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턴 황수정-- >
이튿날.
아침 조회가 끝나자 나는 수정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아직 채 정리가 되지 않은 아파트 내부를 돌아보면서 내가 수정에게 말했다.
"오늘 청주 내려갔다 와."
"왜요?"
"친정어머니 모시고 와서 아기도 좀 돌보라 하고, 같이 지내면 덜 적적할 것 아니야?"
"이것들은 언제 정리하고요?"
"같이 하면 한결 빠르잖아? 혼자 힘들여 하지 말고."
"알았어요."
"돈 아끼지 말고 택시 타고 다니고 그래. 아기 감기 걸리면 병원비가 더 들어."
"알았어요."
"여기 100만 원이야. 당분간 생활비 해."
"고마워요. 여보!"
쪽!
답례로 내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하는 수정이었다.
"루즈 안 묻었어?"
"쳇, 제 얼굴을 보세요. 화장을 했나?"
"나도 참! 항상 신경이 쓰이다 보니........."
"광고 문제는 어떻게 됐어요?"
"응, 언제 만나기는 만났는데, 아직은 더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가봐. 의견 상충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알겠어요. 되면 꼭 연락주세요. 그 길만이 제가 당신에게 보답하는 길이겠네요."
"그런데 나랑 만나고 너무 변하는 것 아니야?"
"그럼, 내가 언제나 날 뛰는 망아지인 줄 알았어요. 나도 내 성질만 안 건드리면 조신한 사람 이예요."
"앞으로도 제발 좀 그렇게 좀 살아라."
"그렇게는 못 하겠네요. 너무 성질 죽이고 살아도 화병 걸려 제 명에 못 죽을 걸요?"
"알았다. 알았어. 적당히만 하면 돼."
"그럼요. 이제 맞추어서 살아야지요."
"그래, 그래."
"나 오늘 스케줄이 바빠 그런 줄 알고, 조심해서 다녀와."
"저녁때는 들릴 거죠?"
"응. 잠시라도 들리도록 할게."
"일찍 다녀와 내가 저녁 해 놓을게요."
"밥이나 할 줄 알아?"
"엄마가 하면 되지."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내 놀림 안 받게 요리학원도 다니고 그럴 거예요."
"알았어. 장차 맛있는 반찬 기대하지."
"좋았어요. 내 꼭 입맛으로 당신을 사로잡고 말 테니까."
"기대하지. 그럼, 잘 다녀와."
"네."
"나오지 말고. 그러고 외출할 때는 항상 보안에 신경을 써. 지금까지 어떻게 기자들에게 노출 안 되고 지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야 할 거야."
"그 새끼가 그런 건 잘 하데요. 불리한 기사가 나갈 것 같으면, 그 기사를 돈으로 사곤 했어요."
"나는 그럴 형편도 못 되니 당분간은 조심하라고."
"네, 서방님!"
'그 말투는 미정이랑 똑같다.'
"나 간다."
"저녁 때 봐요."
"그래, 그래!"
현관까지만 나와 나를 배웅하고 다시 문을 걸어 잠그는 수정이었다. 나는 그 길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내가 아침 일찍 전화를 넣어 약속을 받아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 이 미연 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네. 차는 한 잔 하셨습니까?"
"네. 벌써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는걸요."
"그랬습니까? 바쁘니 일단 가시죠."
"네, 사장님!"
나는 곧 이 양을 차에 태워 모처로 향하기 시작했다.
"알바를 하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빠른 속도로 한남동으로 차를 몰았다. 내 집이 아니라 파벨 씨가 거주하는 연구소 겸 그의 자택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 출근한 나는 광고문제에 대해 혼자 집중적으로 생각을 했다.
그 결과 나는 수정이 대학 및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공략을 한다면 중장년층의 공략대상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으니, 미모가 뛰어난 파벨 씨의 부인 모니카 벨루치 여사였다. 물론 많은 돈을 들여서 모델을 구할라치면 대상이 많았지만, 나는 이 부인 또한 어떻게 무료 또는 아주 저렴하게 이용해 볼 생각으로, 이 여인을 떠올리고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씀이라도 해보세요. 실내가 너무 조용하니까, 이상하네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는 데요. 하하하........!"
"호호호.......!"
