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45화 (145/322)

< --정면 돌파-- >

벨을 누르자 수정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어찌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엄마가 말을 안 들어."

"안 올라오시겠다는 거야?"

"아직도 내가 용서가 안 되는 가봐."

"골치 아프군."

정말 이래저래 골치가 아파왔다.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는 문제며, 미정과 명희에게 이 사실을 알려 두 여인에게 동의를 구하는 문제까지, 어느 하나 쉽지 않은 문제였다. 두 여인의 문제만 해도 세월에 맡기려한 것이 아무래도 곪은 상처를 그냥 안고 가는 것 같아 찝찝한데다, 아이 또한 누구에게 맡기지 않으면 수정의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세월에 맡기려 한데는 결정적으로 한 요인이 작용을 했다. 미정이나 명희나 모두 검정고시에 통과되어 예비고사까지 보았다. 그 결과 미정은 260점

대를 받아 당연히 서울 지역까지 합격한 반면에 명희는 190점대로 간신히 충북지역만 합격을 하였다.

그래서 이제 이들에게는 1월 달에 치르는 본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실정이었다. 이에 공부에 지장을 줄까봐 이를 미룬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이것이 자꾸 신경에 거슬려 정신을 집중치 못하게 하니 아무래도 내 사업에까지 영향을 줄 것 같았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 아무래도 두 여인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하고 정면 돌파를 감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막 이런 결심을 굳히는 찰나에 수정이 말을 붙여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세요?"

"응. 내게 이미 두 여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

"네!"

"아무래도 두 여인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해야할 것 같아서."

"두 여자가 방방 뜨지 않을까요?"

"명희는 좀 덜 할 것 같은데, 미정이 문제야. 쉽게 수긍하지는 않을 것 같아."

"큰이이네요.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 사실을 숨기고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내가 터트린다는 것 아니야. 본고사가 남았지만 우선 당장 내가 자꾸 신경이 쓰여서 안 되겠어. 명희까지 불러다 아예 삼자대면을 시켜야겠어. 당신도 각오해."

"저야 각오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요. 두 사람의 처분에 맡기는 수밖에."

"그럴 때는 제법 사람 같네."

"뭐라고요. 나 황수정 그렇게 거친 여자 아니 예요. 말만 좀 그렇지."

"알아, 알아. 그러나 저러나 짐 정리는 다 됐어?"

"어느 정도는 요."

"아기는 자나 보네. 조용한 걸 보니까."

"네."

"저녁은 요."

"당연히 안 먹었지."

"밥 할까요?"

"솜씨도 없다며?"

"헤헤헤........! 그래도 나부터가 안 먹을 수가 없잖아요."

"해봐. 어디 황수정 솜씨 좀 보자."

"실망하기 없기."

"안 한다. 어련하겠어. 인물 값 하느라고 부엌을 제대로 드나들었겠어?"

"헤헤헤........! 알면 됐어요."

등을 돌려 주방으로 향하는 수정이었다.

"철산이는 어디 있지?"

"안방에서 자요."

"그 놈이나 좀 볼까?"

"깨우지 마세요."

"알았어, 알았어."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작은 요와 이불에 싸여 자고 있는 녀석을 한없이 내려다보았다. 둘의 연에 의해 한 생명이 태어나 숨 쉬고 있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물끄러미 녀석을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곧 주방으로 행했다.

"내일 TV 광고 때문에 임권택을 감독을 9시에 우리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런데 저 녀석 때문에 큰일이네. 저 녀석을 데리고 가면 황수정이 아들까지 있다는 시실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게 아니야?"

"그렇다고 혼자 내버려두고 갈 수 없잖아요. 저는 일보다도 우리 철산이가 먼저예요. 아기를 위해서라면 무슨 희생이라도 치를 수 있어요."

"당신 마음은 알겠는데, 당신에게도 피해가 안 가는 방법이 없을까?"

"유모를 구하는 것은 어떨까 요?"

"가족에게 맡길 수 없으면, 그게 차선이긴 하지. 잠시만 기다려봐.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관계도 훈풍으로 돌아서게 할 방법을 내 강구해 볼 테니까."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난 당신을 믿어요. 철산이 아빠!"

"그런 일에만 믿는 것 아니야?"

"아니죠. 밤 실력도 믿지요. 날 너무 괴롭혀서 문제이긴 하지만."

"이제 별소릴 다 하고 있군. 그러나 저러나 우선 당장 내일이 문제잖아. 가만히 있어보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내가 물었다.

