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46화 (146/322)

< --정면 돌파-- >

이것이 그야말로 비전의 위력이었다. 회사원들 모두에게 꿈을 심어주어 동기유발을 시키고, 그를 자양분으로 사원 모두가 신바람이 나서 뛰어다니게 하는 것. 같이 미소를 짓고 이들을 바라보던 내 표정이 다시 엄숙 모드로 돌아서서 말을 꺼냈다.

"하고 연말이 다 되어가니 관리부서는 일 년의 성과를 총 정리하여 성과급을 줄 준비를 하세요. 많이 남았으면 많이 남은 대로. 적게 남았으면 적게 남은 대로 지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내가 1년을 대충 결산한 바로는, 올해도 우리 회사는 크게 수익을 거뒀습니다. 그대로 성과급으로 지급할 테니. 그리 아세요. 이런 것은 아까워할 필요 없어요. 이것을 나 혼자 독식하면 절대 우리 회사가 장차 크게 발전할 수 없어요. 모두 이익을 공유할 때, 말려도 신바람이 나서 누구든 뛰어다닐 겁니다."

"그렇지만 사내 유보금으로 남겨 두시는 것도........ 왜냐하면 오늘날 어느 대기업도 우리 같은 문화가 없습니다. 모두 사장이나 회장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가지요."

김 부장의 우려에 내가 답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국의 기업문화를 선도하자고요. 이 소식이 외부로 안전해질 것 같습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모든 종업원들이 떠들고 다닐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 회사로 인류인재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어요. 기업은 내 누누이 얘기하지만 사람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 토양 위에서 풍성한 열매가 열리는 것이니, 내 말 명심하고 그대로 행하세요. 더 이상의 이의 제기는 불허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시고, 회의 끝나고 나면 채 과장은 날 좀 보고 나가요."

"네, 사장님!"

"할 말 없습니까?"

좌중이 서로 눈치만 볼 뿐 조용했다.

"그럼 오늘 아침조회는 이것으로 파하겠습니다. 나가서 일 보세요."

"네, 사장님!"

모든 간부들이 일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모두 나가고 나의 명대로 관리부서의 채 선장 과장만 남았다.

"오늘 당장 303호에 전화 한 대 신청하세요. 그리고 303호의 맞은편 즉 304호가 비어있나 알아봐서 비어있다면, 하나 더 분양받으세요. 그리고 나랑 청주에 땅 좀 보러 다닙시다."

"방송 광고 시간 잡는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고요?"

"무슨 말입니까? 그 안에 빨리 빨리 마무리 지어야지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방송이 어디 입니까?"

"TBC입니다."

"동양방송 말이죠?"

"네."

"그 중에서도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 있질 않겠습니까?"

"정경부인 같은 사극물입니다."

"그 시간대에 광고를 따내도록 하세요."

"그런데 문제는 전국방송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서울과 부산 권 위주라서."

"그래요? 나는 TV 시청을 잘 안 해서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 MBC나 KBS도 한 번 알아보세요."

"네!"

"그러지 말고 세 방송에 일제히 때리는 것으로 하세요."

"돈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요."

"돈 걱정은 말고요. 기왕이면 황금시간 대에 잡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우리기업의 이름을 꼭 넣도록 하세요. 기업이미지 광고 삼아서."

"알겠습니다. 사장님!"

"됐습니다."

"네!"

채 과장이 바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어 나도 일어나 연구동으로 찾아갔다.

올빼미 족이 다 된 여 선배가 내가 깨우자, 마지못해 일어나 앉았다.

"무슨 일로?"

"영상반주기는 다 됐습니까?"

"끝난 지가 언제인데? 지금은 일본의 노래와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데?"

"진즉 말씀하셔야죠. 나는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하여튼 그놈의 무신경은........!"

책한 내가 말했다.

"연구할 것 또 하나 가져왔습니다."

"그래? 우리야 연구할 것이 있으면 언제나 환영이지."

나는 그 자리에서 연필과 노트를 달래 현대의 압력밥솥 모양을 스케치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나라 전통 가마솥의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압력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 밥맛을 더욱 돋운 제품이지요. 그렇게 하자면 내가 보기에는 패킹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강한 압력에도 견딜 수 있는 두께로 만들어야 할 것이고요. 하나 더. 밥이 다 되었을 때 알람기능을 하는,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등의 기능이, 더 부과되었으면 좋겠네요."