사실 내 말대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차만 빠르게 몰았다. 그 결과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해, 우리는 금방 파벨 씨의 연구소 겸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도 500m 밖에 떨어지지 않아, 평소에도 자주 내왕할 수도 있었으나, 가봐야 영어를 못하는 나로서는 벙어리나 다름없으니 자주 가게 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내가 벨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모니카 벨루치 여사가 나를 맞았다. 통상 집이라 하면 한 채 채를 지칭하나, 이 연구소 겸 자택은 똑 같이 생긴 집 두 채를 내가 구입해, 중간의 담을 헐어낸 구조로 사실은 두 채였다.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고맙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하네요."
"네!"
나는 이 미연 양의 통역에 의해 말을 주고받으며 부인을 따라 내실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주위를 돌아보니, 부인의 소원대로 잔디가 깔려있던 정원이 상당히 텃밭으로 개조 되어있었다. 모니카 씨의 취미가 이런 정원 가꾸기나 텃밭을 꾸며 무엇을 기르는 것이었으므로 내가 제공한 아파트를 마다했던 것이다. 아무튼 내가 부인을 따라 거실로 들어갔더니, 파벨 씨 외에도 이웃 집(담을 털었지만 엄연히 두 집임)에서 연구에 진력하고 있던 세 사람이 놀러와 있었다.
"반갑습니다. 세 분!"
"어서 오오."
다른 사람은 나의 인사에도 시큰둥한데 초로의 홀로 늙어가는 하운스 필드 경만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1919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벌써 58세로 금발보다도 흰머리가 더 많은 하운스 필드 경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양반 외에도 나머지 네 사람의 자세한 이력을 듣고 되게 놀란 적이 있었다. 이 양반만 해도 레코드 및 음향기기 생산을 주 업종으로 하던 EMI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영국 최초로 트랜지스터 컴퓨터 에미덱(EMIDEC)1100을 제작한 설계팀을 지도하였고, 이후 컴퓨터단층촬영(CT) 진단 기법을 개발하여, 1972년에는 주사를 이용한 임상 실험에 성공한 사람이기도 했다이 사람에 의해 개발된 CT촬영기를 EMI에서 상용화해 판매하고 있으나, 그 실적이 신통치를 못했다. 하긴 음향기기 생산업체에서 발매를 했으니 잘 나가는 것이 이상할 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이에 회의를 느낀 하운스 필드 경은 그곳을 뛰쳐나와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에 세계 시장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켜보고자, 파벨 씨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CT촬영기는 오히려 1979년에 제너럴 일렉트릭에 의해 개량되어, 세계 시장을 주름잡게 된다. 또 하운스 필드 경은 CT촬영기를 발명한 업적을 인정받아, 1979년 미국의 앨런 M. 코맥과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노벨상 예비 후보를 한 사람 지금 키우고 있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이 사람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오늘 날 우리 기업까지 흘러들어와,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나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두 사람도 알고 보니, 나에게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사람은 프랑스 인으로 브루노 버지(Bruno Berge) 박사라는 사람이었다. 물방울 일렉트로웨팅(electrowetting) 현상을 발견을 사람이라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또 한 사람은 영국의 피터 맨스필드(Peter Mansfield)라는 사람으로 MRI를 연구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처음 내가 파벨 씨로부터 이들의 이력을 듣고 놀란 것은 모두 휴대폰 개발과는 관계가 없는 엉뚱한 분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를 지목해 질문을 했더니, 파벨 씨 왈, 연구에는 그 분야 사람만 모여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 사람이 논의하다보면 때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뭐라고 그러겠나. 이미 나는 그에게 권한을 준 것을.
처음 파벨 씨가 다섯 사람을 데려왔으니 지금 두 명이 부족했다. 한 사람은 다른 저택에 있고, 한 사람은 얼마 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영국으로 돌아갔다 한다. 리처드 브랜슨 이라는 사람으로 버진 레코드를 설립해 일정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난독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 휴양 겸 파벨 씨의 조언을 위해 왔다가, 이 생활도 갑갑하다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훗날 알고 보니 이 사람이 애틀랜틱 항공을 설립하는 등, 영국에서는 유명한 기업인으로 버진 그룹(Virgin Group)을 창업해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었다. 그가 있을 때 단지 차 몇 잔 나눈 인연으로 끝난 것을 나는 두고 두고 후회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있을 때 잘 해줄 걸. 나와의 인연이 그것뿐이라 생각하고 나는 씁쓸한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훗날 또 엮일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이들과의 인사를 끝내고 나는 본격적으로 여기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파벨 씨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파벨 씨 부인 좀 빌려주세요?"
"뭐?"