"장모님 댁에 전화 있지?"

"당연하죠. 왜요? 당신이 전화하게?"

"응. 알려줘 봐."

"당신이 한다고 쉽게 되겠어? 아무래도 힘들걸."

"알려주기나 해봐."

"000-0000번이예요."

"당장 전화부터 한 대 놔야겠다. 이거야 원, 갑갑해서. 내일 당장 채 과장시켜 전화 한 대 놓으라고 할 테니, 그런 줄 알아."

"고마워요."

"내 전화 걸고 올게."

"네. 강 대정, 파이팅!"

"젠장. 알았다, 알았어!"

나는 그 길로 단지 내 공중전화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몇 마디 하지 않아서 당장 올라오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택시비는 부담하기로 하고 우리가 사는 집 주소를 받아 적게 했다.

그런데 막상 올라온다고 생각하니 둘 만의 공간이 침범 받는 것 같아 섭섭했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 내일 알아보기로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저녁이 다 되어 수정이 식탁에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이때 때가 되었는지 철산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정이 황급히 안방으로 뛰어갔다. 가면서 수정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잘 됐어. 지금 바로 택시 타고 올라오신다고 했어."

"역시 강 대정이야! 뽀뽀라도 한 번 해주는 건데, 아기 때문에........."

그러고 황급히 안방으로 뛰어드는 수정이었다.

아기를 안고 수정이 맞은편 식탁에 앉았다.

"드셔 보세요. 맛이 없더라도 한 눈 질끈 감고, 밥공기 하나는 다 비우기."

"알았다, 알았어."

나는 계란말이부터 하나 통째로 입에 넣어보았다. 그런대로 맛있었다. 그리고 콩나물국의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보았다. 맨 탕이었다. 전혀 간이 되어있질 않는 것 같았다.

"콩나물국에 간 안했어?"

"아니, 했는데?"

"평소 이렇게 싱겁게 먹는 거야?"

"네. 그래서 여간해서는 사먹는 음식이 입에 맞질 않아요. 대부분 다 짜요."

"싱겁게 먹는 게 좋기는 좋지. 나는 소금 좀 줘봐. 도저히 싱거워서 못 먹겠다."

"알았어요."

우유병을 물린 아기를 안고 주방으로 향하는 수정이었다. 이렇게 교대로 저녁을 먹고 한 시간 쯤 지나자, 나는 장모님이 곧 올 시간이 된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내가 담배를 두 대쯤 피우고 있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한 수정이 내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아기는?"

"재웠어요."

"그러다 밤에 안자는 거 아니야?"

"가끔은 안자고 보챌 때도 있는데, 아직은 잠이 많을 때잖아요."

"몇 키워본 사람 같은데?"

"쳇. 그러나 저러나 보기보다 당신은 참 자상하고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이네요."

"가족에게만. 남에게는 냉혈동물이지. 못된 짓도 많이 하고."

"사회생활은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 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피해를 보고, 오히려 악랄한 놈들이 잘 사는 세상이지. 나도 그 축에 들지만."

"안 그럴 것 같은데요?"

"아니야. 남에게는 가혹한 면이 많아. 그것은 내가 잘 알아. 목적을 위해서는 대체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편이지."

"진즉 나도 그렇게 잡지 그랬어요?"

"내게 두 여자가 있다고 떠난 게 누군데?"

"그래도 당신이 강력하게 잡았으면, 아마 고민은 했겠지만 당신을 따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역사나 인생에 있어서 'if' 즉 가정법이라는 게 성립되지 않아. 요는 지금부터라도 내게 잘 하고, 아기 잘 키우면 돼. 내 행복하게 해 줄 테니까."

"맞아요. 당신 알면 알수록 멋진 사람이네. 나는 왜 진즉에 이런 매력을 발견하지 못 했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이야."

"쳇 그럴 때는 무슨 개똥철학자 같은 느낌이네요."

"요것이.........!"

내가 수정의 코를 잡아가는데, 단지 내로 들어오는 택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오시나 봐요."

수정이 얼른 팔짱을 풀고 택시 앞으로 뛰어나갔다. 마스크를 벗고 멎은 택시를 향해 소리 지르는 수정이었다. 나도 빠른 걸음으로 택시로 향했다.

"엄마!"

"응, 그래."

아직은 차가운 장모의 반응이었다. 나는 그동안 택시비를 계산해주고, 택시를 보냈다.

"엄마~!"

아양을 떨며 살갑게 장모님의 팔짱을 끼는 수정이었다.