"접수했음. 내가 볼 때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모르지. 일단은 해봐야 알겠네."

"부탁합니다."

"요즘 카세트테이프가 별로 라면서?"

"오늘 판매촉진을 위한 일단의 쇄신책을 내놓았으니, 아마 연달아 공장 짓느라고 바쁠 겁니다."

"하하하........! 나는 강 사장의 사업 수완을 믿어. 그래서 우리가 기댄 거고."

"절대 믿음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그 연구나 빨리 진행해주세요."

"오케이! 접수했음. 나 졸린데?"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목례를 까딱해 보인 내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마자 여 선배는 바로 뒤로 벌렁 누웠다. 30분 전에 일찍 출발해 나는 수정을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물론 아기는 장모에게 맡긴 다음이었다. 내가 사무실에 도착하니 10분 전 9시였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니 벌써 모니카 벨루치는 물론 임권택 감독마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방으로 들 가시죠."

"의외로 사장님이 젊습니다."

임 감독의 말에 나는 아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강 대정입니다.

'

"임권택이오. 그런데 저 분은 이탈리아의 유명하신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 여기는 황수정 씨?"

"다 맞으나, 틀린 부분도 있습니다. 모니카 벨루치 씨는 동명이인입니다. 이름도 외모도 아주 흡사하나 영화배우 본인은 아닙니다. 저도 한동안 착각해 꿈속에서 헤맸으니까요. 물론 잿밥에 먼저 마음이 있었지만 서도요."

"모델로 쓰시려고?"

"네!"

한국어니 파벨 씨의 부인이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나는 곧 서 이사를 청해 통역을 의뢰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히 내 방으로 갔다. 모두 자리를 잡고 차를 한 잔씩 마신 후, 내가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두 분이 모델로는 어떻습니까?'

"아주 좋습니다. 황수정 씨는 그 특유의 청순미에다가 아직 이미지에 때가 묻지 않아, 신선미가 있고요. 저 부인은 누가 봐도 모니카로 착각할 만큼 너무 빼닮았어요. 요는 시나리오가 문제입니다."

"제 생각은 말입니다. 이런 각본이면 어떨까 합니다."

"여기 있는 수정 씨는 두 가지로 나누어 찍는 겁니다. 우선 캠퍼스를 배경으로 여대생인 수정 씨가 한 팔에는 책을 끼고 교정을 걸어가는데, 머리에는 헤드폰을 끼고 있는 겁니다. 그 때 한 남학생이 수정 양을 부릅니다. 그러나 집중해서 듣고 있기에 모르고 계속 걸어갑니다."

"할 수없이 남학생이 툭 쳐서야 헤드폰을 빼고 그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합니다. 이때 헤드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즉 음악을 듣고 있었다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목걸이처럼 앞에 걸고 있는 저희 제품인 카세트테이프를 클로즈업 하고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둘로 나뉩니다."

"한 번은 음악이고, 한번은 영어회화가 흘러나옵니다. 영어회화가 나오는 장면은 국내용이고요, 전 세계인의 청소년들이 듣는 팝송의 한 곡은 외국방송용입니다. 그러고 모니카 부인은 저녁놀 비끼는 호숫가를 배경으로, 나무가 아주 울창한 산책로를 산책하는 장면으로 시작을 합니다."

"물론 모니카 부인도 목엔 카세트테이프를 걸고 있고요, 귀에는 헤드폰이 씌어져 있습니다. 산책을 하던 모니카 부인이 이윽고 벤치에 앉습니다. 이때 물새 떼들이 하늘로 비상을 해 장관을 이룹니다. 이 모양을 보기 위해 헤드폰을 벗는 순간 고전 클래식 음악이 헤드폰에서 흘러나옵니다. 이때 또 카메라는 우리 제품을 클로즈업하고요. 제가 생각한 대충의 시나리오인데 감독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굿! 다 좋은데, 지금 계절이 마땅치 않군요. 캠퍼스도 낙엽이 뒹구는 누런 금잔디를 배경으로 했으면 좋겠고요. 모니카부인이 걸을 산책로 또한 우거진 고목 사이로 낙엽이 발치에 수북이 쌓인 장면이 좋은데요. 조금 더 다듬으면 앉을 벤치에도 낙엽이 몇 점 날려 있었으면 좋겠고요."

