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턴 황수정-- >
"너, 지금 나한테 부자 됐다고 자랑 할라고 여기서 내린 거지?"
"그래. 하하하.........! 차에 타라."
"차도 있어?"
"젠장, 차 하나에 몇 푼 한다고. 우리 직원들도 한 대씩 사줘서, 다 타고 다니는 게 이 포니다."
"그래?"
놀랍다는 얼굴로 조수석에 앉는 그녀였다.
"아기 받아야 운전하지."
"그래, 그래. 어디 보자 우리 아들!"
"아들이야?"
"응! 아들이라고 못 마땅한 거야?"
"그건 아니지만."
"싫으면 나 여기서 내리고."
"누가 싫다고 했어. 안전벨트나 매!"
나는 괜히 소리를 빽 질렀다.
"애 때문에 매기가 곤란하네."
"그럼, 그냥 있어. 내 천천히 몰 테니까. 거리도 얼마 안 되고."
"알았어. 그런데 이 누나 배고프다."
"젠장. 오늘 가지, 가지, 한다. 보나마나 아파트 들어가 봐야 썰렁할 테니, 보일러나 틀어놓고 나와서 저녁 먹자."
"알았어. 여보!"
"뭐?"
"아기 아버지면 여보 아니야?"
"아이고, 야! 내 오늘 너 때문에 울다 웃다 별짓을 다한다. 십년은 너 때문에 더 못 살겠다."
"그러면 안 되지. 자기는 오래 살아야지. 그렇지 자기?"
"그만해. 닭살 돋는다."
"헤헤헤......! 그럴까?"
어떻게 돼가는 꼬라지인지 나도 모르겠다. 젠장!
303호.
문을 따고 들어가니 냉기가 훅 끼쳐왔다. 예상한 대로였다. 나는 발이 시릴 것 같아, 구두를 신은 채 들어가 보일러를 틀었다. 그리고 불을 끄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문밖에서 아이를 어르고 있던 수정이 물었다.
"틀었어?"
"응. 왜 깬 거야?"
"배고플 때도 됐지. 아, 그러고 보니 젖병하고 거기다 다 놓고 왔다."
"잘 하고 있다."
"언제 그런 시간 여유나 줬어?"
"됐다. 젖병도 사고, 저녁도 먹으러가자. 그런데 젖은 아예 안 나오는 거냐?"
"망가지게 왜 먹여? 헤헤헤.........! 젖도 빈 젖이다."
내 눈치가 이상하자 얼른 꼬랑지를 내리는 수정이었다.
"이 근처에 젖병 팔만한 데가 어디 있더라?"
"젖병만 있으면 뭘 해. 분유도 잊어야지."
이때 아기가 버둥거리더니 드디어 울음을 터트렸다. 오로지 하나 뿐인 수단인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 것이다.
"상가 가게에 있지 않을까?"
"분유도 파니 있겠지."
나는 빠르게 차를 몰아 상가 큰 슈퍼마켓 앞에다 대고 얼른 안으로 뛰어들었다. 큰 깡통으로 하나의 분유와 마침 젖병도 있어 하나를 샀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니 집에 화장지도 하나 없어 화장지도 세트 째로 하나를 샀다.
나는 다시 차에 타자마자 바로 급출발을 했다. 안전벨트도 메지 않았다. 아기가 계속 울고 있으니, 마음이 급해서였다.
"그냥 빈 젖이나마나 물려봐라. 정신 사나워서 원......"
"알았음."
웃옷을 까올리는 황수정을 보고 말했다.
"됐다."
"왜?"
"저 집으로 그냥 들어가자."
앞에 보니 마침 정 주영 회장과 전 상무와 왔던 회집이 보였다.
"회 싫어하는 것 아니지?"
"좋아하지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아."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대개 보면 바닷가 쪽에서 살던 사람이 회를 좋아하고, 충북 촌놈들은 대개 별로인 것 같더라. 바다가 있어야 생전 바다 생선을 먹어보지. 기껏 간에 절인 생선이나 먹는 거지."
"그걸로 논문 한 편 써."
"지랄, 다 왔다."
나는 황급히 차에서 내려 문을 열고 아기를 달래서 받았다. 수정이 젖병과 분유를 가지고 내렸다. 그러고 보니 아기 기저귀를 빠트렸다.
'젠장 이다. 젠장!'
"그러고 보니 기저귀를 안 샀다."
"오늘은 그냥 화장지로 대체하지 뭐."
수정이 그렇게 말하고 세트에서 화장지 하나를 꺼냈다. 웬일인지 아기가 울음을 그쳤다. 비로소 나는 녀석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내 자식이라도 더럽게 못생겼다. 어미 애비가 다 인물이 좋은데 어디서 이런 게 나왔을까 싶다.