"자네 말 참말이지?"

"네, 장모님!"

"내 자네만 믿네!"

"틀림없습니다. 추운데 어서 들어가시죠."

"그러세."

"무슨 이야기인데?"

나를 향해 묻는 수정이었다.

"그런 게 있어. 장모님과 나만의 비밀. 그렇지요?"

"그럼, 그럼! 딸년 다 필요 없어. 사위가 백 배 낫다."

"쳇. 됐어요!"

일부러 팔을 풀며 화난 척을 하는 수정이었다.

"흥! 들어가세."

장모님은 한 술 더 떴다. 내게 다가와 내 팔짱을 척 끼고 안으로 들기를 재촉하는 장모님이셨다.

"아이고, 나만 외톨이네. 나도 거기 껴주라."

"이리와 당신은 내 왼쪽!"

"역시, 우리 여보야가 최고야!"

냉큼 달려와 내 왼 팔짱을 끼는 수정이었다.

"아이고, 눈꼴 시려."

이번에는 장모님이 내 팔짱을 뺐다.

"장모님 그러지 마시고 요."

내가 다가가 팔짱을 척 꼈다.

못 이기는 척 나에 이끌려 계단을 오르시는 장모님이셨다. 이튿날 오전 조회시간.

대정전자 간부들도 압구정 대 회의실에 모두 모였다. 대정전자도 아침조회는 이곳에서 하고 그곳으로 출근하게 되어 있었다. 전자는 물론 건설, 무역의 전 간부들이 모인 석상에서 내가 모두를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현안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현안은 카세트테이프의 판매부진을 타개하는 일입니다. 해서 내가 몇 가지 그 해결책을 제시할 테니, 틀림없이 시간을 다투어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문을 연 내가 점점 더 열기를 띠며 발언을 이어나갔다.

"첫째 가격을 인하할 것. 많이 인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경우 2만 원대가 아닌 1만 원대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19,500원으로 인하할 것. 일본은 33,000엔으로 아구를 맞출 것. 즉 자투리는 떼어버리라는 말입니다. 아시겠죠?"

"네!"

"둘째 기존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디자인실에서 새롭게 내놓은 컴펙트하고 심플한 제품을 생산할 것. 셋째 지금까지 대정 무역이 독점하던 외국의 수출물량을,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출과 수입을 원하는 모든 업체에 개방을 해 수출을 촉진할 것. 넷째 현지 언론을 활용해 우리 제품이 이 분야 세계 최초의 제품임을 널리 선전할 수 있도록, 언론 플레이를 전개할 것. 특히 이 문제는 무역부서에서 신경을 써서 행하세요. 아셨습니까?"

"네, 사장님!"

무역부서원들이 일제히 고개 숙여 복명을 했다.

"끝으로 오늘부터 광고를 제작하여 전 세계의 선진 시장에는 광고가 일제히 나갈 겁니다. 이렇게 되면 생산 물량이 크게 달릴 것으로 저는 예상합니다. 해서 미리미리 이에 대한 대비를 해주셔야겠습니다. 현 공장의 빈 공간에 두 개 라인을 증설하고, 최 과장!"

"네, 사장님!"

최 계용 사장이 부동자세로 답을 했다.

"같은 규모의 제2, 제3의 공장을 연속해서 짓도록 하세요. 학교와 조경 공사는 다 끝났죠?"

"네, 사장님! 마무리 단계입니다."

"바로 시행하도록."

"네, 사장님!"

"하고, 생산부서에서는 미리미리 컨베어벨트 라든가 공구 지그 등을 장만해 놓고, 관리부서에서는 이에 따른 인력 증원을 미리미리 충원해 놓도록 하세요. 알겠습니까?"

"네, 사장님!"

"그런데, 사장님! 정말 그렇게 잘 나갈까요?"

김 부장의 말에 내가 아주 자신 있는 모습으로 답했다.

"제 말을 믿으세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이 문제 대한 이의 제기는 여기까지만.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올해를 끝으로 내년부터는 아파트 시장에 일대 광풍이 불겁니다. 해서 나는 우선 청주에서부터 조그맣게 시작을 하려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년 하반기에는 이곳 즉 공장 외의 터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마냥 5층 정도로 짓는 것이 아니라, 최소 15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를 지을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관련부서는 차질 없이 이에 대한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사장님!"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우리 회사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는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곧 그룹이라 불릴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서 이사의 통쾌한 웃음에 모두가 싱글 벙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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