"시간이 촉박하니 우선은 캠퍼스 장면부터 촬영을 하죠. 캠퍼스는 지금도 누런 잔디라 가능할겁니다. 그렇지만 산책로의 배경은 눈이 쌓인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새 떼가 비상할 때 멀리 잡히는 눈이 덮인 배경 산도 멋있을 것 같고요."

"좋습니다. 그대로 진행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남학생이 없군요. 남학생으로는 가만히 있어보자. 아! 사장님이 인물도 준수하고 젊고 아주 적격이겠는데요?"

"아, 아닙니다. 저는 연기도 못할뿐더러 사양하고 싶습니다. 이 방송이 나가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면이 팔릴 덴데, 저는 그런 면보다는 사업가로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볼 때는 사장님 생각이 틀렸어요. 일단 사장님 말대로 얼굴이 팔리고 나면, 사장님을 처음 뵙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상대가 친근감을 느낄 겁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업에도 유리한 점이 많지 않을 까요?"

"이것 참.........!"

내가 생각해도 별 무리가 없는 추측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민에 빠졌다.

"시간도 없는데다가 솔직히 사장님만한 얼굴 구하기도 힘들어요. 제 말대로 합시다."

이제 밀어붙이기까지 하는 임권택 감독이었다. 이때 지금까지 서 이사의 통역으로 모든 상황을 듣고 있던 모니카가 나섰다. 갑자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단 한마디였다.

"굿!"

"여보, 그래요. 헙!"

황수정의 말실수였다.

"아니, 두 분이 부부사이 십니까?"

임권택이 얼마나 놀랐는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하며 물었다.

"와, 나는 황양의 외모가 청초하고 해서 굉장히 순수하게 봤는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하하하.........!"

이 정도 되면 쓸어 담을 단계는 넘었다. 평소 그 당당하던 황수정이 부끄러움으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고, 나 또한 겸연쩍은 미소만 흘리고 있는데, 웃음기 남은 음성으로 임 감독이 말했다.

"두 분이 부부라면 더 이상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얼마나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오겠습니까?"

"이 정도 되면 나도 빼기가 어려웠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언제부터 촬영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음........! 촬영장소가 문제인데....... 캠퍼스야 경희대 캠퍼스가 아름다우니 그 쪽을 택하면 되겠고, 요는 호수를 낀 산림이 울창한 곳이라? 국내에서는 찾기 어려울 텐데. 내 생각에는 딱 미국의 어느 호숫가가 연상되는데? 아니면 스위스라든가?"

그러고 나의 반응을 살피는 임 감독이었다.

"그렇게 되면 여권수속이다 뭐다 해서, 감독님의 촬영스케줄을 우리가 빼앗는 것 아닙니까?"

"그 동안만 잠시 스케줄을 뒤로 미루면 되지요. 제게 큰 어려움은 없군요."

"좋습니다. 외국의 장소는 감독님께서 선정해서 알려주세요. 그러면 여권 수속은 제가 밟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국내 촬영은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내일 오전 9시까지 경희대 캠퍼스로 세 분 다 나오세요."

"알겠습니다."

내가 답을 하고 모니카 부인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비록 경희대가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를 지라도. 나는 곧 모두를 보내고 수정을 데려다 주기 위해 그녀를 내 차에 태웠다.

"미안해, 자기! 내가 오늘 말실수 하는 바람에......."

"어디가나 조심 좀 해야겠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것 고의적 아냐? 공공연히 소문내 아예 이참에 인정을 받자는........."

"설마, 내가 그렇게까지 잔머리 대가는 아니거든."

"하긴 네 성격에 그럴 사람은 아니고."

"여보, 진짜, 미안!"

쪽!

"진짜 미안하면 입술에도 한 번 해봐."

"쳇!"

쪽!

"됐어?"

"그래. 앞으로는 말조심 안 해도 돼."

"됐네요!"

삐친 척 옆으로 돌아앉는 수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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