순간적으로 놀라 눈이 확 커지는 파벨 씨였다.
"아, 그런 게 아니고........."
나는 손부터 저어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정색을 하며 변명을 하고 나서야, 말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부인이 너무 아름다우셔서, 우리 전자의 카세트테이프 재생기의 모델로 삼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럼, 개런티를 내야지."
'오나가나 그 놈의 개런티 소리는.......'
"개런티를 드리려면 요새 싱싱하고 잘 빠진 얘들 많은데........ 허 이거,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내 말에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하는 부부를 보노라니 내가 큰 실수를 했음을 알았다. 다른 때는 안 그러는데 이들 부부만 만나면 이상하게 말이 꼬이는 나였다.
"사실 제가 요즘 초창기라 어렵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름다운 부인이 우리 회사를 살리는데 헌신한다고 생각하시고 도움을 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는 안 되지."
냉엄하게 선을 긋는 파벨 씨였다. 그래서 나는 작전을 달리 하기로 했다.
"이 집도 연구소로서는 적어 답답하다면서요?"
"그렇소!"
'젠장 이탈리아에서는 얼마나 큰 집에서 살았는지 몰라도, 내가 볼 때는 이것보다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괜히 트집이야, 트집이야.'
내심 투덜거리면서도 그대로 말 할 수는 없어 이들을 달래야 했다.
"내가 부인의 찬조출연으로 돈을 좀 번다면 내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약속하건데, 이보다는 최소 3배 이상의 규모를 지닌 연구소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인가?"
"저를 겪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어디 일구이언 하는 사람입니까?"
"좋네! 허락하지. 단 사흘이네."
"알겠습니다."
"허니는 어떻소?"
"당신이 허락한 이상 따라야지요."
"고맙소."
이렇게 해서 나는 모델 둘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다음 일을 추진할 때였다. 나는 그들과 잠시 더 대화를 나누다가 곧 자리를 떠나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곧 서 이사와 채 과장을 찾았다. 채 과장은 임 감독을 만난다고 나가 아직 안 돌아왔다 하고, 서 이사는 자신의 방에 있었다.
나는 곧 서 이상의 방으로 찾아들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도 이사님 고생 좀 시키려고 찾아뵈었습니다."
"뭔 일이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이번에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의 TV매체들과 광고협약 좀 추진해 주세요."
"무슨 광고를 하시게요."
"카세트테이프 광고입니다."
"기대에 못 미치니 사장님의 걱정이 크시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TV 광고와 함께 몇 가지 보완만 한다면 아주 잘 나갈 것입니다. 나는 이사님이 출국 하시는 대로 신규 공장부터 지을 생각입니다."
"예? 너무 서두르시는 것 아닙니까? 결과를 보고 하셔도........"
"아닙니다. 주문은 쏟아지는데 미처 물건을 못 댄다면 이 무슨 낭패입니까? 자신이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 마시고, 제가 말한 부분이나 확실하게 추진 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서 여건이 되는 대로 출국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요. 제가 의당 해야 할일인 것을 요. 그리고 이번에는 이 미연 양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영어로 다 통용이 되드만요."
"알겠습니다."
나는 곧 이사실을 나왔다. 그러고 오후에는 채 과장으로부터 임권택 감독과 모든 협의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물었다.
"언제 모델들과도 만나야 되고 협의를 좀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부터 딱 1주일 밖에 임 감독이 여유가 없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다음 영화촬영이 계획되어 있어서요."
"그럼 전화를 드려 내일이라도 당장 만나는 것으로 하죠. 광고 시나리오는 내 머리 속에 들어 있으니, 나도 함께 만나 그 부분도 협의를 하게요."
"알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확실히 시간 약속을 받아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수고 좀 해주시고요."
"네, 사장님!"
"아, 참!"
"말씀하세요."
"한국 TV 채널에 대한 광고의뢰는 과장님께서 책임지고 미리미리 추진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 날 오후 퇴근 무렵에 나는 채 과장으로부터 일단 내일 오전 9시에 임 감독이 우리 사무실로 오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채 과장에게 내일은 제일 먼저 파벨 씨 집으로 가, 그 부인을 사무실로 모셔오도록 사전 지시를 했다. 그러고 나는 저녁때가 되어 수정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향해 차를 몰았다. ============================ 작품 후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임들의 사랑속에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시고, 선작, 멘트, 그리고 많은 쿠폰을 주신님들께 진심으로감사를 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