"그런데 아기가 왜 이렇게 못 생겼냐?"
"여보 닮아서 그렇지 뭐. 날 닮았으면 인물 하나는 끝내 줄 텐데."
"내가 그렇게 못 생겼냐?"
"어렸을 때는 그렇겠지? 얘도 크면 제 애비 닮아서 인물이 훤할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벌써부터 닮은 것 같잖아?"
"나는 모르겠다."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문이 코앞 이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며 물었다.
"아기 이름은 졌냐?"
"응."
"어서 오세요?"
주인아주머니와 서빙 하는 미시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빈 방 있죠?"
"네. 두 분이 세요?"
"그렇습니다."
"진양아 7번 방 드려."
"네. 절 따라오세요."
우리는 살랑살랑 흔들리는 엉덩이를 따라 7번방으로 향했다. 방석을 내준 진양이라는 미시즈가 물었다.
"뭐로 드시겠어요?"
"지난번에 보니까, 아나고 회 괜찮던데, 회 3인분 하고, 구이도 3인분 주세요. 소주도 한 병 주시고요."
"술 먹게?"
"그래 네가 하도 놀래 켜서 진정 좀 시켜야 되겠다."
"내가 뭘?"
"아니냐? 그럼?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니, 안 놀라면 정상이냐?"
"헤헤헤........! 그렇긴 그렇겠네."
"그러고 보니 술을 다 깬 모양이네."
"나도 모르게 깨어있네."
"얘 이름은 누가 졌어?"
"지을 사람이 누가 있어. 내가 지었지."
"뭐라고?"
"강 대산(姜 大山)!"
"뭐라고?"
"왜? 좋잖아? 큰 산이 되라고."
"이 멍충아, 애비 함자는 피하는 거야. 나랑 대(大) 자가 겹치잖아."
"그래? 그럼, 자기가 하나 지어봐."
"음.......! 강 철산(姜 鐵山) 어때?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름 아냐?"
"괜찮은 것 같은데?"
"아가, 네 이름은 오늘부터 강 철산이란다."
수정이 볼을 부비며 말하자 갑자기 또 아기가 울었다.
"오줌도 쌌을 거야. 갈아줘."
"알았어."
"내 뜨신 물 좀 얻어 올게."
"우와! 자기가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어?"
"시끄러운 것보다는 낫잖아."
"알았어. 빨리 갔다 와."
"그래."
나는 곧 문을 열고 나가 뜨거운 물을 한 대접 얻어왔다. 나는 곧 분유 뚜껑을 열어 알루미늄 부분을 제거하고, 내재된 스푼으로 대접에 분유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고 그것을 잘 저어 젖병에 담는데 2/3는 담고, 1/3은 흘렸다. 이때 밑반찬을 가지고 오다 이 모양을 본 미시즈가 얼른 달려가 걸레를 가져왔다. 그것을 수정이 받아 닦는데 미시즈가 물었다.
"혹시 황수정 씨 아니세요?"
"아닌 데요. 저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그런데 그 사람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방에 들어오자 마스크를 벗는 바람에 정체가 탄로 난 수정이 임기응변을 했다.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하는지 백이면 백이 다 속아 넘어가게 생겼다.
여자가 곧 실망한 얼굴로 식탁 위에 밑반찬과 양념이 된 붕장어 구이와 소주 한 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1인 분을 불판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먹을 테니, 나가서 일 보세요."
"네!"
여자가 내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자기는 탤런트 해도 되겠어. 방금 여자도 자기한테 시선을 못 떼잖아."
"쓸데없는 소리."
일축한 내가 고기를 뒤집었다. 아기가 분유를 먹느라 조용하니 살 것 같다.
"오줌도 쌌지?"
"당연하지. 내가 구울게."
"배고프다며, 어서 먹기나 해."
"고마워."
사양 않고 젓가락을 짚던 수정이 무슨 생각인지 술병부터 땄다.
"자기, 내가 한 잔 따라 줄게."
"알았다."
나는 소주잔을 들어 잔을 받았다.
"운전할 줄 알아?"
"응. 면허 딴 지 6개월 됐어."
"잘 해?"
"그냥저냥."
"이따 차 끌고 가."
"싫어."
"왜?"
"나 맡기고 많이 마시려고 그러지?"
"당근!"
"뭔 말이 그래."
"당연하다는 소리야."
"쳇, 별말이 다 있네."
"마담과는 어떤 관계야?"
"응, 과 선배 언니였는데, 아르바이트하다가 아빠 하나 만나는 바람에, 그 사람이 차려준거지."
"아빠?"
