아파트인데 명품아파트 소리를 들어야죠."

"흐흐흐.........! 알겠네."

나의 이 말에도 장인은 그 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어서, 다른 말을 꺼냈다.

"나한테도 몇 천 세대 물량을 줄 수는 없나?"

"장인어른, 이곳부터 생각하세요. 이곳만 해도 평수가 2만 평입니다. 이곳에 15층 이상으로 때려지으면 얼마를 더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 뿐이 아닙니다. 충주방면으로 그곳에도 지금 땅을 알아보고 있는 중 이예요. 그러니 청주 것이나 제대로 소화할 생각이나 하세요."

"그럼, 청주 물량은 나를 다 주는 건가?"

"하시는 것 봐서요. 잘 만 지으면 남 줄 이유가 없잖아요. 잘만 하시면 다 드릴 테니, 너무 욕심 내지 마시고 차근차근 건설해 가세요. 실례된 이야기자만 저와 만났으니,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물량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역삼동에도 지금 100만 평의 땅이 조성되어 있어요. 지금은 전자 공장이다 뭐다해서 공장부지이지만, 십년 아니, 그 안에 그 곳도 개발이 시작될 겁니다. 그러니 너무 일 욕심내지 마세요."

"하하하.........! 알았네, 알았어! 내 이런 멋진 사위를 두고 그런 개........"

멋쩍은지 더 이상 욕설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입은 싱글벙글 웃느라고 닫힐 새가 없었다.

"자, 다들 배고플 테니 이제 식사나 하러 갑시다. 내가 한 턱 쏠 테니!"

"역시 강 사장이 멋쟁이는 멋쟁이야!"

많은 일감을 맡게 된 김 소장이 신이 나서 나를 추었다. 우리는 곧 자신이 타고 온 차에 올라 시외버스터미널 앞 대형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2층의 큰 룸을 빌려 소고기 등심을 먹었다. 가볍게 반주도 곁들이면서.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눈치껏 대정건설 간부들과 김 소장이 바쁘다는 핑계로 먼저 서울로 떠났다. 이제 나와 수정의 가족만 남게 되었다.

"당신 언제 서울 한 번 안 올라가실 래요?"

"올라가긴 올라가야지."

"당신한테 아직 얘기를 안 했지만, 사위가 수정이의 아파트는 물론, 내 아파트도 한 채 사줬어요. 그러니 언제든 당신이 올라와도 잘 곳은 있으니 걱정 말고요."

"그래? 정말 난 놈은 난 놈이네. 이건 욕이 아니야. 그렇다는 거지. 몇 개월 못 본 사이에 언제 그렇게 부자가 됐지? 하긴 내 율량동 공사를 할 때부터 솜씨를 알아보긴 했지. 남들 아무도 못 잡아 내는 누수를 한방에 해결하더라고. 그 때 내속으로 적잖이 감탄을 했지. 아무튼 사위 감사하네. 앞으로 하나 밖에 없는 우리 딸내미 잘 위해주고, 아무튼 잘 살게."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리고 제가 아까 현장에서 말씀드린 대로 빈말이 아니고, 이젠 아마 물량에 쳐죽을 지경이 될 겁니다. 그러니 청주가 됐든 서울이 됐든 물량 걱정 마시고, 잘만 지어주세요. 그러면 일거리는 끊임없이 있을 겁니다."

"고맙네, 사위! 정말 고마워! 우리 그런 의미에서 악수 한 번 새롭게 하지. 하하하.........!"

"네, 장인어른!"

"호호호........! 두 양반이 악수하는 걸 보니, 왜 나도 이렇게 기분이 좋지요."

"나도요, 엄마!"

비로소 끼어드는 수정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이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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