"실제 아빠가 아니고 나이 든 기둥서방."
중간의 우여곡절은 안 들어봐도 알조였다.
"아~ 해!"
"자기나 많이 먹어."
내가 굽느라고 정신이 없자 나를 먹이려 애쓰는 수정이었다.
"참, 학교는 어떻게 됐어?"
"응. 휴학계 냈어."
"학교 계속 다녀."
"아기는 어쩌고."
"친정 엄마 보고 올라오시라고 해서, 보라고 하셔."
"엄마도 그 새끼와 헤어졌다고 삐졌는데. 아빠가 그 길로는 통 발걸음을 안 하니, 덩달아 삐진 거지."
"사정 얘기 그대로 전하고 달래면 올라오실 거야.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 잖아."
"알았어. 엄마 정도야 내가 꼬실 자신 있지."
"아빠 사업도 타격이 크겠네."
"그럼, 그 새끼가 어떤 놈인데. 준 일도 다 올 스톱 시켜, 다 빼앗아 버렸어. 그 바람에 아버지는 지금 화병으로 몸져누워 계시고, 나 하나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야. 하긴 내 잘못만도 아니지. 나를 애초에 그 새끼한테 접근시킨 게 아빠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야, 우선 먹고 하자. 이러다 비싼 고기 다 태우겠다."
"알았어."
그때부터 둘은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된장에 밥까지 시켜먹고 나니 우리는 포만감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왔다. 운전은 내가 해서 왔다. 술을 딱 한 병만 마시고 안 마셨기 때문에 내 주량으로는 입만 놀랬다. 아무튼 집에 돌아오니 그동안 보일러를 틀어놓아서인지 훈기가 좀 돌았다.
그런데 집안이 너무 건조했다. 아무래도 이러다가는 아기가 감기 걸릴 것 같아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물을 떠다 놓을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귀찮았지만 다시 나는 밖으로 나갔다. 아침을 생각하니 양치도구도 하나도 없어서, 아기기저귀하고 같이 사러 나온 것이다. 나는 곧 아파트 상가로 가서 바가지와 세면도구, 타월 등을 샀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국산 기저귀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미제 기저귀를 한 통 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가지에 물을 한 가득 떠다 방에 놓고는, 자고 있는 아기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정이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오래 씻는지 한참만에야 수정이 욕실에서 나왔다. 머리를 타월로 비비며 그녀가 말했다.
"자기도 씻고 와."
"알았다."
"무뚝뚝하기는."
나는 아무 말 없이 욕실로 들어가 빠른 속도로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침구도 하나도 없었다. 이 모양을 보니 오늘밤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을 걸, 괜히 집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이도 한심한지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또 나가기도 그렇고, 오늘밤만 하룻밤 그냥 자자."
"알았어."
수정이 먼저 아기 옆에 누웠다. 그런데 벌써 옷을 다 벗고 팬티와 브래지어 바람이었다. 나도 양복을 벗어 방바닥에 안 구겨지게 잘 놓고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런데 둘의 자세가 묘했다. 수정은 아기 쪽을 보고 자느라고 나에게서 등을 돌린 자세였고, 나는 똑바로 누운 자세였다. 그러고 보니 제기랄 불도 안 껐다. 내가 일어나 물었다.
"불 끈다?"
"응."
나는 소등을 하고 더듬더듬 더듬어 수정의 옆으로 와 누웠다. 여전히 똑바로 누운 자세였다.
누워서 혼자 오늘 일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게 무슨 묘한 운명의 장난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못났는지 몰라도 저 아이가 정말 내 자식일까 하는 일말의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수정의 말이 맞다면 98%는 혈액형으로 보나, 출산일로 보나, 내 자식이 맞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생기는 2%의 의구심은 지울 수가 없었다. 전생과 같이 DNA 검사가 라는 기법이라도 있었으면 받아보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 기법이 외국은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내가 몸을 뒤적이는데 수정이 물었다.
"당신 자?"
"아니."
"내가 더러워서 그런 거야?"
나는 수정의 이 말에, 알 수 없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슴이 먹먹해져왔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런 거야?"
"아니, 당신은 내 첫사랑이자, 영원한 내 끝 사랑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와락 달려들어 힘주어 끌어안았다.
"왜 대답이 없어?"
그래도 수정의 대답은 여전히 없었다.
다만 가늘게 떨리던 어깨가 끝내는 파동 치더니, 와락 울음으로 쏟아졌다.
"흑흑흑.......!"
그 가운데에서도 그녀가 내 손을 잡아오며 간헐적으로 띄엄띄엄 말했다.
"고....... 흑흑흑........ 마 워. 대 정........ 흑흑흑........ 씨!"